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모우 저택 사건 1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기웅 옮김 / 북스피어 / 2008년 6월
구판절판


"역사가 먼저냐, 인간이 먼저냐. 영원한 수수께끼지. 그렇지만 난 이미 결론을 내렸어. 역사가 먼저야. 역사는 자기가 가려는 쪽을 지향해. 그것을 위해 필요한 인간을 등장시키고, 필요 없게 된 인간은 무대에서 내리지. 때문에 개개의 인간이나 사실을 대체하더라도 상관없는 거야. 역사는 스스로 보정하고 대역을 세우면서 사소한 움직임이나 수정 등을 모두 포용할 수 있거든. 그러면서 내내 흘러가는 거지."
-1-203쪽

"자네가 말한 대로 역사적 사실은 바꿀 수 있어. 그럼으로써 평행 우주도 생겨나고. 다만 그 흐름은 바뀌지 않아. 각각의 평행 우주 역시 내용은 결코 동떨어져 있지 않을 거야. 소설 속에 흔히 등장하는 얘기들이 있지. 히틀러가 없는 독일은 어땠을까 하는. 나는 단언할 수 있어. 히틀러가 암살당해 그가 없는 평행 우주가 만들어졌다 해도 독일에서 일어날 일이나 전쟁의 양상은 거의 차이가 없을 거라고. 히틀러가 없으면 반드시 그 대역이 등장하게 돼 있어. 그로 인행 살해되는 유태인의 수가 다소 줄어든 채 끝날지도 모르지만 전쟁이 일어난 원인이나 경과, 결과에는 큰 차이가 생기지 않아. 아니, 인간에게 있어서는 큰 차이일지 몰라도 역사에게 있어서는 아주 사소한 세부의 수정일 뿐이지." -1-208쪽

"나 말이야, 과거를 보고 왔거든. 덕분에 알게 됐어. 과거는 고쳐봐야 소용없고 미래는 고민해 봐야 쓸모없다는 걸 말이야. 결국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거니까. 그래서 나, 더욱 똑바로 살아야겠다고 결심했어. 변명 같은 거 안 해도 되도록 항상 최선을 다하자고. 아빠는 배우지 못했지만 그때그때 있는 힘을 다해 살아 왔으니까 그걸로 충분해." -2-273쪽

타임 트립, 평행 우주 이런 개념을 미미여사의 책에서 만날 줄 몰랐네. 미드 프린즈나 '시간 여행자의 아내'에서도 이 두 개념이 있지만, 이런 깨달음(?)을 받진 못했다.
음, 역사란 무엇인가. 역사와 개인의 관계에 대한 답.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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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나크 사냥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북스피어 / 200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스나크 사냥(1992)

루이스 캐럴이 쓴 시라는 '스나크 사냥'이라는 이야기가 기본 모티브가 된 작품이다. (시, 이야기? 서사시라는데 정확히 어떤 건지 모르겠다. 스나크 사냥 초판본을 샀을 때 북스피어에서 이 책을 얇게 만들어서 같이 줬다는 데 아깝다!! 북스피어는 넘 재밌는 작업들을 많이 하는 것 같은데, 음 밖에서 볼 때만 그런건가. 어쨌든 지금은 품절 상태네.)
이렇게 다른 것에서 취한 어떤 고리를 가지고 자기 이야기를 엮어가는 솜씨. 요새 읽는 미미여사의 책들에서 계속 놀라고 있다.
이것과 이것은 분명 여기 저기에 있는 것이거나, 이렇게 다른 사람이 창작한 것인데, 이게 이렇게 저렇게 엮이고, 거기다가 미미여사가 미친듯 이야기를 엮어서 수다를 떨어주는 느낌, 그런데 큰 그림 속에서 미미여사의 주제의식이 확실히 드러난다.
그 주제의식은?

"과연 우리는 괴물과 싸울때, 어떻게 해야 좋을까"
..."불가해한 현실이나 절대적인 악을 경험한 인간이 총을 드는 순간, 그들 역시 괴물이 되는 게 아닐까"

뒤에 있는 이렇게 소설과 출판사의 방향에 대해 많이 개입하는게 하나도 안 거슬리는 북스피어 김홍민 편집인의 글에서 미미여사의 인터뷰를 따와보면.
"나쁜 일은 눈에 잘 띄지만, 좋은 부분은 잘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세상이 전부 나빠졌다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 최후로 남는 일, 또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은 많은 사람들의 잠못 드는 밤을 위로해 주는 일입니다."

