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로스앨러모스에서 근무하던 시절에 "금고털이"라는 별명으로 통했다. 이건 단순히 외모나 성격에서 유래한 별명이 아니었는데, 왜냐하면 그는 실제로 건물 곳곳의 사무실을 돌아다니며 남의 금고 문을 따고 다녔기 때문이다. 무려 핵무기 개발에 관련된 일급 기밀 서류가 하나같이 잔뜩 들어 있는 금고 문을 말이다.


그 시작은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자기 사무실에 있는 금고의 잠금 장치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궁금해서 뜯어보게 되었고, 원리를 이해하고 나자 청각과 촉각을 동원해 다이얼 맞추는 방법을 연습하게 되었으며, 나중에 가서는 다른 금고에도 적용되는지 시험해 보았고, 신형 금고가 들어올 때마다 응용 방법을 궁리하다 보니, 어느새 준 전문가 수준이 되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동료들을 놀려주는 용도로만 사용했지만, 나중에는 일급 기밀을 다루는 사무실의 보안 수준이 낮다는 문제점을 지적하는 데 사용하기도 했다. 한 번은 고위직 사무실의 대형 금고를 불과 몇 분 만에 열어서 관련자를 기절초풍하게 만들었는데, 평소처럼 근무자들이 사무실 금고를 열어 놓은 채로 일하면 비밀번호가 유출될 수 있음을 보여주려는 의도였다.


파인만은 과거 경비가 삼엄했던 로스앨러모스의 철조망에 인부들이 뚫은 개구멍을 발견하자, 그 사실을 직접 신고하는 대신 일부러 초소를 거쳐 나갔다가 개구멍으로 들어오는 행동을 반복함으로써 경비원의 주의를 끈 적도 있었다. 장난기 다분한 행동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뭐든지 스스로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던 평소의 교육 신념과도 일맥상통한 행동이었다.


그런데 고위직 사무실의 대형 금고를 여는 시범 직후에 새롭게 내려온 보안 강화 지시로 인해 생겨난 의외의 결과에 파인만은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파인만 교수가 다녀간 사무실에서는 반드시 금고 번호를 바꾸라'는 신규 업무 지침을 귀찮게 생각한 근무자들이 그 다음부터는 파인만이 문간에 나타나기만 해도 '들어오지 말라!'면서 손을 내저었다기 때문이다.


수백수천억의 예산이 들어가는 일급 기밀 정부 사업을 더 신중히 다루어야 한다는 타당한 지적에도, 정작 실무자들은 전반적인 보안 수준을 높이는 대신 '파인만만 들여놓지 않으면 된다!'는 편법으로 반응했으니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더 황당한 것은 이런 식의 보안 불감증이 무려 80년 뒤인 지금까지도 대부분의 정부 기관에 만연하다는 점이겠지만.


보기에 따라서는 일급 기밀 정부 사업이 진행 중인 사무실을 마음껏 돌아다니며 금고털이를 취미로 삼았던 물리학자야말로 가장 큰 위험 요인으로 간주될 법도 하겠다. 하지만 실제로는 근무자가 금고 비밀번호를 잊어버리는 긴급 상황에서 열쇠공 대신 파인만을 불러 해결한 경우도 많았다니, 대부분의 동료들에게는 '걸어다니는 열쇠꾸러미'로 요긴하지도 않았을지.


하지만 "금고털이" 파인만도 독학으로 기술을 터득한 아마추어였기에, 나중에 로스앨러모스에 상주하게 된 전문 열쇠공이 대형 금고를 열었다는 소문을 듣고 직접 찾아가 새로운 기술을 배우려고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열쇠공은 금고를 여는 기술을 전혀 모른다며 손사래쳤고, 도리어 "금고털이"의 소문을 익히 들었다며 파인만에게 기술을 공유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렇다면 지난번 금고는 어떻게 열었냐고 묻자, 열쇠공은 사람들의 게으름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즉 공장 출하 시 금고의 비밀 번호는 보통 0000이나 1111로 단순하게 정해져 있는데, 문제의 금고에서도 혹시나 해서 그 번호를 입력해 보았더니만 손쉽게 열리더라는 거다. 파인만이 혹시나 싶어 또다시 사무실마다 돌아다녔더니 정말 다섯 중 하나 꼴로 열렸다던가.


