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지만 먼 사이, 정말 가끔 만나지만 가까운 사이.

짧은 단편을 읽으면서 내가 본의 아니게 내친 사람들이 떠올랐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침을 당하고 영영 다시 안(못) 보는 사이가 된 사람들이 떠올랐다. 내쳐진 게 맞나? 내가 그 빌미를 줬겠지. 사소하지만 그 사람에게는 사소하지 않았던 무엇인가를 내가 소홀하게 대했겠지. 그 사람을 탓하지만 지나고 보면 그 사람 탓이 아니다.
뭉글뭉글 생각이 피어오르는 아침. 감상적인 일요일일세.

(박선우 [우리는 같은 곳에서] 중에서 동명의 단편)

나는 그녀에게 등을 보이는 자세로 돌아누웠다. 충분히 가깝다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결혼한 건데, 얼마든지 더 가까워질 수 있으리라 여겼는데, 언제부터인가 아내와의 간극이 좁혀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결혼 전에는 이 모든 것이 저절로 나아지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은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못했다. 오히려 서로의 단점들만 부각시켰고, 가끔은 알 수 없는 부추김으로 가슴을 짓눌렀다. 물론 세상의 어느 관계보다 아내와 나는 밀접한 사이라고 볼 수 있었다. 거의 하나에 가까웠지. 그러나 미세한 틈은 메워지지 않았고, 여전히 나는 온전하게 이해받지 못하고 있다는 고독감에 빠져들곤 했다. 그럴 때마다 뭐 하러 결혼했는지에 대해 생각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둘이 하나가 될 수 없는 거라면, 그것이 존재의 근원적 한계라면, 대체 무엇을 위해 우리는 이토록 붙어 지내야 한단 말인가. 불가능을 인정하기 위해서? 잊지 않기 위해서?

무릇 관계란 오래될수록 견고해지는 것이 아니라 무르고 허술해지기 마련이다. 영지는 어쩌면 우리도 이런 식으로 느슨해지다가 한순간에 툭 끊어져버리고 말겠지, 별것 아닌 일을 계기로 영영 볼 수 없게 되겠지, 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걸지도 몰랐다. 그러니까 오늘 같은 일을 계기로 말이다. 그건 무서워, 이쪽으로 와줘, 라고 부탁하는 상대에게 음, 시간이 애매한데, 멀기도 하고, 그게 그렇게 무섭나, 라고 퉁명스레 대꾸하는 순간에 벌어지는 일 같은 것. 이 세계에서 단 두 사람만이 감지하게 될 무한한 거리의 확장을 의미할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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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07 03: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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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07 04: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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