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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잡아 주세요, 아빠! ㅣ 인성교육시리즈 가족 사랑 이야기 3
진 윌리스 지음, 김서정 옮김, 토니 로스 그림 / 베틀북 / 2003년 4월
평점 :
품절
솨아아아~ 바람이 불어요. 아빠.
내가 바람을 부르고 있어요. 아빠.
아빠 말씀이 맞았어요. 자전거를 타면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바람을 타고 하늘까지도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빠, 내 뒤에 타요. 아빠도 함께 가요.
어린시절 다시 가보고 싶은 순간으로 돌아가게 해 준다면 두 장면을 고를 것이다.
첫 번째 장면은 처음으로 두 발로 서서 발걸음을 떼였던 시간이다. 내 생애 가장 작은 발로 세상을 딛고 한 걸음을 뗀 순간, 그 앞에는 할머니 혹은 엄마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웃음을 터트리며 나를 덜렁 들어서 안아줄 것 같아 그 시간을 만나보고 싶어진다.
두 번째 만나고 보고 싶은 장면은 네 발 자전거의 바퀴 두 개를 떼어내던 날이다.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며 아빠에게 "놓치마!"를 연발하던 날, 슬그머니 놓은 아빠 손을 눈치 채지 못하고 비틀거리지만 앞으로 나아가면서 뒤를 돌아 봤을 때 저 멀리서 아빠가 손 흔드는 모습을 발견한 후 "꺄아!" 라고 소리를 지르는 장면이다.
첫 번째 장면은 기억이 나지 않아 다시 만나고 싶은 장면이지만 두 번째 장면은 이상하리만치 생생한 느낌으로 기억된다. 이 그림책을 펼쳐 본 순간 그 시절의 나와 아빠가 함께 물밀듯이 밀려 온다. 책을 선물해 준 이는 내게 책만이 아니라 추억을 되돌리는 마음의 시계까지 선물해 준 것 같다.
책 속의 주황빛이 나는 금발의 귀여운 여자 아이가 전화기를 들고 입을 삐죽거리고 있다.
"아빠, 자전거 타는 것 좀 가르쳐 주세요. 그럼 그거 타고 아빠한테 갈 수 있을 거예요.
가르쳐 주실 거죠, 아빠? 정말 배우고 싶단 말이에요."
자전거 타는 법을 알려달라는 아이는 혼자서도 해 보았지만 피가 나고 어려우며 위험하다는 이유로 꼭 아빠가 가르쳐 주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나 역시도 혼자서 하는 건 참 무서워서 넘어질까 무서워 제대로 타지도 못하고 넘어진 적이 여러 번인데 이 아이 역시 나와 같다. 아빠가 같이 연습을 해 준다고 해서 적게 넘어지는 것도 아닌데 그럼에도 아빠가 함께 있어주면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애야, 세상 어디든 미끄러운 비탈은 있고, 오르막과 내리막, 울퉁불퉁한 길도 있단다. 가기 힘든 길은 늘 있을 거야. 높은 계단이랑 언덕도 있고...
하지만 언덕 위에 올라서서 보는 풍경과 머리카락을 스치는 바람의 느낌...
가고 싶은 곳은 어디든 갈 수 있는 자유, 혼자 힘으로 그 곳에 닿을 수 있다는 자신감.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 까짓, 조금 넘어지는 일, 한두 군데 멍드는 일쯤은 아무 것도 아니지.
하지만 네가 아직 준비가 안 됐다면, 우리가 조금 기다려 줄게. 네가 뭘 하고 싶어하든 말이야."
분명 우리 아빠는 그림책의 아빠처럼 이렇게 멋진 말씀을 해 주시지는 않았지만 세상에 아빠가 제일 용감하고 나를 지켜줄 수 있는 용사처럼 생각되게 내 자전거 뒤를 꼭 잡아주셨다. 아이는 아빠의 말에 할 수 있을거라는 말을 하면서도 주춤한다.
자전거 타기는 걸음마와 같은 것이 아닐까? 세상으로 향하는 두 번째 걸음마. 그 걸음마를 하지 않으면 안전한 세상에서 살 수 있지만 더 넓은 세상은 구경할 수 없음을 알기에 아이는 포기할 수 없다. 넘어지는 아픔이 떠올라도, 비틀거리는 자전거가 떠올라도 다시 올라탈 용기를 주는 아빠가 있기에, 뒤에서 꼭 잡아 주는 아빠가 있기에.
아빠의 손이 자전거를 놓는 순간 아이는 탄성을 지르지만 아빠는 눈물을 끌썽일지도 모른다. 자식이 품에서 한 걸음 달아났다고 생각하기에. 놓고 싶지 않았던 쪽은 오히려 아빠이지 않았을까? 하지만 아빠도 아이도 알고 있다. "함께 배웠고 함께 해냈음을." 책을 읽고 나니 문득 나는 자전거를 혼자 타고 난 후 아빠를 꼭 안아드렸는지 궁금해진다. 그랬다면 참 좋을텐데.
27 살임에도 그림책을 받고는 팔짝 뛰며 환호성을 질렀다. 이 장면에 엄마는 고개를 도리도리 흔드시지만 이 책을 선물해 준 이의 마음이 너무 예뻐서, 기뻐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어른에게 그림책을 선물해 준 이의 예쁜 마음을 소중히 간직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