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 공책 도코노 이야기 2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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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누구세요? 이토록 은은하고 다정하고 잔잔한 목소리를 내는 당신은 누구신가요? 책을 펼치는 순간 흘러 나오는 당신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책을 덮고는 쳐다만 봤어요. 귓가를 울리는 나즈막한 소리로 제 마음을 흔들 것 같은 당신, 당신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건가요? 이미 시작 되었나요? 제가 당신을 깨웠나요? 울음이 저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소리가 들려요. 당신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나면 울지 않을 수 있을까요? 한 숨을 크게 내쉬지 않아도 될까요? 겁이 나도 들을래요. 당신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그 빛나던 여름의 일들을. 반짝반짝한 초록빛과 솨아아아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와 아프게 내리는 빗소리와 그에 얽힌 당신의 이야기를 들을래요.
 

 민들레 공책을 예뻐하던 여자 아이를 알게 되었다. 민들레 공책은 그 여자 아기가 자신의 일기장에 붙인 이름. 그 아이의 창문 밖을 내다보면 민들레 언덕이 보여서 그렇게 지었다고 한다. 그 언덕 너머에는 그 아이에게 잊을 수 없는 여름을, 그 아이 인생에서 가장 빛나고 아름답던 여름을 만들어 준 다른 여자아이가 살고 있었다. 이름은 사토코. 민들레 공책의 주인은 미네코.

 

 사토코의 집안은 그 마을 지주로서 대대로 인망과 덕망을 갖춘 집안이었고 미네코의 집은 옛부터 사토코 집안의 주치의를 해오고 있었다. 태어날 때부터 심약하게 태어난 사토코는 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집에서 누워만 있었는데 사토코보다 한 살 어린 미네코는 친구가 되어주기 위해 민들레 언덕을 지나 사토코의 집으로 향한다. 그리고 이야기는 시작된다. 10살 여자 아이의 발걸음은 겁이 난 듯도 하고 기대감을 부푼 듯도 해서 앞으로 갔다가 뒤로 갔다가를 반복하는 듯하지만 앞으로 충실하게 나아가고 있었다. 민들레 언덕을 넘어서.

 

 그렇게 미네코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민들레 홀씨를 날려 줄 바람만큼 조용하게 하지만 확실히 움직이게 하는 힘을 지닌 목소리로 시작 된다.  

 

<그 무렵의 저는 그런 예감을 느끼고 있었을까요. 장차 어떤 거대한 물결이 자신을 삼켜버릴 것을 알고 있었을까요. 알고 있는 사람도 분명 있었습니다. 그 기적 같은 눈을 한 소녀와 그의 가족들은.> -p.8

 

 아름다운 그 마을에 아름다운 그 소녀에게 아름다운 그 시절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아름다운 다른 이들이 찾아왔다. 아름답다라는 말이 몇 번이나 겹쳐지면 아름다움을 잃게 되는 걸까? 책을 읽는 동안 나를 지배했던 몽롱함은 아름다움 그 한 가운데 있었기에 정신을 놓게 만들기도 했다. 온다 리쿠만의 서늘함이 베어나오면서도 아름답고 신비한 문체는 나를 책 속에 있게 하지 않고 민들레 언덕으로 데려갔다.

 

 촉촉한 풀들이 나를 보고 흔들며 울었고 아이와 소녀의 중간일 듯한 귀여운 여자 아이 중 한 명은 먼 곳을 단호한 눈빛으로 쳐다보며 나이에 걸맞지 않는 평온한 미소를 짓고 있었고 다른 아이는 그 아이를 쳐다보며 안절부절한 발걸음으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채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그 아이에게 뭐라 소리치고 있었다. 그 말은 그 아이에게 닿지 못하고 내 귀에 -리본 이라는 말만 남기고 바람에 사라졌다.

 

 모두의 가슴에 빛나는 민들레 홀씨를 심게 만든 그 해 여름의 사건. 사노코는 분명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해 말을 하고 있지만 어쩐지 그 이야기를 하지 않기 위해 다른 이야기들을 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차마 하지 못할 이야기를 듣는 순간 예상보다 마음은 평온하게 받아들이지 못했고 손끝은 떨려왔다. 예상했다고 해서 견디어 낼 수 있는 방파제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듯.

