([육식의 성정치]를 읽고 있습니다.) 

5장을 마치 비몽사몽 간에 읽은 것처럼 스리슬쩍 넘어간 후, 6장에 이르러 다시 흥미가 생겼다.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 옛날옛적 고리적 언제적인지 생각도 안 나는 그때 봤던, 아마도 흑백이었을? 그것조차 기억 안나는 ㅎㅎㅎ 영화 프랑켄슈타인. 내용도 가물가물. 읽어봐야지 생각만 하던 그 책이다. 


책을 읽다 보면 이 책에 나온 이야기가 저 책에 또 나오고 우연히 들춰본 책에 다시 그 이야기가 나와 신기할 때가 있다. 지금 내게 바로 <프랑켄슈타인>이 그러하다. 메리 셸리와 프랑켄슈타인을 다룬 책은 많으므로, 그래서 내가 그 책들을 많이 읽었다면 응 여기도 나오고 저기도 나오고 거기도 나오고 그렇지, 했겠지만 나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메리 울스턴크래프트가 메리 셸리의 어머니인 줄도 몰랐던 사람이라, ^^;; 한 달 안에 읽은(본) 책들 중 세 권이 프랑켄슈타인으로 연결된다는 사실이 즐겁고 신나는 일인지라.ㅎㅎㅎ 



*

먼저 [육식의 성정치] 6장에서 가장 인상 깊은 구절. 


"창세기 3장의 타락을 이런 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이브를 요부로 간주했던 기존의 해석학적 시각을 벗어던지는 것이며, 세상 악의 근원으로 보았던 여성에 대한 가부장제의 망상을 제거해 버리는 것이다. 채식주의자의 비판적 관심은 푸주한들의 (동물 도살이라는 남성적) 기능, 그리고 육식이 남성다움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는 전제들에 있었기 때문에, 타락 이후 온 세상을 가득 메운 해악[육식]은 남성화된 것이 아닐지라도 이제 일반적인 것이 된다. 이브의 존재가 <프랑켄슈타인> 이야기 - 특히 피조물 - 의 전부라는 길버트와 구바의 주장을 지지라도 하듯이 피조물은 아담과 달리 스스로, 즉 밀턴이 <실락원>에서 묘사하고 있는 이브처럼 "향기로운 과일들"로 식사를 준비한다. 그리고 이 피조물이 자신의 동반자를 마음속으로 그려 보면서 같이 식사하는 모습을 상상하기는 하지만, 어느 경우에도 피조물은 자신의 동반자가 의무감에서 음식을 준비하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지는 않는다." (구판, p.214) 


"폭군에 저항한 프로메테우스라는 낭만주의의 기본적인 시각 이외에, 메리 셸리는 이 신화에 대해 또 다른 해석을 내리고 있다. 낭만주의 채식주의자들에게 불의 발견이라는 프로메테우스의 이야기는 바로 육식의 발단에 관한 이야기다. ... 퍼시 셸리는 이 신화에 대해 다음과 같은 낭만주의적 채식주의의 해석을 내린다. "(인류를 대표하는) 프로메테우스는 자신의 천성에 다소 큰 변화를 가했으며 불을 요리 목적에 사용했다. 다시 말해, 도살장에 대한 자신의 혐오스런 공포감을 숨길 수 있는 방편을 개발한 것이다. 이 순간부터 인간의 장기들은 질병이라는 독수리에게 쪼아 먹혔다." " 


책을 읽으며 잠시 시들했던 오!! 소리가 조금씩 다시 나오기 시작했다. 

