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
프란츠 카프카 지음, 이재황 옮김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버이날 무렵, 신문에 기고된 어느 기자의 추천으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100번 생각해도 잘 읽었다는 생각이다.  그동안, 카프카 라는 이름은 나에게 딱딱하고 차가운 이름이었다. 변신, 시골의사 등을 읽으면서 그는 참 외로운 사람이었나보다 생각했었다. 카프카의 외로움, 극복하지 못하는 현실, 그리고  비참하게 파멸해 가는 한 인간의 모습....  

그것도  그 모든 것의 원인이 자신의 잘못에 의한 것이 아니라 외부에 있음을 드러내는 그의 소설 스타일에 조금은 실망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결국, 그랬다. 그 모든 것이, 그의 정신에 자리잡은 커다란 빙산 같은 존재, 아버지와의 냉랭한 관계 때문이었던 것이다.   

p.44 ---  서로 차분히 대화를 나눌 수 없는 관계는 또 다른 결과를 낳게 되었는데 그건 사실상 매우 자연스러운 결과였지요. 제가 말을 상실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아도 저는 청산유수로 말을 잘하는 사람이 되지는 못했을 테지만 보통의 사람들이 구사하는 평범한 수준의 말솜씨쯤은 저도 터득하게 되었을텐데 말입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제게 아주 일찍부터 말을 못하게 막으셨지요. 그때 이후로 "말대답하지 마!"라는 아버지의 위협적인 말과 그와 동시에 쳐드신 아버지의 손이 저를 늘 따라다녔지요. 아버지는 자신의 일에 관한 이야기만 나오면 즉시 청산유수가 되셨던 반면에 저는 아버지를 보면 말이 막히고 말을 더듬게 되었습니다. 그 정도는 그래도 말을 많이 하는 거였어요. 급기야는 아예 입을 닫고 말았지요. 처음엔 반항심에서 일부러 그랬지만 나중엔 아버지 앞에 서기만 하면 아무런 생각도, 아무런 말도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에 자연히 그렇게 되었지요....

책을 읽으면서, 아버지의 역할이 자식들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특히 아들에게 있어서 아버지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지 깊이 느끼고 알게 되었다.  카프카의 아버지는 화를 잘 내고, 나오는 말을 참지 못하는 독설가였고, 상대방이 어른이든 아이이든 가리지 않고 마음대로 부리려했다.  가게 일이든 집안일이든 모두 자기 뜻대로 되어야만 하는 자기 중심적 인물이었다. 그런 아버지 밑에서 자신의 의견은 단 한번도 받아들여질 리 없었다. 심지어 36세나 된 성인이 되어서조차도....  

이 책을 읽다보면 카프카의 깊은 고뇌가 엿보이면서, 나이 40에 죽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건강하지 못했던 그의 눈물 젖은 속마음을  선명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 그리고 자식들에게 건강하고 따뜻한 정신을 물려주는 것이야말로 모든 부모들이 가장 우선적으로 해 주어야 할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