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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까지 100마일
아사다 지로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05년 4월
평점 :
품절
한밤중에 주무시고 계신 엄마품으로 파고드는 다 큰 딸내미를 엄마는 내치지 않고 무슨 일이니 하고는 토닥여주신다. 잠이 덜 깬 엄마의 토닥임은 나를 아기로 만들어버릴려고 한다. 엄마의 몸이 기억하고 있는, 내 몸이 기억하고 있는 아기때부터의 토닥임, 내가 누군가에게 토닥거림을 받고 싶었던 것은 바로 엄마의 손길이 그리워서 였구나라고 생각하며 엄마의 가슴에 더욱 부비적 거리며 안아달라 몸짓으로 말한다. 평소 같았음 징그럽다고 등짝을 때릴 엄마는 밤이라고 더욱 꼭 안아주며 꿈과 현실을 왔다갔다 하시며 한 말씀 하신다.
-괜찮다.
-웅, 괜찮아, 엄마. 엄마, 나 보다 오래 살아야 해.
혹여나 울음이 새여나가 엄마가 놀라기라도 할까 입을 다물고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엄마 심장과 내 심장이 같은 속도로 뛸 때까지 한참을 누워있다 자리에서 일어나 내 방으로 갔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밤바람은 어느덧 가을의 냄새가 나는 듯도 하다. 너무 일찍 와서 달님한테 꾸중을 들은 이른 가을 바람 앞에 이 책을 들고 책상에 멍하니 앉아있다 보니 다시 마음이 격해진다.
#내 목숨을 가져가요, 어머니-아들이기에 죄송한 아들의 이야기
병원에 제 생명의 불이 누워있습니다. 그 분의 몸을 빌어 태어났고, 그 분의 몸을 불태우며 제가 자라났습니다. 가난했음에도 가난해서 아픈 기억보다 따뜻했던 기억으로 남아있는 그 작은 집에서 어머니는 우리 4 남매를 길러내셨습니다. 우리는 엄마의 꿈을 먹고 자랐고 엄마의 미래를 발판으로 사회에 나갔습니다. 그 시절에는 제가 엄마의 꿈을 어떻게 짓밟았는지도 몰랐으며 엄마의 미래를 어떻게 깨트리며 사회에 나간지도 몰랐습니다.
가난한 행복을 갖지 말라던 어머니의 말씀대로 큰 형과 작은 형 그리고 누나는 사회적으로 성공을 했습니다. 저 하나만 실패를 등에 붙이게 되었습니다. 잘 나가던 시절은 분명 있었것만 돈을 공기처럼 쓰던 시절도 있었것만 저는 지금 월급도둑이란 소리를 들으며 친구네 회사에 빌붙어 있는 사람이 되었고, 그 월급 역시 이혼한 아내와 자식들 생활비로 모두 보내야 하는 앞니 빠진 마흔의 아저씨입니다.
그래요. 어머니의 심장병은 나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늘 제 걱정에 맘을 졸이던 작을대로 작아진 어머니가 아프신 것은. 그래요, 제가 죽일 놈입니다. 그런데 저는 죽일 놈인데 왜 형들과 누나는 어머니를 보러 오지 않을까요? 생명의 불이 꺼져가는 어머니를 왜 부잣집 형제들은 모른 척하는 걸까요?
저는 어머니를 살릴 겁니다. 주머니에 기름값도 없지만 저는 어머니를 그저 숨만 쉬는 사람으로 만들지 않을 겁니다. 어머니에게 희망을 주고 싶어요. 천국을 보여주고 싶어요. 어머니의 수술을 해주는 병원까지는 160키로미터가 걸립니다. 100마일이 되는 그 거리를 어머니와 함께 달려갈 겁니다. 그곳이 우리에게는 천국으로 향하는 길이니까요. 어머니가 살 수 있다면 저도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천국으로 100마일, 나도 당신과 함께 달리겠습니다
스스로 못났다는 말을 하는 남자 야스오. 돈도 잃고, 가족도 잃고, 희망도 잃고 삶까지 잃은 남자 하지만 그에게는 어머니가 남아있다. 왜 미처 알지 못했을까? 잘 나가던 시절, 호강시켜 줄 수 있는 시절에는 보이지 않던 어머니가 왜 그제서야 보이는 걸까?
어쩌면 어머니들은 우리가 성공했을 때 그저 우리의 뒤에서 혹은 우리가 서있는 곳 아래에 서 계신지도 모른다. 그저 뒷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어머니들은 만족한다는 미소를 띄시며. 그런 어머니들이 우리 앞에 나타나는 건 우리가 절망을 만났을 때다.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리란 절망 앞에서 우리는 손 하나를 발견한다. 익숙한 손이지만 너무 늙어버린 손에 내 어머니의 손인지 한참을 생각해야 하는 손 하나를 발견하고 다시 일어설 힘을 낸다.
야스오에게도 어머니는 삶의 이유가 되고 불씨가 되었주었다. 그가 어머니를 모시고 가는 100마일을 나는 울면서 따라갔다. 야스오가 어머니를 업고 가는 순간에도 내 눈에는 어머니가 야스오를 업고 있는 걸로 보이기도 했다. 세상의 어머니들은 그러한 걸까? 자신의 힘든 순간에도, 아픈 순간에도 자식을 들춰 업을 수 있는 힘을 가진 존재인 걸까?
혼자서 걸어가는 길은 인생에서 없는 지도 모른다. 시야가 좁아서 보이지 않을 뿐 얼마나 많은 이들이 내가 걸어갈 수 있도록 힘을 주는지, 응원해주고 있는지 우리는 모를 뿐이다. 그걸 깨닫게 해주는 100마일. 그 길을 야스오와 그의 어머니 그리고 같이 해준 고마운 사람들의 무리 속에 나도 슬며시 껴본다. 소리없는 박수를 보내며.
<누대에 걸친 근친상간의 밥상
비켜갈 수 없는,
무정갱의 밥상 위에
발가벗고 올라가 눕고 싶은 생각이
어머니가 나를 잡수실 수 있게 말이지요>
-김선우, 숭고한 밥상 中 (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 시집
이 책을 읽고 김선우 시인의 시가 생각났다. 세상의 모든 자식이 그러하지 않을까. 내 부모가 드시는 한약에 할 수만 있다면 자신의 생명줄 조금 잘라 넣어드리고 싶은 것. 드시지 않을 부모님이시지만 할 수만 있다면 하고 싶은 것이 자식마음 아닐까.
부모님의 손을, 이마에 주름을 만져드리는 딸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