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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번째 사요코
온다 리쿠 지음, 오근영 옮김 / 노블마인 / 2006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온다 리쿠 소설에는 바람이 분다. 청량한 바람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폭풍전야의 바람과 닮아있다. 큰 비가 오기 전의 바람이 그녀의 책에서 분다. 나무가지를 부러뜨릴 것 같은 강한 바람에 나뭇잎은 사시나무 떨듯 요란한 소리를 내고 짙은 회색으로 무장한 구름은 땅을 덮어버릴 듯 점점 더 내려앉는다. 그 때의 바람은 직접 느껴보지 못하면 두렵기만 하다. 그러나 밖으로 나가 바람을 맞는다면 그 바람의 시원함을 알게 된다. 수분기 가득한 바람은 볼을 스치는 순간 물방울로 변할 것 같고 가슴을 스치는 순간 있는지도 몰랐던 고민이나 우울한 감정들을 함께 가져간다.
그 때의 바람은 청량하지만 무섭고 시원하지만 두려움을 느끼게 한다. 그 바람 한 중간에 서있는 이는 실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공포영화의 한장면을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정작 그 안에 있는 이는 몸과 마음을 식혀주는 그 시원한 바람에 웃음을 짓고있는데......온다 리쿠, 그녀의 소설에는 바람이 분다. 시원하고 차가운 바람, 무섭고 두려운 바람.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하는 것만으로 소름이 끼치는 바람이 분다. 그러나 그 바람은 유리만큼 깨끗하다. 그래서 자꾸만 돌아보게 한다.
<당신은 이런 게임을 아는가.
우선 트럼프 카드를 준비한다.게임에 참가하는 사람이 여덟 명이면 여덟 장.그 안에 스페이드 잭과 조커를 섞어둔다.그 여덟 장의 카드를 뒤집어놓고 한 사람이 한 장씩 카드를 골라 갖는다. 스페이드 잭을 뽑은 사람은 '탐정'이다. 그리고 조커를 뽑은 사람은 '범인'이다.
이제 당신도 한 장 뽑기로 하자.>
나를 게임에 참가 시키려는 것일까? 프롤로그에 적힌 게임에 대한 설명은 대학시절 내가 못하는 게임이었던 마피아게임과 닮아있다. 마피아를 찾아내는 게임. 탐정과 마피아만이 자신이 누군인지 알고 있고 그 외의 사람들은 누구일까 의심을 하게 하는 게임. 이런 게임이 학교에서 열린다면 어떨까? 그것도 1년이란 긴 시간동안. 한 학교에서는 이 게임이 행사로 전해져 내려온다. 3년에 한번씩 행해지는 행사는 어떠한 보상도 주어지지 않음에도 '행사'는 실시된다. 대체 무엇이 그 행사를 이끄는 걸까?
학교 행사의 범인은 '사요코'라고 부른다. '사요코'가 누구인지는 '사요코'자신과 그 '사요코'를 지명한 바로 전의 '사요코'밖에 알지 못한다. 교실에 빨간 꽃이 꽂힌 순간부터 그 해의 게임은 시작된다. '사요코'가 해야 할 일은 단 한 가지, 자신이 '사요코'임을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전교생을 상대로 게임을 시작하는 것이다. '사요코'가 승리하면 그 해에는 '길할 징조'가 일어난다. 대학 입학률이 좋다던가라는 식으로. '사요코'는 고 3학생만 하게 된다. 이 책의 사요코는 제목 그대로 여섯 번째 사요코이다. 사요코, 그녀의 게임이 시작된다. '사요코'만이 자신이 '사요코'인 줄 안다. 정말 그녀만이 알까?!
