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콘서트
데이비드 나이븐 지음, 임성묵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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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아빠께서 고혈압으로 위험한 고비를 넘긴 후로는 고향집에 내려갈 때면 아침마다 아빠의 혈압을 재는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깨고는 했다. 자식은 소용없다라는 말이 맞다고 내 입으로도 말할만큼 아빠의 건강이 점차 좋아지자 걱정을 금세 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아무 걱정없이 지내며 엄마의 행동이 지나치다는 핀잔을 하며 걱정쟁이 엄마라는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엄마께서 매일 체크하는 혈압 덕분에 아빠는 또 한번의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엄마의 관심이 없었다면 저번처럼 운좋게 넘어가지는 못했을 것이라는 의사선생님의 말씀에 가슴이 철렁했다.

 

건강을 지키려면, 건강 해지려면 일상에 건강에 대한 관심과 지식을 알고 있어야한다. 아빠의 일을 겪으며 건강에 대한 관심은 높아졌지만 그것이 순간에 그칠 것임을 아는 나라는 것을 알지만 어떻게 해야 관심을 꾸준히 유지시킬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해보지만 딱히 답이 나오지 않는다. 엄마처럼 비타민이란 프로그램을 꾸준히 보며 메모하는 습관을 가져볼까? 하지만 엄마의 메모는 일주일이면 효력을 잃는 단점이 있다. 비타민이 일주일에 한번씩 나오기때문에 일주일 단위로 밥상의 식단이 바뀌는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 할머니께서 너무나 좋아하는 약장사에게 가는 것과 같은 인터넷의 과대광고와 홈쇼핑을 믿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책이었다.

 

건강에 관한 책은 의학서적이라는 고정관념을 가진 나로서는 재밌는 건강상식 책이 필요했다. 내용이 쏙쏙 들어오는 책이라면 더 좋고 그 지식이 어느정도 검증된거라면 더욱 좋다. 물론 생활에서 실천하거나 혹은 잘못 알고 있는 지식을 정정해주는 책이라면 더더욱 좋다. 이 책 <건강콘서트>는 그것을 모두 충족시켜주고 있다.

 

#콘서트의 성공조건 하나-알찬 내용

1.믿을 수 있는 책

-책에 소개된 100개의 건강 상식 밑에는 그것을 실험한 결과들을 적어놓고 있어 믿음이 간다. 이미 실험되거나, 조사를 통해 신뢰를 주기때문에 책을 읽으며 신뢰가 생긴다.

 

2.잘못된 건강상식

-자신이 알고있는 건강상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모르고 계속해서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 모르는 것보다 잘못 알고있는 것이 더 무서운 법이다. 책에는 우리가 오해하고 있는 건강에 관한 여러가지를 바로 잡아주고 있다. 대청소보다는 나누어서 청소를 하는 것이 좋다는 것, 한꺼번에 많은 약을 먹는다것은 위험하니 꼭 약사와 상의 해야하는 것, 벌레 잡으려다가 사람을 잡을 수 있다는 것, 몸에 좋은 비타민도 너무 많이 먹으면 독이 된다는 것등 우리가 일상적으로 잘못 알고 있는 지식들을 바로잡아 준다.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아이들이 감기에 걸려 콧물이 흐른다면 계속해서 코를 풀게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이들의 감기는 더 오래 갔을 것이다.

 

3.실생활에서 쉽게 실천

-책에서는 병은 재수가 없어서 걸리는게 아니라고 한다. 건강한 삶은 하루만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건강한 삶을 위해 건강한 습관을 삶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이다. 건강은 나를 넘어 내 주위 사람들을 위해서도 꼭 지켜내야 할 것이다. 책은 우리가 쉽게 실천할 수 있는 생활습관들을 알려주고 있다. 포도쥬스와 토마토, 귤, 시금치를 자주 먹자는 메모를 해서 냉장고에 붙여놓았다. 운동에 대한 중요성은 백번 말해도 부족하다. 음식과 함께 운동의 중요성도 이야기하고 있어 간단한 운동부터 시작하라는 조언이 마음을 움직인다.

 

4.몸도 건강, 마음도 건강

-몸의 건강만이 아닌 마음의 건강도 중요하다는 것이 맘에 들었다. 긍정적인 사고가 마음의 건강에는 최우선이다. 자살율이 점점 더 올라가면서 마음의 병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고민을 털어놓기, 웃음의 보약, 건강을 위한 포옹, 일기쓰기등 마음을 건강하게 하는 방법들이 잘 정리되어있다. 

 

#콘서트의 성공조건 둘-재미는 기본

-이 책은 딱딱하지 않다.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적어놓고 결론을 도출하는 방식으로 적혀있기때문에 재밌고 공감대를 형성하며 읽어내려 갈 수있다.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책은 쉽게 읽히고 가슴에 와닿는다. 딱딱한 건강상식에 관한 책에 질렸다면 정말 강추할만한 책이다.

