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톡 최신 업데이트가 메신저로서의 기능보다 SNS로서의 기능을 강화했다던가 뭐 어쨌다던가 해서 불만들이 많은 모양이다. 카카오톡을 안 쓰는 나귀님이야 아무 상관 없는 이야기지만, 하도 욕들을 하기에 왜들 그러나 궁금해 알아보니, 문제의 앱을 사용하지 않는 나귀님도 최근 들어 종종 짜증을 느끼던 다른 여러 앱의 개악과 유사한 맥락에 있는 듯하다.


가장 욕을 먹는 부분은 사용자의 의향과는 무관하게 쏟아지는 광고 세례라고 하던데, 언젠가 바깥양반 스마트폰으로 구경한 페이스북 앱에서 친구들의 게시물 두 개당 광고 하나씩이 뜨는 것을 보고 기괴하다고 느꼈던 것이 생각난다. 구글과 유튜브도 그렇지만, 광고를 해도 정도껏 해야지, 너무 노골적으로 들이대다 보면 오히려 사용자의 반감만 부르지 않을까.


네이버나 구글 앱에서도 뭔가 검색하고 나면 곧바로 관련 콘텐츠며 상품 광고가 뜨곤 하는데, 대개는 이미 해결되거나 불필요해진 다음에야 한 발 늦게 제안이 이루어지는 까닭에 딱히 편리하거나 유용하지는 않다. 최근 인공지능 열풍이 불면서, 마치 그것만 있으면 생활이 편리해질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데, 실제로는 이처럼 별 도움이 안 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이런 상황은 알라딘 앱도 마찬가지여서, 지난번 업데이트 이후 맨 아래에 있던 중고 상품 가격 확인용 바코드 버튼이 '만권당' 바로가기 버튼으로 바뀌어 버렸다. 그런데 전자책을 보지 않는 나귀님에게는 가끔 잘못 누를 때를 제외하면 정말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는 버튼이다. 반면 서재 바로가기는 웹사이트에서나 앱에서나 언제부턴가 꼭꼭 숨겨둔 것도 이상하다.


이번의 카톡 업데이트에서 또 하나 욕을 먹는 것은 상대방의 프로필 사진이 거북할 정도로 너무 커졌다는 점인 모양인데, 사실 이건 알라딘 앱에서도 한 발 먼저 달성한 문제점이다. 알라딘 앱에서 북플 메뉴로 들어가 보면 이런저런 분야의 매니아라면서 알라딘 회원의 프로필 사진이 우르르 뜨는데, 가끔은 상당히 부담스러운 본인 얼굴(!)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대개는 각자 좋아하는 사진이나 그림을 프로필 사진으로 사용하는 모양이어서 별 문제가 없지만, 이상하게도 북플 앱에서 보면 그게 평소보다 훨씬 크게 확대되어 나타나고, 차마 지울 수도 없기 때문에 영 보기 거북할 때도 있다. 매니아인지 뭔지를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나귀님으로서는 저렇게 선정해서 알린다는 것이 과연 무슨 도움이 되는지 의문일 뿐이다.


그러다 보니 나귀님은 한동안 컴퓨터에서나 앱에서나 뭔가를 잘못 눌러 북플로 들어가면 화들짝 놀라서 도로 빠져나오곤 했다. 스마트폰에 최적화된 메뉴라고는 하는데, 아직도 그 메뉴며 구조에는 영 익숙해지지 않는다. 줄곧 논란이 되는 각종 매장의 키오스크와 유사하게 사용자의 단순하고 직관적인 이해를 도모한다는 목표는 없는 듯한 느낌마저 받게 된다.


나귀님은 컴퓨터 프로그램이고 스마트폰 앱이고 간에 웬만하면 업데이트를 안 하고 버티는 편인데, 도스나 윈도우 시절에도 백신 프로그램 등을 자동 업데이트로 설정했다가 충돌이 발생해서 데이터를 몽땅 날리고 포맷을 할 수밖에 없었던 사례가 드물지 않았기 때문이다. 몇 번 고생하고 나니, 다음부터는 자연스레 남들이 다 괜찮다고 할 때까지 기다리곤 했다.


카톡이고 키오스크고 북플이고 간에 가장 중요한 것은 사용자 중심의 편의성일 것이다. 원하지도 않는 광고를 수시로 들이밀고, 보고 싶지 않은 프로필 사진을 확대해 보여주고, 정작 원하는 기능은 축소하거나 감춰버리면, 사용자가 외면할 것은 당연한 노릇이다. 당장의 광고 수익에 눈이 멀어 사용자를 호구 취급하니,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마이너스가 아닐까.


