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듀본의 기도 - 아주 특별한 기다림을 만나다
이사카 고타로 지음, 오유리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벌써 2006년도 한달도 채 남지 않았다. 매년 아쉬움 가득한 마음으로 12월을 보냈다. 올해도 아쉬움, 후회, 미련들이 벌써부터 나에게 달라붙어가슴에 응어리를 만든다. 그 응어리들을 그래도 올 한해는 안아줄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생겨난다. 이 용기는 아마도 올해 책 읽는 것에 재미가 들렸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책읽는 기쁨을 알았다는 것이 올해가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일 것이다. 한달에 한권을 읽는 것도 대단하다고 생각했던 나로서는 책에 이렇게 빠진 시간들이 또 올까라는 불안감이 생길만큼 정말 푹 빠졌다. 책에 꿀을 발라놓은 것도 아닌데 내게 이번해는 책이 꿀단지였다. 그렇게 푹 빠질 수 있었던 것은 멋진 작가들 때문이일 것이다. '이사카 코타로'는 그 중심에 서있다.

 

사신치바에서 마왕, 칠드런까지 그의 매력은 종잡을 수 없다. 같은 작가가 쓴 것인가라는 의심이 들만큼 색다른 소재와 모든 책에서 드러나는 탄탄한 구성은 그가 1971년생이라는 것을 믿지 못하게 만든다. 좋아하는 작가를 발견하게 되면 그의 처녀작이 궁금해진다. 작가가 얼마나 성장했나를 보는 것도 재밌지만 대체로 처녀작에 그 작가의 하고픈 말이 가장 많이 담기지 않을까라는 마음에서였다. 한국에는 그의 처녀작이 나오지 않아 더욱 궁금했던 차에 드디어 <오듀본의 기도>가 나왔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책을 손에 들었다. 우선 그 두께에 놀란다. 데뷔작이라고 믿기 힘들만큼 500페이지에 달하는 책의 두께를 손으로 확인하며 이사카 코타로, 그에대해 실망할까 두려웠다. 그가 저 많은 페이지에 전에 읽었던 책들처럼 나를 빠져들게 하지 않을까 겁이 났던 것이다. 그의 성장을 확인하고 싶었던 책이었지만 실망할까 걱정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마음을 다잡고 책장을 넘겼다. 앉은 자리에서 커피가 식어가는 것도 모르고 읽다가 학생이 선생님 오지 않냐는 전화에 시간이 훌쩍 지난 것을 몰랐다는 것에 스스로 놀라고 말았다. 결말이 들어나는 남겨둔 100페이지를 계속 읽고 싶은 마음을 겨우 누르고  책을 덮고 가방을 챙겨 학생에게 달려간다.

 

내 발걸음은 학생의 집이 아닌 책의 배경인 '오기시마섬'으로 향한다. 저 앞에는 나를 실어다 줄 곰을 닮은 도도로키씨가 배를 준비하고 있을거란 상상을 하며 책을 덮고도 책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나는 공부를 끝내고 집에가는 시간을 참지 못하고 기어코 근처의 카페에 들어가 책을 펼쳐들었다.

 

들어나기 시작하는 비밀들을 보며 이 작가는 퍼즐광인가라는 어이없는 생각을 한다. 퍼즐광이 아니라면 500페이지에 달하는 퍼즐조각들을 어떻게 이렇게 빈틈없이 그 자리에 들어맞게 할 수 있다는 말인가. 데뷔작을 보며 그의 앳된 글을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던 내게 작가는 싱긋 웃고만다. 그런 칭찬을 많이 들었을텐데도 쑥쓰럽다는 듯이, 조금은 미안하다는 듯이, 부끄럽다는 듯이. 그 모습을 보며 그러니 내가 당신을 좋아할 수밖에 없지라며 나도 웃고 만다.

 

<오듀본의 기도>는 150년이나 외부와 교류없던 오기시마라는 섬에 이토라는 남자가 들어오면서 사건들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섬나라여서일까? 일본소설에는 지도에도 없는 이름없는 섬들로 떠나는 주인공들이 많이 나온다. 그곳은 미지의 땅, 꿈의 땅 혹은 무서움과 신비로운 땅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오기시마는 그 모두를 갖춘 섬이라고 할 수 있다.