 

#콘서트의 성공조건 셋-기억에 남아 또 찾게 만들기

-읽기 시작하면서 한 메모장은 이미 꽉 차서 공간이 없어진다. 이 책 자체가 메모장이다. 이 책을 화장실에 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야채들은 메모해서 냉장고에 붙이면 되지만 기억하고 싶은 건강상식들은 메모를 한다고 해도 붙일 곳을 찾는다해도 자주 보기는 어려울테니 매일 가는 화장실에 두고 틈틈히 다시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자주 보고 싶은 책들을 화장실에 두는 것은 내 버릇중 하나이다.  

 

재미와 지식을 한번에 잡은 책, 아주 맘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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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이 뉴스를 어떻게 전해 드려야 할까요? - 황우석 사태 취재 파일
한학수 지음 / 사회평론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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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잘도 잊는다. 사건에 대해 잘 모르면서도 지인들과의 술자리에서 황우석교수(이하 황우석)는 안주가 되었던 적이 있었다. 황우석의 진실이 드러나면서 술은 안주 없이 먹어도 될 정도로 잘 넘어갔고 밤이 깊도록  그를 안주로 삼아도 분이 풀리지 않는다고 말하며 헤어지던 때도 있었는데 어느새 잊어버렸다. 그래, 잊어버린 것이다.

 

쇠의 기질을 타고난 사람이여서 금방 달아오르고 금방 식는다고 사주에도 나와있다고는 하지만 내가 생각해도 나는 너무 심한 편이다. 그래서 다같이 환호하면 와~하다가 다같이 비난하면 따라서 우~하게 된다. 그 순간에는 제대로 알려는 마음이 생기기도 하지만 그 마음은 그 열기와 함께 사라지고 사건을 제대로 보지도, 알지도 못하면서 넘겨버리게 되니 수박 겉?기만 하게 된다. 누군가가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지난 사건들에 대해 물을 때면 꿀먹은 벙어리가 되는 것은 당연했다. 학교에서는 얼렁뚱땅 그런 상황을 넘겼지만 사회에서는 그것이 되지 않았다. 사건을 제대로 보고 제대로 판단하는 것이 어른에게 요구되는 것이다.

 

황우석에 관한 책을 <리더스 가이드>에서 열린 서평 이벤트에 참여한 것도 황우석 사건에 대해 1년이 조금 지났다고 까맣게 잊어버린 나를 보며 이번에는 제대로 좀 알고 넘어가자라는 마음에서였다.이 책이 손에 들어온 날 그 두께에 놀랐다. 다 읽고 나서야 이 두께도 한학수 PD는 참 많이 줄이고 줄였겠구라는 생각을 했다. 그는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해주고 싶었을까!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전해주려는 것이 아니였다. 그가 전해주려는 건 황우석의 베일에 쌓인 진실이었고 언론이 국민들을 얼마나 맹목적으로 몰고갈 수 있는지에 대한 무서움이었을 것이다. 책에서 황우석의 진실을 밝혀내는 것이 첫번째였겠지만 나를 무서움에 떨게 한 건 맹목적인 믿음의 무서움이었다.

 

책은 쉽지 않는 단어들이 많이 나옴에도 빠르게 읽힌다. 빠르게 읽힌다는 표현보다는 한번 읽으면 끝을 봐야한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제보부터 조사, 취재, 폭로, 그 후까지 시간적 구성으로 되어있는 책을 어떻게 중간에 내려놓을 수 있다는 것인가. 그렇게 손에 잡은 책을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읽어내려갔다. 한학수 PD의 상세한 설명은 생명공학에 무지한 내가 읽어내려가기에 약간의 어려움외에는 쉽게 읽혔고 결말을 안다고 해도 긴장되는 추리소설을 보는 듯한 기분을 들게했다.

 

 황우석, 그가 구세주라고 불리던 때가 있었다. 그 당시 내가 기억하는 장면 중 하나는 줄기세포 임상실험 예약(?정확하게는 모르겠음)을 하기 위해 새벽부터 병원에 나온 줄기세포 시술이면 정상생활이 가능한 장애인이나 그 장애인을 둔 부모들의 줄이였다. 그들에게는 황우석이 신보다 더 큰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빌고 빌어도 신은 들어주지 않던 것을 황우석은 들어준다는데 어느 부모가, 어느 장애인이 그 앞에 믿음을 내던지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어느 누가 그 믿음에 작은 틈새라도 의심을 품겠는가! 맹목적인 믿음, 그것이 잘못이었다.

 

<"전 교수가 이해해주기 바랍니다. 저는 한가하게 논문을 쓰는 사람이 아닙니다. 영롱이에 관해서는 자료를 첨부합니다."-황 교수가 전 교수에게 보낸 메일>

 

위의 글은 황우석에게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복제소 영롱이에 관한 논문을 부탁한 전 교수에게 황우석이 보낸 메일이다. 결과물은 있는데 논문은 없는 것이 황우석의 독특한 실험법인가 보다.

 

<황교수는 소를 다루고 연구하던 분입니다. 인간의 난자를 다루는 분야는 좀 다른데 어떤가요?

