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처럼 - 우리시대의 지성 5-016 (구) 문지 스펙트럼 16
다니엘 페낙 지음, 이정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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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책을 만나는 경로는 얼마나 다양한 걸까? 그건 책이 취미라고 말하는 이들만큼이나 다양하다. 아직까지 난 책만큼 다양한 취미는 없다는 생각을 한다. 세상에 쏟아져 나온 책의 수만큼 다채로운 빛깔을 띠는 것이 독자들이 아닐까? 같은 책을 좋아할 때도 있지만 내가 모르는 책을 읽는 독자는 나와는 다른 빛으로 빛나고는 한다. 그 빛에 가슴이 두근거리고 그 빛으로 만난 책을 읽은 순간 그 책이 선물한 빛에 휩싸일 때면 세상 어느 것 하나 빛나지 않는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한다.
 

 아는 분의 블로그를 통해 이 책의 구절을 발견 했을 때 내 두 눈은 글에 박혀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 만큼 책은 나를 끌어당겼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 나는 이 분을 뵈면 와락 안아 주어야겠다고, 시원한 기네스 맥주를 꼭 사드려야 겠다고 다짐, 또 다짐했다.) 그 구절은 아래와 같다.

 

<우리는 아이에게만은 소설가였고 유일한 이야기꾼이었다. 우리가 저녁마다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이는 꿈의 나래를 펼치며 밤의 장막 속으로 빠져들었다. 우리는 아이에게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책이었다.

 그 비할 데 없는 아이와의 밀착감을 떠올려보라.

 아이를 달래는 달콤한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 우리는 아이에게 겁줄 만한 이야기를 얼마나 숱하게 지어냈던가! 그런데도 아이는 번번이 무서운 이야기를 해달라고 졸라댔다! 더이상은 속지 않으면서도, 아이는 들을 때마다 무서움에 떨었다. 한마디로 아이는 진정한 독자였다. 그 옛날 아이와 우리는 그야말로 환상적인 팀을 이뤘다. 아이는 꾀바른 독자였으며, 우리는 그런 아이의 약삭빠름을 으근히 부추기며 공모하는 책이었다!>   -p.20

 

아이가 훌륭한 독자였다는 것을 그 동안 까맣게 잊고 살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학생들에게 책을 읽히느라 꽁무늬를 졸졸 쫓아다니던 학원강사 시절이 생각난다. 그 시절의 나는 아이에게 밥을 떠먹여주는 엄마들을 볼 때면 인상을 찌푸렸으면서도 아이들에게 책을 떠 먹여 주는 역할을 줄기차게 하고는 했다. 10분만 더, 5쪽만 더 읽자, 응? 이 말을 입에 달고 살던 그 시절은 지금 생각해도 끔찍하다. 아마 그 시절 내 수업을 받던 학생도 마찬가지 였을 것이다.

 

<아이는 다시 마음을 다잡고 읽기 시작한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가 엿가락처럼 늘어난다. '책' 속의 낱말들이 워크맨의 이어폰 사이에서 춤을 춘다. 아무런 감흥도 없다. 한 자 한 자가 납덩이처럼 무겁기만 하다. 낱말들이 안락사를 당하는 말처럼 차례로 쓰러져간다. 전열을 가다듬는 드럼 연주로도 죽어가는 낱말들을 소생시키기엔 역부족이다(설령 드럼연주자가 그 유명한 켄들일지라도!). 낱말들은 의미를 반납하고 평이한 글자들의 세계로 돌아갔다. 낱말들이 눈앞에서 무참히 쓰러져가건만 아이는 겁날 게 없다. 오직 앞으로의 전진만이 있을 뿐이다. 읽는 것만이 자신에게 유일하게 주어진 당면과제이자 의무이므로.> -p.81-82

 

 최고의 독자였던 아이에게 나는 무슨 짓을 한 것이며 어른들은 무슨 행동을 한 것인가? 한 때는 초롱초롱 빛나는 눈동자와 열린 마음을 가졌던 최고의 독자는 어디로 가고 흐리멍텅한 눈에 짜증과 잠만으로 가득찬 독자만이 남았는가? 읽고 있는 책을 쓴 작가가 학생을 본다면 아마 사과를 할 만큼 아이들은 책을 지겹게 읽었으며, 다 읽고 나서도 처음과 끝의 감정의 변화가 한 번도 없다. 대체 아이들은 책과 함께 하는 시간동안 어디를 다녀온 것일까?