이제 장르문학에 발을 내딛고 있는 독자로써 읽어본 작품은 없지만 기리노 나쓰오란 작가의 말도 인상적이다.
"꿈이나 희망이 없으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픽션에서까지 그런 걸 요구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꿈을 향해 달려가라'든지, '너는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존재다'라든지, 그런 말을 듣고 감동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렇게 쉽게 넘어가지 말라고 말해 주고 싶어요."

인간 유형으로 보자면, 난 완전 미미여사과다.

368쪽
아, 참. '스나크 사냥'이란 이야기 아세요? 이것도 슈지 씨가 해 준 이야긴데, 루이스 캐럴이란 사람이 쓴 아주 이상한, 긴 시 같은 건데 스나크라는 것은, 그 이야기에 나오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 이름이에요.
그리고 그걸 잡은 사람은 그 순간에 사라져 버리죠. 마치 그림자를 죽이면 자기도 죽는다는 그 무서운 소설처럼.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저는 생각했어요.
오리구치 씨는 오오이 요시히코를 죽이려고 했다. 오오이를 '괴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래서 총을 들어 그의 머리를 겨누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오리구치 씨 스스로도 괴물이 되었다.
오리구치 씨만이 아니다. 게이코 언니는 부용실 밖에서 총을 들고 있을 때 괴물이 되었다. 제가 그 편지를 쓰면 언니가 와 줄 거라고 생각했을 때, 오빠의 결혼식이 엉망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을 때 나는 괴물이 되어다. 오빠는, 고쿠부 신스케는 언니를 죽이려 했을 때 괴물이 되었다.
슈지 씨는-슈지 씨도 어느 순간엔가 괴물이 되었다. 그래서 괴물을 잡았을 때, 그리고 사건이 끝났을 때 우리들도 모두 사라져 버렸거나, 사라져 가고 있었던 게 아닐까....

자기를 버린 남자 앞에서 자살을 하려한 세키누마 게이코, 게이코를 버린 오빠가 위선적이라 생각하지만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한 노리코, 자기를 죽이려고 총을 들고 피로연장에 왔다고 생각하며 자기가 버렸는데 버려지지 않은 게이코에게 화가 나 그녀를 죽이려한 고쿠부 신스케.
자기가 책임지지 못한 부인과 딸이 비행젊은이들에게 죽고, 인간의 선과 악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는 사람 좋은 사람 오리구치, 그를 막으려고 따라나선 소설가 지망생 슈지.
과잉보호하는 장모님 때문에 가족이 해체될 위험에 처한 가미야와 아들 다케오. 이 사람들이 이 주제로 하룻밤 인생이 바뀔만한 사건에 엮이는 주인공들이다.
'우리 이웃의 범죄'의 동생처럼 마지막에 맨날 비실되던 가미야의 부인이 위기 상황이 되니 오히려 건강해지고, 이제 중심을 찾아가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나쁜 일, 범죄, 사건의 이면에는 꼭 어둠만이 있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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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크 Spark
린 휴어드.존 U 베이콘 지음, 홍대운.이창근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8월
절판


여기에서는 무슨 일을 맡았든지 간에 모든 사람들이 각자 다른 방식으로 일을 해요.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우리의 최종 제품, 즉 공연 자체와 항상 연결되어 있죠. 우리는 사람들을 좁은 장소에 몰어넣고 공장을 돌리는 식이 아니에요. 모두가 무대에서 진행되는 공연의 일부이고, 그래서 대기실에 그렇게 많은 사람이 있었던 거죠.
-52쪽

우리가 더 잘 어울릴수록 우리의 아이디어와 감정이 더 잘 살아나고 표현되는 거죠. 고립된 상태에선 창조적일 수가 없어요. 진정한 창의성에는 협력이 필요하니까요.
-63쪽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개인이나 우리 전체나. 그건 필수적인 겁니다. 하지만 꼭 맞는 위험을 감수해야죠. 비전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위험을 말이에요.
-80쪽

새로운 방식으로 사람들과 연결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연결이라는 것, 그것이 우리 공연이 추구하고자 하는 겁니다. 우리는 그것을 할 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을 구분해 내야 하는 거죠.
...저에게 창조란 무엇보다도 용기의 문제예요. 위험을 감수하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경험을 다른 이들과 나누려는 의지.
-84쪽

"그러면 그렇게 마구잡이로 떠오르는 생각들을 어떻게 실제로 옮기셨나요?"
"마감일 덕분이야! 마감일은 언제나 너무 빠르게 다가오지만 그게 없이는 집중이 되지 않아. 예컨대, 마감일이 있으면 불안한 마음에 다른 식으로는 생겨나지 않는 놀라운 아이디어들을 만들어내게 되지. 예를 들어 공중그네에서 텀블링으로 전화하는 동작을 이틀 만에 만들어내야 한다면, 뭔가 생각하게 된다는 거야!"
-100쪽

