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E. 윌킨스 프리먼, [엄마의 반란] 




참는다 

말하지 않는다 

못본 척 한다 

이해되지 않아도 이해하려 애쓴다 

아이들에게(혹은 주변 사람에게) 아버지를(남편을) 이해시키려(용서를 구하려) 애쓴다 

또 참는다 

더 말하지 않는다 


첫번째 단편 "엄마의 반란"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들. 


작지만 무엇인가를 바꿀 수 있는 반란(이라는 단어가 맘에 안 들지만). 표현하는 용기. 행동하는 결단력. 모든 것은 작게 시작된다. 작아보여도 그 사람에게는 전혀 작은 것이 아닐 수 있다. 


"루이자는 옷장 서랍을 애정 어린 눈길로 들여다보았다. 내용물들은 라벤더와 클로버 향을 풍기며 정갈하게 잘 수납되어 있었다. 과연 앞으로 루이자는 이런 것들 없이 살 수 있을까? 루이자는 조화롭고 세심하게 관리된 집에 남성이 존재함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먼지와 무질서를, 끝없이 발견되는 남성 관련 물건들을 자신이 난처한 정도로 질색하는 데 스스로도 놀라고 있었다." 

"뉴잉글랜드 수녀" 중 한 구절.



"갈라 드레스" "뉴잉글랜드 수녀"도 좋았지만 마지막 "엇나간 선행"이 마음에 더 남는다. 

나는 이미 결혼을 '해'버려서일까. 20대가 아니라 50대에 접어들기 때문일까. 지금 이 나이에도 "뉴잉글랜드 수녀"의 루이자처럼 내 삶을 온전히 가꾸면서 '혼자' 살고 싶다는 소망은 여전하고 그것을 또다른 방식으로 생각해 보기도 하지만. (루이자, 진심 그대가 부럽소.)


얼마 전부터 더 나이가 들면 혼자 사는 것보다 누군가 여자사람과 둘이서 살면 아주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죽이 잘 맞는 내 동생이나, 몇 시간 말없이 함께 앉아서 책을 볼 수 있는 내 친구나. 혹은 행여나 앞으로 만나게 될 지도 모르는 친구나. 정말 더없이, 더할 나위 없이 좋겠구나, 그런데 지금으로선 꿈만 꿔야 하겠구나 싶어 즐거운 상상 뒤에 그만 슬퍼지곤 했다. 

그런 상상 속에서 "엇나간 선행"의 두 할머니처럼 눈이 보이지 않고 귀가 들리지 않게 되는 상황은 없었다. 그런 날이 오겠지, 언젠가는. 눈이나 귀가 아니더라도, 어딘가가 고장나고 아픈 몸이 되겠지. 그렇게 되어도 해리엇과 샬럿처럼 살고 싶은 바람. 혼자이고 싶지 않고,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과 함께 하고 싶은 마음, 누가 먼저 죽지 않고 비슷한 시기에 죽음을 맞이하면 좋으리라는. 그렇게 되려면 잘 늙어야지, 건강하도록 노력해야지, 병간호를 시키거나 하게 되는 입장을 만들면 서로 피곤하니까, 이런 가지를 뻗치는 생각들. (그래서 옆지기에게 자주, 아프지 말자, 아프지 마라! 간호는 힘드니까! 난 못할 거야!를 주입시키곤 한다.ㅠㅠ 그런데... 옆지기가 늙어서도 지금의 옆지기와 같은 사람이라면, 마음 맞는 여자사람친구와 사는 것이 훨씬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흑)


요양원 이야기가 나오자 떠오르는 기억이 하나 있다. 

유학 초기, 첫아이를 낳을 무렵부터 2년 정도를 서민아파트라 할 수 있는 곳에서 살았었다. 같은 층에 살지만 서로 왕래는 없고 만나면 가볍게 목례 정도 하는 사이였던 할머니가 있었다. 내가 외국인이라 그랬는지 원래 수줍은 성격이라 그랬는지는 알 수 없으나 할머니는 나에게 먼저 말을 건네거나 인사를 건네는 법이 없었다. 어느날 집에 들어가는 길에 할머니의 집 문이 활짝 열려 있고 짐꾼들이 왔다갔다 하는 것을 보았다. 이사를 가나 보다, 했다. 할머니가 현관문 바깥에 서 있었다. 작고 작은 몸을 하고 슬픈 얼굴을 하고. 이사하세요 말을 건넸더니, 할머니가 울먹거린다. 나 요양원 가기 싫은데... 가기 싫어, 그냥 여기서 혼자 살고 싶어... 아아 뭐라고 말을 해야 하나. 그 당시의 나는 할머니의 마음을 1도 정확히 몰랐지만 그 슬픔을 위로하고 싶어 가만히 팔을 쓸어내려주었다. 괜찮을 거예요,라는 시덥잖은 말밖엔 건넬 것이 없었다. 잠시 나에게 기대는가 싶던 할머니는 평소에 나와 데면데면했던 사이라는 것이 갑자기 떠오른 듯이 몸을 떨어뜨렸고, 곧 꼿꼿한 자세를 되찾았다. 그렇게 할머니는 아파트를 떠났다. 가끔 그 할머니가 생각난다. 얼굴은 흐릿하게 잊혀져 갔지만, 요양원 안 가고 혼자 계속 살고 싶다는 그 말은 잊혀지지 않는다. "엇나간 선행"을 읽으면서 할머니의 그 말이 새삼 가슴에 사무친다. 


