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겨레의 미학사상 - 옛 선비 33인이 쓴 문학과 예술론 겨레고전문학선집 13
최행귀 외 지음, 리철화.류수 옮김 / 보리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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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잠들기 전에 한달을 같은 책만 보았다. 많이 읽으면 스무장을 넘겼고 적으면 열장 안팍을 읽어내려갔다. 그렇게 잠드는 밤이면 창문을 꽁꽁 닫았음에도 청아한 바람이 어디선가 불어오는 듯했고 아침에 물 한컵과 책을 읽기 시작하면 가슴에서 정신까지 기분좋게 깨어짐을 느꼈다. 그렇게 이 책으로 인해 한달을 편히 자고 편히 깼다. 가슴 속에 쌓은 걱정거리는 잠이 들때까지 나를 괴롭혔는데 이 책으로 잠들기 전에는 잠자리 옆에 슬그머니 내려놓을 수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잘 알지도 못하는 고전문학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아니 좋아졌다고 말하는 것보다 끌렸다고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고전을 접한 건 중,고등학교때가 전부인 내게는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 한문도 제대로 몰라 그 당시 배울때 꽤나 고생을 해서 지루하다고만 생각했던 고전에 정민선생님의 책을 보면서 매력을 가지게 되었다. 사실은 고전문학이라고 말을 하는 것도 옳지 않다. 정말 읽은 건 고전문학이 아니라 옛 선비나 옛 문인들의 좋은 글을 뽑아놓은 에세이 형식의 글을 읽은 것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옛 시나 짧은 글을 읽었다고 고전문학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은 내가 말을 하고도 얼굴이 붉어진다. 고전문학은 아직 내게는 낯이 설다. 그래서 옛 선비와 문인들이 쓴 좋은 글들을 읽는 것에 아직은 만족을 하고 있다.
 
그런 내게 <우리 겨레의 미학사상>은 그저 옛 성현들의 글이 좋아서 선택한 책이었다. 다양한 옛 선인들의 글을 읽고 편한 마음을 가질 수 있겠구나라는 마음이었다. 한해를 보내는 12월의 나는 그만큼 혼란스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차분히 무엇을 하려해도 후회와 걱정이 나를 감싸안아 잠을 들지 못하게 했으며 아침이면 한숨을 먼저 쉬게했다. 그때 전에 읽고 마음의 안정을 찾았던 <책 읽는 소리>와 비슷한 책이 있을까 찾던 중에 이 책을 손에 들게 된 것이다. 결론은 내게는 좋았던 책이다. 책은 내가 얻을 수 있는 것 이상이 담긴 책이라 미흡한 독자인 내가 미안해졌다.
 
<우리 겨례의 미학사상>은 북한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문예 출판사가 펴낸 <조선고전문학선집>을 <겨레고전문학선집>이란 이름으로 보리 출판사에서 펴낸 것이다. 우리나라는 요즘에서야 고전의 바람이 불고 있는데 북녘에서는 오래 전부터 우리 고전에 깊은 관심과 사랑을 보여왔고 연구와 출판을 활발히 해온 것을 보고 놀랐다. 더 나를 놀라게 한 건 우리는 같은 고전을 읽고 있었다는 것이다. 같은 역사를 가졌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된 것도 아닌데 같은 글을 읽고 생각한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놀라움은 배가 된다. 같은 글을 읽고 있구나, 그랬구나...말로는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책의 서문을 읽는 순간 나를 덮쳤다.
 
이 책은 옛 선비 이인로, 이규보를 비롯한 33명의 미학사상이 담긴 글이 수록되어있다.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그저 좋은 시와 삶의 깨우침을 주는 좋은 글들이 모아져 있는 책으로만 알았다. 분명 이 책은 내게 그것만으로 좋았다. 많은 시와 문학에 대한 선비들의 생각이 나를 맑게 깨우며 빠져들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 책은 그 이상의 것을 담고 있다. 비록 내가 모두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책에는 문학과 예술에 이르기까지 문학의 본질에 대해 논한 선비들의 글이 담겨있다. 옛 선비들의 문학을 바라보는 관점과 논쟁,  얼마나 자신에게 엄격한 글쓰기를 했는지를 읽어내려가며 이 모든 것을 흡수하지 못하는 나의 얕은 지식과 견문이 안타까웠다.
 
또한 옛날 문학과 예술에 대한 고민이 요즘과 전혀 다를 바 없음에 문학과 예술은 영원하다는 말이 생각났다. 형식과 내용 어느 것이 중요한지,옛것을 배울 것인지 새롭게 만들것인지, 어떤 시가 훌륭한지, 시를 이해하는 방법과 하나의 문장은 얼마나 중요한지, 시인은 불우해야 시를 잘 쓸 수 있는지 등 책은 여러가지 물음에 대한 선비들의 물음과 답이 담겨있다. 그 답은 한가지 아니라 여러가지의 답이 나올 수 있다는 선비들의 각기 다른 생각도 책을 읽는동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책은 크게 4가지 주제로 나뉘어져 있다. 그 중에서도 시가 많이 적혀있는 첫번째 부분이 가장 좋았다.
 