지금 새삼스레 이 일화를 떠올린 까닭은, 얼마 전 난리 난 보증보험 해킹 사고에서 통신 장치의 비밀번호가 공장 출하 시 설정인 0000 그대로였다는 조사 결과 때문이다. 최근 거대 통신사를 비롯해 곳곳에서 보안 사고가 빈발하는 상황이니, 어쩐지 앞으로 그 분야 종사자에게는 파인만 책이 필독서가 되어야 할 듯하다. 물론 뭐든지 알아도 안 하는 게 문제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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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장으로 임명된 유홍준이 최근 인기 폭발이라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 감독을 만나서 오윤의 <무호도>가 그려진 부채를 선물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마침 박물관의 까치호랑이 '굿즈'가 덩달아 인기라니 이제는 <무호도>도 상품화되나 싶어 검색했는데, 정식 굿즈까진 아니고 흰 부채에 유홍준이 직접 오윤의 그림을 모사해서 만든 선물인 모양이다. 


판화가 오윤은 이른바 민중 미술의 대표 작가이다 보니, 한때 여러 출판사의 책 표지에서 종종 찾아볼 수 있었던 것처럼 고단한 사람의 모습을 묘사한 작품이 대번 떠오르지만, 때로는 <무호도>처럼 보자마자 웃음을 자아내는 의외의 해학적인 작품도 만든 모양이다. 나귀님은 우연히 헌책방에서 구입한 <오윤, 동네사람 세상사람>이라는 화집에서 처음 봤었다.


지난번에 민속학자 조자용이 까치호랑이 민화의 재발굴을 주도했던 사연에 대해서 잠깐 언급했는데, 열화당에서 나온 <한국 호랑이>라는 책에 관련 도판이 다수 들어 있다는 사실이 뒤늦게야 생각났다. 오랜만에 책을 다시 꺼내 뒤져 보니, 제1장 "호랑이 그림" 도입부에서 네 페이지에 걸쳐서 이 책에 실린 도판에 나오는 호랑이 머리 38종을 한데 모아 놓았다.


까치호랑이와 보통(?) 호랑이, 회화와 조각이 뒤섞여서 일관성은 살짝 떨어지지만, 한국 미술에 묘사된 호랑이 그림 가운데 대표적인 것들은 대부분 모아 놓은 듯하니, 관심 있는 사람에게는 제법 유용한 자료일 수도 있겠다. 나귀님은 열화당의 '한국기층문화의 탐구' 총서에서 제1권 <한국무신도>와 <한국 호랑이>만 갖고 있는데, 아쉽게도 두 권 모두 절판본이다.


나귀님은 <한국 호랑이>를 수년 전 알라딘 우주점에서 우연히 구입했는데, 이때에도 알라딘의 원칙 없는 중고 판매 때문에 골탕을 먹은 바 있다. 구입 당시 정가 35,000원의 신판이라고 했는데, 막상 받아 보았더니 정가 20,000원이라고 나온 구판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고객센터에 항의해서 판매가 산정 비율에 구정가를 적용하고 차액을 환불받는 과정을 거쳤다.


알라딘에서는 어떤 책의 신판이 나온 경우에는 곧바로 구판 정보를 데이터베이스에서 지우기 때문에 중고 판매 과정에서 종종 이런 착오가 생긴다. 한정판 수작업 그림책으로 유명한 <나무들의 밤>도 알라딘에는 4쇄본이 45,000원이라고만 나오지만, 나귀님이 과거 우주점에서 구입한 2쇄본은 정가 41,000원인데도 정가 45,000원을 기준으로 가격을 산정했었다.