황교수님이 진짜 잘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식할 때 소 직장검사하고 실제로 농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진짜 잘해요. 다른 사람보다 경험도 많고, 굉장히 센스가 있습니다. 임기응변이 빠르거든요. 그런 부분에서는 굉장히 손(기술)도 좋고 한데, 실험실에서는 꽝입니다. 소를 필드에서 만지고 수술하시고 또 돼지를 수술하는 건 잘하시는데, 실험실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세요.

(중략)

이전에 촬영한 것을 보면 현미경도 조작 하고, 체세포 탈핵하는 것도 촬영 돼있고 그러던데요?

현미경을 조작하는 게 아니라 그냥 눈으로 보시는 거고, 체세포 탈핵하는 것은 다른 사람 손입니다. 한번 황교수님이 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제
보자와의 인터뷰>

 

실험실 밖 농장에서는 일을 참 잘한다는 황우석은 실험실에만 들어오면 지시만 하거나 구경만 한다고 연구원들을 말한다. 황우석은 현미경 조작조차 할 줄 모른다는 사실에 경악해야했다. 그가 그동안 나온 현미경 앞에서 찍은 사진들은 전부 거짓인게 된다. 현미경과 그저 멋지게 사진만 찍은 황우석을 보며 왜 그동안 우리는 알려고 하지 않았던 것인가에 대한 고민에 빠지게 된다.

 

논문도 없는 성공, 그것을 왜 그렇게 믿을 수 있었던 것일까? 그건 여론의 힘이 크다. 우선 성공이라고 터트리니 너도 나도 우와~먼저 하고 보는 것이다. 황우석은 그런 인간의 심리를 잘 간파한 인물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한가하게 논문 쓸 시간이 없는 황 교수 그를 어찌하면 좋을까라는 생각과 복장이 터진다는 말이 이런거구나라고 느끼며 계속 책을 읽어내려가며 쓰린 속을 달래야했다. 내가 누구에게 뭐라고 할 수 있겠는가! 나도 우와~하고 펄쩍펄쩍 뛰며 좋아하던 사람이었는데.

 

한학수 PD의 말대로 우리는 줄기세포의 문제점을 제보한 K에게 큰 빚이 있는 것이다. 그가 아니였다면 어떤 일이 터졌을지 상상만해도 감당이 되지 않는다. 제보자 K 이전에도 황우석에 대한 의문을 가진 국내 학자들도 있었다고 한다. 논문이 없는 황우석의 신화를 그 분야의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가 믿었겠는가. 황우석의 거짓 복제소 탄생으로 피해를 본 선의의 과학자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화가 치밀어 오른다. 의심을 품었다고 해도 그들의 힘은 미미했다. 아니, 그들의 힘이 미미한 것이 아니라 언론과 정부의 힘이 막강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힘에 맞서서 싸운 <PD수첩>에게, 한학수 PD에게 박수를 보낸다. 권력의 힘앞에 쓰러져도 계속해서 일어나는 끈기와 용기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진실된 것은 끝까지 밝히려는 정신, 그것이 우리가 언론에게 바라는 가장 큰 소망이 아닐까한다. 물론 그들의 취재 윤리문제는 앞으로 일어나지 않았야 할 잘못된 부분이라는 것은 인정한다.

 

나의 가슴에 가장 와닿은 책의 한부분을 이야기하며 마쳐야겠다. 이 이야기는 노성일 이사장과의 인터뷰에서 나온 것이다.

 

'스탁데일 패러독스'라는 것이 있다.

 

<이 말은 베트남 전쟁 때 하노이 포로수용소에 수감된 병사들 중에서 미군 최고위 장교였던 스톡데일 장군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는 수용소에 갇혀 있는 8년 동안 많은 고문을 당하면서도 가능한 한 많은 포로가 살아남아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만든 전쟁 영웅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일반적인 통념과는 달리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낙관주의자가 아니라 현실주의자였다고 한다. 낙관주의자는 다가오는 크리스마스에는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스스로와 주위 사람들에게 희망을 불어넣다가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다시 다가오는 부활절에는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일을 반복하면서 결국 상심해서 죽는다고 한다. 반면 현실주의자는 크리스마스 때까지는 나가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그에 대비하는 마음을 가짐으로써 결국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한다.

‘스톡데일 패러독스’는 아무리 어려워도 결국에는 성공할 거라는 믿음을 잃지 않으면서 동시에 그것이 무엇이든 눈앞에 닥친 현실 속의 가장 냉혹한 사실들을 직시하는 것이 개인이든 기업이든 성공할 수 있는 근본적인 사고방식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즉 결국에는 성공할 것이라는 믿음과 눈앞에 닥친 냉혹한 현실을 결코 혼동하지 않는 것이다. -네이버 지식인에서 가져옴>

 