정부의 정책도 마찬가지다. 특검이다 관세다 뭐다 정신 없는 와중에 검찰청 폐지 결정이 순식간에 내려졌다고 하니 말이다. 검찰의 문제는 이전부터 줄곧 지적되어 왔지만, 이렇게 순식간에 결정된 것을 보니, 역시나 카톡 업데이트마냥 '아니면 말고' 하는 오만하고 무책임한 태도가 깔려 있는 것은 아닌가 의심스럽고, 과연 어떤 부작용이 생겨날지도 걱정스럽다.


결국 이번 카톡 업데이트 논란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더 큰 문제의 축소판처럼도 보인다. 내친 김에 알라딘 업데이트를 살펴보니, 2025.7.0.이라는 최신 버전이 이미 나와 있다. 이건 또 언제 해야 되나 궁금해서 눌러 보니, 나귀님의 스마트폰은 구형이라서 더 이상 알라딘 앱과 호환되지 않는다는 경고가 나온다. 알라딘을 멀리해야 할 이유가 또 하나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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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검색창에 시도때도 없이 뜨는 광고 문구 중에 "2025년 아이너스상 수상작"이라는 것이 있기에, 에이, 설마 그건 아니겠지 싶으면서도 혹시나 하고 클릭해 보니, 아닌 게 아니라 정말 "그거"였다. 즉 북펀드의 해당 도서 소개 페이지에 제대로 적혔듯이 "2025년 아이스너상 수상작"을 "2025년 아이너스상 수상작"이라고 잘못 적어 광고하는 중이었던 것이다.


아이스너상은 미국의 만화가 윌 아이스너(1917-2005)를 기려 1988년에 제정되었으며, 하비상과 함께 만화계의 아카데미상으로 간주될 만큼 막강한 권위를 지닌다. <왓치맨>, <배트맨: 킬링 조크>, <샌드맨>, <프롬 헬>, <신시티>, <아스테리오스 폴립>, <하비비>, <담요>, <페이블즈> 등 우리나라에도 번역된 유명 그래픽 노블 다수가 여러 부문에서 수상한 바 있다.


아이스너는 만화 이론가로도 유명한데, 사실 우리나라에 번역 소개된 그의 단행본은 하나같이 만화 작법서뿐이고, 그나마도 지금은 모두 절판이다. 어쩌면 그래서 이제는 그의 이름조차 제대로 아는 사람이 알라딘에서도 드물어진 걸까. 그렇다면 지난번 김혜순의 잘못된 수상 이력을 지적한 글에서 말했듯, 결국 자기네가 뭘 파는지도 모르고 파는 셈은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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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북펀드에 <산 미켈레 이야기>라는 것이 있던데, 가만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예전에 한 번 나왔던 책인 것 같았다. 옥탑방 문 뒤에 올망졸망한 문고본을 꽂아둔 작은 책장을 뒤져 보니, 아닌 게 아니라 <산 미켈레의 이야기>(악셀 문테 지음, 김정진 옮김, 가톨릭출판사, 1975)가 나온다. 비록 낡고 찢어지긴 했지만 초록색 케이스가 딸린 사륙판 하드커버다.


예전에 어느 헌책방에서 무심코 집어들었던 책인데, 제목과 저자 모두 낯설었지만 스웨덴 출신 의사의 회고록이라기에 혹시 어디 참고가 될까 싶어서 구입했었다. 가톨릭출판사에서 나온 책이다 보니 (발행인이 김수환 추기경으로 되어 있다) 신앙 서적인지도 모르겠다 싶어서, 구입 후에도 굳이 다시 들춰보지는 않고 때때로 책등만 확인하고 넘어간 지 오래였다.


번역자 김정진은 1922년생으로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가톨릭의대 교수로 재직 중이라고 약력에 나온다. 50년대와 60년대 중반에 이탈리아 밀라노 대학에 유학했다는데, 이 책도 그때 우연히 접하게 되어서 번역까지 했던 모양이다. 아쉽게도 이후의 활동은 구글링해도 나오지 않았고, 1996년 동명의 가톨릭의대 명예교수의 부고만 찾았는데 동일인 여부는 알 수 없다.