만약 알라딘이 헌책 말고 새책만 취급했다면 이런 식으로 데이터베이스를 관리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겠지만, 중고샵과 우주점에서 매입하는 중고 상품까지 연동되는 상황이라면 좀 더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이게 벌써 몇 년 전 일인데 지금까지도 품질 관리가 허술한 것을 보면, 늘 그래왔듯이 '호갱님'들이 알아서 피하는 게 최선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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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여수의 한 식당에서 유튜버 손님을 홀대하는 사건이 일어나서 떠들썩했는데, 그 뉴스를 접하고 보니 엉뚱하게도 예전에 창경원에 있었다던 '여수거인' 이야기가 생각났다. 지난번 창경원 식물원 이야기를 하려고 사육사 김정만의 에세이집을 오랜만에 꺼내 뒤적이다, 이른바 동물원 비화를 모은 장에 실린 "'여수거인'이라는 사나이"란 글에서 본 내용이다.


김정만의 설명에 따르면, 1960년에 창경원에 신입 남자 직원이 하나 들어왔는데, 당시 한국 최고 신장 겸 세계 3위 신장의 소유자였던 여수 출신 거인이었다. 보통 사람의 서너 배에 달하는 체격이라서 식사도 한 끼에 비빔밥 15인분과 불고기 10인분을 뚝딱 먹어치우다 보니, 일반 직원의 무려 10배에 달하는 월급을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생활고를 겪었다고 한다.


애초에 그가 창경원에 취업하게 된 것도 유별난 체형 때문에 생활고를 호소하자, 어느 유력 정치인이 '빽'을 써서 그곳에 꽂아 주었기 때문이었다던가. 워낙 덩치가 크다 보니 취직 후에도 살 곳이 마땅치 않아서 처음에는 창경원 숙직실에 머물렀지만, 함께 지내는 동료들이 불편을 호소한 까닭에 머지않아 외부 창고를 개조해서 전용 숙소로 사용했다고도 전한다.


그래도 창경원 수위로 재직하는 동안에는 관람객 사이에서 구경거리로 인기를 끌면서, 함께 사진을 찍어주고 돈을 받는 식으로 부수입을 쏠쏠하게 올리며 제법 경제적 여유도 생겼다. 하지만 개구리 올챙잇적 생각 못한다는 속담처럼, 이때부터 엉뚱하게도 노름에 빠져들면서 그 많은 돈을 날렸고, 건강조차 돌보지 않으며 골수염까지 생겨서 사망했다는 이야기이다. 


체구가 워낙 커서 창경원을 떠나 병원에 입원할 때에도 구급차 대신 트럭 짐칸에 실려 갔고, 사후에도 그 특이성을 감안해 표본 처리 여부를 고려하다가 유가족과 논의 끝에 화장했지만, 역시나 덩치가 크다 보니 그 과정에서도 '그저 여러분의 상상에만 맡기는' 우여곡절이 있었다는 것이 김정만의 설명이다.(십중팔구 시신을 가마에 넣느라 절단한 것이 아닐까).


그런데 김정만의 글에는 해당 인물의 구체적인 신장과 인적사항 같은 자세한 정보가 없기에, 뒤늦게나마 관련 자료가 있나 구글링해 보니 마침 누군가가 '돌산장사 이순근'에 관해서 정리해 놓은 블로그 글이 있었다. 소설가 김용필과 외사촌동생 한이식 등 주변 인물들의 증언에 의거했다는 설명에 따르면, 여수거인은 신장 230센티미터에 체중 200킬로그램이었다.


1935년 여수시 돌산읍에서 태어나서 '여수거인'이니 '돌산장사'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보통 사람의 다섯 배나 식사를 하고 1950년대에는 영화에도 출연하는 등 명성을 떨쳤다고 전한다. 해당 자료에서도 그가 노름벽을 끊지 못한 까닭에 빈털터리가 되어 1963년에 28세로 사망했다고 하니, 입원 기간까지 감안하면 창경원에서는 길어야 3년이 못 되게 근무했을 법하다.


