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스와 소시지
소피 자베 지음, 이세진 옮김 / 노블마인 / 2006년 3월
평점 :
품절


알리스와 소시지의 관계, 제목만 보고는 종잡을 수 없었다. 그래서 궁금했다. 알리스란 여자와 소시지는 어떤 관계인지 호기심이 발동했고 읽는 동안 호기심은 여러가지 불편한 감정으로 변해갔다. 답답함, 짜증, 혐오감, 경악 그리고 많은  알리스와 나에 대한 많은 생각들. 얇은 책이기에 순식간에 읽어버린 책은 순식간이란 단어를 쓸만큼 나를 책에 빠져들게 했다. 빠져들었던 시간이 끝난 후 이번에는 생각의 늪에 빠져드는 나를 봤다.

 

바느질을할 때면 실이 얽힐때가 있다. 풀릴 것 같으면서도 풀리지 않고 풀려고 애쓸수록 더 단단히 매듭지어져 결국 자르지 않고는 바느질을 계속할 수도 매듭을 지을수도 없게된다. 이때 세가지 다른 선택을 하는 사람이 있다. 천천히 그러나 끝까지 얽힌 매듭을 푸는 사람, 간단히 가위로 그 부분을 자르고 새로 바느질을 하는 사람, 마지막으로 끝까지 얽힌 부분을 힘을 계속 주면서 더욱 단단하게 매듭을 만들면서도 언젠가는 풀릴거라는 헛된 기대로 결국은 실은 물론이고 바늘까지 부러뜨려 더이상 바느질을 못하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 알리스는 바로 세번째에 해당하는 사람일 것이다.

 

로마에서 그녀가 지나가면 누구나 뒤돌아 본다.  그녀의 섬세하고 가느다란 다리를 더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미니스커트를 입었으며 군살없이 매끄럽고 탄탄하며 견고한 복부, 갈비뼈와 풍만하며서도 모양이 잘 잡힌 가슴도 모잘라 연약한 팔목과 매끈한 피부를 가진 그녀를 누가 뒤돌아 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녀의 이름이 알리스다. 그녀는 요즘말로 하면 얼짱에 몸짱이였다. 문제는 그녀, 성격짱이 되지 못했다는 것. 그것이 비단 그녀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이 더 문제이다. 몸매 가꾸기에 열을 올리던 그녀, 단 한마디의 말에 그것을 중단하고 우울에 빠져 폭식과 섹스에만 매달린다.

 

단 한마디는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하며 살아가는 망나니 같은, 그러나 그녀가 너무나도 사랑하는(도대체 아버지를 왜 사랑하는지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아버지의 말이었다. 한껏 치장하고 나간 자리에서 이번에도 역시 아버지는 그녀를 한번 안아주지도 않고 자신의 사랑타령만 하다가 그녀에게 치명적인 한마디를 한다.

 

 "너는 안 예뻐. 그러니 너는 ...... 다정한 여자가 돼야해."

 

그 말은 그녀의 삶을 통째로 흔들리게 한다. 뿌리채 흔들리는 그녀를 보며 파크리트 쥐스킨트의 소설 <깊이에의 강요>에서 어느 평론가가 던진 실없는 깊이가 없다는 말에 촉망받는 젊은 여자화가는

깊이에 대한 고뇌로 결국 자살에까지 이르게 된다. 깊이에의 강요를 읽을 때 내내 한가지 생각을 했다. 이 책을 읽을 때도 그 생각을 했다. '내가 저 책 속에 들어가서 당신이 들었던 말은 틀린 말이라고. 그것을 모르겠냐고.'라고 소리치고 싶다는 생각. 어떻게 인간은 저렇게 그저 흘러가는 말에 자신의 삶을 내던지면서까지 흔들릴 수 있는걸까라는 생각을 하며 무섭기까지 했다. 대체 무엇이 그녀를 저토록 파멸로 몰고 갔을까.

 

그녀는 예뻤다. 그녀의 삶을 지탱해 준 것은 그녀의 아름다움이었다. 얼굴을 가꾸고 몸을 가꾸는 것으로 하루를 보내는 그녀에게는 타인의 시선만이 자신의 존재를 알아주며 가치를 높여주었다. 타인의 시선을 느끼며 자신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며 그 아름다움을 즐기던 그녀에게 아름다움은 그녀가 유일하게 가진 삶의 무기이자 버팀목이었다. 어쩌면 그녀는 아버지를 자신이 인정받고 싶은, 혹으 사랑받고 싶은 유일한 남자로 보았는지도 모른다. 어릴때부터 이혼한 아버지와 어머니로 인해 사랑을 받지 못한 그녀였으니 아버지란 존재는 그녀에게 태어나서부터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었던  첫 남자였는지도 모른다. 그런 존재인 아버지의 말이었으니 그녀는 끊임없이 그말을 의심하면서도 그말을 믿게 되고 그동안 믿었던 아름다움에 대한 허탈감이 몰려와 그것을 식욕으로 대체하게 되다.

 

식욕으로 마음의 허탈감을 채우기 시작한 그녀의 내장은 블랙홀이었다. 먹어도 먹어도 허전함과 상실감은 여전했으며 그럴수록 그녀는 더 많이 먹었다. 식욕은 상실감에 빠진 그녀를 위로하는 방법이었다면 성욕은 그녀의 아버지 말대로 남자들에게 다정하고 친절한 여자가 되기 위한 남자들을 위로하는 방법의 도구였다. 섹스를 하면서도 음식을 먹는 그녀에게 성욕과 식욕은 같은 것이었다. 그녀를 위한 식욕과 남자들을 위한 친절의 도구인 성욕은 딱 똑같은 욕구로 그녀를 채워나갔던 것이다. 그러나 끊임없이 먹어댈수록 남자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면 대할수록 그녀 속의 블랙홀은 채워지지 않았으며 아름답던 그녀는 사라져버렸다.

 

 그렇게 자신을 잃어가는 그녀가 택한 인간 소시지. 그것으로 그녀는 정말 되었다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돌이키고 싶어도 그럴 자신이 없었던 것일까? 그녀는 깨달았을까란 의문이 남는다. 그녀는 자신이 아름다운 여성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을까라는 의문이. 누군가에게 사랑받기를 원했던 그녀, 아름다움으로 자신이 존재할 가치를 느꼈던 그녀, 그 가치를 잊자 친절로 존재할 가치를 대신하고 싶어했던 그녀, 그렇게 몸과 마음을 바쳐 친절히 대했것만 그녀를 떠나가던 사람들을 향해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선택 소시지가 된 그녀. 그녀는 끊임없이 누군가의 무엇이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알리스와 소시지란 두개의 관계를 읽어내려가며 혹은 생각하며, 그녀가 답답해서 죽을뻔했으며 그녀가 불쌍해서 가슴이 아팠으며 그녀를 바로 일으켜주고 싶어 손이 근질거렸다. 그러나 어떻게 내가 그녀를 일으켜 줄 수 있겠는가. 나에대해서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나인데...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못하고 다른 것으로 욕구를 채우려는 알리스의 모습은 나와도 겹쳐지는 것이 사실인 것을. 어쩌면 그건 현대인들 대부분의 모습과도 겹쳐질 것이다. 나를 제대로 찾는 것, 나에 대한 정체성 정립은 나 아니면 누구도 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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