 

<'교육자'를 자처하지만, 실은 우리는 아이에게 성마르게 빚 독촉을 해대는 '고리대금업자'와 다를 바가 없다. 말하자면 얄팍한 '지식'을 밑천 삼아, 서푼어치의 '지식'을 꿔주고 이자를 요구하는격이다.> -p.61

 

 교육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것은? 단연코, 책이다! 책이 기본이고 책이 우선이라고 부르짖으며 학원에 오는 학부모님들을 볼 때면 세상을 지탱하는 것은 책이라고 말해야 할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인다. 덩달아 책이 세상을 구할거라며 동조하지만 내심 속으로 묻는다. 저기 부모님은 책을 좋아하시는 지요? 라고. 아이들만한 나이였을 때 책을 좋아하셨는지요? 물론 부모님은 알고 있다. 책은 도움이 되지만 전혀 재밌지는 않은 것이라는 것을. 그래도 읽어야 한다. 왜? 학생은 책을 읽어야 하는 것이 의무이니까!

 


 <부디 이 책을 강압적인 교육의 방편으로 삼지는 말았으면 합니다.> -D.P

 이 책을 읽다 보면 아이들이 왜 책을 싫어하게 되었는지, 왜 가장 훌륭한 독자에서 낙오한 독자가 되었는지 알 수 있으며 낙오된 독자를 다시 훌륭한 독자로 끌어 올릴 수도 있음을 알게 된다. 저자는 분명 이 책을 아이들에게 책 교육을 시키기 위해 쓰여지지 않길 바라고 또 바라고 있다. 이 책을 읽은 선생님이라면 학부모라면 누가 이 책으로 학생들을 공부 시키려고 하겠는가! 책을 보는 동안 내가 부모가 된다면 아이들에게 훌륭한 독자 그 이상을 바라지는 않는 부모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했다. 할 수만 있다면이 아니라 할려고 노력할 것이다. 책의 기쁨을 학교를 졸업하고 교육이란 단어와 저 멀리 떨어져 살아보고서야 책을 좋아하게 된 나를 보면서 아이들에게 절대 나와 같은 절차를 밟게 하지는 않겠다고 다짐한다. (다니엘 페나크, 당신의 책을 교육의 방편으로 삼지는 않겠어요, 다만 내 삶의 지침서로 삼고 싶어요.)

 

 다니엘 페나크는 의무에 찌들어 꾸역꾸역 책을 읽는 아이들에게, 책 먹기를 포기하는 아이들에게, 소화가 잘 되는 날보다 체하는 날이 더 많은 학생들에게 "책에 대한 권리"를 준다. 책에 대한 10가지 권리를 보면서 속이 후련해 진다. 독자에게는 이렇게나 많은 권리가 있었것만 왜 우리는 의무만을 지키기 위해 울상으로 책을 읽었단 말인가!

 

이 책에는 반짝거리는 별이 될 별가루가 들어있다. 우리의 손으로 빛을 잃은 별들에게 다시 별가루를 선물해 줘야 할 때이다. 별가루를 만드는 것은 우리 아이들의 몫, 그 별가루가 만들어 질 때까지 기다리며 노래 부르는 것은 어른들의 몫이 될 것이다. 내 생에 몇 번이나 이런 책을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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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9-10 0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무척 읽고 싶었던 책이었어요. 티티새님 리뷰보며 그나마 달래고 갑니다.
아~! 순간 방금 질렀는데, 이 책을 까먹었다는 ㅠㅠ
 
천국까지 100마일
아사다 지로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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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한밤중에 주무시고 계신 엄마품으로 파고드는 다 큰 딸내미를 엄마는 내치지 않고 무슨 일이니 하고는 토닥여주신다. 잠이 덜 깬 엄마의 토닥임은 나를 아기로 만들어버릴려고 한다. 엄마의 몸이 기억하고 있는, 내 몸이 기억하고 있는 아기때부터의 토닥임, 내가 누군가에게 토닥거림을 받고 싶었던 것은 바로 엄마의 손길이 그리워서 였구나라고 생각하며 엄마의 가슴에 더욱 부비적 거리며 안아달라 몸짓으로 말한다. 평소 같았음 징그럽다고 등짝을 때릴 엄마는 밤이라고 더욱 꼭 안아주며 꿈과 현실을 왔다갔다 하시며 한 말씀 하신다.
 