노성일 이사장의 말대로 의사는 스탁데일 장군과 같아야 한다. 거짓된 희망은 환자는 상처 받는다. 스탁데일 장군처럼 의사들이 할 수 있는 것만을 환자에게 약속해야 한다. 의사의 입은 무거워야 한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가벼움이 지나쳤던 황우석을 떠올리며 쓴웃음을 삼켜야했다. 환자들의 상처는 지금도 크다. 이 일이 더 늦게 밝혀졌다면 그 상처는 지금의 몇 십배는 더 클 것이다. 황우석 그에게 환자는 환자가 아닌 자신의 명성을 높여줄 존재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제대로 알고, 제대로 보는 것만이 제 2의 황우석 사건이 발생하는 것을 막아줄 것이다. 언론,정부만이 아닌 그건 국민의 몫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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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듀본의 기도 - 아주 특별한 기다림을 만나다
이사카 고타로 지음, 오유리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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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2006년도 한달도 채 남지 않았다. 매년 아쉬움 가득한 마음으로 12월을 보냈다. 올해도 아쉬움, 후회, 미련들이 벌써부터 나에게 달라붙어가슴에 응어리를 만든다. 그 응어리들을 그래도 올 한해는 안아줄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생겨난다. 이 용기는 아마도 올해 책 읽는 것에 재미가 들렸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책읽는 기쁨을 알았다는 것이 올해가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일 것이다. 한달에 한권을 읽는 것도 대단하다고 생각했던 나로서는 책에 이렇게 빠진 시간들이 또 올까라는 불안감이 생길만큼 정말 푹 빠졌다. 책에 꿀을 발라놓은 것도 아닌데 내게 이번해는 책이 꿀단지였다. 그렇게 푹 빠질 수 있었던 것은 멋진 작가들 때문이일 것이다. '이사카 코타로'는 그 중심에 서있다.

 

사신치바에서 마왕, 칠드런까지 그의 매력은 종잡을 수 없다. 같은 작가가 쓴 것인가라는 의심이 들만큼 색다른 소재와 모든 책에서 드러나는 탄탄한 구성은 그가 1971년생이라는 것을 믿지 못하게 만든다. 좋아하는 작가를 발견하게 되면 그의 처녀작이 궁금해진다. 작가가 얼마나 성장했나를 보는 것도 재밌지만 대체로 처녀작에 그 작가의 하고픈 말이 가장 많이 담기지 않을까라는 마음에서였다. 한국에는 그의 처녀작이 나오지 않아 더욱 궁금했던 차에 드디어 <오듀본의 기도>가 나왔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책을 손에 들었다. 우선 그 두께에 놀란다. 데뷔작이라고 믿기 힘들만큼 500페이지에 달하는 책의 두께를 손으로 확인하며 이사카 코타로, 그에대해 실망할까 두려웠다. 그가 저 많은 페이지에 전에 읽었던 책들처럼 나를 빠져들게 하지 않을까 겁이 났던 것이다. 그의 성장을 확인하고 싶었던 책이었지만 실망할까 걱정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마음을 다잡고 책장을 넘겼다. 앉은 자리에서 커피가 식어가는 것도 모르고 읽다가 학생이 선생님 오지 않냐는 전화에 시간이 훌쩍 지난 것을 몰랐다는 것에 스스로 놀라고 말았다. 결말이 들어나는 남겨둔 100페이지를 계속 읽고 싶은 마음을 겨우 누르고  책을 덮고 가방을 챙겨 학생에게 달려간다.

 

내 발걸음은 학생의 집이 아닌 책의 배경인 '오기시마섬'으로 향한다. 저 앞에는 나를 실어다 줄 곰을 닮은 도도로키씨가 배를 준비하고 있을거란 상상을 하며 책을 덮고도 책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나는 공부를 끝내고 집에가는 시간을 참지 못하고 기어코 근처의 카페에 들어가 책을 펼쳐들었다.

 

들어나기 시작하는 비밀들을 보며 이 작가는 퍼즐광인가라는 어이없는 생각을 한다. 퍼즐광이 아니라면 500페이지에 달하는 퍼즐조각들을 어떻게 이렇게 빈틈없이 그 자리에 들어맞게 할 수 있다는 말인가. 데뷔작을 보며 그의 앳된 글을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던 내게 작가는 싱긋 웃고만다. 그런 칭찬을 많이 들었을텐데도 쑥쓰럽다는 듯이, 조금은 미안하다는 듯이, 부끄럽다는 듯이. 그 모습을 보며 그러니 내가 당신을 좋아할 수밖에 없지라며 나도 웃고 만다.

 

<오듀본의 기도>는 150년이나 외부와 교류없던 오기시마라는 섬에 이토라는 남자가 들어오면서 사건들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섬나라여서일까? 일본소설에는 지도에도 없는 이름없는 섬들로 떠나는 주인공들이 많이 나온다. 그곳은 미지의 땅, 꿈의 땅 혹은 무서움과 신비로운 땅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오기시마는 그 모두를 갖춘 섬이라고 할 수 있다.

 

골든 레트리버를 닮은 히비노, 아내가 죽고 난뒤 무엇이든지 ‘반대로’ 말하는 화가 소노야마씨, 섬 안에서 살인이 허락된 벗꽃을 닮은 아름다운 남자 사쿠라, 1855년에 태어나 새와 바람과의 교류를 통해 미래를 보는 허수아비 유노까지 이 섬에는 기묘하다는 말로는 부족한 인물들이 살고 있다. 오기시마에도 시간이 흘러가고 이토가 살았던 현대도 시간이 흘러간다. 그 시간 속에 전의 이토의 연인 시즈카와 악의 상징인 시로야마 형사가 있다. 다양한 등장인물이 책의 재미를 더한다.