역대 세계 최장신인 미국의 로버트 워들로가 272센티미터였고, 현존 한국 최장신 하승진이 221센티미터이며, 북한의 농구선수 리명훈이 235센티미터였으니, 여수거인의 체격을 대강 짐작해 볼 만하다. 여수거인의 사인은 골수염이었는데, 도박에 몰두하느라 뜨거운 방바닥에 발목이 닿아 화상과 염증이 생긴 것도 몰랐을 만큼 평소 고통에 둔감한 체질이기 때문이었다.


로버트 워들로도 키 272센티미터에 체중 200킬로미터로 워낙 육중한 체격이라 다리가 불편해 보조기를 착용했는데, 나중에는 보조기에 발목이 쓸려 염증이 생겼는데도 불구하고 고통을 제대로 느끼지 못한 까닭에 치료 시기를 놓쳐 결국 사망했다고 전한다. 그 큰 덩치가 비교적 사소한 염증으로 사망하는 아이러니야말로 거인들의 공통적인 운명인지도 모르겠다. 


워들로 이야기가 나왔으니 문득 <거인의 역사>라는 그래픽노블이 생각난다. 무려 건물 3층 높이인 10미터에 달하는 (물론 가상의) 거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데, 중간에 워들로의 일화도 유사 사례로 소개되기 때문이다. 여기서도 거인은 처음에만 해도 명물로 인기를 얻고 가정도 꾸리지만, 나중에는 의사소통 불가로 인간 사회에서 소외되어 혼자가 되고 만다.


한때는 아내와 딸과 함께 한 집에서 살아갔고, 대중의 사랑은 물론이고 정부의 지원도 받으며 국가를 위해 일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몇 가지 불운을 겪으며 몰락하게 되자, 과거에 찬탄의 대상이 되었던 덩치가 나중에는 공포와 경멸의 대상이 되고, 인간 사회를 떠나 자연 속을 배회하게 되면서부터는 폭풍이나 홍수처럼 일종의 자연재해와 비슷한 존재로 변한다.


여수거인 이야기를 접하기 전에도 종종 이 만화를 떠올린 까닭은 마침 바깥양반 지인 중에도 키 220센티미터의 거인이 있기 때문이다. 일종의 부계 유전인 모양인데 머리가 워낙 비상해서 농구선수가 아니라 엔지니어가 되었고, 결혼해서 유학을 떠난 후에는 미국에서 학위를 취득하고 기업에 취직하여 평범한(?) 회사원으로 지내면서 종종 근황을 전하는 모양이다.


나귀님은 예전에 딱 한 번 만났을 뿐이지만, 그가 평소에 어떤 불편을 겪는지 목격하고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식사를 하러 걸어가는 내내 행인들이 쳐다보는 것은 물론이고, 꼬마들은 소리를 지르며 뒤따라오고, 어른들도 가까이 다가와서 '키가 몇이냐', '농구선수냐' 등등 질문을 쏟아냈기 때문이다. 지금 같으면 모두들 동영상을 찍어 유튜브에 올리지 않았을까.


성질 더러운 나귀님 같으면 짜증을 부리고도 남았을 법한 상황인데도, 처음부터 끝까지 온화한 태도로 '220센티미터입니다', '농구선수는 아닙니다' 등등 일일이 답변을 하며 성큼성큼 걸어가는 그의 모습을 지켜보니 살짝 측은한 마음까지 들었다. 그래도 한국에서보단 남의 시선을 비교적 덜 의식해도 될 법한 미국에 눌러 앉은 그의 결정이 이해도 되고 말이다.


영화나 만화 같은 창작물에서는 덩치도 크고 동작도 날렵한 거인이 종종 등장하지만, 현실에서는 2미터만 넘어도 체중 때문에 신체에 무리가 간다고 알고 있다. 비유하자면 승용차용 엔진을 가지고 탱크를 굴리는 것과도 비슷하다고나 할까. 워들로와 여수거인의 경우에서처럼 고통에 둔감한 것 역시 신체 기능이 항상 정상적으로 작동하지는 않는다는 증거일 수 있다.