요리사, 매니저, 데스크 직원들이 가끔씩 리허설을 보러 가지 않으면 그들은 자신이 일하는 목적을 잊어버려요. 자신과 최종 작품과의 고리를 잊어버리는 거죠. 이런 창조적 환경에서는 그것이야말로 확실한 죽음과 같다고 생각해요. 그저 뻔한 직장이 되어버리는 거죠.
-105쪽

우리가 반복되는 일상에 빠져 버릴 때 우리는 일에 모든 감각과 직관을 동원하지 않게 되며, 온전히 신경을 쏟지도 않는다. 하지만 감각과 직관이야말로 창조적 사고를 위해 우리가 의지해야 할 것들이다. 수년간의 경험에 의해 단련된 것들이라면 더욱 그렇다.
-118쪽

우리는 자신이 잘 모르는 것을 얼마나 두려워하는가. 생각해 보면 놀라운 일이다. 그 안에 성공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도 그러니 말이다. 우리는 익숙한 공간에만 붙어 있으려 한다. 그런데 그 공간이 편하고 안전하긴 하지만, 그 속에서 우리는 실망을 안고 살아가게 될 것이다. 공포를 갖게 되면 우리는 언제나 그 목표에 조금 모자락 된다. 위험을 안을 때에만 무언가 뛰어난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126쪽

얼굴에 드러나 있는 명확한 선을 무시하고, 대신에 피부 '밑에 있는' 뼈와 근육에 집중해야 돼요. 거기에서 표현이 나오거든요.
-140쪽

나는 말로 표현되지 않는 아이디어가 형태를 갖추도록 기다리는 대신 단지 빈 순간을 메우기 위해 얼마나 자주 많은 말을 해댔던가?
...
문제가 생길 때마다 사람들이 실제로 무엇을 느끼고 생각하는지 알려주는 작은 것들. 나는 그것들에 귀를 닫아 버린 것이 아닐까? 어떻게 하면 내 귀를 열고 더 잘 들을 수 있을까?
-162쪽

비협조적인 요소들을 힘으로 억누르려 했던 내 과거의 사고방식은 지울 수 있었다. 인내와 신뢰로 휠을 다루고, 그 균형점에 내 자신을 맞춤으로써 나는 휠에 맞서는 힘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 조화를 이루어 흐름을 탈 수 있게 되었다.
'흐름을 타는' 것이야말로 다이앤이 내가 배우길 바랐던 것이다. 내 상상력이 모든 방향으로 뻗어갈 수 있도록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는 것, 그리고 무언가를 이루고 싶다면 기꺼이 거기에 부딪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172쪽

기획자들은 안락한 집을 떠나 있을 때 가장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생각해내는 경우가 많죠.
-176쪽

일단 기본을 익히고 나면, 아이디어가 흘러넘치기 시작합니다. 어느 방향으로든 변화를 주려고 하고, 스스로를 채찍질하죠.
...
우리는 자신의 동작을 다음 단계로 발전시킬 의지가 있는 연기자들을 원합니다. '난 내 일을 하고 있다'는 식의 태도라면, 실제로는 그 역할을 하고 있지 않은 겁니다. 관객들은 그 이상의 대가를 지불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창조적 자극'을 느끼고 싶어해요.
-1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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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40일 간의 낮과 밤 - 에베레스트.안나푸르나 트레킹 입문
김홍성.정명경 지음 / 세상의아침 / 2006년 10월
평점 :
절판


10년 가까이 히말라야를 돌아다닌 부분, 카트만두에서 '소풍'이라는 식당도 했던 부부가 한국에 돌아와 두 달 뒤에 부인이 간암에 걸린 것을 알게 되고 일 년쯤 뒤에 세상을 떠난다.  

천상병 시인이 말한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처럼, 정말 소풍 온 것처럼 살다 세상을 떠난 것이다.  

히말라야 여행기를 찾다, 부부가 떠난, 음, 그나마 험하지 않은 곳이면서, 네팔에 꽤 오래 산 사람들이 쓴 여행기라 고른 책이다. 남편이 쓴 후기를 눈물 그렁그렁해져서 읽고 샀는데, 막상 내용은 차분히 못 보다가 요새 '산'과 '신들의 봉우리' 같은 산악만화에 꽂혀있어서 그김에 쭉 읽었다. 40일간의 여행을 3시간만에 읽을 수 있을 정도로 트레킹 이야기는 담담한 편. 정보가 그리 많지도, 감상에 푹 빠지지도 않았지만, 남편이 쓴 쿰부 순례(에베레스타), 아내가 쓴 안나푸르나 라운딩 트레킹이 두 사람의 성격 차이도 조금 보이면서 심심하니 괜찮았다.  