-괜찮다.

 

-웅, 괜찮아, 엄마. 엄마, 나 보다 오래 살아야 해.

 

 혹여나 울음이 새여나가 엄마가 놀라기라도 할까 입을 다물고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엄마 심장과 내 심장이 같은 속도로 뛸  때까지 한참을 누워있다 자리에서 일어나 내 방으로 갔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밤바람은 어느덧 가을의 냄새가 나는 듯도 하다. 너무 일찍 와서 달님한테 꾸중을 들은 이른 가을 바람 앞에 이 책을 들고 책상에 멍하니 앉아있다 보니 다시 마음이 격해진다.

 

 #내 목숨을 가져가요, 어머니-아들이기에 죄송한 아들의 이야기

 

 병원에 제 생명의 불이 누워있습니다. 그 분의 몸을 빌어 태어났고, 그 분의 몸을 불태우며 제가 자라났습니다. 가난했음에도 가난해서 아픈 기억보다 따뜻했던 기억으로 남아있는 그 작은 집에서 어머니는 우리 4 남매를 길러내셨습니다. 우리는 엄마의 꿈을 먹고 자랐고 엄마의 미래를 발판으로 사회에 나갔습니다. 그 시절에는 제가 엄마의 꿈을 어떻게 짓밟았는지도 몰랐으며 엄마의 미래를 어떻게 깨트리며 사회에 나간지도 몰랐습니다.

 

 가난한 행복을 갖지 말라던 어머니의 말씀대로 큰 형과 작은 형 그리고 누나는 사회적으로 성공을 했습니다. 저 하나만 실패를 등에 붙이게 되었습니다. 잘 나가던 시절은 분명 있었것만 돈을 공기처럼 쓰던 시절도 있었것만 저는 지금 월급도둑이란 소리를 들으며 친구네 회사에 빌붙어 있는 사람이 되었고, 그 월급 역시 이혼한 아내와 자식들 생활비로 모두 보내야 하는 앞니 빠진 마흔의 아저씨입니다.

 

 그래요. 어머니의 심장병은 나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늘 제 걱정에 맘을 졸이던 작을대로 작아진 어머니가 아프신 것은. 그래요, 제가 죽일 놈입니다. 그런데 저는 죽일 놈인데 왜 형들과 누나는 어머니를 보러 오지 않을까요? 생명의 불이 꺼져가는 어머니를 왜 부잣집 형제들은 모른 척하는 걸까요?

 

 저는 어머니를 살릴 겁니다. 주머니에 기름값도 없지만 저는 어머니를 그저 숨만 쉬는 사람으로 만들지 않을 겁니다. 어머니에게 희망을 주고 싶어요. 천국을 보여주고 싶어요. 어머니의 수술을 해주는 병원까지는 160키로미터가 걸립니다. 100마일이 되는 그 거리를 어머니와 함께 달려갈 겁니다. 그곳이 우리에게는 천국으로 향하는 길이니까요. 어머니가 살 수 있다면 저도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천국으로 100마일, 나도 당신과 함께 달리겠습니다

 

 스스로 못났다는 말을 하는 남자 야스오. 돈도 잃고, 가족도 잃고, 희망도 잃고 삶까지 잃은 남자 하지만 그에게는 어머니가 남아있다. 왜 미처 알지 못했을까? 잘 나가던 시절, 호강시켜 줄 수 있는 시절에는 보이지 않던 어머니가 왜 그제서야 보이는 걸까?

 

 어쩌면 어머니들은 우리가 성공했을 때 그저 우리의 뒤에서 혹은 우리가 서있는 곳 아래에 서 계신지도 모른다. 그저 뒷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어머니들은 만족한다는 미소를 띄시며. 그런 어머니들이 우리 앞에 나타나는 건 우리가 절망을 만났을 때다.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리란 절망 앞에서 우리는 손 하나를 발견한다. 익숙한 손이지만 너무 늙어버린 손에 내 어머니의 손인지 한참을 생각해야 하는 손 하나를 발견하고 다시 일어설 힘을 낸다.