 
#훌륭한 문장은 해와 달과 같아 눈이 있는 자는 보지 않을 수가 없다
 
-첫번째장에는 이인로, 이규보, 최자등의 시와 글이 적혀있다. 기암거사 안순지가 이규보의 문집을 보고 서문을 다음과 같이 지었다고 한다.
 
"빛나는 문장은 잠시 동안에도 백 편의 시를 지어 내며 신묘한 재능은 참신하고 뛰어났다. 사람들은 이규보를 이백과 같다고 하는데 과연 그렇다. 내가 보기에는 그가 시를 쓸 때에는 물결치는 바다인 양 자유분방하며 작품은 비단결같이 빛나는 점이 이백과 비스한 것 같다. 그리고 율격이 엄격하면서도 정제되고 대구가 적절하여 급히 서둘러 쓰는 중에서도 노력한 흔적이 나타나는 점은 이백보다 우수한 듯하다." 
 
이규보 대해 내가 아는 것은 '동명왕편' 밖에 없었다. 그의 시를 읽으며 마음을 울린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선비들이 이규보를 평한 글을 보고서야 그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게 된다. 최서는 이규보의 시가 해와 달과 같다고 한다. 이규보는 표현도 다채로워 마치 천 리를 달리는 준마를 떠올리는 이가 많았다고 한다. 
 
 
시를 불사르고
                                    
             -이규보

내 젊어 시 지을 때는                            
붓을 들면 거침없이 써내려갔다            
스스로 생각하길 옥같이 아름다우니      
감히 뉘 있어 흠 잡으랴 했다                 

훗날 옛 시들을 뒤적거려 보니               
어느 한편 마음에 드는 것이 없다           
부끄러움 참을 수 없어                           
아침밥 짓는 아궁이에 모두 던져버렸다  

내년에는 올해 지은 시를                        
또 오늘처럼 버려야 할 것이다               
그러기에 옛적의 어떤 이는                    
나이 오십에 처음 시를 지었다 하는가   
 
이 시가 내가 고른 그의 시 중 가장 마음에 들었다. 잘은 모르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그의 시에대한 간절함이 묻어나는 것 같다.
 
<아쉽게, 마치면서>
-이 책은 내가 쉬이 읽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책이였다. 읽는 것만으로 꽃향기가 나는 시와 글을 읽어가는 시간은 내내 향긋한 차 한 잔을 마시는 기분이었다. 매끄러운 번역 덕분에 무리없이 읽어내려갈 수 있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책이 아니라 내게 있다. 이 책에서 알려주는 문학과 예술에 대한 옛 선비들의 생각을 받아들이기에는 내 그릇이 너무 얕아 앞으로 깊어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에게 문장이란 나무에 꽃이 피는 것과 같다. 나무를 심을 때 우선 뿌리에 북을 주고 줄거리를 바로 세워 주어야 한다. 그리하여 진액이 오르고 가지와 잎이 무성해지면 거기에서 꽃이 피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무를 잘 가꾸지도 않고 꽃만 보려고 서둘러서는 안 된다.
 나무뿌리를 북돋우듯 자기 마음을 바로잡고, 줄거리를 바로 세우듯 자기 몸을 수양하고, 진액이 통하듯 경전을 깊이 연구하고, 가지와 잎이 무성하듯 학식을 넓히고 기교를 연마하여 마음속에 든든하게 쌓은 다음에 마음에 품은 것을 표현하면 곧 글이 되는 것이며, 사람들이 보고 훌륭한 문장이라고 말할 것이니, 이것이 진정한 문장이다. 문장의 길만을 따로 떼어서 성급하게 구할 수는 없을 것이다." ( 변지의에게 주는 말에서, 여유당전서)
                                                    -문장만 연마해서는 안 되드니, 정약용
 
 
훌륭한 문장을 읽는 지금, 이 문장을 쓰기 위해 옛 선비들은 얼마나 자신을 갈고 닦았는지를 생각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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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브 스토리 4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해용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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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루에 오르고 싶었던 것은 가능한 한 하늘과 가까운 곳에서 북쪽 하늘의 흉성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무섭지 않다...... 전혀 무섭지 않을 리 없었지만 각오는 돼 있다.  그것을 전하고 싶었다. 거짓말일지도 모른다. 사실은 두려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스스로도 잘 알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북쪽 하늘의 흉성에게 전하고 싶었던 것이다. 전하고 나면 마음 속이 단단해진다. 그럴 것 같았다.>

 

와타루는 강해지고 싶어한다. 몸만이 아니라 마음까지. 지고 싶지 않다. 운명을 바꾸고 도망온 이 곳 비전에서 와타루가 진다면 더이상 갈 곳이 없어지고 만다. 그렇기에 운명에 굴복하지 않으려 와타루는 운명을 시험하는 북쪽 하늘의 흉성을 보며 다짐한다. 지지 않겠다고. 믿어준 친구를 위해! 자신이 함께해 온 비전을 위해!