 

허수아비 유노는 이 섬을 지탱해나가는 힘이었다. 미래를 볼 줄 아는 유노로 인해 섬 사람들은 외부와의 교류는 해서는 안되는 것이라고 지금 상황이 가장 좋은 것이라고 안도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노는 미래를 볼 줄만 안다. 미래를 어찌할 힘은 없다. 그렇기에 사람들에게도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미래를 알지만 미래를 바꿀 힘은 없다는 것은 얼마나 괴로운 일이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그렇게 괴로운 심정으로 150년이나 서있었던 것이다. 옛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섬의 전설이 그를 더 괴롭게 했던것은 아닐까?

'이 섬에는 중요한 것이 결여되어있다. 섬 밖에서 온 자가 이 섬에 없는 것을 두고간다.'

섬 밖에서 온 이토를 100년이나 기다렸다는 유노, 이토에게 무언가를 소리없이 기대하는 사람들, 이토는 이 섬에 결여된 것은 리얼리티밖에 없다고 생각하지만 입밖으로 말하지 않는다. 그들 모두 이 섬에 결여된 것을 찾고, 궁금해한다. 나역시. 그것을 궁금해하며 책장을 넘긴다.

 

미지의 섬에대한 두근거림과 기대를 갑작스런 살인사건과 잔인하다는 말로는 부족한 시로야마형사는 나를 공포로 몰아넣기도 하고 빠른 전개에 숨돌릴틈없이 빠져들게 만들고 결말을 예측할 수도 없이 계속해서 터지는 사건들로 인해 내 눈동자와 머리는 점점 더 바빠지다가 가슴을 울리는 구절들을 만날때면 그제서야 숨을 내쉬며 펜을 들고 적으며 머리를 잠시 쉬게 했다. 그렇게 책 밖의 시간은 정지되고 책 안의 시간만이 흐르는 듯한 느낌으로 읽었다.

 

이사카 코타로, 그의 책은 읽고 난 후 책을 읽은 시간의 두배가 넘는 시간을 생각하게 만든다. 이 책은 두배가 넘는 시간도 모자를만큼 계속해서 생각하게 했다. 그가 우리에게 바라는 것은 주체적으로 사고하는 인간이기때문에 이렇게 생각하게 만드는 걸까? 사람보다 약한 동물을 죽여서 먹을 정도의 가치있는 사람은 없다는 말에 가슴이 울리고 사고(思考)를 하게 하는 것은 복잡한 것이 아닌 가장 단순한 생명들의 조합(흙,묽,공기,꽃,작은 벌레)이라는 것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삶을 살아가는 것에는 복잡한 진리는 없는지도 모른다. 단순한 진리를 계속해서 복잡하게 만드는 인간만이 있는 것이다. 단순하다는 것은 얕다는 것이 아니다. 흙, 물, 공기, 바람등의 깊이를 얕다고 할 수 있을까? 세계는 그 단순한 것들로 유지되는 것이다. 그 단순한 것들을 무시하면 안되는 것이다. 유노는 우리에게 그것을 알려준 것이 아닐까? 더이상 그런 것들을 무시하고 사고하는 것을 게을리하고 남들하는 데로 살다가는 세상도 사람도 사라질지 모른다는 것을. 이제서야 제목이 왜 오듀본의 기도인지 알게 되었다. (제목에 대한 생각이나 내용의 상세함은 다음에 읽으실 분들을 위해 자제합니다.)

 

데뷔작에 가장 많은 점수를 준다면 이사카 코타로의 성장을 부정하는 것이될까? 아니면 이사카 코타로는 글을 쓸때부터 천재가 아니였을까? 이제껏 내가 읽은 그의 책 중에서 이 책을 가장 높은 순위에 두고 싶어진다. 나를 또한번 놀라게 한 작가, 이번에도 이사카 월드에서 신나게 놀다가 왔다. 물론 숙제가 많았지만. 이 숙제는 두고두고 기억하며 풀어야할 것이다.

 

시간가는 줄 모르게 만드는 책을 찾는다면, 책에 푹 빠져보고 싶다면, 이 책을 권합니다.

 

이사카 코타로, 내년에는 꼭 나오키상을 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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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이기호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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춥다!추워!를 입에 달고 사는 계절이 왔다. 음력이라지만 여름에 태어났다고(실은 가을이다) 추위에는 좀처럼 보기힘든 약한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이른 추위에 누구보다 빨리 코트를 입고 장갑을 샀다. 추울때 역시 가장 반가운건 온기다. 이 책을 보는 순간 '봄'을 떠올렸다. 풋풋하고 싱싱한 초록색은 새싹을 떠올리게 했고 보는 것만으로 새싹에 담긴 봄에 기운이 전해져오는 것 같아 손에 들게 된 책이다.  온기를 찾아 선택한 책은 온기 그 이상의 것을 내게 전해주었다.