 

 책 속에는 참 많은 민들레 홀씨들이 담겨있다. 어쩌면 우리 사람 모두는 하나의 민들레 홀씨가 아닐까? 누군가의 가슴에 뿌리를 내려 '넣어' 달라고 말할 수 있고 또, 누군가를 '넣을' 수도 있을테니까. 민들레 홀씨는 자신을 위해 날아가면서도 다른 이를 위한 마음 역시 잊지 않는다. 힘들고 척박한 땅이라고 해도 포기하지 않고 함께 자라나자고 말한다. 책 속의 등장인물처럼.

 

 읽어 본 온다 리쿠 책 중 참 많은 등장인물들이 나왔다고 생각이 든다. 익숙치 않은 이름들에 고생을 하기도 했지만 누구하나 잊으면 안 될 것 같은 등장인물들로 인해 소소한 감동이 마음에 쌓여갔다. 일본의 시대상과 겹쳐지면서 마지막에 뭐라  말을 건네야 할지 선뜻 입이 떼어지지 않았다. (결국 난 한국사람으로 일본에 대한 악감정은 사라지지 않는 것인가.) 또한 일본의 성향을 음악과 비교해서 말하는 사노코의 이야기와 시나가 신타로에게 하는 이야기가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일본과 무엇이 다른지 생각해 본다. 자신의 나라를 사랑하는 그리고 보듬으려는 온다 리쿠의 마음이 담겨있었던 것 같다.

 

 책을 다 읽을 때쯤 가슴에 콕콕하고 무언가가 나올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인다. 살짝 내려다보니 어느새 내 마음에 민들레 홀씨가 자리를 잡고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다. 물을 주세요, 햇빛을 주세요, 바람을 불어주세요. 투덜거리는 민들레 홀씨는 주인과는 사뭇 다른 까탈스런 성격이다. 토닥거리며 너를 넣어줄테니 너도 나를 넣어줄래? 라고 말을 건넨다.

 

 #엉뚱한 덧붙이기

 

 책 속 도코노 일족을 보며 <이현의 연애>의 주인공 영혼을 기록하는 여자 이진이 떠올랐다. 다른 이의 삶을 기억하는 일을 하는 도코노 일족과 다른 이의 삶을 기록하는 여자 이진. 이들의 삶이 겹쳐보이면서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이진을 이제 마음으로 받아들여 본다. 안타까운 건 이진은 혼자였다는 것. 이현이 있다해도 그녀는 혼자였다. 스스로. 그에 비해 도코노 일족은 혼자가 아니라는 것 그 점이 다행이다. 이진에게도 누군가가 있었다면. 자신과 같은 힘을 가진 누군가가 있어서 따뜻한 손을 잡아 줄 수 있었다면 참 좋았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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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이 인 더 시티
신윤동욱 지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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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이 어떻게 보여? 음~ 하늘에는 모래가 펼쳐져있고 땅에는 구름이 둥둥 떠있어. 건물들은 모두 땅에 붙어 있는 게 아니라 하늘에 붙어 있네. 와아, 신기하다. 그런데 왜 머리가 아프지? 쿵! 철봉에 거꾸로 매달린 나를 떨어뜨리는 친구에게 원망섞인 시선을 보내니 친구 혀를 차며 한마디 한다.

 

 "너, 미쳤어?"

 

 세상에~ 세상을 거꾸로 한 번 봤다고 미쳤다는 소리를 듣는 세상이 무서워지려고 한다. 하긴 나보다 더 세상이 무서워지려는 사람이 있으니 다행인가? 나는 아주 가끔 세상을 거꾸로 보지만 이 사람은 아예 세상 비딱하게 보기에 출사표를 던졌다. 그런데 괜찮은 걸. 삐딱하게 세상보기, 은근한 중독이다.  하긴 이 사람은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는 날 수 있다. <플라이 인 더 시티>라는 책을 낸 세상을 나는 남자, 신윤동욱의 책이 그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알록달록 표지로 인사를 한다. 책만이라도 발랄하게 보이려는 겁니까? 하긴 그의 삶을 살짝 들여다보니 그의 삶도 발랄하게 보이려고 한다. (종종 노총각의 모습은 어쩔 수 없이 아픔이지만, 같이 늙어가는 처지니 이해완료!) 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 재방송을 '보고 또 보고' 하는 35살이 넘은 남자의 세상 바라보기는 어떤 모습일까?