 

드디어 4권이다. 와타루를 둘러싼 모든 것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비전도, 와타루의 마음도 흔들리기 시작한다. 가끔 그럴 때가 있다. 추위때문이 아님에도 몸이 떨린다. 두 팔을 엇갈려 몸을 끌어안아도 떨림이 멈추지 않을 때가 있다. 4권 내내 와타루의 마음이 그랬으리라. 그런 흔들림이 내게도 전해져 온다. 함께 안아줄 수도 없이 우리는 흔들리고 있다. 와타루는 책 안에서, 나는 책 밖에서.. 우리는 흔들리며 함께 걸어갔다. 앞으로, 운명의 탑을 향해.

 

마지막 장을 덮으며 숨을 길게 몰아쉰다. 가슴에 바람이 분다. 비전의 따사로운 바람이 불어온다. 그 바람속에 미나와 키키마의 눈물이, 와타루의 조금은 허전한 웃음이 묻어오다. 어느정도 예상한 결말과는 맞는 것 같으면서도 마냥 해피엔딩은 아니라는 것이 마음을 울리기도 한다. 눈물나는 장면도 있었고 간절히 빌게되는 장면도 있었으며 내가 운명의 여신이길 바라는 장면도 있었다. 어느새 와타루의 손을 잡고 그가 되었다가, 그의 친구가 되었다가, 그를 지켜보느라 가슴 졸이는 엄마가 되기도 한다.

 

<마음은 흠뻑 젖은 빨래다. 두 손으로 꽉 잡고 열심히 짰는데, 계속해서 눈물이 흘러나온다. 무겁고 힘들어서 더 이상 들고 있을 수 없을 정도인데도 내팽개쳐 버릴 수 없다.

이만큼의 슬픔은 대체 어디에서 오는 걸까.

(중략)

그렇다. 이제 슬픈 것은 싫었으므로, 운명을 바꾸기 위해 와타루는 비전에 왔다. 그런데 그 비전에서 지금, 마음이 부서질 정도의 슬픔에 이렇게 마구 울고 있다.

(중략)

어디를 가든 슬픔은 따라온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슬픔은 사라지지 않는다. 마음은 하나,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것이어서 바꿀 수도 없고, 수리할 수도 없다. 어디든 따라와 자꾸 보충되는 것은 슬픔뿐이잖은가. 이 이상, 마음 어디에 그것을 쌓아 두란 말인가.>

 

작은 아이가 짊어지기엔 너무나 큰 비전의 운명. 큰 슬픔을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작은 아이의 가슴. 그렇지만 와타루는 마음을 키운다. 아이들의 성장. 이 책의 주인공 와타루는 인식하지 않고는 어린아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런 와타루도 성장을 한다. 어린이에서 한걸음 어른의 길로 들어선다. 어린이에서 청소년의 강을 훌쩍 뛰어넘어 버린 것 같은 와타루. 그런 와타루가 안쓰럽고 한편으로는 장하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나 멋진 와타루, 옆에 있었음 분명 꽉 안아주고 싶었을 것이다. 책을 덮으며 나즈막히 말한다. 와타루, 조금은 어린이인 채로 남아있어도 괜찮다고. 엄마도, 비전의 친구도, 그리고 나도 있으니까.

 

#브레이브 스토리-기대 이상의 스토리, 아쉬운 모험

-내가 지금까지 만난 판타지와는 조금은 색다른 면을 많이 보여준 책이었다. 아쉬운 점도 있고 기대이상으로 빠져들게 된 부분도 있었다. 아쉬운 점은 판타지임에도 소재나 배경 모두 좋았지만 모험이 약했다는 것이다. 비전에 얽힌 비밀과 생각할 꺼리는 모험보다 기대이상의 것이었지만 모험을 기대한 독자에게는 아쉬운 부분으로 남을 거란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내가 기대했던 어른이 읽는 판타지로는 손색이 없을거란 마음은 지금도 같다. 단순한 모험만 가득한 이야기보다는 주인공과 일체가 될 것 같은 섬세한 심리묘사와 마음을 자극하는 반짝이는 문장들, 주인공 와타루의 삶만이 아닌 내 삶, 그리고 현실에 대한 고민까지 함께 할 수 있는 이 책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비전, 가보고 싶어, 가야한다면 하르네라가 일어나지 않을 때!

 

<"그래, 맞아. 하지만 신은 원래 그런 존재 아니었을까. 부드럽기만 하면 아무것도 다스릴 수 없으니까. 말은 공허한 거야. 아무리 존귀한 가르침이라도 매일매일 발전해 나가는 이 세상에서는 그 무게를 잃어 가지.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기도 하니까. 그래서 여신님 역시 천 년에 한 번 정도 꼴로 이렇게 세상을 뒤흔들어 놓음으로써 우리들에게 가르침을 줄 수 밖에 없는 거야.">

 

한 사람의 말이 내 가슴에 와닿는다. 부드럽기만 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 그렇기에 천년에 한 번 세상을 뒤흔들며 가르침을 주고 싶다는 말이 이해가 가기도 한다. 비전이 아닌 현실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사람들은 더 열심히 살려고 노력할까? 하지만 비전보다 더 큰 혼란은 분명 있을거란 생각이 든다. 천년에 한명, 그 한명이 내가 아닐까라는 의심 그건 견디기 힘든 인간의 가장 나약한 마음을 너무나 잘아는 신이 드는 회초리 맞을 자신이 없다.

