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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 ㅣ 문학동네 시집 91
문인수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시인을 따라 시가 적힌 길을 걷다 보면 시인의 마음이 내 마음과 같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 때도 있고 길이 낯설만큼 시인의 마음을 내가 쫓지 못할 때도 있다. 그럼에도 시인을 따라 가는 길목마다 손으로 슬그머니 쓰다듬게 된다. 내가 왔단다, 하고. 시인이 만든 길을 내가 걸으면서 그 길은 내 길이 되고 닿을리 없다하더라도 나지막이 '호~'하고 입김을 불어 본다. 아프지 말아라 하면서.
문인수 시인의 눈으로 보는 세상은 참 행복하겠구나 라는 생각을 한다. 그 세상을 보는 시인의 마음은 행복하다기 보다는 애달픔이 가득한데도 그가 눈길 준 세상은 분명 행복할 것이다. 누군가가 자신들을 그리 진지하고 깊은 눈길로 봐준적 없기에.
<새벽에 들어오는 고깃배들을 본다.
빈 그물에 불가사리만 흉흉하게 붙어 있다.
밤새 건져올린 죽은 별들,
저 것이 희망이었겠으나 힘껏 탁 탁 털어낸다.
마음이 또 꽉 다무는 잎, 저 긴 수평선.
방파제 굵은 팔뚝이
태풍의 샅을 깊숙이 틀어잡고 있다.>
-'꽉 다문 입, 태풍이 오고 있다.' 전문
그가 바라보면 세상 무엇도 의미가 생기고 목적이 생기는 듯하다. 그의 시에는 물체나 어떠한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낮에 걸린 달이나 (시-낮달), 꽃과 입이 따로 떨어지는 상사화(시-항해), 소나기 내리는 소나기재(시-소나기)가 그의 시에서 다시 태어나 내게 새로운 모습으로 각인 된다. 저녁이 되기 전 걸린 아무 의미없게 쳐다보던 낮달을 한참 올려다 보기도 하고 거센 파도를 막아서는 방파제를 멀리서 지켜보며 힘을 내라고 말을 해 보기도 한다.
시를 읽고 무엇인가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면서도 기분에 좌지우지 하는 나로서는 한 시집을 읽는 동안 그 시집에 담긴 감정에 휘청거린다. 시인은 가슴이 따뜻한 사람인 듯 하면서도 그의 가슴 속에 들어가면 바람이 휭~ 불어들 것 같기도 하다. 시인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차가운 바람은 그가 세상을 품어서가 아닐까? 여리고 좋은 것만 품으면 시인이 아니기에 소나기도, 태풍도 , 그늘도 그의 가슴에는 함께 들어가 있을 것이다. 그런 그의 마음이 그리고 시가 싫지 않다.
<그의 상가엘 다녀왔습니다.
환갑을 지난 그가 아흔이 넘은 그의 아버지를 안고 오줌을
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生의 여러 요긴한 동작들이 노구를
떠났으므로, 하지만 정신은 아직 초롱 같았으므로 노인께서
참 난감해 하실까봐 "아버지, 쉬, 쉬이, 어이쿠, 어이쿠, 시원
허시것다아" 농하듯 어리광부리듯 그렇게 오줌을 뉘였다고
합니다.
온 몸, 온 몸으로 사무쳐 들어가듯 아, 몸 갚아드리듯 그렇
게 그가 아버지를 안고 있을 때 노인은 또 얼마나 더 작게, 더
가볍게 몸 움츠리려 애썼을까요. 툭, 툭, 끊기는 오줌발, 그러
나 그 길고 긴 뜨신 끈, 아들은 자꾸 안타까이 땅에 붙들어매
려 했을 것이고 아버지는 이제 힘겹게 마저 풀고 있었겠
지요. 쉬-
쉬! 우주가 참 조용하였겠습니다.>
-'쉬' 전문
쉬-
아흔이 넘은 아버지가 부끄러우실까 조심하며 던지는 아들의 농이 웃음을 지어내기 전에 눈물로 떨어지려 한다. 시인은 어떤 심정으로 이 시를 적어 내려 갔을까? 시인이 이 시를 퇴고하기 위해 몇 번이나 읽으면서 얼마나 가슴을 아렸을까? 시인에게 부모님은 가슴에 박혀 별이 되어 시를 쓰게 하는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시와 함께 스쳐지나가는 장면 하나. 암으로 투병중이시던 할아버지는 작아져 작아져 더 작아질 수 없을 것 같을만큼 작아지셨다. 그런 할아버지의 기저귀를 갈아주며 엄마는 아주 부드러운 목소리로 무어라 말씀하셨던 것 같다. 그 내용은 들리지 않았지만 분명 이 시의 환갑을 지난 아들이 하는 '쉬-' 처럼 부드럽고 다정한 소리였으리라.
그 날밤, 가슴을 쥐고 울던 엄마처럼 시 속의 환갑이 넘으신 그 분도 우셨을까?
<여기는 인도, 여기는 델리, 여기는 빈민가
추운 날씨의 지저분한 길바닥은, 아이를 옥죄는 저 싸늘한 굴레 속은
도대체 얼마나 깊은 것인지요, 오래된 사원
구뜹미나르의 낡은, 동그란 우물 속을 들여다보는데요,
돌로 쌓아올린 안쪽 입구에 웬 가느다란 넝쿨식물 한 줄기가 서너 뼘,
아래로 처져 어린 나이처럼 한사코 파들파들 팔 뻗습니다. 아,
깊지 않은 운명이란 없고
앞날은 이미 깜깜해서 손끝에 만져지지 않습니다.>
-굴렁쇠 우물(인도소풍) 中
시집의 4부는 시인이 인도를 여행하며 적은 듯한 시들이 모아져 있다. 시인의 눈으로 보는 인도는 이리도 시가 되는 구나라며 가슴이 설레여 진다. 여행을 떠나는 것보다 시인들이 다녀온 여행기가 더 좋은 까닭은 왜일까? 시인의 글 속에서 그 여행의 마음이, 풍경이 그려짐 때문일까?
시집을 읽으며 차분히 가라앉는 마음을 느낀다. 그 가라앉음 속에 나를 생각하게 되고 나를 둘러싼 것들을 생각하게 된다. 그 가라앉음이 참 고마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