 

 저자의 신윤동욱이란 이름은 보는 것만으로 낯설다. 동방신기를 흉내낸 것이 아닌 그의 이름은 양쪽 부모님의 성을 써서 이름이 4자가 되었다. 신윤동욱, 이름만으로는 참 멋진 이름인데 4자가 되니 부르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한겨레 21기자이니 신기자라고 부름 좋을 것 같은데 성이 신윤이니 부르기도 고민이다. 이름으로 인해 이미 만나는 사람에게서 적잖은 관심(?)을 끌었을 저자의 고뇌에 왜 웃음이 지어지는 걸까? 그의 이름이 4자라 더 기억이 잘 될 것 같다고 하면 저자는 쓴 웃음을 지을까? 니가 내 고통을 알아~ 이러면서. 그래도 나는 씨익 웃으며 말할 것이다. 당신 이름 참 멋지다고!

 

 이 책은 저자가 그동안 쓴 컬럼을 모아 놓은 책이다. 칼럼이 이렇게 재미 뿐만 아니라 마음에 콕 찝기도 하고 생각할 거리도 줄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그의 칼럼은 분명 사회의식나 비판이 강하게 담겨있는 글인데도 지루하거나 딱딱하지 않고 읽는 이로 하여금 마음의 일렁거림을 느껴지게 만든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 사회의 부조리함을 알리는 기자에게 이것보다 더 큰 힘이 필요한걸까? 

 


 지금은 문화 기자로 일하는 저자는 전에 사회 기자로 일했다고 한다. 이 부분에 실린 칼럼들은 아마도 그 당시 쓴 것이란 생각이 든다. 스스로를 대한민국 1퍼센트라고 부르는 저자. 그가 외치는 1퍼센트는 고급 승용차를 타는 1퍼센트가 아닌 좋게 말하면 정치적 소수자고 나쁘게 말하면 철없는 '또라이'다.(또라이라는 말은 내가 아닌 저자가 스스로 말한 것이다.)

 

 대한민국 1퍼센트의 소수의 편에서 선 저자는 스스로 우리나라의 마이너리티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소수의 편에서 글을 쓰는 그의 글은 권력의 얄팍함을 꼬집고 다수의 이름으로 소수를 죽일 줄 아는 국민을 송곳으로 콕콕 찌르기도 한다.

 

 '대한민국'을 제대로 바라보기에 소수의 위치는 얼마나 적절한가. 이런 글을 써도 되는 것인가 할정도의 겁없는 컬럼도 수두룩 하다.(당신 정말 이런 칼럼을 쓰고도 직장에 다닐 수 있는 건가요?!) 기자라는 직업에 매력을 느끼지 못했는데 그를 보며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신문을 보면 정치 사회면은 빼놓고 보는 나인데 이제는 그로 인해 챙겨보지 않을까 싶다. 왜냐 그의 글에서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나 역시도 조금의 지식은 필요할테니. 저자와 대화를 해보고 싶어졌다. 얼마나 유쾌하고 두근거리는 시간일까.

 

 1부가 대한민국의 뒷담화라면 2부는 저자의 생활(그의 생활을 삶이라고 하면 왜 무거운 느낌이 들까? 그의 말대로 드라이하게 '생활'이라고 부르자.) 3부는 대중 매체 속의 문화를 이야기 하고 있다.

 

 저자의 브로크백은 '방콕'이라는 사실에 나도 늙으면 방콕에 가서 살아볼까? 란 생각을 하게 된다. 자신의 생활을 베일 하나 남기지 않고 드러낸 듯한 글에 눈살이 찌푸려지기 보다 오옷! 이란 감탄사를 연발하게 된다. 물론 그 뒤에 웃음과 함께. 엉뚱한 아저씨라는 단어가 절로 떠오르게 만드는 그의 생활이 유쾌하게만 느껴진다.