 

사람의 상상력이 만들어 낸 세계여서 좋은면도 있고 나쁜면도 있다는 곳, 비전. 사람의 본성을 돌아보게 하고 현실에서 내가 바꾸고 싶은 운명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바꾸어야 할 것은 운명일까? 나일까? 그 단순한 질문에 명쾌한 답을 나는 할 수 있을까? 비전을 여행한다면 나도 그 답을 단호하게 말할 수 있을까? 여행의 목적은 목표지점이 아니라 여정에 있다는 말, 그 말을 가슴에 품어본다. 비전, 하르네라가 일어나지 않을 때 나를 초대해줘!

 

#용기라는 선물, 고맙게 받을께.

 

<"바위 같은 굳은 의지는 와타루뿐만이 아닙니다. 미쓰루도 마찬가지예요. 왜 그 두사람의 결심이 그 정도로 단단해졌는지, 옴바 님은 모르십니까?"

어둠 저편에서 옴바 님은 라우 도사 족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은 그 두사람이 어리기 때문입니다. 옴바 님. 작은 이들이 자신을 둘러싼 가혹한 운명과 대치하기 위해서는 온몸의 힘을 있는 대로 짜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더욱 그 아이들은 과감한 것입니다.">

 

읽는동안 내가 가진 큰 의문은 하나였다. 왜 이렇게 어린아이가 주인공이어야 하는걸까? 해리포터처럼 밝고 가벼운 이야기가 아닌 브레이브 스토리는 무거우면서 감동적이다. 어린아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무겁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문지기 도사의 말에 그제서야 나는 왜 어린이가 판타지 주인공을 많이 하는지 알게 되었다. 어리기에 온몸의 힘을 있는 대로 짜내지 않으면 안된다는 말. 어른이었다면 여러생각에 분명 한가지 일만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린이였기에, 단 하나의 길만을 보고 앞으로 달려나가는 건 어린이다. 그 길이 전부라고 알고 그 길만으로 걸어가길 원하는 어린이는 무모해보일 수도 있지만 그것이 최선이고 정답일 때가 훨씬 더 많다. 가끔 이것저것 생각하다가 길을 잃는 어른들이 얼마나 많은가!

 

용기를 주는 여행, 그 여행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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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타너스 나무 위의 줄리
웬들린 밴 드라닌 지음, 이지선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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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레몬처럼 상큼할까? 플라타너스 나무처럼 푸르를까? 귀여운 표지처럼 귀여움이 묻어나는 이야기 일까?상큼한 연애소설, 푸르름이 가득한 십대의 이야기,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지 못한 주인공들의 귀여운 고민들. 그 속에서 이십대 후반의 나는 내 나이의 옷을 십년정도 벗어던지고 싶어진다. 가만히 있어도 빛이 나는 나이가 있다. 그건 십대이지 않을까? 그들의 순수함, 그들의 솔직함, 그들이 처음으로 품는 사랑에 대한 갈망, 그들의 새로운 꿈과 결심들, 그들의 우정. 그들의 고민까지 이십대의 내가 볼때는 빛이 난다. 그 시절에는 빛이 나는지도 모르고 달렸다. 바닷가를 달렸고, 친구와 빗속을 달렸고, 좋아하는 옆집 오빠와 눈이 마주치자 부리나케 우리집으로 달렸다. 분명, 달리는 걸음에는 빛가루가 떨어졌으리라. 반짝반짝. 화려하지 않지만, 그리 밝지 않지만 반딧불처럼 너무나 예쁜 빛으로 남을 내 십대의 시간. 그래도 이 책속의 주인공처럼 빛이 나지는 않으리라.

 

반짝반짝 빛이 나는 두 아이가 있다.

 

-똘똘함에도 엉뚱한 면이 많아 귀여운 여자아이 줄리. 생각이 많은만큼 행동도 거침없고 가난하지만 행복한 가족을 사랑하고 플라타너스 나무위의 풍경을 사랑하는 아이. 옆집에 이사온 브라이스를 보고 첫눈에 반해 그 아이를 사랑하게 되어 매일 아침마다 그 아이에게 직접 부화 시킨 암탉이 낳은 달걀을 가져다 주는 아이가 있다. 초등학생이였던 아이가 중학생이 되고 사랑앞에서는 어느정도 수줍어 하는 소녀가 되어간다.

 

-옆집에 사는 줄리로 부터 벗어나는 것이 지상 최대의 목표인 남자가 아이 브라이스. 엉뚱하고 똑똑한 줄리 앞에만 서는 작아지는 남자아이지만 아름다운 눈동자를 보고 나면 누구나 반하게 만들 미소년이다. 자신이 줄리를 좋아한다고 줄리가 착각한다는 사실에 경악하며 늘 도망갈 궁리만 하지만 플라타너스 나무 위에 앉은 줄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천천히 알아가게 되며 자신의 감정에 혼란을 겪는다. 줄리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 하는 행동들이 줄리를 상처입혀 사랑의 괴로움을 알아가는 소년이 되어간다.