그러고보니 책이 나온 게 2006년. 지금은 훨씬 화려한 사진들로 가득찬 책들이 많겠지만....중간에 강찬모 화가의 그림도 좋았다.  

음, 나도 인도여행을 간 22살 때부터 계속 히말라야를 꿈꾸고 있다. 베이스캠프 트레킹이야 하겠다고 생각하면 바로 실행못할 것은 없지만, 좀더 내 안의 내공이 쌓이고, 정말 절실해졌을 때 떠나고 싶어서 아껴두고 있다.  

얼마 전에 처음으로 겨울산을 올랐다. 1600미터도 안되는 태백산이지만, 겨울산은 정말 한 걸음 한 걸음 정성껏 내딛어야 했다. 힘들긴 했지만, 신랑과 천천히 발 맞춰 걷는 산행이 참 좋았다. 예전에는 히말라야든 어디든 기본을 '혼자'라고 생각했는데, 요샌 좋은 사람과 함께 떠나고 싶다. 그리고 같이 가고 싶은 사람 첫번째는 신랑이다.  

이번에는 산행보다 그런 짝꿍을 떠나보낸 마음에 대해 더 절절하게 느끼면서 책을 읽었다. 하지만 부인의 말처럼,,,,'우리 모두는 결국 죽는 거니까'  

그 인생과 산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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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 - 너무 멀리 나간 교실 실험
토드 스트래서 지음, 김재희 옮김 / 이프(if) / 2006년 7월
평점 :
품절



1963년 미국 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은 흥미로운 실험을 한다. 나치의 유태인 학살에 대한 연구 중에 ‘어떻게 인간이 그토록 잔인해질 수 있는가’를 고민하고 심리실험을 해보기로 한다. ‘징벌에 따른 학습효과’를 연구하기 위한 실험이라고 속이고 사람들을 모집한 뒤 학생이 답을 틀릴 때마다 치명적인 전기충격을 가하라고 명령했다. 고작 4불의 대가를 받는 실험이었는데 과연 몇 명의 사람들이 연구자의 말을 따랐을까? 바로 65퍼센트의 사람들. 그들은 권위 있는 연구자의 명령을 따라야 한다는 생각에 괴롭지만 끝까지 버튼을 누른 것이다. 내가 만약 그 자리에 있었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미국의 한 고등학교 역사 시간에도 비슷한 실험이 펼쳐진다. <파도-너무 멀리 나간 교실 실험>은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가지고 소설로 다시 쓴 책이다.

역사 선생인 벤 로스는 아이들에게 나치들이 강제수용소에서 저지른 일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여주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학살된 천만 명이 넘는 사람들의 비참한 모습. 하지만 전쟁이 끝나고, 대부분의 독일 사람들은 나치의 만행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다고 주장했다. 아이들은 질문한다.

“어떻게 그 사람들은 그럴 수가 있나요?”

벤 로스는 나치 시대 독일인들이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아이들 몰래 아이들이 집단적 공포를 느낄 수 있는 실험을 해보기로 한다. 환상적인 실험이라고 부르지만 실험 과정은 매우 간단하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자주 보던 모습이다.

첫날, ‘훈련’을 통해 힘을 모으는 일로 시작한다. 기본 훈련은 바른 자세, 질문을 하거나 대답을 할 때는 손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반듯하게 서서 “로스 샘!”이라고 선생님을 부른 다음에 자기가 할 말을 한다. 이 간단한 훈련의 결과는 놀랍다. 평소 아이들에게 불가촉천민으로 불리던 왕따 로버트가 바른 자세로 앉아 수업시간에 칭찬을 받는다. 다른 아이들도 규칙에 따라 말하는 법을 익히려고 눈을 반짝이며 숨을 골랐다. 질문을 던지는 교사나 답을 말하는 학생들이나, 가벼운 연산 문제가 나열된 문제집을 풀면서 희열을 느끼는 것처럼 실험에 빠져든다.

다음 날, 벤 로스는 ‘공동체’ 개념을 보탠다. 자신들 집단에 ‘파도’라고 이름을 붙이고, 같이 구호를 외치고, 상징 그림을 만들고, 인사법을 정해 같이 인사를 한다. 실험 이틀 만에 아이들 반응이 무섭게 달라진다. 벤 로스도 자신의 손짓, 말 한 마디에 반응하는 아이들 모습에서 어떤 쾌감을 느꼈다.