메리 셸리 이야기는 얼마 전에 읽던 책 <여자와 책>에 나와서 반갑게 읽었었는데, 이 책에 그 읽은 내용이 각주로 나왔다. "이런 공포를 소재로 한 소설이 낭만주의 소설로 이어지면서 낭만파 시인인 바이런과 셸리 부부, 그리고 바이런의 주치의였던 의사 폴리도리에 의해 <프랑켄슈타인>과 <흡혈귀>가 창작된다." (구판, p.219) 

이 얘기 읽었는데! 하고 전자도서관으로 달려가서 미처 다 못 읽고 반납한 <여자와 책>을 다시 빌려왔다. 열심히 그은 밑줄 다 사라지고. 힝. 페이퍼 써야지 했던 생각들도 다 날아가고. 역시 적으면서 읽는 게 가장 좋은 방법.ㅠㅠ 

아무튼 <여자와 책>에서 메리 셸리가 <프랑켄슈타인>을 쓰게 되는 과정과 배경을 이야기해준다. 바이런과 폴리도리 이야기도 꽤 비중을 차지한다. 여성작가와 작품에 얽힌 일화를 읽는 일은 즐겁고, 책에 언급되는 책들을 찾아보는 일도 즐겁다. 그러니 <여자와 책>도 마저 읽어야지. 절반을 넘어 끝을 향해 달려가며 아 뿌듯하다, 마릴린 먼로다, 하고 읽다가 반납된. 흑 처음부터 다시 꼼꼼이 읽어야 하나 싶네. 기록이 하나도 없어.ㅠㅠ 















슈테판 볼만, [여자와 책]. 이 책은 알라딘 상품 검색창에서 제목으로 검색이 잘 안 된다. 온갖 '여자'가 붙은 책들이 줄줄이 나오는데 저 책은 계속 안 나와... 저자 이름 쳐야 첫페이지에 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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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먹은 후, 구입해 놓고 안 보는 중인 전자책 목록을 보다가 음, 시집 땡기네, 한번 볼까 하고 권박의 <이해할 차례이다>를 폈다. 휙휙 넘기면서 시가 좀 난해하네... 많이 난해하네... 하는 도중 뜬금없는 각주의 행렬들. 어떡해. 각주가 흥미롭.... 나에게만 흥미로운가, ㅋㅋㅋㅋ 하다가! 여기도 <프랑켄슈타인> 나온다! 좀 길지만 옮겨본다. 


"이름이 없어서 존재를 부정당한 여자들이 있었다. 메리 셸리는 1818년 <프랑켄슈타인>을 처음 출간했을 때 이름을 밝히지 못했다. 시인이자 그녀의 남편인 퍼시 셸리가 책의 서문을 썼는데, 그는 서문에서 소설을 쓴 계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두 명의 다른 친구들과 나는 초자연적인 사건을 토대로 각자 이야기를 써 보기로 했다." 소설을 쓴 메리 셸리와 그 자리에 같이 있었던 클레이몽이 없는 사람 취급을 당했다는 것은 2판에서 메리 셸리가 서문을 쓰면서 밝혀진다. 그녀는 소설을 쓴 계기를 다음과 같이 밝힌다. ""우리 각자가 유령 이야기를 쓰기로 하지." 바이런 경이 제안했다. 우리 모두 그의 제안에 동의했다. 그 자리에 네 사람이 있었다." 

여자는 남자처럼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회였다. 여성 작가를 괴물 같은 존재로 취급하는 사회였다. 그래서 어떤 연구에서는 <프랑켄슈타인>에 등장하는, 죽은 인간들의 살과 뼈로 만들어진 이름 없는 괴물이 메리 셸리를 의미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프랑켄슈타인이 죽은 인간들의 살과 뼈를 모아 괴물을 만들었듯 메리 셸리가 어머니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에게 영향을 받아 <프랑켄슈타인>을 썼다고 보는 것이다. 메리 울스턴크래프트가 작가이자 여성 운동가인 점이 그런 해석의 밑바탕이 되었다.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는 여자는 남자를 기쁘게 하기 위해 존재하며, 남자에게 복종해야 하고, 여자의 교육은 남자와의 관계 속에서만 기획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루소와 계몽주의자들의 의견에 반박하기 위해 1792년 <여성의 권리 옹호>를 썼는데, 책은 익명으로 출간되었고 2판에서 비로소 이름을 밝힐 수 있었다. " 


<여자와 책>에서 자세히 이야기해주지 않은 부분들을 또 알게 되었다. 