 

<냉정과 열정사이>의 십대판이라고 해야할까? 이건 꼭 주인공의 비밀일기를 몰래 엿보는 기분이다. 책은 같은 경험에 대해 줄리와 브라이스가 한 챕터씩 교대로 이야기하며 진행되는 소설이다. 그렇기에 나는 이 아이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아이들이 서로에게 느끼는 감정을 알 수 있지만 귀여운 주인공들은 서로의 본심을 오해하게 되고 전전긍긍하게 된다. 그 모습이 안타깝기도 하지만 풋풋하다고 할까? 순수하다고 할까? 그런 감정들로 읽는 내내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초등학교 1학년때 줄리는 옆집으로 이사온 브라이스의 푸른색 눈동자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 설레는 가슴을 주체할 수 없는 줄리는 2,3학년 내내 브라이스를 졸졸 쫓아다니게 되고 4학년이 되고서는 스스로 브라이스를 좋아하는 마음을 통제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이 얼마나 귀여운 아가씨인가. 줄리를 보는 내내 나는 꿈이 가득한 빨간머리 앤이 떠오르고 사고뭉치지만 미워할 수 없는 말괄량이 삐삐가 떠올랐다. 줄리는 자신감, 활발함, 솔직함이 매력적이다. 이런 줄리의 진가를 모르는 브라이스는 내내 줄리를 피해다니고 꼭 둘의 모습은 톰과 제리이다. 물론 여기서 톰은 제리를 아주 좋아하는 것이 다르다.

 

어느날 줄리가 플라타너스 나무 위로 올라간 브라이스의 연을 구해주면서(?) 두 아이와 플라타너스의 인연은 시작된다. 실제로 이 책에서 플라타너스는 얼마 나오지 않느다. 그런데도 이 나무가 제목으로 당당히 자리 잡은 건 그 나무에서 둘의 마음이 변화되기 시작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나무 아래서 줄리는 어엿한 소녀가 되어가고 브라이스 역시 뒤로 숨기만 하는 꼬맹이에서 멋진 소년으로 성장해 간다. 두 아이는 서로를 향한 마음의 성장통을 겪으며 조금씩 어른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

 

읽는동안 가슴이 두근거렸다. 십대인 주인공들의 감정. 사랑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 연약하고 우정이란 감정으로 단정짓기에는 그 감정의 향기가 짙다. 어른이 보기에는 그들의 사랑은 분명 '풋사랑'일 것이다. 달콤함보다는 상큼함이 더 크고 풋풋함이 더 큰 사랑. 우리가 웃음짓고마는 풋사랑이지만 분명 그들의 사랑은 그 순간은 가장 힘든 고민이며 견디기 힘들만큼 아픈 감정일 것이다. 또한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고 자신의 감정을 깨닫느라 상대의 마음을 여러번 상처내기도 한다.그 상처를 이겨내고 아물게 하는 것까지 모두가 그들의 몫이다. 어른이 할 일은 지켜봐 주는 것. 미소를 지으면서.

 

책을 덮고 첫사랑을 떠올려보기도 하고 줄리와 브라이스의 훗날을 떠올려보기도 한다. 성장소설이란 건 누구나 읽어도 좋지 않을까? 사람은 언제나 성장하며 살고 있으니까. 십대의 성장소설을 읽다보면 잃어버린 옛 감정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다가 이런 책을 읽다보면 놀라게 되는 것이다. 아직도 남아있는 이 풋풋한 두근거림에. 사랑의 색깔은 나이에 따라 한가지로 정해진 건 아닐것이다. 그렇기에 우리의 마음 속에는 십대의 풋풋한 사랑, 이십대의 열정적인 사랑, 삼십대의 아름다운 사랑, 그 이후의 사랑까지 모두 들어있어 여러 색깔의 사랑을 읽을때면 가슴이 자신도 모르게 두근거리는 것이다.

 

이번 겨울에는 봄이 오기전에 봄빛을 닮은 사랑을 만나보는 것은 어떠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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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브 스토리 3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해용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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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별이 보인다. 눈 아래 갈라진 구름 사이로 마을의 불빛이 보인다. 회오리바람 한가운데로 들어가자 그곳은 신비하리만큼 조용해서, 끊임없이 불어오는 상승기류가 마치 갓난아기를 안은 어머니의 품처럼 부드럽게, 와타루가 지상으로 추락하지 않도록 다정하게 들어 올려 주었다.>

 

2권에서 와타루는 위기를 맞게 된다. 그 위기를 무사힌 넘긴 와타루. 드디어 혼자만의 모험이 시작되려 한다. 더이상 그는 누군가의 조정을 받아 움직이는 캐릭터가 아니다. 혼자 먼 곳에 떨어진 와타루는 스스로 생각하고 자신의 힘을 믿는 방법 밖에는 없다. 고립된 와타루가 내게는왜이렇게 더 멋져 보이는 걸까? 초등학교 5학년, 겨우 12살인 와타루. 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와타루는 애써 떠올리지 않는 한 초등학생이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어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깊은 사고, 배려, 신중한 선택을 한다. 그렇기에 매력적이지만 어린이에게 반하고만 나를 볼때면 살짝 멋쩍어지기도 한다. 그래도 멋있는 걸 어쩌겠는가! 와타루가 강해질수록 매력지수가 상승, 어쩔 수 없다.