그러다 보니 거인은 안타깝게도 일찍 사망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앞에서 말한 바깥양반의 지인 역시 비슷한 운명을 예감하고 살아갔던 듯하다. 그의 부친은 중년에 도달하기도 전에 사망했고, 비슷하게 키가 컸던 동생도 이른 나이에 사망했기 때문이다. 간혹 근황을 접할 때마다, 우리 부부의 대화가 항상 그의 건강과 가족에 대한 우려로 마무리된 것도 그래서였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에 살았던 또 다른 거인의 생애는 흥미로운 예외로서 각별히 주목할 만하다. 창경원의 수위였던 여수거인과 비슷하게 과거 대구 달성공원에서 수위로 근무하며 지역 명물로 통했던 키 225센티미터의 류기성이라는 분인데, 무려 73세까지 장수하다가 1999년에 사망함으로써 거인이라고 해서 항상 단명하는 것은 아님을 입증했다기 때문이다. 


물론 성경에도 나오듯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일'이지만, 저 거인들처럼 평생 죽음을 의식하고 살아가는 것은 상당히 괴로운 일이 아니었을까. 그날 수많은 사람의 호기심 어린 시선과 질문이 집중되는 상태에서도 의연하게 대처하며 성큼성큼 걷던 거인의 모습을 떠올리면, 그의 고독에 대한 안타까움과 그의 의연함에 대한 존경심이 동시에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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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지 스콜리모프스키의 1982년 영화 <문라이팅>은 폴란드인 노동자 네 명이 관광 비자로 런던에 입국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하지만 이들의 목표는 관광이 아니라 인테리어 공사였다. 당시 폴란드 물가가 영국 물가보다 훨씬 저렴했기 때문에, 영국 노동자를 고용하는 것보다 비행기 표를 주고 폴란드인 노동자를 불러와서 일을 시키는 편이 훨씬 저렴했기 때문이다.


일행 중 유일하게 영어를 구사하는 제레미 아이언스가 종종 외출하여 자재며 식품을 구입하는 사이, 나머지 세 명은 집안에만 머무르며 기한 내에 마무리하기 위해 공사에 돌입한다. 하지만 예산이 빠듯해지고 자전거를 도둑맞는 등 예상 못한 변수가 줄줄이 등장하자, 주인공은 필요한 물건을 훔치는 극단적인 행동까지 불사하며 아슬아슬한 작업을 이어나간다.


그 와중에 고국 폴란드에서는 정세 불안으로 소요 사태가 일어났는데, 주인공은 공사 일정에 악영향을 줄까 싶어 뉴스를 보고도 동료에게는 사실대로 말하지 않고 얼버무린다. 결국 일행은 예정대로 공사를 마무리하고 각자 짐을 실은 쇼핑 카트를 밀며 공항까지 걸어가지만, 뒤늦게 고국의 상황을 파악한 듯한 동료들에게 주인공이 멱살 잡히는 장면으로 끝난다.


1982년 칸 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했지만 국내 개봉은 불발되어 뒤늦게야 TV로 감상한 이 영화의 줄거리를 오랜만에 떠올린 까닭은 며칠 전 미국 조지아 주에서 벌어진 한국인 대거 체포 소식 때문이다. 처음 들었을 때에는 저 안하무인의 트럼프 정부가 자행한 또 다른 월권 행위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취업용이 아닌 비자로 미국에 가서 일한 것이 문제라나.


그간의 우호적인 한미 관계며, 최근의 관세 협정으로 결정된 한국 기업의 미국 내 대규모 투자 등을 감안하면 솔직히 너무한 것이 아니냐는 볼멘 소리를 낼 만도 해 보이지만, 또 일각에서는 영화 <문라이팅>처럼 한국 기업이 그간 비용 절감 등을 위해 현지 인력을 고용하는 대신 한국 인력을 파견하는 편법을 일삼았다는 교포 사회의 쓴소리도 나오는 모양이다.