여섯 번째 사요코가 지명된 그 해 봄. 아주 오래전부터. 그리고 지금도.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는 아직 보지 못한 '그녀'를 기다리는 그들이 있다. 그들에게 '그녀-사요코'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녀'는 자신에게 부과된 사명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앞으로의 1년 모두를 속여야 한다는 압박감, 과거 다섯 명의 사요코 가운데 세 사람이 '실패'했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사요코'를 훌륭히 수행해야 하는 '그녀'는 교실에 붉은 꽃을 꽂기 위해 이른 아침 교실로 향한다. 그곳에서 또 다른 '사요코'를 만난다. 놀란 '그녀'와 같은 반에 전학 온 '쓰무라 사요코', 매력적인 외모와 독특한 분위기로 아이들의 관심의 대상으로 올라선 또 한명의 '사요코'. 진짜 사요코인 그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앞으로 1년, 어떤 일이 생길 것인가? 이제 게임의 막이 오른다.
<학교란 얼마나 이상한 곳인가.
같은 또래의 수많은 소년, 소녀들이 모여들어 저 비좁은 사각 교실에 나란히 책사을 놓고 앉는다. 얼마나 신기하고 얼마나 유별난, 그리고 얼마나 굳게 닫힌 공간인가.>
'사요코'를 찾는 행사가 매력적인 것은 그곳이 학교이기 때문이다. 굳게 닫힌 공간. 학교는 자유롭지 않다. 일반인들에게는 언제든 들어가고 나갈 수 있지만 그곳은 학생에게는 졸업하기 전까지는 나갈 수 없는 곳이 된다. 학교가 얼마나 근사한 게임의 장소가 될 수 있는지는 알려준다. 학생들 모두가 게임의 일원이고 누구도 그 게임에서 빠져나갈 수 없다. 이 사실은 모든 학생의 흥미를 유발한다는 점과 더불어 그 폐쇄적인 공간에서 느껴지는 두려움과 공포를 전제한다.
<같은 학생이라도 대학생과는 사뭇 다른게 고등학생이다. 그녀에게 대학생은 이미 어른이다.그들은 이미 어엿한 사회의 일원인 것처럼 보인다.하지만 고교생은 어정쩡한 경계 지점에서 자신들의 가장 허약한 부분으로 세상과 싸우고 있는 특수한 생물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온다 리쿠의 소설 속에 주인공들은 어른과 아이의 중간에 위치한 청소년이다. 특히 고등학생이 많이 등장한다.(내가 읽어본 그녀의 소설 주인공은 모두 고등학생이었다.) 이 책을 읽고 나서야 그녀가 왜그렇게 학생들의 이야기를 쓰는지 짐작이 간다. 어른이 아님에도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나이.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바꿀 수 없지만 환경에 순응하려고 하지 않는 나이. 궁금한 것이 많아지는 만큼 알아서는 안될 것을 알게 되는 나이. 자신이 아는 것이 진실인지 아닌지에 대한 고민으로 밤을 지새는 나이. 우정도 사랑도 전부 소중한 나이. 그래서 항상 고민에 빠져 사는 나이. 그 나이. 19살. 얼마나 눈부신 나이인가!
4명의 주인공들은 '사요코'를 둘러싼 은밀한 비밀을 알아가려 하고, 알려 하지 않아도 알게 된다. 서서히 드러나는 진실 앞에 나는 얼마나 뒷통수를 맞았던가! 너무나 빨리 범인이 누구인지 알아차렸다고 자부한 나는 바로 다음 페이지에서 허를 찔린다. 그렇게 얼마나 많이 상상하고 단정했는지 모른다. 번번히 맞혀지지 않는 베일에 쌓은 정체. 책의 끝장을 보고서야 한숨을 쉰다. 역시, 따라가기에만도 벅찬 소설이었다. 온다 리쿠, 그녀는 이번에도 내 정신을 빼놓았다.
몰입력, 속도감, 소름 끼칠 정도의 오싹함, 거부할 수 없는 게임의 일원이 되어간다. 주인공보다 관찰자가 더 무서울 때가 있다. 이 책이 그렇다. 나는 탐정도 범인도 아님에도읽는 종종 팔에 돋은 소름을 없애느라 여러번 팔을 쓰다듬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