 

3권에는 다양한 장소와 색다른 등장인물의 등장, 새롭게 밝혀지는 비전의 비밀로 인해 숨가쁘다. 미야베 마유키의 문체와 상상력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상상속에서도 생각하지 못했던 독특한 장소를 엿보는 재미와 판타지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인 용이 나와서 더욱 신난 모험이였으며, 와타루의 내적갈등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했으며 비전이 안고 있는 진실을 알게 되는 충격까지. 1권의 잔잔함은 2권에서 발돋움을 시작하더니 3권에서 날아오른다.

 

#반가워! 죠조!

'브레이브 스토리'에서 웃기는 장면을 찾는 것은 좀처럼 쉽지 않다. 그렇기에 웃음이 나오는 등장인물이 새롭게 등장할때면 내 입에는 미소가 지어진다. 좀처럼 나오지 않는 대신 한번에 크게 웃겨준다는 것을 알기에. 탄식의 늪에서 와타루는 귀여운 용을 구하게 된다.

 

용의 이름은 죠조. 곡예비행으로 늪에 빠진 죠조는 늪에서 나오기 위해 와루에게 자신의 꼬리를 잘라달라고 부탁하지만 정작 자르고 나자 너무 많이 잘랐다며 아프다고 투덜댄다. 투덜대는 정도가 아니라 눈물을 뚝뚝 떨구는 죠조가 너무 귀엽다. 이때 나는 분명 용의 꼬리는 재생되는 줄 알았다. 그렇기에 큰 소리로 꼬리를 자르라고 하는지 알았다. 죠조는 와타루에게 감사의 선물로 용의 비늘을 주며 피리로 만들어 그것을 불면 자신이 날아온다고 했다. 계속 함께 하리라 생각했는데 죠조는 그말을 전하고 날아간다. 후에 다시 만나기는 하지만.

 

#티어즈 헤븐- '당신이 행복하다면 용건이 없는 마을'

 

<이 마을의 생활은 다른 곳과 거의 비슷하구먼요. 다른 점이 있다면 이곳 주민들의 대부분은 각자의 고향이나 살던 곳에서, 죽고 싶을 정도로 강한 슬픔을 맛보고, 그것을 치유하기 위해 이곳으로 이주해 온 사람들이라는 것뿐. 즉 이곳은 '마음의 병원'인 거구만요. 슬픔이라는 병이 치유될 때까지 일시적으로 몸을 맡기는 곳에 불과한 것이죠. 그래서 집의 구조도 가구도 조명도 간소한 것이구먼요.>

 

행복하다면 용건이 없는 마을. 슬픔만을 간직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 빗물에서 '눈물의 물'을 정제하여, 그것을 생업으로 삼는 마을. 이런 마을이 있을거라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웃음과 행복만으로 가득찬 마을은 어쩌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슬픔만 가득한 마을이라니. 이 곳이 내 마음에 들어온다. 어쩌면 현실 속에서도 이런 곳이 있어야하지 않을까. 상처입은 사람들이 맘 편히 쉴 수 있는 곳. 자신의 상처를 치료하며 아름다운 '눈물의 물'을 만들고 천천히 마음을 열게 되는 곳. 이곳이 현실에 있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까란 생각에 가슴 한켠에 바람이 인다.

 

이곳에서 와타루는 자신의 슬픔과 직면한다. 와타루가 이곳에 와야만 했던 원인을 제공한 다른 여인과 바람난 아버지와 그 여인은 비전에서도 같은 상황에 처해있다. 이때 비전이 여행자의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는 것이 인식되기 시작했다.

 

아버지와 그 여인은 분명 자신의 아버지와 아버지의 여인은 아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비전에서 존재하며 현실과 똑같은 상황으로 살아가고 있다. 귀여운 여자아이 사라의 아버지임에도 바람이 난 야콤은 와타루의 아버지가 했던 말처럼 사랑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한다. 사라가 불쌍하지도 않냐는 와타루의 울부짓는 듯한 질문에 야콤은, 어쩌면 와타루의 아버지는 말한다.

 

"자식이 뭐  어째다는 거냐! 원래 내가 준 목숨이잖아.(중략) 어찌 됐든 나라는 부모가 있음으로 해서 태어날 수 있었다고 한다면 나는 그런 목숨 따위 처음부터 필요없었어. 내가 이 손으로 목숨을 끊어주지."

 

할수만 있다면 그 순간 나는 그 남자의 입을 막거나, 와타루의 귀를 막고 싶었다. 와타루는 용감한 전사지만 겨우 12살인 것이다. 부모가 자식을 필요하지 않다는 말을 듣고도 온전하게 서있을  수 있는 나이는 아닌 것이다. 아니, 어른이라고 해도 그걸 감당할 수 있겠는가! 가끔 어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고 만다. 아이들의 심장을 찌르는 말을. 할수만 있다면 와타루를 꼭 안아주며 '넌 소중한 아이라고, 사라져도 될 아이가 아니라고. 네 아버지가 틀린거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드러나는 비전의 어둠-고칠거야? 와타루?