세 번째 날, 벤 로스는 아이들에게 파도 회원증을 나눠준다. 그리고 공동체 사람들을 늘리는 ‘실천’을 배운다. 파도 회원들을 많이 확보하고, 파도의 규칙을 이해하고 복종해야 한다. 아이들은 같이 파도를 외치며 ‘생전 처음, 어디에 소속이 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며 감동한다.

학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인다. 아니 훨씬 더 좋은 공동체가 되었다. 따돌림 당하는 아이도 없고, 이제 파도 회원이기만 하면, 파도 경례만 하면 식당에서 다 같이 둘러앉아 밥을 먹을 수 있다.

이때 단 한 사람 로리는 계속 마음이 찝찝하다. 뭔지 모르겠지만 이건 아닌 것 같은 느낌. 그러다 파도에 들지 않았다는 이유로 괴롭힘을 당했다는 편지 한 통이 로리가 일하는 학교 신문사로 온다. 학교에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이제 파도는 살아 꿈틀거리기 시작해 아이들 하나하나 물결이 되어 움직이기 시작하고 아이들 힘이 모아져 점점 커진다. 파도 회원 수는 늘어가고 수업시간에는 질문이 떨어지기 무섭게 답이 나온다. 하지만 아이들은 답만 말할 뿐 의문을 품거나 자기 방식으로 문제를 분석하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이때 이 수업이 문제가 있다고 느낀 한 사람, 로리가 있었다. 로리는 그냥 혼자 그 수업에 빠지는 게 아니라 같이 문제제기를 할 친구들을 모으고 자기 생각을 신문에 내고 벤 로스를 찾아가 따진다.

벤 로스는 이제 실험을 마무리할 시간이라고 느낀다. 아이들에게는 전국파도운동연합의 결성을 위해 모여야 한다고 알린다. 전국파도운동연합? 갑자기 미국의 고등학교에 왜 이런 조직이 필요한지도 모른 체 아이들은 지도자를 만나보고 싶어 했다.

두근두근한 시간……, 드디어 지도자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건 바로 히틀러와 그에게 환호하는 젊은 나치였다. 아이들은 모두 혼란에 빠진다. 어떻게 사람들이 그럴 수 있냐고 질문했지만, 불과 며칠 사이에 모두들 나치를 묵인한 독일 사람들, 히틀러에 열광한 나치, 어쩌면 히틀러 자신까지 된 것이다. 다 지나버린 역사라고 했던 나치의 모습이 바로 나 자신이었던 것이다.

인간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 돈을 많이 줘서도, 자신의 목숨을 위협받지 않아도 내가 동의하는 막강한 권위 앞에서 내 머리로 생각하는 것을 쉽게 포기해버린다.

미국의 한 교실에서 ‘파도’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월드컵 때 붉은 악마의 모습과 겹쳐졌다. 또 어떻게 보면 회사의 기업이념을 배우기 위한 워크숍 모습과도 닮았다. 사이비 종교를 만드는 과정도 떠오른다. 하지만 이 모든 곳이 다 파시즘이 벌어지는 공간일까? 아니다. 그렇다면 파시즘이 벌어지는 공간과 아닌 곳의 차이는 어디에서 생기는 걸까?

작게는 가족, 학교, 직장, 크게는 나라, 세계까지 공동체라고 한다면 사람들은 자기가 속한 공동체 안에서 편안함을 느끼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때 공동체가 타인을 밀어내고,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공동체의 가치만을 주장한다면 그 안에는 히틀러가 싹트고 있는 것이다. 히틀러 혼자 악마라서 천만 명이 학살을 당한 것이 아니다. 그것에 적극적으로 동조하고 행동한 사람들, 그리고 그것을 묵인하고 외면한 사람들이 있었기에 벌어진 일이다.

스스로 생각하고, 차이가 있는 것을 배려하고, 다르다고 생각할수록 더 이야기를 많이 나누고, 차이가 있는 사람들과 더 관계를 만들어 가는 곳에서는 파시즘이 자리 잡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우리에게는 잘못된 일이 벌어졌을 때 상황을 제대로 판단하고 그건 잘못된 일이다! 라고 자신의 목숨을 걸고 외친 역사적 경험이 있다. 용기, 타인의 고통을 같이 느끼고 나누는 힘, 배려, 소통 사랑 들이 모여 사람이 된다. 학살을 외면했던 경험에서, 학살에 당당히 맞서 싸운 경험에서 배우고 생각하고 깨달으며 사람들은 파도에 지지 않을 힘을 길러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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