 

 1부에서 삐딱하게 세상을 봄으로 시원함을 느꼈고 2부에서는 유쾌함을 느꼈다면 3부에서는 나도 나도를 연발하게 되는 공감대를 느꼈다. 3부는 그가 문화 기자라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을만큼의 그만의 시선이 느껴진다. <순풍 산부인과>처럼 시트콤을 비롯해 <훌라 걸스>에 이르기까지 그의 글을 읽다보면 이 사람 제대로 맛나게 보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로 인해 다시 봐야할 영화와 볼 영화가 늘어났다.

 

 읽는 동안 지루할 틈이 없이 나를 몰아댔던 책을 손에서 내려 놓으며 여러 감정에 휩싸인다. 쉽게읽히는 글이라고 쉽게 쓰일리 없는데 빠르고 쉽게 읽은 것만 같아 괜히 미안해진다. 시간이 날 때면 아무 부분이나 펼쳐서 읽으며 그 미안함을 갚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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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8-27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티티새님, 오랜만이에요. 리뷰 당선 축하합니다~

순오기 2007-08-27 1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글을 읽으니, 이 책을 꼭 봐야겠단 생각이 마구 들어요~ㅎㅎ
한겨레 21기자라는 저자에 대해서도 관심이 확~ 쏠립니다.
발견의 기쁨을 선사할 책, 얼른 장바구니에 담을랍니다.
이주의 리뷰, 축하합니다!!

안녕반짝 2007-08-29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티티랑 같이 이주의 리뷰 되어서 너무 기쁘오..^^
축하하오..^^
 
담 (양장본)
글로리아 J.에반즈 지음, 김성웅 옮김 / 규장(규장문화사)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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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책 선물을 좋아하고 선물을 준다고 하면 책으로 달라고 말하고는 했다. 가장 좋은 것은 그 사람이 읽고서 좋았던 책을 받는 일이다. 누군가에게 읽은 책을 선물하는 사람의 마음은 비슷하지 않을까? 받는 사람이 내가 느꼈던 감동을 경험하면 참 좋겠다, 이 책을 읽고  그의 마음이 뽀송뽀송하게 햇볕을 받은 듯 말려지면 참 좋겠다 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 그렇기에 책 선물을 받게 되면 그 날 하루는 행복감이 밀려온다. 누군가에게 행복을, 위로를, 토닥거림을, 햇살 한 줌을 선물 받았다는 생각이 들기에.
 

  이 책이 들어있던 소포를 받은 날, 내 심신은 말 그래도 지쳐있었다. 두 팔 있는 힘껏 쥐어짜도 몸 속에 남은 수분은 날아가지 않을 것 같았고 마음에 가득한 우울을 흡수하기에는 내 그릇이 부족하여 그저 축 늘어진 상태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 날 이 책이 내게도 왔다. 한자 한자 정성드려 썼을 것 같은 보낸 이의 글씨에 책을 읽기도 전에 눈과 마음이 울컥했다. 그녀의 글씨에서는 햇살 한 줌이 따사로이 느껴졌다.

 

 책을 펴며 닿지도 않을 소리로 "고마워요." 라고 말하고, 책을 다 읽은 후에는 "정말 고마워요." 라고 말하며 울고 말았다.

 

 <담>을 손에 들었을 때 '참 가볍다' 라는 생각을 했었다. 책을 펴서 살짝 봤을 때도 그림과 함께 짤막한 글이 들어있는 페이지가 100페이지가 넘지 않아 그 가벼움을 만만하게 생각했다. 할머니 말씀을 잊고 살았다.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것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라고. 내 고민을 너무 가볍게 보는 것 같아 할머니께 투덜댔더니 할머니가 말해주셨다. 살아가면서 명심해야 할 것은 그리 무겁지 않다고. 너무 오래 생각하면, 너무 깊게 생각하면 되려 망친다고. 그 소중한 말씀을 왜 잊었을까?