애초에 여권이며 비자라는 제도는 국가가 개인을 감시하기 위한 도구였지만, 나중에 가서는 오히려 개인의 정체성과 국가의 위상을 드러내는 도구로 사용되는 경우가 늘어났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뉴스에서도 해외 여권 영향력 지수에서 한국이 최상위권으로 평가되었다고 보도했었는데, 새삼스레 수백 명이 편법을 쓰다 불법 이민자로 체포되었다니 민망할 수밖에.


어쩌면 이것도 기존 질서를 일일이 깨부수며 혼돈을 야기하는 트럼프 정권 치하의 새로운 현실이니 감내할 수밖에 없겠지만, 여하간에 애초에 편법을 쓴 것은 잘못이니 할 말은 없어 보인다. 하다못해 러바오와 아이바오도 한국에 올 때에 청두 소재 한국 영사관을 통해 정식으로 연수 비자를 받았다고 하니, 이건 졸지에 사람이 판다보다도 못한 현실이 아닌가!


최근 노란봉투법을 비롯한 각종 법안을 놓고 말들이 많은데, 사실은 이런 원포인트 입법에 앞서서 준법 정신이나 챙겨야 하지 않을까. 법이 없어서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해당자들이 그걸 지킬 마음이 없는 게 문제인 듯하고, 그중에서도 각종 졸속 입법을 일삼는 국회의원들이야말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준법 정신이 희박한 사람들이라는 것이 문제인 듯하니 말이다.


물론 감방에서 속옷 농성 중이라는 전직 대통령이며, 그런 작자의 인권조차 챙겨주라는 극우 세력이며, 그 와중에 성추행은 범죄가 아니라는 강남 좌파들이며, 또다시 자체적으로 조사해 결정한 품질 표시 기준에 미달하는 중고 서적을 팔아먹어 반품하게 만든 알라딘까지, 세상 어디에도 법과 규칙을 준수할 생각을 지닌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이 현실인 듯하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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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에서 조나단과 카리나가 어느 기사식당에 갔더니 벽에 '코 풀지 마세요. 싸움납니다'라는 경고 문구가 붙어 있어서 어리둥절해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얼마 뒤에 <틈만나면>이란 프로에서 유재석 일행이 점심을 먹으러 들어간 다른 식당 벽에도 비슷한 경고 문구가 붙어 있었다. 그제야 이런 경고가 지금은 의외로 보편적으로 통하는 모양이구나 싶었다.


나귀님의 입장에서 이런 경고가 뭔가 의외다 싶었던 까닭은 식사 자리에서 코를 푸는 일이 상당히 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사방에 다 들리게 코끼리 소리를 내며 코를 푸는 것은 곤란하겠지만, 그저 콧물을 닦아내거나 살짝 코를 푸는 정도는 충분히 용인되지 않나 싶으니까. 그래서 생각을 더듬어 보니, 예전과는 달라진 식사 예절이 적지 않은 듯하다.


개인적으로 가장 이상하다고 느낀 변화는 음식 냄새를 맡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락실>에서 음식을 걸고 게임을 할 때마다 출연자들이 음식에 코를 가까이 대거나, 거꾸로 음식을 코에 가까이 대고 냄새를 맡는 모습을 볼 때마다 거북스런 생각이 들었다. 나귀님 어렸을 때에만 해도 음식 냄새는 손을 저어 가져다 맡아야지, 코를 갖다 대면 천박하다고 배웠으니.


그런데 지금은 대놓고 음식에 코를 갖다 대는 것을 보니, 혹시 나귀님이 모르는 사이에 국립국어원이나 뭐 비슷한 기관에서 일종의 유권 해석이라도 내린 것이 보편화되었나 의심해 보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또 한편으로는 외국에서 생활하다 돌아오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우리에게는 낯설었던 서양 예절이 하나둘씩 보편화되는 것은 아닌가 의구심도 들고.


