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겨레의 미학사상 - 옛 선비 33인이 쓴 문학과 예술론 겨레고전문학선집 13
최행귀 외 지음, 리철화.류수 옮김 / 보리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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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잠들기 전에 한달을 같은 책만 보았다. 많이 읽으면 스무장을 넘겼고 적으면 열장 안팍을 읽어내려갔다. 그렇게 잠드는 밤이면 창문을 꽁꽁 닫았음에도 청아한 바람이 어디선가 불어오는 듯했고 아침에 물 한컵과 책을 읽기 시작하면 가슴에서 정신까지 기분좋게 깨어짐을 느꼈다. 그렇게 이 책으로 인해 한달을 편히 자고 편히 깼다. 가슴 속에 쌓은 걱정거리는 잠이 들때까지 나를 괴롭혔는데 이 책으로 잠들기 전에는 잠자리 옆에 슬그머니 내려놓을 수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잘 알지도 못하는 고전문학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아니 좋아졌다고 말하는 것보다 끌렸다고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고전을 접한 건 중,고등학교때가 전부인 내게는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 한문도 제대로 몰라 그 당시 배울때 꽤나 고생을 해서 지루하다고만 생각했던 고전에 정민선생님의 책을 보면서 매력을 가지게 되었다. 사실은 고전문학이라고 말을 하는 것도 옳지 않다. 정말 읽은 건 고전문학이 아니라 옛 선비나 옛 문인들의 좋은 글을 뽑아놓은 에세이 형식의 글을 읽은 것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옛 시나 짧은 글을 읽었다고 고전문학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은 내가 말을 하고도 얼굴이 붉어진다. 고전문학은 아직 내게는 낯이 설다. 그래서 옛 선비와 문인들이 쓴 좋은 글들을 읽는 것에 아직은 만족을 하고 있다.
 
그런 내게 <우리 겨레의 미학사상>은 그저 옛 성현들의 글이 좋아서 선택한 책이었다. 다양한 옛 선인들의 글을 읽고 편한 마음을 가질 수 있겠구나라는 마음이었다. 한해를 보내는 12월의 나는 그만큼 혼란스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차분히 무엇을 하려해도 후회와 걱정이 나를 감싸안아 잠을 들지 못하게 했으며 아침이면 한숨을 먼저 쉬게했다. 그때 전에 읽고 마음의 안정을 찾았던 <책 읽는 소리>와 비슷한 책이 있을까 찾던 중에 이 책을 손에 들게 된 것이다. 결론은 내게는 좋았던 책이다. 책은 내가 얻을 수 있는 것 이상이 담긴 책이라 미흡한 독자인 내가 미안해졌다.
 
<우리 겨례의 미학사상>은 북한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문예 출판사가 펴낸 <조선고전문학선집>을 <겨레고전문학선집>이란 이름으로 보리 출판사에서 펴낸 것이다. 우리나라는 요즘에서야 고전의 바람이 불고 있는데 북녘에서는 오래 전부터 우리 고전에 깊은 관심과 사랑을 보여왔고 연구와 출판을 활발히 해온 것을 보고 놀랐다. 더 나를 놀라게 한 건 우리는 같은 고전을 읽고 있었다는 것이다. 같은 역사를 가졌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된 것도 아닌데 같은 글을 읽고 생각한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놀라움은 배가 된다. 같은 글을 읽고 있구나, 그랬구나...말로는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책의 서문을 읽는 순간 나를 덮쳤다.
 
이 책은 옛 선비 이인로, 이규보를 비롯한 33명의 미학사상이 담긴 글이 수록되어있다.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그저 좋은 시와 삶의 깨우침을 주는 좋은 글들이 모아져 있는 책으로만 알았다. 분명 이 책은 내게 그것만으로 좋았다. 많은 시와 문학에 대한 선비들의 생각이 나를 맑게 깨우며 빠져들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 책은 그 이상의 것을 담고 있다. 비록 내가 모두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책에는 문학과 예술에 이르기까지 문학의 본질에 대해 논한 선비들의 글이 담겨있다. 옛 선비들의 문학을 바라보는 관점과 논쟁,  얼마나 자신에게 엄격한 글쓰기를 했는지를 읽어내려가며 이 모든 것을 흡수하지 못하는 나의 얕은 지식과 견문이 안타까웠다.
 