 

골든 레트리버를 닮은 히비노, 아내가 죽고 난뒤 무엇이든지 ‘반대로’ 말하는 화가 소노야마씨, 섬 안에서 살인이 허락된 벗꽃을 닮은 아름다운 남자 사쿠라, 1855년에 태어나 새와 바람과의 교류를 통해 미래를 보는 허수아비 유노까지 이 섬에는 기묘하다는 말로는 부족한 인물들이 살고 있다. 오기시마에도 시간이 흘러가고 이토가 살았던 현대도 시간이 흘러간다. 그 시간 속에 전의 이토의 연인 시즈카와 악의 상징인 시로야마 형사가 있다. 다양한 등장인물이 책의 재미를 더한다.

 

허수아비 유노는 이 섬을 지탱해나가는 힘이었다. 미래를 볼 줄 아는 유노로 인해 섬 사람들은 외부와의 교류는 해서는 안되는 것이라고 지금 상황이 가장 좋은 것이라고 안도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노는 미래를 볼 줄만 안다. 미래를 어찌할 힘은 없다. 그렇기에 사람들에게도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미래를 알지만 미래를 바꿀 힘은 없다는 것은 얼마나 괴로운 일이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그렇게 괴로운 심정으로 150년이나 서있었던 것이다. 옛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섬의 전설이 그를 더 괴롭게 했던것은 아닐까?

'이 섬에는 중요한 것이 결여되어있다. 섬 밖에서 온 자가 이 섬에 없는 것을 두고간다.'

섬 밖에서 온 이토를 100년이나 기다렸다는 유노, 이토에게 무언가를 소리없이 기대하는 사람들, 이토는 이 섬에 결여된 것은 리얼리티밖에 없다고 생각하지만 입밖으로 말하지 않는다. 그들 모두 이 섬에 결여된 것을 찾고, 궁금해한다. 나역시. 그것을 궁금해하며 책장을 넘긴다.

 

미지의 섬에대한 두근거림과 기대를 갑작스런 살인사건과 잔인하다는 말로는 부족한 시로야마형사는 나를 공포로 몰아넣기도 하고 빠른 전개에 숨돌릴틈없이 빠져들게 만들고 결말을 예측할 수도 없이 계속해서 터지는 사건들로 인해 내 눈동자와 머리는 점점 더 바빠지다가 가슴을 울리는 구절들을 만날때면 그제서야 숨을 내쉬며 펜을 들고 적으며 머리를 잠시 쉬게 했다. 그렇게 책 밖의 시간은 정지되고 책 안의 시간만이 흐르는 듯한 느낌으로 읽었다.

 

이사카 코타로, 그의 책은 읽고 난 후 책을 읽은 시간의 두배가 넘는 시간을 생각하게 만든다. 이 책은 두배가 넘는 시간도 모자를만큼 계속해서 생각하게 했다. 그가 우리에게 바라는 것은 주체적으로 사고하는 인간이기때문에 이렇게 생각하게 만드는 걸까? 사람보다 약한 동물을 죽여서 먹을 정도의 가치있는 사람은 없다는 말에 가슴이 울리고 사고(思考)를 하게 하는 것은 복잡한 것이 아닌 가장 단순한 생명들의 조합(흙,묽,공기,꽃,작은 벌레)이라는 것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삶을 살아가는 것에는 복잡한 진리는 없는지도 모른다. 단순한 진리를 계속해서 복잡하게 만드는 인간만이 있는 것이다. 단순하다는 것은 얕다는 것이 아니다. 흙, 물, 공기, 바람등의 깊이를 얕다고 할 수 있을까? 세계는 그 단순한 것들로 유지되는 것이다. 그 단순한 것들을 무시하면 안되는 것이다. 유노는 우리에게 그것을 알려준 것이 아닐까? 더이상 그런 것들을 무시하고 사고하는 것을 게을리하고 남들하는 데로 살다가는 세상도 사람도 사라질지 모른다는 것을. 이제서야 제목이 왜 오듀본의 기도인지 알게 되었다. (제목에 대한 생각이나 내용의 상세함은 다음에 읽으실 분들을 위해 자제합니다.)

 

데뷔작에 가장 많은 점수를 준다면 이사카 코타로의 성장을 부정하는 것이될까? 아니면 이사카 코타로는 글을 쓸때부터 천재가 아니였을까? 이제껏 내가 읽은 그의 책 중에서 이 책을 가장 높은 순위에 두고 싶어진다. 나를 또한번 놀라게 한 작가, 이번에도 이사카 월드에서 신나게 놀다가 왔다. 물론 숙제가 많았지만. 이 숙제는 두고두고 기억하며 풀어야할 것이다.

 

시간가는 줄 모르게 만드는 책을 찾는다면, 책에 푹 빠져보고 싶다면, 이 책을 권합니다.

 

이사카 코타로, 내년에는 꼭 나오키상을 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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