 

이기호, 이기호, 누구지라고 되뇌이다가 작가의 소개에 적힌 <최순덕 성령충만기>라는 책을 꽤 좋게 봤다던, 이기호를 좋아한다던 지인의 말이 떠올랐다. 그렇구나. 이 작가의 신간이구나라고 고개를 끄덕이며 그 전의 책을 접해보지 않은 나로서는 지인의 극찬에 더욱 기대에 부풀어 책장을 넘겼다.   

 

책자을 넘기며 목차를 보고서야 소설집임을 알았다. 8개의 단편들을 읽어내려가며 이렇게 다양한 색을 담아낼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마냥 웃기지만도 마냥 슬프지만도 마냥 심각하지만도 않은 단편소설들을 보며 이렇게 조율을 하는 것도 쉽지 않을텐데라는 생각을 해본다. 책을 덮으며 내가 한 생각은 <최순덕 성령충만기>를 구입해야 겠다는 것이었다. 그의 소설을 더 읽고 싶어졌다는 것만큼 이 책에 반했다는 말을 대신할 말이 더 있을까. 이 글을 쓰면서도 내 눈은 지금 내 옆에 자리잡은 그의 다른 책을 읽고 싶어 안달이다. 홍차를 한모금 마시며 갈팡질팡한 내 맘을 붙잡아본다. 다양함이 담긴 8개의 단편들. 내 이야기를 하는 듯하고 잊고 있었던 것들을 다시금 생각나게 하고 읽고 있는 것만으로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날 것 같아 무섭기도 했던 이야기도 있었고 박장대소를 하다가 가슴이 뭉클해지는 이야기도 있었다.

 

과자 종합선물세트라고 불러도 될 책이다. 달콤한 초콜릿, 새콤달콤한 카라멜, 불수록 재밌는 풍선껌, 바삭바삭한 과자, 간혹 들어있는 계피맛 사탕을 먹을 때의 씁쓸함 이제는 받지 못하기에 더욱 옛 기억에 그리움까지 덩달아 떠오르게 하는 종합선물세트를 닮은 책. 그 안의 것들을 꼭꼭 씹어먹으며 맛을 보느라 눈과 손 그리고 마음까지 읽는 동안 참 행복하고 즐거웠던 책이었다.

 

과자 종합선물세트 살짝 맛보기!

 

#나쁜 소설-누군가 누군가에게 소리내어 읽어주는 이야기(달콤쌉쌀한 초콜릿)

첫번째로 나오는 이 소설은 제목 그대로 누군가 누군가에게 소리내어 읽어주는 이야기이다. 즉, 혼자가 아니라 읽기 위해서는 두명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때 내 곁에는 아무도 없었기에 나는 작가의 말처럼 불쌍한 사람이 되어버렸고 정말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건 잠시, 읽내려가다보니 이거 은근히 웃긴다. 왜 나쁜 소설인지 알게 되었을때는 정말 혼자서 얼굴이 발그레해지면서 웃음을 참느라 혼났다. 나쁜 소설을 읽는 동안 공무원 준비생인 남자의 생활의 아픔이 너무나 상세하게 묘사되어있어 작가도 혹시 공무원 준비하는거 아냐라는 생각이 들며 내 주위에서 열심히 공무원 준비를 하는 친구들이 떠올라 눈살을 찌푸리기보다는 마음이 아팠다.

 

내가 주인공이 되어야 하는 소설, 내가 읽어주는 소설을 들어줄 누군가를 필요로 하기에 그래줄 사람이 있나없나를 곰곰히 생각해야하며 혹시 없다면 내 인간성을 의심하게 만드는 소설. 웃음도 나고 쓸쓸해지도 하는 소설이었다. 왜 나쁜 소설인지 알아가는 재미가 있다.

 

 

#수인(囚人)-계피맛 사탕

-내게는 참 충격적인 소재였다. 그럴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에 한번 놀랐고, 그렇게 통일을 외쳐도 되지 않던 일이 이런 식으로 휴전선이 없어질 수도있겠구나라는 것에 한번 더 놀랐으며, 주인공의 곡괭이질과 심판관의 속내를 보며 씁쓸하게 놀랐다.

 

주인공 수영이 소설을 쓰기 위해 깊은 산 속에 들어간지 2개월 후 남한에서 원자력 발전소가 두 시간의 시차를 두고 폭발해버렸다. 낙진과 방사능 유출로 남은 사람들은 모두 북으로 향한다. 휴전선은 50년이나 그곳에 있었던 것이 믿기지 않을만큼 너무나 쉽게 뚫렸다. 세계 여러국가에서 우리나라 국민들을 받아주기로 했지만 엄중한 심사를 거쳐야 가능한 일이다. 그 나라가 원하는 기술이 없는 자는 회색 낙진으로 뒤덮인 곳에서 살아야한다. 다행스럽게도 수영이 있는 산 속은 푄 현상으로 죽음을 모면한 수영은 심사를 받는다.