또한 옛날 문학과 예술에 대한 고민이 요즘과 전혀 다를 바 없음에 문학과 예술은 영원하다는 말이 생각났다. 형식과 내용 어느 것이 중요한지,옛것을 배울 것인지 새롭게 만들것인지, 어떤 시가 훌륭한지, 시를 이해하는 방법과 하나의 문장은 얼마나 중요한지, 시인은 불우해야 시를 잘 쓸 수 있는지 등 책은 여러가지 물음에 대한 선비들의 물음과 답이 담겨있다. 그 답은 한가지 아니라 여러가지의 답이 나올 수 있다는 선비들의 각기 다른 생각도 책을 읽는동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책은 크게 4가지 주제로 나뉘어져 있다. 그 중에서도 시가 많이 적혀있는 첫번째 부분이 가장 좋았다.
 
 
#훌륭한 문장은 해와 달과 같아 눈이 있는 자는 보지 않을 수가 없다
 
-첫번째장에는 이인로, 이규보, 최자등의 시와 글이 적혀있다. 기암거사 안순지가 이규보의 문집을 보고 서문을 다음과 같이 지었다고 한다.
 
"빛나는 문장은 잠시 동안에도 백 편의 시를 지어 내며 신묘한 재능은 참신하고 뛰어났다. 사람들은 이규보를 이백과 같다고 하는데 과연 그렇다. 내가 보기에는 그가 시를 쓸 때에는 물결치는 바다인 양 자유분방하며 작품은 비단결같이 빛나는 점이 이백과 비스한 것 같다. 그리고 율격이 엄격하면서도 정제되고 대구가 적절하여 급히 서둘러 쓰는 중에서도 노력한 흔적이 나타나는 점은 이백보다 우수한 듯하다." 
 
이규보 대해 내가 아는 것은 '동명왕편' 밖에 없었다. 그의 시를 읽으며 마음을 울린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선비들이 이규보를 평한 글을 보고서야 그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게 된다. 최서는 이규보의 시가 해와 달과 같다고 한다. 이규보는 표현도 다채로워 마치 천 리를 달리는 준마를 떠올리는 이가 많았다고 한다. 
 
 
시를 불사르고
                                    
             -이규보

내 젊어 시 지을 때는                            
붓을 들면 거침없이 써내려갔다            
스스로 생각하길 옥같이 아름다우니      
감히 뉘 있어 흠 잡으랴 했다                 

훗날 옛 시들을 뒤적거려 보니               
어느 한편 마음에 드는 것이 없다           
부끄러움 참을 수 없어                           
아침밥 짓는 아궁이에 모두 던져버렸다  

내년에는 올해 지은 시를                        
또 오늘처럼 버려야 할 것이다               
그러기에 옛적의 어떤 이는                    
나이 오십에 처음 시를 지었다 하는가   
 
이 시가 내가 고른 그의 시 중 가장 마음에 들었다. 잘은 모르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그의 시에대한 간절함이 묻어나는 것 같다.
 
<아쉽게, 마치면서>
-이 책은 내가 쉬이 읽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책이였다. 읽는 것만으로 꽃향기가 나는 시와 글을 읽어가는 시간은 내내 향긋한 차 한 잔을 마시는 기분이었다. 매끄러운 번역 덕분에 무리없이 읽어내려갈 수 있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책이 아니라 내게 있다. 이 책에서 알려주는 문학과 예술에 대한 옛 선비들의 생각을 받아들이기에는 내 그릇이 너무 얕아 앞으로 깊어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에게 문장이란 나무에 꽃이 피는 것과 같다. 나무를 심을 때 우선 뿌리에 북을 주고 줄거리를 바로 세워 주어야 한다. 그리하여 진액이 오르고 가지와 잎이 무성해지면 거기에서 꽃이 피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무를 잘 가꾸지도 않고 꽃만 보려고 서둘러서는 안 된다.
 나무뿌리를 북돋우듯 자기 마음을 바로잡고, 줄거리를 바로 세우듯 자기 몸을 수양하고, 진액이 통하듯 경전을 깊이 연구하고, 가지와 잎이 무성하듯 학식을 넓히고 기교를 연마하여 마음속에 든든하게 쌓은 다음에 마음에 품은 것을 표현하면 곧 글이 되는 것이며, 사람들이 보고 훌륭한 문장이라고 말할 것이니, 이것이 진정한 문장이다. 문장의 길만을 따로 떼어서 성급하게 구할 수는 없을 것이다." ( 변지의에게 주는 말에서, 여유당전서)
                                                    -문장만 연마해서는 안 되드니, 정약용
 
 
훌륭한 문장을 읽는 지금, 이 문장을 쓰기 위해 옛 선비들은 얼마나 자신을 갈고 닦았는지를 생각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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