 

 삶을 살아감에 있어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은, 가슴에 품어야 할 것들은 얇고 얇아 가슴에 붙여놔도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데 그 진리들은 너무 가벼워 항상 내 가슴에 붙어있나를 확인해야 한다. 바람의 심술로 날아가버렸을지도 모르기에.

 

 이 책에서는 한 여자가 나온다. 담을 쌓는데 열중인 여인. 무릎 높이의 담을 조금씩 쌓아가면서 스스로 만족해하던 여인은 어느 새 바람한 점, 사람들 목소리 하나 들리지 않을만큼 담을 쌓아버렸다. 사람들이 들오지 못하게 담을 쌓는 것이 삶의 목표인 것처럼 살아왔으나 그 목표가 달성 되었을 때 남은 것은 어둠, 탁한 공기 그리고 어디에 둘 데 없는 서글픈 마음이었다. 그 마음이 이해가 가서 담안에 갇혀 "거기 누구 없어요?"라고 외치는 그녀를 몇 번이나 쓰다듬었다. 몇 번이나 애처롭게. 슬픔에 빠진 그녀가 마지막에 웃게 되는 그 날까지의 이야기는 지금 할 수 없을 것 같다. 내게는 소중한 선물 같은 이야기라 가슴에 조금 더 품고 있고 싶다.

 

-----그저 마음이 전해지길 바라는 낙서-그러나 마음 가득한 낙서-

 

 나, 지쳐있었나봐요. 나도 몰랐는데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고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서 난 사람들이 나를 다 떠나간거라 생각했었어요. 어렸을 때는 다 같은 출발점 시작했던 것 같은데 어떤 이는 빨리 달리기 시작했고 나처럼 늦게 달리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고 생각했어요. 난 같은 속도로 달릴 수 없는 현실이 무서웠어요. 어릴 때는 그럴 수 있었는데 커갈수록 그렇지 못한 사실이 무섭기만 했어요.

내가 왜 늦게 달렸는지, 아니 내가 왜 사람들을 놓쳤는지 이제 알았어요. 나도 모르게 혹은 알면서 담을 쌓았다는 것을 어떻게든 높은 담을 쌓으려는 내 모습을 책을 통해 봤어요. 무엇이 그리 무서워서, 무엇이 그리 견디기 힘들어서 그랬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아요. 다만 높이 쌓여진 담 뒤에 서 있는 당신이 느껴져요. 내가 벽돌을 하나 빼내고 그 구멍으로 당신에게 "도와주세요. 함께 치워주실 수 있을까요? 이 담을."  이라고 말하기를 기다리는 당신이.

 

 당신, 참 고마운 사람. 

내 담에 꽃을 던져 준 사람. 고마워요.
----------------------

 

 

-우리 사이엔 낮은 담이 있어 내가 하는 말이 당신에게 가 닿지 않아요- 

책을 읽고나서 자우림의 <담> 이란 노래가 생각났다.

우리는 누구나 담을 쌓고 살아간다고 한다. 집에도 담이 쌓이고 3개로도 부족한 장금장치를 가진 집들이 늘어나는 마당에 사람 사이의 담이야 이제는 당연한 것이 되어가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그 담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그러면서도 누군가가 도와주지 않는다고, 자신은 혼자라고 여기는 이들이 많다는 -나 역시- 것이다. 그 담을 발견한다면 벽돌은 하나 내려 놓는 것은 어떨까? 시원한 바람과 따뜻한 말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은 어떨까? 그 공간 속으로 누군가가 꽃을 내밀지도 모른다.

당신의 담을 함께 치워줄게요 라고 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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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 베이커리
이연 지음, 이지선 그림 / 소년한길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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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 좋은 날 바람에 실려 우산 타고 날아올 것 같은 그녀에게 이 책을 선물 받았다. 책을 다 읽고 그녀에게 내 이야기를 해줬던가 라는 의문이 들었다. 말하지 않았는데도 이렇게 내 마음에 붙일 반창고를 그녀는 이리도 잘 아는 걸까? 역시 그녀는 음표 요술지팡이를 숨기고 있는 마법사임이 틀림없다.
 