 

휴전선이 저렇게 뚫릴 수도 있구나를 보며 이 이야기가 현실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자 팔에 소름이 돋는다. 낙진이나 방사능도 무섭지만 내가 가장 무서웠던 것은 세계 여러나라에서 바라는 조건이 나에게는 없을 것이란 무서움 때문이었다. 그 나라의 언어도, 남들 다 가진 자격증도 없으니 혼자서 그 낙진들 속에서 죽어가지는 않을까라는 생각이 나를 무섭게 만들었다. 수영처럼 나를 증명하기 위해 곡괭이를 들고 노동을 할 끈기도 없다는 것, 나를 증명할 길이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한동안 책을 손에서 놓아야 했다.

 

#갈팡질팡 하다가 내 이럴줄 알았지-새콤달콤 카라멜

-제목부터가 웃음기 가득하다. 그러나 누구든 한번쯤은 그런 적이 있을 것이기에 마냥 웃기보다는 옛 일을 떠오르게 한다.

 

필연적인 삶을 살지 못한 주인공은 소설에서 꼭 필요한 필연적인 결말을 쓰지 않고 허무하게 끝을 내는 논리박약, 의지부족으로 낙인찍혔다. 어렸을 때부터 당한 집단구타, 린치, 세상에 이렇게 운이 없는 사람도 있는거야라며 웃음을 참을 수 없게 된다. 가네시로 가즈키의 소설에 나오는 야마시타같은 존재라고 설명될 정도로 악운을 몰고다니는 주인공이다. 악운은 필연적으로 오지 않는다. 대부분이 우연적으로 발생해서 우연적으로 끝난다. 그러니 주인공은 우연으로 시작해서 필연으로 끝나야하는 소설을 쓰기가 참 어려운 것이다. 무슨 일이 생길때마다 갈팡질팡 고민하는 사람이 한번에 결단을 내리는 사람보다 훨씬 더 많다. 나역시도 갈팡질팡 부류에 속한다.

 

<갈팡질팡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글쎄 말이다. 나도 그럴 줄 알았다. 다 지나고 난 뒤에 보니까...... 그러니까, 그러니까 말이다.>

 

필연보다는 우연이 더 많은 우리들의 삶. 필연과 우연의 차이가 어딨겠는가. 그 차이를 모르니 갈팡질팡하게 되는 것 아닐까. 하지만 지나고 나면 갈팡질팡 하면서도 참 그래도 여기까지 온 걸 보면 용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니 나 자신을 탓하는 것은 그만해야겠다.

 

이 몇개의 이야기는 약간의 맛보기이다. 책 속에는 더 많은 맛있는 먹을거리가 담겨있다.

이기호, 재밌고 유쾌하지만 그 속에 눈물과 한숨과 추억들을 요리조리 잘 담아놓았다. 이제 그의 다른 요리들을 먹으러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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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스와 소시지
소피 자베 지음, 이세진 옮김 / 노블마인 / 2006년 3월
평점 :
품절


알리스와 소시지의 관계, 제목만 보고는 종잡을 수 없었다. 그래서 궁금했다. 알리스란 여자와 소시지는 어떤 관계인지 호기심이 발동했고 읽는 동안 호기심은 여러가지 불편한 감정으로 변해갔다. 답답함, 짜증, 혐오감, 경악 그리고 많은  알리스와 나에 대한 많은 생각들. 얇은 책이기에 순식간에 읽어버린 책은 순식간이란 단어를 쓸만큼 나를 책에 빠져들게 했다. 빠져들었던 시간이 끝난 후 이번에는 생각의 늪에 빠져드는 나를 봤다.

 

바느질을할 때면 실이 얽힐때가 있다. 풀릴 것 같으면서도 풀리지 않고 풀려고 애쓸수록 더 단단히 매듭지어져 결국 자르지 않고는 바느질을 계속할 수도 매듭을 지을수도 없게된다. 이때 세가지 다른 선택을 하는 사람이 있다. 천천히 그러나 끝까지 얽힌 매듭을 푸는 사람, 간단히 가위로 그 부분을 자르고 새로 바느질을 하는 사람, 마지막으로 끝까지 얽힌 부분을 힘을 계속 주면서 더욱 단단하게 매듭을 만들면서도 언젠가는 풀릴거라는 헛된 기대로 결국은 실은 물론이고 바늘까지 부러뜨려 더이상 바느질을 못하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 알리스는 바로 세번째에 해당하는 사람일 것이다.

 

로마에서 그녀가 지나가면 누구나 뒤돌아 본다.  그녀의 섬세하고 가느다란 다리를 더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미니스커트를 입었으며 군살없이 매끄럽고 탄탄하며 견고한 복부, 갈비뼈와 풍만하며서도 모양이 잘 잡힌 가슴도 모잘라 연약한 팔목과 매끈한 피부를 가진 그녀를 누가 뒤돌아 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녀의 이름이 알리스다. 그녀는 요즘말로 하면 얼짱에 몸짱이였다. 문제는 그녀, 성격짱이 되지 못했다는 것. 그것이 비단 그녀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이 더 문제이다. 몸매 가꾸기에 열을 올리던 그녀, 단 한마디의 말에 그것을 중단하고 우울에 빠져 폭식과 섹스에만 매달린다.