 

 야스오에게도 어머니는 삶의 이유가 되고 불씨가 되었주었다. 그가 어머니를 모시고 가는 100마일을 나는 울면서 따라갔다. 야스오가 어머니를 업고 가는 순간에도 내 눈에는 어머니가 야스오를 업고 있는 걸로 보이기도 했다. 세상의 어머니들은 그러한 걸까? 자신의 힘든 순간에도, 아픈 순간에도 자식을 들춰 업을 수 있는 힘을 가진 존재인 걸까?

 

 혼자서 걸어가는 길은 인생에서 없는 지도 모른다. 시야가 좁아서 보이지 않을 뿐 얼마나 많은 이들이 내가 걸어갈 수 있도록 힘을 주는지, 응원해주고 있는지 우리는 모를 뿐이다. 그걸 깨닫게 해주는 100마일. 그 길을 야스오와 그의 어머니 그리고 같이 해준 고마운 사람들의 무리 속에 나도 슬며시 껴본다. 소리없는 박수를 보내며.

 

<누대에 걸친 근친상간의 밥상

  비켜갈 수 없는,

  무정갱의 밥상 위에

  발가벗고 올라가 눕고 싶은 생각이

 

  어머니가 나를 잡수실 수 있게 말이지요>   

 

-김선우, 숭고한 밥상 中 (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 시집

 

 이 책을 읽고 김선우 시인의 시가 생각났다. 세상의 모든 자식이 그러하지 않을까. 내 부모가 드시는 한약에 할 수만 있다면 자신의 생명줄 조금 잘라 넣어드리고 싶은 것. 드시지 않을 부모님이시지만 할 수만 있다면 하고 싶은 것이 자식마음 아닐까.

 

 부모님의 손을, 이마에 주름을 만져드리는 딸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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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잡아 주세요, 아빠! 인성교육시리즈 가족 사랑 이야기 3
진 윌리스 지음, 김서정 옮김, 토니 로스 그림 / 베틀북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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솨아아아~ 바람이 불어요. 아빠. 
  내가 바람을 부르고 있어요. 아빠.

  아빠 말씀이 맞았어요. 자전거를 타면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바람을 타고 하늘까지도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빠, 내 뒤에 타요. 아빠도 함께 가요.  

 

 

 어린시절 다시 가보고 싶은 순간으로 돌아가게 해 준다면 두 장면을 고를 것이다.

 

 첫 번째 장면은 처음으로 두 발로 서서 발걸음을 떼였던 시간이다.  내 생애 가장 작은 발로 세상을 딛고 한 걸음을 뗀 순간, 그 앞에는 할머니 혹은 엄마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웃음을 터트리며 나를 덜렁 들어서 안아줄 것 같아 그 시간을 만나보고 싶어진다.

 

 두 번째 만나고 보고 싶은 장면은 네 발 자전거의 바퀴 두 개를 떼어내던 날이다.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며 아빠에게 "놓치마!"를 연발하던 날, 슬그머니 놓은 아빠 손을 눈치 채지 못하고 비틀거리지만 앞으로 나아가면서 뒤를 돌아 봤을 때 저 멀리서 아빠가 손 흔드는 모습을 발견한 후 "꺄아!" 라고 소리를 지르는 장면이다.

 

 첫 번째 장면은 기억이 나지 않아 다시 만나고 싶은 장면이지만 두 번째 장면은 이상하리만치 생생한 느낌으로 기억된다. 이 그림책을 펼쳐 본 순간 그 시절의 나와 아빠가 함께 물밀듯이 밀려 온다. 책을 선물해 준 이는 내게 책만이 아니라 추억을 되돌리는 마음의 시계까지 선물해 준 것 같다. 

 

 책 속의 주황빛이 나는 금발의 귀여운 여자 아이가 전화기를 들고 입을 삐죽거리고 있다.

 

 "아빠, 자전거 타는 것 좀 가르쳐 주세요. 그럼 그거 타고 아빠한테 갈 수 있을 거예요.

가르쳐 주실 거죠, 아빠? 정말 배우고 싶단 말이에요."

 

 자전거 타는 법을 알려달라는 아이는 혼자서도 해 보았지만 피가 나고 어려우며 위험하다는 이유로 꼭 아빠가 가르쳐 주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나 역시도 혼자서 하는 건 참 무서워서 넘어질까 무서워 제대로 타지도 못하고 넘어진 적이 여러 번인데 이 아이 역시 나와 같다. 아빠가 같이 연습을 해 준다고 해서 적게 넘어지는 것도 아닌데 그럼에도 아빠가 함께 있어주면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애야, 세상 어디든 미끄러운 비탈은 있고, 오르막과 내리막, 울퉁불퉁한 길도 있단다. 가기 힘든 길은 늘 있을 거야. 높은 계단이랑 언덕도 있고...