 내 마음과는 상관없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따라 갈 때가 있다. 바로 마음이 지쳤을 때다. 기분이 좋거나 행복하다고 스스로 느낄 때 누군가가 나타나 "너 우울하지?" 를 수십 번 되풀이 해서 묻게 되면 "아니." 라고 큰 소리로 답하던 진실은 어느 새 "응......"이란 힘 없는 소리로 변하게 된다. 내가 "응."이라고 하지 않을 때까지 그 사람은 포기 하지 않을 것을 알기에. 대체 왜 물어보는 지 모르겠다. "저 아이는 분명 우울할거야. 새 엄마 혹은 새 아빠 혹은 부모님이 계시지 않거나 혹은 이혼을 한 부모의 자식이니까!" 라고 못 박은 자신의 생각을 끊임없이 묻는다. 자신의 생각과 다른 진실은 받아들이지 않으려 한다. 어쩔 수 없이 이야기를 그만 하기 위해 그 사람의 말처럼 순간 나는 불쌍한 아이가 되어 동정 받게 된다.

 

 초등학교 때부터 내가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책 주인공 상윤이와 같은 것이다. 상윤이는 부모님 이혼 후에 할머니와 함께 살다가 아빠가 재혼을 하시자 아빠와 빵가게를 하는 아줌마와 함께 산다. 부모님의 이혼과 함께 상윤이를 따라다니는 것은 "저 아이는 불쌍한 아이. 문제가 있는 가정의 아이." 라는 꼬리표였다. 내게도 초등학교 1학년 부터 그 꼬리표가 따라다녔고 집에서는 참 행복한 우리 가족이 왜 밖에만 나오면 사람들의 입을 줄기차게 오르내리고 어른들은 나를 보며 한번 더 머리를 쓰다듬으려 했는지 알 수 없었다. 

 

 결손가정이란 말은 대체 누가 만든 것이며, 가정 환경 조사할 때 부모님 조사를 왜 손을 들면서 해야 하는지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가장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왜 어른들은 모든 문제를 이혼한 부모의 아이나 편부편모 혹은 계부계모 가정의 아이들이 저지를 거라 생각하는 것이다. 눈으로 들어나는 가정의 상처가 있는 집의 아이들이 물론 불행할 수도 있다. 하지만 눈으로 들어나는 상처가 없는 가정의 아이들 중 더 많이 불행한 경우도 훨씬 많다. 자신의 가정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포장하기 위해 그러는 것일까?

 

 주위의 동정 어린 시선만 아니면 하나도 걱정이 없는 상윤이와 상윤이에게 엄마라고 부르라고 강요하지 않는 빵집 아줌마, 돈을 별로 벌지 못하지만 웃음 바이러스를 전해주는 아빠로 이루어진 가정은 행복 그 자체다. 행복은 처음부터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재결합 한 가정의 아이들의 행복 만들기가 더 어려울 수도 있지만 생각보다 훨씬 쉽게 이루어지기도 한다. 어쩌면 주위의 시선만 아니라면 그 행복은 소리 없이 쌓여갈지도 모른다.

 

 이 책에서는 빵굽는 냄새가 난다. 고소하고 조용히 부풀어 오르는 빵 소리가 들릴 것 같기도 하다. 상윤이의 웃는 얼굴을 보며 그 웃음이 사라지지 않게 주위 사람들의 편견이 사라지길 바라본다. 어린이들에게는 걱정을 해주는 것보다 "너는 너답게!" 라고 믿어주며 응원을 해주는 것이 훨씬 더 도움이 된다. 가족의 모습은 똑같지 않다. 우리 가족의 모습이 다른 가족과 똑같다고 생각하면 아쉬워지는 것처럼 가족의 모양은 다 제각각이라고 생각이 들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우리네 가족의 모습이 평범한 가족보다 특별한 가족이라고 생각한다면 각각의 가족마다 비밀이 하나씩 숨겨져 있을 것 같다. 조개가 품고 있는 진주처럼 특별한 보물이 숨겨져 있을 것 같다.

