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이기호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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춥다!추워!를 입에 달고 사는 계절이 왔다. 음력이라지만 여름에 태어났다고(실은 가을이다) 추위에는 좀처럼 보기힘든 약한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이른 추위에 누구보다 빨리 코트를 입고 장갑을 샀다. 추울때 역시 가장 반가운건 온기다. 이 책을 보는 순간 '봄'을 떠올렸다. 풋풋하고 싱싱한 초록색은 새싹을 떠올리게 했고 보는 것만으로 새싹에 담긴 봄에 기운이 전해져오는 것 같아 손에 들게 된 책이다.  온기를 찾아 선택한 책은 온기 그 이상의 것을 내게 전해주었다.

 

이기호, 이기호, 누구지라고 되뇌이다가 작가의 소개에 적힌 <최순덕 성령충만기>라는 책을 꽤 좋게 봤다던, 이기호를 좋아한다던 지인의 말이 떠올랐다. 그렇구나. 이 작가의 신간이구나라고 고개를 끄덕이며 그 전의 책을 접해보지 않은 나로서는 지인의 극찬에 더욱 기대에 부풀어 책장을 넘겼다.   

 

책자을 넘기며 목차를 보고서야 소설집임을 알았다. 8개의 단편들을 읽어내려가며 이렇게 다양한 색을 담아낼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마냥 웃기지만도 마냥 슬프지만도 마냥 심각하지만도 않은 단편소설들을 보며 이렇게 조율을 하는 것도 쉽지 않을텐데라는 생각을 해본다. 책을 덮으며 내가 한 생각은 <최순덕 성령충만기>를 구입해야 겠다는 것이었다. 그의 소설을 더 읽고 싶어졌다는 것만큼 이 책에 반했다는 말을 대신할 말이 더 있을까. 이 글을 쓰면서도 내 눈은 지금 내 옆에 자리잡은 그의 다른 책을 읽고 싶어 안달이다. 홍차를 한모금 마시며 갈팡질팡한 내 맘을 붙잡아본다. 다양함이 담긴 8개의 단편들. 내 이야기를 하는 듯하고 잊고 있었던 것들을 다시금 생각나게 하고 읽고 있는 것만으로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날 것 같아 무섭기도 했던 이야기도 있었고 박장대소를 하다가 가슴이 뭉클해지는 이야기도 있었다.

 

과자 종합선물세트라고 불러도 될 책이다. 달콤한 초콜릿, 새콤달콤한 카라멜, 불수록 재밌는 풍선껌, 바삭바삭한 과자, 간혹 들어있는 계피맛 사탕을 먹을 때의 씁쓸함 이제는 받지 못하기에 더욱 옛 기억에 그리움까지 덩달아 떠오르게 하는 종합선물세트를 닮은 책. 그 안의 것들을 꼭꼭 씹어먹으며 맛을 보느라 눈과 손 그리고 마음까지 읽는 동안 참 행복하고 즐거웠던 책이었다.

 

과자 종합선물세트 살짝 맛보기!

 

#나쁜 소설-누군가 누군가에게 소리내어 읽어주는 이야기(달콤쌉쌀한 초콜릿)

첫번째로 나오는 이 소설은 제목 그대로 누군가 누군가에게 소리내어 읽어주는 이야기이다. 즉, 혼자가 아니라 읽기 위해서는 두명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때 내 곁에는 아무도 없었기에 나는 작가의 말처럼 불쌍한 사람이 되어버렸고 정말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건 잠시, 읽내려가다보니 이거 은근히 웃긴다. 왜 나쁜 소설인지 알게 되었을때는 정말 혼자서 얼굴이 발그레해지면서 웃음을 참느라 혼났다. 나쁜 소설을 읽는 동안 공무원 준비생인 남자의 생활의 아픔이 너무나 상세하게 묘사되어있어 작가도 혹시 공무원 준비하는거 아냐라는 생각이 들며 내 주위에서 열심히 공무원 준비를 하는 친구들이 떠올라 눈살을 찌푸리기보다는 마음이 아팠다.

 

내가 주인공이 되어야 하는 소설, 내가 읽어주는 소설을 들어줄 누군가를 필요로 하기에 그래줄 사람이 있나없나를 곰곰히 생각해야하며 혹시 없다면 내 인간성을 의심하게 만드는 소설. 웃음도 나고 쓸쓸해지도 하는 소설이었다. 왜 나쁜 소설인지 알아가는 재미가 있다.