하지만 언덕 위에 올라서서 보는 풍경과 머리카락을 스치는 바람의 느낌...

가고 싶은 곳은 어디든 갈 수 있는 자유, 혼자 힘으로 그 곳에 닿을 수 있다는 자신감.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 까짓, 조금 넘어지는 일, 한두 군데 멍드는 일쯤은 아무 것도 아니지.

하지만 네가 아직 준비가 안 됐다면, 우리가 조금 기다려 줄게. 네가 뭘 하고 싶어하든 말이야."


 

 분명 우리 아빠는 그림책의 아빠처럼 이렇게 멋진 말씀을 해 주시지는 않았지만 세상에 아빠가 제일 용감하고 나를 지켜줄 수 있는 용사처럼 생각되게 내 자전거 뒤를 꼭 잡아주셨다. 아이는 아빠의 말에 할 수 있을거라는 말을 하면서도 주춤한다.

 

 자전거 타기는 걸음마와 같은 것이 아닐까? 세상으로 향하는 두 번째 걸음마. 그 걸음마를 하지 않으면 안전한 세상에서 살 수 있지만 더 넓은 세상은 구경할 수 없음을 알기에 아이는 포기할 수 없다. 넘어지는 아픔이 떠올라도, 비틀거리는 자전거가 떠올라도 다시 올라탈 용기를 주는 아빠가 있기에, 뒤에서 꼭 잡아 주는 아빠가 있기에.

 

 아빠의 손이 자전거를 놓는 순간 아이는 탄성을 지르지만 아빠는 눈물을 끌썽일지도 모른다. 자식이 품에서 한 걸음 달아났다고 생각하기에. 놓고 싶지 않았던 쪽은 오히려 아빠이지 않았을까? 하지만 아빠도 아이도 알고 있다. "함께 배웠고 함께 해냈음을." 책을 읽고 나니 문득 나는 자전거를 혼자 타고 난 후 아빠를 꼭 안아드렸는지 궁금해진다. 그랬다면 참 좋을텐데.

 

 27 살임에도 그림책을 받고는 팔짝 뛰며 환호성을 질렀다. 이 장면에 엄마는 고개를 도리도리 흔드시지만 이 책을 선물해 준 이의 마음이 너무 예뻐서, 기뻐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어른에게 그림책을 선물해 준 이의 예쁜 마음을 소중히 간직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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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 문학동네 시집 91
문인수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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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을 따라 시가 적힌 길을 걷다 보면 시인의 마음이 내 마음과 같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 때도 있고 길이 낯설만큼 시인의 마음을 내가 쫓지 못할 때도 있다. 그럼에도 시인을 따라 가는 길목마다 손으로 슬그머니 쓰다듬게 된다. 내가 왔단다, 하고. 시인이 만든 길을 내가 걸으면서 그 길은 내 길이 되고 닿을리 없다하더라도 나지막이 '호~'하고 입김을 불어 본다. 아프지 말아라 하면서.
 

 문인수 시인의 눈으로 보는 세상은 참 행복하겠구나 라는 생각을 한다. 그 세상을 보는 시인의 마음은 행복하다기 보다는 애달픔이 가득한데도 그가 눈길 준 세상은 분명 행복할 것이다. 누군가가 자신들을 그리 진지하고 깊은 눈길로 봐준적 없기에.

 

<새벽에 들어오는 고깃배들을 본다.

 빈 그물에 불가사리만 흉흉하게 붙어 있다.

 밤새 건져올린 죽은 별들,

 저 것이 희망이었겠으나 힘껏 탁 탁 털어낸다.

 

 마음이 또 꽉 다무는 잎, 저 긴 수평선.

 

 방파제 굵은 팔뚝이

 태풍의 샅을 깊숙이 틀어잡고 있다.>

 

-'꽉 다문 입, 태풍이 오고 있다.' 전문

 

 그가 바라보면 세상 무엇도 의미가 생기고 목적이 생기는 듯하다. 그의 시에는 물체나 어떠한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낮에 걸린 달이나 (시-낮달), 꽃과 입이 따로 떨어지는 상사화(시-항해), 소나기 내리는 소나기재(시-소나기)가 그의 시에서 다시 태어나 내게 새로운 모습으로 각인 된다. 저녁이 되기 전 걸린 아무 의미없게 쳐다보던 낮달을 한참 올려다 보기도 하고 거센 파도를 막아서는 방파제를 멀리서 지켜보며 힘을 내라고 말을 해 보기도 한다.

