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 (양장본)
글로리아 J.에반즈 지음, 김성웅 옮김 / 규장(규장문화사) / 2000년 12월
평점 :
절판


언제부터인가 책 선물을 좋아하고 선물을 준다고 하면 책으로 달라고 말하고는 했다. 가장 좋은 것은 그 사람이 읽고서 좋았던 책을 받는 일이다. 누군가에게 읽은 책을 선물하는 사람의 마음은 비슷하지 않을까? 받는 사람이 내가 느꼈던 감동을 경험하면 참 좋겠다, 이 책을 읽고  그의 마음이 뽀송뽀송하게 햇볕을 받은 듯 말려지면 참 좋겠다 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 그렇기에 책 선물을 받게 되면 그 날 하루는 행복감이 밀려온다. 누군가에게 행복을, 위로를, 토닥거림을, 햇살 한 줌을 선물 받았다는 생각이 들기에.
 

  이 책이 들어있던 소포를 받은 날, 내 심신은 말 그래도 지쳐있었다. 두 팔 있는 힘껏 쥐어짜도 몸 속에 남은 수분은 날아가지 않을 것 같았고 마음에 가득한 우울을 흡수하기에는 내 그릇이 부족하여 그저 축 늘어진 상태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 날 이 책이 내게도 왔다. 한자 한자 정성드려 썼을 것 같은 보낸 이의 글씨에 책을 읽기도 전에 눈과 마음이 울컥했다. 그녀의 글씨에서는 햇살 한 줌이 따사로이 느껴졌다.

 

 책을 펴며 닿지도 않을 소리로 "고마워요." 라고 말하고, 책을 다 읽은 후에는 "정말 고마워요." 라고 말하며 울고 말았다.

 

 <담>을 손에 들었을 때 '참 가볍다' 라는 생각을 했었다. 책을 펴서 살짝 봤을 때도 그림과 함께 짤막한 글이 들어있는 페이지가 100페이지가 넘지 않아 그 가벼움을 만만하게 생각했다. 할머니 말씀을 잊고 살았다.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것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라고. 내 고민을 너무 가볍게 보는 것 같아 할머니께 투덜댔더니 할머니가 말해주셨다. 살아가면서 명심해야 할 것은 그리 무겁지 않다고. 너무 오래 생각하면, 너무 깊게 생각하면 되려 망친다고. 그 소중한 말씀을 왜 잊었을까?

 

 삶을 살아감에 있어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은, 가슴에 품어야 할 것들은 얇고 얇아 가슴에 붙여놔도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데 그 진리들은 너무 가벼워 항상 내 가슴에 붙어있나를 확인해야 한다. 바람의 심술로 날아가버렸을지도 모르기에.

 

 이 책에서는 한 여자가 나온다. 담을 쌓는데 열중인 여인. 무릎 높이의 담을 조금씩 쌓아가면서 스스로 만족해하던 여인은 어느 새 바람한 점, 사람들 목소리 하나 들리지 않을만큼 담을 쌓아버렸다. 사람들이 들오지 못하게 담을 쌓는 것이 삶의 목표인 것처럼 살아왔으나 그 목표가 달성 되었을 때 남은 것은 어둠, 탁한 공기 그리고 어디에 둘 데 없는 서글픈 마음이었다. 그 마음이 이해가 가서 담안에 갇혀 "거기 누구 없어요?"라고 외치는 그녀를 몇 번이나 쓰다듬었다. 몇 번이나 애처롭게. 슬픔에 빠진 그녀가 마지막에 웃게 되는 그 날까지의 이야기는 지금 할 수 없을 것 같다. 내게는 소중한 선물 같은 이야기라 가슴에 조금 더 품고 있고 싶다.

 

-----그저 마음이 전해지길 바라는 낙서-그러나 마음 가득한 낙서-

 

 나, 지쳐있었나봐요. 나도 몰랐는데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고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서 난 사람들이 나를 다 떠나간거라 생각했었어요. 어렸을 때는 다 같은 출발점 시작했던 것 같은데 어떤 이는 빨리 달리기 시작했고 나처럼 늦게 달리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고 생각했어요. 난 같은 속도로 달릴 수 없는 현실이 무서웠어요. 어릴 때는 그럴 수 있었는데 커갈수록 그렇지 못한 사실이 무섭기만 했어요.

내가 왜 늦게 달렸는지, 아니 내가 왜 사람들을 놓쳤는지 이제 알았어요. 나도 모르게 혹은 알면서 담을 쌓았다는 것을 어떻게든 높은 담을 쌓으려는 내 모습을 책을 통해 봤어요. 무엇이 그리 무서워서, 무엇이 그리 견디기 힘들어서 그랬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아요. 다만 높이 쌓여진 담 뒤에 서 있는 당신이 느껴져요. 내가 벽돌을 하나 빼내고 그 구멍으로 당신에게 "도와주세요. 함께 치워주실 수 있을까요? 이 담을."  이라고 말하기를 기다리는 당신이.

 

 당신, 참 고마운 사람. 

내 담에 꽃을 던져 준 사람. 고마워요.
----------------------

 

 

-우리 사이엔 낮은 담이 있어 내가 하는 말이 당신에게 가 닿지 않아요- 

책을 읽고나서 자우림의 <담> 이란 노래가 생각났다.

우리는 누구나 담을 쌓고 살아간다고 한다. 집에도 담이 쌓이고 3개로도 부족한 장금장치를 가진 집들이 늘어나는 마당에 사람 사이의 담이야 이제는 당연한 것이 되어가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그 담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그러면서도 누군가가 도와주지 않는다고, 자신은 혼자라고 여기는 이들이 많다는 -나 역시- 것이다. 그 담을 발견한다면 벽돌은 하나 내려 놓는 것은 어떨까? 시원한 바람과 따뜻한 말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은 어떨까? 그 공간 속으로 누군가가 꽃을 내밀지도 모른다.

당신의 담을 함께 치워줄게요 라고 말하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