 

 

#수인(囚人)-계피맛 사탕

-내게는 참 충격적인 소재였다. 그럴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에 한번 놀랐고, 그렇게 통일을 외쳐도 되지 않던 일이 이런 식으로 휴전선이 없어질 수도있겠구나라는 것에 한번 더 놀랐으며, 주인공의 곡괭이질과 심판관의 속내를 보며 씁쓸하게 놀랐다.

 

주인공 수영이 소설을 쓰기 위해 깊은 산 속에 들어간지 2개월 후 남한에서 원자력 발전소가 두 시간의 시차를 두고 폭발해버렸다. 낙진과 방사능 유출로 남은 사람들은 모두 북으로 향한다. 휴전선은 50년이나 그곳에 있었던 것이 믿기지 않을만큼 너무나 쉽게 뚫렸다. 세계 여러국가에서 우리나라 국민들을 받아주기로 했지만 엄중한 심사를 거쳐야 가능한 일이다. 그 나라가 원하는 기술이 없는 자는 회색 낙진으로 뒤덮인 곳에서 살아야한다. 다행스럽게도 수영이 있는 산 속은 푄 현상으로 죽음을 모면한 수영은 심사를 받는다.

 

휴전선이 저렇게 뚫릴 수도 있구나를 보며 이 이야기가 현실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자 팔에 소름이 돋는다. 낙진이나 방사능도 무섭지만 내가 가장 무서웠던 것은 세계 여러나라에서 바라는 조건이 나에게는 없을 것이란 무서움 때문이었다. 그 나라의 언어도, 남들 다 가진 자격증도 없으니 혼자서 그 낙진들 속에서 죽어가지는 않을까라는 생각이 나를 무섭게 만들었다. 수영처럼 나를 증명하기 위해 곡괭이를 들고 노동을 할 끈기도 없다는 것, 나를 증명할 길이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한동안 책을 손에서 놓아야 했다.

 

#갈팡질팡 하다가 내 이럴줄 알았지-새콤달콤 카라멜

-제목부터가 웃음기 가득하다. 그러나 누구든 한번쯤은 그런 적이 있을 것이기에 마냥 웃기보다는 옛 일을 떠오르게 한다.

 

필연적인 삶을 살지 못한 주인공은 소설에서 꼭 필요한 필연적인 결말을 쓰지 않고 허무하게 끝을 내는 논리박약, 의지부족으로 낙인찍혔다. 어렸을 때부터 당한 집단구타, 린치, 세상에 이렇게 운이 없는 사람도 있는거야라며 웃음을 참을 수 없게 된다. 가네시로 가즈키의 소설에 나오는 야마시타같은 존재라고 설명될 정도로 악운을 몰고다니는 주인공이다. 악운은 필연적으로 오지 않는다. 대부분이 우연적으로 발생해서 우연적으로 끝난다. 그러니 주인공은 우연으로 시작해서 필연으로 끝나야하는 소설을 쓰기가 참 어려운 것이다. 무슨 일이 생길때마다 갈팡질팡 고민하는 사람이 한번에 결단을 내리는 사람보다 훨씬 더 많다. 나역시도 갈팡질팡 부류에 속한다.

 

<갈팡질팡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글쎄 말이다. 나도 그럴 줄 알았다. 다 지나고 난 뒤에 보니까...... 그러니까, 그러니까 말이다.>

 

필연보다는 우연이 더 많은 우리들의 삶. 필연과 우연의 차이가 어딨겠는가. 그 차이를 모르니 갈팡질팡하게 되는 것 아닐까. 하지만 지나고 나면 갈팡질팡 하면서도 참 그래도 여기까지 온 걸 보면 용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니 나 자신을 탓하는 것은 그만해야겠다.

 

이 몇개의 이야기는 약간의 맛보기이다. 책 속에는 더 많은 맛있는 먹을거리가 담겨있다.

이기호, 재밌고 유쾌하지만 그 속에 눈물과 한숨과 추억들을 요리조리 잘 담아놓았다. 이제 그의 다른 요리들을 먹으러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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