 

 시를 읽고 무엇인가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면서도 기분에 좌지우지 하는 나로서는 한 시집을 읽는 동안 그 시집에 담긴 감정에 휘청거린다. 시인은 가슴이 따뜻한 사람인 듯 하면서도 그의 가슴 속에 들어가면 바람이 휭~ 불어들 것 같기도 하다. 시인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차가운 바람은 그가 세상을 품어서가 아닐까? 여리고 좋은 것만 품으면 시인이 아니기에 소나기도, 태풍도 , 그늘도 그의 가슴에는 함께 들어가 있을 것이다. 그런 그의 마음이 그리고 시가 싫지 않다.

 

<그의 상가엘 다녀왔습니다.
 환갑을 지난 그가 아흔이 넘은 그의 아버지를 안고 오줌을


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生의 여러 요긴한 동작들이 노구를
떠났으므로, 하지만 정신은 아직 초롱 같았으므로 노인께서
참 난감해 하실까봐 "아버지, 쉬, 쉬이, 어이쿠, 어이쿠, 시원
허시것다아" 농하듯 어리광부리듯 그렇게 오줌을 뉘였다고
합니다.
 온 몸, 온 몸으로 사무쳐 들어가듯 아, 몸 갚아드리듯 그렇

게 그가 아버지를 안고 있을 때 노인은 또 얼마나 더 작게, 더
가볍게 몸 움츠리려 애썼을까요. 툭, 툭, 끊기는 오줌발, 그러
나 그 길고 긴 뜨신 끈, 아들은 자꾸 안타까이 땅에 붙들어매
려 했을 것이고 아버지는 이제 힘겹게 마저 풀고 있었겠
지요. 쉬-
 쉬! 우주가 참 조용하였겠습니다.>
 
-'쉬' 전문
 
 쉬-

아흔이 넘은 아버지가 부끄러우실까 조심하며 던지는 아들의 농이 웃음을 지어내기 전에 눈물로 떨어지려 한다. 시인은 어떤 심정으로 이 시를 적어 내려 갔을까? 시인이 이 시를 퇴고하기 위해 몇 번이나 읽으면서 얼마나 가슴을 아렸을까? 시인에게 부모님은 가슴에 박혀 별이 되어 시를 쓰게 하는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시와 함께 스쳐지나가는 장면 하나. 암으로 투병중이시던 할아버지는 작아져 작아져 더 작아질 수 없을 것 같을만큼 작아지셨다. 그런 할아버지의 기저귀를 갈아주며 엄마는 아주 부드러운 목소리로 무어라 말씀하셨던 것 같다. 그 내용은 들리지 않았지만 분명 이 시의 환갑을 지난 아들이 하는 '쉬-' 처럼 부드럽고 다정한 소리였으리라.
그 날밤, 가슴을 쥐고 울던 엄마처럼 시 속의 환갑이 넘으신 그 분도 우셨을까?

 

 

<여기는 인도, 여기는 델리, 여기는 빈민가

 추운 날씨의 지저분한 길바닥은, 아이를 옥죄는 저 싸늘한 굴레 속은

 도대체 얼마나 깊은 것인지요, 오래된 사원

 구뜹미나르의 낡은, 동그란 우물 속을 들여다보는데요,

 돌로 쌓아올린 안쪽 입구에 웬 가느다란 넝쿨식물 한 줄기가 서너 뼘,

 아래로 처져 어린 나이처럼 한사코 파들파들 팔 뻗습니다. 아,

 깊지 않은 운명이란 없고

 앞날은 이미 깜깜해서 손끝에 만져지지 않습니다.>

 

 -굴렁쇠 우물(인도소풍) 中

 

 시집의 4부는 시인이 인도를 여행하며 적은 듯한 시들이 모아져 있다. 시인의 눈으로 보는 인도는 이리도 시가 되는 구나라며 가슴이 설레여 진다. 여행을 떠나는 것보다 시인들이 다녀온 여행기가 더 좋은 까닭은 왜일까? 시인의 글 속에서 그 여행의 마음이, 풍경이 그려짐 때문일까?