예를 들어 식탁에서 코 푸는 행동은 과거에만 해도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지만, 오히려 서양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여겨진다는 소문이 있었다. 거꾸로 한국에서는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던 밥 먹고 트림하기가 서양에서는 무례하게 간주된다는 것이 신기하게 여겨졌고 말이다. 최근 논란이 된 면치기며 쩝쩝 소리 같은 것도 한때는 꽤 자연스런 습관이었다.


따라서 언제부턴가 트림을 금기시하고 코 풀기를 용인하는 것이 뭔가 더 교양 있고 세련된 행동인가 싶어 눈치를 보던 나귀님으로선, 이제 와서 다시 코 풀기를 금기시하는 문화가 보편화되었다고 하니 헛갈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음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저 매운 음식들을 먹을 때마다 흐르는 콧물을 어찌하란 말인가. 그냥 음식과 함께 삼킬까.


쩝쩝 소리의 경우, <놀면 뭐하니>에서 이이경의 면치기 장면 같은 것은 충분히 비판의 여지가 있겠지만, 따지고 보면 남의 식사 장면을 굳이 방송에 내보내고, 또 그걸 구경한다는 것도 추접스럽기는 마찬가지다.(물론 나귀님은 심은경이 <찰리 브라운 크리스마스> 앨범을 최애로 꼽으면서도 그게 스누피 만화와 무슨 상관인지 모르던 게 오히려 더 불편했다만).


한때는 세계화며 인터넷으로 인해 국가의 경계며 문화적 차이가 사라질 날이 머지않았다는 관측이 나오더니만, 지금은 오히려 매체의 발달로 문화적 차이가 더 부각되고 있으니 아이러니한 일이다. 물론 그런 차이가 더 널리 알려지다 보면, 결국 새로운 규범으로 받아들여지는 것도 일부나마 생기면서, 결국에는 차이가 사라지거나 희석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보면 예절이나 관습은 불과 수십 년 사이에도 조변석개할 수 있으니, 어느 한 가지를 놓고 옳거니 그르거니 따지는 것도 우스운 일일 수 있겠다. 한때는 축첩이나 외도에 관대하고 이혼과 동거에 엄격했던 사회였지만, 지금은 오히려 평가가 역전되었다고 할 수 있을 테니. 어쩌면 훗날 코 풀기뿐만 아니라 면치기도 전세계 공통이 되지 말란 법도 없겠고.


여기서 문득 떠오르는 것이 새뮤얼 버틀러의 소설 <에레혼>이다. 지금은 미국에 있는 무슨 유기농 마켓 이름으로 더 유명한 모양인데, "어디에도 없는"(nowhere)이라는 단어를 뒤집은 저 가상 국가의 이름 유래는 바로 이 소설이다. 이곳은 이름뿐 아니라 풍속도 우리의 기존 인식과 정반대여서, 예를 들어 질병은 범죄로 간주되는 반면 범죄는 질병으로 간주된다.


지나치게 극단적인 설정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반세기 전까지만 해도 축복처럼 여겨졌던 장수가 지금은 각종 질병을 달고 죽지 못해 살아가는 형벌처럼 간주되기도 하니, 그저 허무맹랑한 소리로 치부하고 넘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내친 김에 안락사며 존엄사도 합법화되면 토머스 모어가 상상한 "유토피아", 즉 "어디에도 없는 곳"에 더욱 가까워지는 셈일까...



[*] <에레혼>은 김영사에서 나온 번역서가 있는데 (당시 같은 출판사에서 저서를 여러 권 내놓은 과학 칼럼니스트 이인식의 기획으로 간행한 시리즈 가운데 하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중간에 하나 누락된 내용이 있다. 주인공이 처음 에레혼에 근접했을 때에 들은 기묘한 음악 소리의 악보가 나귀님이 가진 원서에는 들어 있는데 번역서에는 빠져 있는 거다. 그게 뭐였나 궁금해서 다시 구글링해 보니, 무려 헨델의 하프시코드 협주곡의 일부분이라는 누군가의 설명도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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