 

<계약은 다시 맺으면 된다. 고치면 된다. 잘못된 것은 다시 고쳐야만 한다. 열심히 부탁하면, 진심으로 부탁하면, 분명 여신님도 들어 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여신이 아니다.>

 

비전은 현실세계의 반영이라고 말했었다. 그리고 와타루의 내면을 반영한 것이라고도. 현실세계는 밝음과 착함만이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의 마음도 그렇다. 완벽한 선만 있는 세상은 존재할까? 그곳은 천국일까? 지옥일까? 사람이 사는 곳에 선함만이 있어야 하는걸까? 그래도 괜찮을까? 내내 고민해봐도 그건 아니라는 생각이다. 선함과 악함이 있기에 사람들은 고민하고 고뇌하고 가끔 실수도 하지만 결국 옳은 것이 무엇인지 배우게 된다. 물론 그것은 희생을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인간은 그런 존재이다. 부딪히며 배우고 아파하며 알아간다. 그렇게 여기까지 온 것이다. 아파하는 이를 손잡아주고 혼란스러워하는 이를 붙잡아주며 그렇게 서로를 도와주며 선이 많은 세상으로 만들어 올 수 있었던 것이다.

 

내게도 혼란스러운 비전의 비밀. 그것은 와타루에게 너무 큰 힘듬이였다. 자신의 내면에 불합리한 것이 존재함을 알았을 때의 충격. 와타루는 혼란에 빠진다. 그는 분명 행복한 비전만이 존재할 거라 믿었을 것이다. 누군가를 증오하지도 불행하길 바라는 마음, 시샘하는 마음은 숨겨진 내면에서 나오지 못할 줄 알았는데 그런 것들 역시 비전은 알아보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사람들 모두에게 있는 것이니 당연하게 비전은 악함과 있고 선함도 있게 된다는 사실을 와타루가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힘든 진리렸다.

 

와타루의 갈등은 시작된다. 운명의 탑에 가서 빌게 될 소원은 한가지. 그러나 와타루가 빌고 싶은 소원은 두가지. 하나는 자신을 위해, 또 다른 하나는 비전을 위해. 어느덧 비전은 와타루에게 소원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 아닌 소중한 삶의 터전이 되어간다. 그렇기에 와타루의 고민은 점점 깊어지고 고민할 틈도 없이 여러 사건이 일어나고 와타루는 사건 속으로 달려든다.

 

흥미로운 모험의 결말은, 와타루의 선택은 어떨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손에는 이미 4권이 올려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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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번째 사요코
온다 리쿠 지음, 오근영 옮김 / 노블마인 / 2006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온다 리쿠 소설에는 바람이 분다. 청량한 바람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폭풍전야의 바람과 닮아있다.  큰 비가 오기 전의 바람이 그녀의 책에서 분다. 나무가지를 부러뜨릴 것 같은 강한 바람에 나뭇잎은 사시나무 떨듯 요란한 소리를 내고 짙은 회색으로 무장한 구름은 땅을 덮어버릴 듯 점점 더 내려앉는다. 그 때의 바람은 직접 느껴보지 못하면 두렵기만 하다. 그러나 밖으로 나가 바람을 맞는다면 그 바람의 시원함을 알게 된다. 수분기 가득한 바람은 볼을 스치는 순간 물방울로 변할 것 같고 가슴을 스치는 순간 있는지도 몰랐던 고민이나 우울한 감정들을 함께 가져간다. 
 
그 때의 바람은 청량하지만 무섭고 시원하지만 두려움을 느끼게 한다. 그 바람 한 중간에 서있는 이는 실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공포영화의 한장면을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정작 그 안에 있는 이는 몸과 마음을 식혀주는 그 시원한 바람에 웃음을 짓고있는데......온다 리쿠, 그녀의 소설에는 바람이 분다. 시원하고 차가운 바람, 무섭고 두려운 바람.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하는 것만으로 소름이 끼치는 바람이 분다. 그러나 그 바람은 유리만큼 깨끗하다. 그래서 자꾸만 돌아보게 한다.
 

 

<당신은 이런 게임을 아는가.

우선 트럼프 카드를 준비한다.게임에 참가하는 사람이 여덟 명이면 여덟 장.그 안에 스페이드 잭과 조커를 섞어둔다.그 여덟 장의 카드를 뒤집어놓고 한 사람이 한 장씩 카드를 골라 갖는다. 스페이드 잭을 뽑은 사람은 '탐정'이다. 그리고 조커를 뽑은 사람은 '범인'이다.

이제 당신도 한 장 뽑기로 하자.>

 

나를 게임에 참가 시키려는 것일까? 프롤로그에 적힌 게임에 대한 설명은 대학시절 내가 못하는 게임이었던 마피아게임과 닮아있다. 마피아를 찾아내는 게임. 탐정과 마피아만이 자신이 누군인지 알고 있고 그 외의 사람들은 누구일까 의심을 하게 하는 게임. 이런 게임이 학교에서 열린다면 어떨까? 그것도 1년이란 긴 시간동안. 한 학교에서는 이 게임이 행사로 전해져 내려온다. 3년에 한번씩 행해지는 행사는 어떠한 보상도 주어지지 않음에도 '행사'는 실시된다. 대체 무엇이 그 행사를 이끄는 걸까?