 

 아이들과 어른들의 시선을 변화시켜 줄 책. 그냥 변화가 아니라 재밌게 변화시켜 줄 책이다. 내가 선생님이라면 아이들과 부모님께 추천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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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 - 안개의 성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현주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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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짙은 안개로 덮인 성, 그 안에 잠들어 있는 공주. 공주를 깨우는 어린 기사가 나타났다. 기사가 공주를 깨워도 공주는 그저 잠으로 심연의 깊은 곳으로 가라앉으려고만 한다. 어린 기사는 사실 공주를 위한 제물이었것만 기사는 공주에게서 도망치려 하지 않고 공주의 손을 잡는 길을 택했다. 서로 언어가 다른 그 둘, 둘 사이에 놓여진 시간은 얼마만큼 일까?  

 

 머리 양쪽에 뿔이 달린 해맑은 웃음의 남자아이는 무슨 이유로 제물이 되어야 하는 걸까?

 손으로 만지면 아스라한 연기로 사라질 것만 같은 아름다운 공주는 왜 이곳에 갇혀 있는, 아니 머무르게 된 것일까?

 안개의 성을 둘러싼 연기들의 정체는 무엇인 걸까?

 

 책을 읽다보면 주인공의 마음이 내 마음 같아 아릴 때가 있다. 게임이 원작이라는 소설이라는 것도 모른 채 읽기 시작한 나는 책 속 공주의 마음이 내 마음 같아 한참을 쓸어내린다. 그녀가 존재하는 곳은 현실이 아닌 게임 속에나 등장할듯한 환상의 세계임에도 그녀의 마음이 이해가 가서 아파온다.

 

 이코-책의 제목은 주인공 남자 아이의 이름이다. 안개의 성으로 제물로 보낼 아이가 몇 십 년에 한명 태어나는 토쿠사 마을에 이코가 태어났다. 제물은 머리 양쪽에 뿔이 나 있으므로 누구나가 알아볼 수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제물로 바쳐질 운명에 처한 이코는 그 운명을 거스를 생각을 하지 않는다. 13살이 되면 뿔이 급속히 자라 머리카락을 가르고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는 여느 마을 아이들과 같이 행복하게 살았으면서도 이코는 자신의 목숨으로 마을을 위험에 빠트리기 싫다. 마음이 맑은 아이, 이코. 이코는 그렇게 안개의 성으로 떠난다. 제물로서. 왜 제물이 되야하는지도 모르면서.

 

 안개의 성은 요르다 공주가 사는 곳, 그리고 검은 안개들이 사는 곳. 그녀를 살아있다고 해도 되는 걸까? 차라리 죽고만 싶었을 공주, 그녀의 마음에 이토록 큰 상처를 드리운 이를 향해 이코는 검을 든다. 그 작은 몸으로, 빛나는 마음으로. 요르다 조금만 더 힘을 내줘라고, 이코 힘내라고 책을 읽으며 속으로 몇 번이나 빈다.

 

 게임이 원작이라는 소설 <이코-안개의 성>은 500페이지가 넘는데도 불구하고 가독성이 높다. 게임을 통해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미야베의 능력을 뭐라 칭찬해주어야 할까? 주인공 심리 묘사 보다는 상황 묘사나 배경 묘사에 치중했음에도 그 묘사로 인해 주인공의 마음이 읽혀진다. 아마도 이코가 요르다의 마음을 말로서 설명해주고 요르다가 이코의 마음을 속으로 이해하려는 장면들이 자주 나와서인지도 모른다. 아이들이 주인공은 책이 좋은 이유는 그 아이가 사심없이 온 힘을 다 끌어내어 버텨내려는 용기와 의지 때문일 것이다. 아이이기에 가능한 그 힘이 부럽다. 책 속의 아쉬운 점은 결말의 약함에 있다. 조금 더 치밀한 결말이었다면 좋았을거란 생각을 해 본다.

 

 내게는 참 예쁘기만 한 책인데 게임으로는 어떨지 궁금해진다. 게임을 한 번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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