 

단 한마디는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하며 살아가는 망나니 같은, 그러나 그녀가 너무나도 사랑하는(도대체 아버지를 왜 사랑하는지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아버지의 말이었다. 한껏 치장하고 나간 자리에서 이번에도 역시 아버지는 그녀를 한번 안아주지도 않고 자신의 사랑타령만 하다가 그녀에게 치명적인 한마디를 한다.

 

 "너는 안 예뻐. 그러니 너는 ...... 다정한 여자가 돼야해."

 

그 말은 그녀의 삶을 통째로 흔들리게 한다. 뿌리채 흔들리는 그녀를 보며 파크리트 쥐스킨트의 소설 <깊이에의 강요>에서 어느 평론가가 던진 실없는 깊이가 없다는 말에 촉망받는 젊은 여자화가는

깊이에 대한 고뇌로 결국 자살에까지 이르게 된다. 깊이에의 강요를 읽을 때 내내 한가지 생각을 했다. 이 책을 읽을 때도 그 생각을 했다. '내가 저 책 속에 들어가서 당신이 들었던 말은 틀린 말이라고. 그것을 모르겠냐고.'라고 소리치고 싶다는 생각. 어떻게 인간은 저렇게 그저 흘러가는 말에 자신의 삶을 내던지면서까지 흔들릴 수 있는걸까라는 생각을 하며 무섭기까지 했다. 대체 무엇이 그녀를 저토록 파멸로 몰고 갔을까.

 

그녀는 예뻤다. 그녀의 삶을 지탱해 준 것은 그녀의 아름다움이었다. 얼굴을 가꾸고 몸을 가꾸는 것으로 하루를 보내는 그녀에게는 타인의 시선만이 자신의 존재를 알아주며 가치를 높여주었다. 타인의 시선을 느끼며 자신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며 그 아름다움을 즐기던 그녀에게 아름다움은 그녀가 유일하게 가진 삶의 무기이자 버팀목이었다. 어쩌면 그녀는 아버지를 자신이 인정받고 싶은, 혹으 사랑받고 싶은 유일한 남자로 보았는지도 모른다. 어릴때부터 이혼한 아버지와 어머니로 인해 사랑을 받지 못한 그녀였으니 아버지란 존재는 그녀에게 태어나서부터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었던  첫 남자였는지도 모른다. 그런 존재인 아버지의 말이었으니 그녀는 끊임없이 그말을 의심하면서도 그말을 믿게 되고 그동안 믿었던 아름다움에 대한 허탈감이 몰려와 그것을 식욕으로 대체하게 되다.

 

식욕으로 마음의 허탈감을 채우기 시작한 그녀의 내장은 블랙홀이었다. 먹어도 먹어도 허전함과 상실감은 여전했으며 그럴수록 그녀는 더 많이 먹었다. 식욕은 상실감에 빠진 그녀를 위로하는 방법이었다면 성욕은 그녀의 아버지 말대로 남자들에게 다정하고 친절한 여자가 되기 위한 남자들을 위로하는 방법의 도구였다. 섹스를 하면서도 음식을 먹는 그녀에게 성욕과 식욕은 같은 것이었다. 그녀를 위한 식욕과 남자들을 위한 친절의 도구인 성욕은 딱 똑같은 욕구로 그녀를 채워나갔던 것이다. 그러나 끊임없이 먹어댈수록 남자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면 대할수록 그녀 속의 블랙홀은 채워지지 않았으며 아름답던 그녀는 사라져버렸다.

 

 그렇게 자신을 잃어가는 그녀가 택한 인간 소시지. 그것으로 그녀는 정말 되었다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돌이키고 싶어도 그럴 자신이 없었던 것일까? 그녀는 깨달았을까란 의문이 남는다. 그녀는 자신이 아름다운 여성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을까라는 의문이. 누군가에게 사랑받기를 원했던 그녀, 아름다움으로 자신이 존재할 가치를 느꼈던 그녀, 그 가치를 잊자 친절로 존재할 가치를 대신하고 싶어했던 그녀, 그렇게 몸과 마음을 바쳐 친절히 대했것만 그녀를 떠나가던 사람들을 향해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선택 소시지가 된 그녀. 그녀는 끊임없이 누군가의 무엇이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알리스와 소시지란 두개의 관계를 읽어내려가며 혹은 생각하며, 그녀가 답답해서 죽을뻔했으며 그녀가 불쌍해서 가슴이 아팠으며 그녀를 바로 일으켜주고 싶어 손이 근질거렸다. 그러나 어떻게 내가 그녀를 일으켜 줄 수 있겠는가. 나에대해서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나인데...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못하고 다른 것으로 욕구를 채우려는 알리스의 모습은 나와도 겹쳐지는 것이 사실인 것을. 어쩌면 그건 현대인들 대부분의 모습과도 겹쳐질 것이다. 나를 제대로 찾는 것, 나에 대한 정체성 정립은 나 아니면 누구도 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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