 

학교 행사의 범인은 '사요코'라고 부른다. '사요코'가 누구인지는 '사요코'자신과 그 '사요코'를 지명한 바로 전의 '사요코'밖에 알지 못한다. 교실에 빨간 꽃이 꽂힌 순간부터 그 해의 게임은 시작된다. '사요코'가 해야 할 일은 단 한 가지, 자신이 '사요코'임을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전교생을 상대로 게임을 시작하는 것이다. '사요코'가 승리하면 그 해에는 '길할 징조'가 일어난다. 대학 입학률이 좋다던가라는 식으로. '사요코'는 고 3학생만 하게 된다. 이 책의 사요코는 제목 그대로 여섯 번째 사요코이다. 사요코, 그녀의 게임이 시작된다. '사요코'만이 자신이 '사요코'인 줄 안다. 정말 그녀만이 알까?! 

 

여섯 번째 사요코가 지명된 그 해 봄. 아주 오래전부터. 그리고 지금도.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는 아직 보지 못한 '그녀'를 기다리는 그들이 있다. 그들에게 '그녀-사요코'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녀'는 자신에게 부과된 사명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앞으로의 1년 모두를 속여야 한다는 압박감, 과거 다섯 명의 사요코 가운데 세 사람이 '실패'했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사요코'를 훌륭히 수행해야 하는 '그녀'는 교실에 붉은 꽃을 꽂기 위해 이른 아침 교실로 향한다. 그곳에서 또 다른 '사요코'를 만난다. 놀란 '그녀'와 같은 반에 전학 온 '쓰무라 사요코', 매력적인 외모와 독특한 분위기로 아이들의 관심의 대상으로 올라선 또 한명의 '사요코'. 진짜 사요코인 그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앞으로 1년, 어떤 일이 생길 것인가? 이제 게임의 막이 오른다.

 

<학교란 얼마나  이상한 곳인가.

같은 또래의 수많은 소년, 소녀들이 모여들어 저 비좁은 사각 교실에 나란히 책사을 놓고 앉는다. 얼마나 신기하고 얼마나 유별난, 그리고 얼마나 굳게 닫힌 공간인가.>

 

'사요코'를 찾는 행사가 매력적인 것은 그곳이 학교이기 때문이다. 굳게 닫힌 공간. 학교는 자유롭지 않다. 일반인들에게는 언제든 들어가고 나갈 수 있지만 그곳은 학생에게는 졸업하기 전까지는 나갈 수 없는 곳이 된다. 학교가 얼마나 근사한 게임의 장소가 될 수 있는지는 알려준다. 학생들 모두가 게임의 일원이고 누구도 그 게임에서 빠져나갈 수 없다. 이 사실은 모든 학생의 흥미를 유발한다는 점과 더불어 그 폐쇄적인 공간에서 느껴지는 두려움과 공포를 전제한다.

 

<같은 학생이라도 대학생과는 사뭇 다른게 고등학생이다. 그녀에게 대학생은 이미 어른이다.그들은 이미 어엿한 사회의 일원인 것처럼 보인다.하지만 고교생은 어정쩡한 경계 지점에서 자신들의 가장 허약한 부분으로 세상과 싸우고 있는 특수한 생물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온다 리쿠의 소설 속에 주인공들은 어른과 아이의 중간에 위치한 청소년이다. 특히 고등학생이 많이 등장한다.(내가 읽어본 그녀의 소설 주인공은 모두 고등학생이었다.) 이 책을 읽고 나서야 그녀가 왜그렇게 학생들의 이야기를 쓰는지 짐작이 간다. 어른이 아님에도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나이.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바꿀 수 없지만 환경에 순응하려고 하지 않는 나이. 궁금한 것이 많아지는 만큼 알아서는 안될 것을 알게 되는 나이. 자신이 아는 것이 진실인지 아닌지에 대한 고민으로 밤을 지새는 나이. 우정도 사랑도 전부 소중한 나이. 그래서 항상 고민에 빠져 사는 나이. 그 나이. 19살. 얼마나 눈부신 나이인가!

 

4명의 주인공들은 '사요코'를 둘러싼 은밀한 비밀을 알아가려 하고, 알려 하지 않아도 알게 된다. 서서히 드러나는 진실 앞에 나는 얼마나 뒷통수를 맞았던가! 너무나 빨리 범인이 누구인지 알아차렸다고 자부한 나는 바로 다음 페이지에서 허를 찔린다. 그렇게 얼마나 많이 상상하고 단정했는지 모른다. 번번히 맞혀지지 않는 베일에 쌓은 정체. 책의 끝장을 보고서야 한숨을 쉰다. 역시, 따라가기에만도 벅찬 소설이었다. 온다 리쿠, 그녀는 이번에도 내 정신을 빼놓았다.

 

몰입력, 속도감, 소름 끼칠 정도의 오싹함, 거부할 수 없는 게임의 일원이 되어간다. 주인공보다 관찰자가 더 무서울 때가 있다. 이 책이 그렇다. 나는 탐정도 범인도 아님에도읽는 종종 팔에 돋은 소름을 없애느라 여러번 팔을 쓰다듬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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