 

 시집을 읽으며 차분히 가라앉는 마음을 느낀다. 그 가라앉음 속에 나를 생각하게 되고 나를 둘러싼 것들을 생각하게 된다. 그 가라앉음이 참 고마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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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인간적인 삶
김우창 지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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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책표지와 속지를 들여다 보면 마치 숲 속에 들어온 듯한 착각이 들만큼 나무와 숲 길을 닮은 책의 디자인을 발견하게 된다. 이대로라면 책 속 내용은 자연과 벗삼아 살아가는 어떤 이의 일상이 담겨있을 것만 같아 가벼이 손에 든 책은 나를 이상한 나라, 낯선 그곳으로 데려간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이 가득한 세상에서 내가 알고 있는 몇 개의 낱말을 찾아 몇 번이나 주저앉고 고개를 숙이고 버티기를 하고는 했다. 조금만 더 읽다 보면  알 수 있으리라 여겼던 마음으로 책을 덮고 난 지금 내 주위는 알 수 없는 글자들로 채워져 가고 있는 듯한 기분이다. 책을 읽다 보면 글자만을 읽는다는 기분이 들 때가 있는데 이 책이 내게는 그러하였다. 내 무지를 욕하면서 이해하고 싶다는 열망이 솟아 오르는 책, 그 책을 앞에 두고 무슨 이야기를 해야하나 망설임만 커진다.

 

 김우창 교수님을 알았더라면 참 좋았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 그 분의 생각과 철학을 이 책으로 처음 만나기에 내게는 낯섬이 당연한 것일까? 이 책은 김우창 교수님이 [비평]에 연재된 것으로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창립 60주년에 행한 강연에 기초한 것이라고 한다.

 

<인간의 자유에 기초하여 어떻게 개인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더욱 풍부하고 보람 있는 삶을 살 수 있는가> -p.20

 

 저자는 자유와 인간적인 삶을 3부로 나눠서 이야기 하고 있다. 무세계성과 적극적 자유 그리고 심미적 질서이다. 이 세 부분에서 내가 이해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극히 적다. 저자의 말을 쫓아가기도 바빴으며 이해는 저멀리 하늘로 달아나 버렸기에 지금 말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이해한 1%도 되지 못할 것 같은 자유와 인간에 대해서 저자가 예를 든 '페렐만 사건'이다.

 

 페렐만은(실로 이 이름 역시 책을 통해 처음 들었다.) 러시아의 젊은 수학자 그리고리 페렐만은 수학의 난제로 알려진 '푸앵카레 추측' 이라는 문제에 대한 해답을 맞췄다. 해답을 맞춘 이에게 주기로 한 상금 100만 불을 패렐만은 받지 않겠다고 했으며 필즈 메달 역시 거절했다. 이로 인해 문제를 풀었다는 관심에서 노벨상에 필적하는 상을 거절한 인물로 더욱 큰 관심을 받게 된다.

 

 저자는 페렐만이 선택한 자유를 통해 학문의 가치와 현 체제 속 자유 그리고 무 세계성에 대해 이야기 하다. 페럴만의 선택은 책의 끝에 다시 한 번 이야기 한다. 페럴만을 보며 자유에 생각해 보게 된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영광을 포기함으로써 기존에 그가 누리고 있던 평화롭고 조용한 삶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자유를 얻는 능력은 아무것도 아니다.

필요한 것은 자유롭게 존재하는 능력이다

                                     - 앙드레 지드

 

 자유의 가치란 개인 스스로가 정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은 스스로 자신의 자유 그리고 자유를 통해 삶이 가지게 될 영향력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자유를 논하고 자유를 갈구하고는 한다. 저자가 내게 주고 싶었던 것은 내가 주어진 자유에 휩쓸려 다니기 보다는 스스로 자유롭게 존재하길 바라는 것이 아닐까?   

 

 책의 99%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해도 나는 할 말이 없다. 그것이 사실이기에. 다만 책을 읽을수록 철학과 인문학에 깊이가 없는 나를 돌아보며 채찍질 하게 된다. 철학을 통해 마음의 풍요를 쌓았다는 말이 내게는 배고픈 소리가 된다. 스스로 자유를 깨달을 수 있도록, 김우창 교수님의 말씀을 깨달을 수 있도록 노력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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