또다른 생각, 공동체. 

이 부분은 개인적으로 고민이 많다. 

소설 속 해리엇과 샬럿은 동네 사람들의 정과 보살핌 속에 있다. 적당한 사람들의 관심과 왕래가 그들의 생활 한켠에 자리하고 있다. 비록 그 마음이 자매에겐 때로는 지나치고 동네 사람들에겐 당연하다 여겨지는 부분이 있지만. 공동체의 중요성. 작건 크건, 그것이 가지는 많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항상 '적당한 거리를 둔다'는 전제를 지킬 것. 


그리고... 

해리엇이 도넛을 가져온 부인을 대하는 태도를 보자, 일순 많은 것이 이해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샬럿, 넌 사람들이 먹을 걸 가져다준다고 우리를 거지나 쓸모없는 인간으로 깔봤으면 좋겠어? ...... 그럼 내가 사람들한테 도넛이 딱딱하다거나 감자가 형편없다고 말해도 다시는 나서지 마. 내가 계속 그런 식으로 세게 나가야 우리도 초라하지 않고 사람들도 우리를 업신여기지 않는 거야. 그리고 '사랑의 집'에도 안 보낼 거고. 내가 말랑말랑하게 굴었으면 우린 진즉에 거기 갔을 거야. 명심해." 


도대체 왜 그러는 건지 당췌 이해가 되지 않는 윗세대의 말과 행동들에 상처를 입을 때, 해리엇의 행동을 떠올려 보도록 하자. 이건 나이 때문이 아니라 자기보호본능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런 경우 아이들을 대할 때에도, 다른 사람을 대할 때에도 마찬가지일 것. (늘 머리로는 되지만 몸으로는 안 되는.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이해도 안되고 용납도 안되는 경우도 있긴 하더라.ㅠㅠ) 


100년 전에도 같은 생각을, 아마 200년 전에도, 그 이전에도, 우리의 조상들도, 같은 생각을. 늘 거기에 존재하고 함께 숨쉬고 있었던 생각들. 스러져간 생각들. 다시 시작하는 생각들. 

더많이 읽기. 먼저 읽고 리뷰와 페이퍼로 알려주신 알라딘 이웃님들에게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이 책 시리즈 '얼리버드오키드' 중 [한 시간 사이에 일어난 일]은 종이책으로 사서 조만간 받을 예정이고, [징구]도 구입 예정이다. [엄마의 반란]은 전자책으로 샀는데 흠, 종이책 갖고 싶네? 욕심은 버리고 알맹이만 갖도록 하자. 엄반 책 표지는 넘나 마음에 안 드는 것.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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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01-12 08: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엇나간 선행>이 좋았는데요. 무엇보다 자신의 기준으로 다른 사람의 삶을 판단해서 그 사람에게 구원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오만에 가까울 때가 많은게 아닌가 싶더라고요. 날 좀 이렇게 살게 내버려둬, 이게 나의 행복이라고! 부르짖는 사람들에게 과연 ‘너는 지금 행복하지 못한거야, 더 나은 삶이 있어‘라고 삶의 형태를 바꾸는 게 선일까 하는거죠. 선한 의도가 반드시 선한 결과를 가져오지 않고 선한 의도가 또 누구를 위한 선한 의도인가도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요. 저는 이런 이야기들이 정말 좋더라고요. 이 선함은 ‘선한 나‘를 위한 선함이 아니었나 생각해보게 하는, 그런 이야기요.

난티나무님, [징구]도 너무 좋아요, 너무! 저는 [한 시간 사이에 일어난 일]은 안샀는데 케이트 쇼팽의 다른 단편집을 갖고 있어서 겹칠것 같더라고요. 그래도 그냥 사서 이 시리즈를 차곡차곡 모아둘까 싶은 마음도 들고..혼란스럽네요. 사야겠지요? 혼란할 땐 사면 고민이 끝나는 것이니까요...


이만 총총.

난티나무 2021-01-12 17:50   좋아요 0 | URL
전적으로 동감하는 바입니다. 오만에서 벗어나는 삶이란 참 어려운 거 같아요.ㅠㅠ
저도 종이책을 사모으고 싶지만 지리적 여건상 전자책을 사야 할 것 같습니다요. 흑흑. 겹치지 않는 단편이 하나라도 있다면 사시는 것을, 모두 겹친다면 마시기를 살포시 권해보고요, 마지막엔 다락방님 마음 가는 대로~~~!!!!! ^^

2021-01-12 17: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12 17: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12 17:5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