이 시집 꼼꼼이 읽어야 겠네. 그런데 좀, 많이 힘들고 벅차기는 하다. 휘리릭 봤지만 저변에 분노가 깔려 있는 것이 느껴진달까. 훑어본 느낌이니 정확하지는 않다. 전자책인 것이 너무 아쉽다. 역시 시집은 종이책. 

아래는 시집 1부 시작하기 전에 실려있는 시의 단어에 대한 각주의 끝부분이다.(프롤로그 끝부분)


||  "결국 이 세상은 남자들의 세상이라는 사실로 다시금 귀결"되고 "여자로 태어난 게 나의 끔찍스러운 비극"이기에, "페니스와 음낭이 아니라 가슴과 난소의 싹을 틔울 운명을 타고"나 "엄격한 한계 속에 갖혀" 버렸기에, "기껏 남의 정서를 맡아 관리해 주는 관리인이나 아기 보는 사람, 남자의 영혼과 육체와 자존심을 먹여 살리는 유모 노릇이나 해야" 하기에, 죽음에 대해 알아 갈수록 죽음과 나와의 거리를 직시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나는 나에 대해 말하기 위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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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에 이렇게 깊고 많은 뜻이 있었어!! 몰랐잖아, 모를 뻔 했잖아! 꼭 읽어야 겠어! 하고 보니 나도 그 책 갖고 있기는 하네? 신나~ 하고 들고 왔지만 프랑스어판이고 심지어 발췌본... 크헝... 어쩔 것이냐. (뭘 어째. 한글판으로 사야지.ㅠㅠ 전자책도 없다구. 심히 우울하다. 또 종이책을 사야 하는 것이냐.) 





학생들 대상으로 만든 책이라^^;;;;; 메리 셸리의 생애와 시대적 배경과 해석들, 관련자료, 확인코너 등등이 친절하게 실려 있다. 코로나가 없던 언젠가의 벼룩시장에서 제목만 보고 앗 좋아 하고 샀더니 발췌본이라는 글자를 못 봄. ㅎㅎㅎㅎ 다시 사야.... 사진을 몇 장 더 올려보면.. 
















빠진 챕터들은 저렇게 간략히 요약해 놓았다. 책을 이렇게 만들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다니엘 페낙 선생님도 <소설처럼>에서 그러셨지. 책 일케일케 줄여 만들어서 애들 읽히지 말라고. 찬성합니다, 선생님. 왜 말을 안 들을까요? 



[육식의 성정치]를 읽었으나 그 책 이야기는 쬐매밖에 없고 이것저것 모아놓은 산만한 페이퍼가 되었다. 이렇게 될 줄 알았지. 아마 나는 리뷰를 못 쓰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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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01-19 23: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으흐흐흐 난티나무님! 제가 프랑켄슈타인 보일 때마다 흥분해서 마구 댓글 달고 다니는데요, 프랑켄슈타인 진짜 진짜 재미있어요!! 제가 2017년에 읽고서는 올해의 책이다, 했던 바로 그 책입니다!!!!! >.<
이히히히 저는 오늘은 육식 못읽었네요. ㅜㅜ 내일 출근길을 기약하며 이제 자야겠어요. 난티나무 님 저는 자러 갑니다. 슝-

난티나무 2021-01-20 16:18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의 프랑켄슈타인 예찬 많이 본 것 같아요.^^ 종이책을 사야 하는지라... 끙... 올여름이 가기 전에 읽겠다는 목표를 세워봅니다. 불끈!
저도 어제 하루 내내 공쳤어요. 오늘도 내일도 그럴 것 같은 예정이 기다리고 있어요. 흑.
출근은 잘 하셨겠고 퇴근도 더 즐겁게!!! 좋은 하루 보내세요~~~^^

2021-01-24 12: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24 14:2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