나귀님이 가진 책에는 앞쪽 면지에 "譯者 金楨鎭"이라고 서명되어 있다. 흥미롭게도 번역서 앞에는 당시 주한 스웨덴 대사 군나르 헥셰르(Gunnar Heckscher, 1909-1987)의 영문 추천사가 들어 있는데, 위키피디아 영문판에 따르면 한국 대사는 1970-75년에 일본 대사로 근무하는 중에 겸임했던 모양이니, 그때까지만 해도 낮았던 우리나라의 위상을 짐작할 만하겠다.


알라딘 북펀드의 설명을 보니 저자는 스웨덴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공부하고 활동한 의사이며, 특히 이탈리아 카프리 섬에서 산 미켈레라는 다 허물어진 시골 교회를 구입하여 개축하는 등 다양한 이력을 지녔다. 말년에 저술한 자서전 <산 미켈레 이야기>가 인기를 끌면서 카프리 섬과 산 미켈레 주택 모두 오늘날과 같이 관광 명소로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고 한다.


내친 김에 구판을 뒤적뒤적해 보니, 출생부터 말년까지 일목요연하게 기록한 자서전이라기보다는 본인이 겪은 여러 인물과 일화를 두서없이 소개하는 자전적 에세이, 또는 일화집이라고 할 만하다. 인물 중에서는 저자의 스승인 (하지만 나중에는 좋지 않게 결별한) 최면 치료의 대가 샤르코를 비롯해 생물학자 파스퇴르, 소설가 모파상에 대한 회고가 들어 있다.


사람 치료하는 의사인데도 파리 시절 한 서커스에서 사자 발에 박힌 가시를 빼 주었더니, 치료비 대신 비비(!)를 한 마리 주기에 달디달...이 아니라 집에 데려와 길렀다는 이야기를 비롯해서, 지금 기준으로는 살짝 당혹스럽기도 한 '라떼' 썰이 잔뜩 들었으니, 무려 1928년에 첫 간행된 이 책의 내용을 거의 100년 뒤 요즘 독자들은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다.


그런 '라떼' 썰 가운데 나귀님이 개인적으로 특히 황당하게 느꼈던 대목은 무려 티베리우스 유적에 관한 일화였다. 카프리 섬이라면 저 로마 황제가 말년에 은퇴인지 은둔인지를 했던 곳으로 유명한데, 저자가 처음 방문했을 때에만 해도 책의 제목에 나오는 산 미켈레 교회가 있는 마을 곳곳에는 로마 시대 유물과 유적이 발에 채일 만큼 많이 있었던 모양이다.


과장이 아니라, 저자가 무심코 발에 걸려 넘어질 뻔한 대리석 조각을 보고 뭐냐고 묻자, 길잡이 소녀가 '티베리우스 유적이요' 하고 시큰둥하게 대답하고, 포도밭을 일구던 농부가 '에이, 또 뭐야' 하면서 로마 시대 동전을 캐서는 내던져 버리는 장면이 나온다. 로마 유적에서 나온 각종 석재를 건축 자재로 재활용하고, 나머지는 바다에 내버렸다는 증언도 있다!


심지어 집을 짓다 로마 시대 유적인 지하실이 나오기에, 벽에 그려진 나체화를 일일이 긁어서 없앤 다음에 시멘트를 발라 사용했다는 농부의 천연덕스러운 증언 앞에서는 솔직히 어안이 벙벙해진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경주에 방폐장을 건설하고 석기 시대 유적 위에 레고랜드를 건설한 사례가 있었으니, 이제 와서 100년 전 노인을 탓하기는 뭐하지만 말이다.


그리스에서는 툭하면 엘긴 대리석상 반환을 요구하며 영국을 비난하는데, 위에서 언급한 일화를 감안해 보면 '우리가 안 가져 왔다면 결국 건축 자재로나 쓰였을 것'이라는 약탈자 측의 볼멘 소리도 살짝 일리가 있어 보인다. 실제로도 엘긴 대리석상이 해외로 반출되던 즈음에도 그 출처인 파르테논 신전 대리석을 인근 주민들이 뜯어가 건축 자재로 썼다니 말이다.


'우리가 옛날이라고 하면 기본적으로 기원전을 말한다'는 어느 이집트 사람의 역사 부심도 있었는데, 거기서도 최근 파라오 시대의 황금 유물을 훔치고 녹여서 금덩어리로 만든 사건이 발각되어 떠들썩했다고 전한다. 세상 어디에서나 유물과 유적의 운명이 이러할진대, 이제 겨우 100년을 넘긴 산 미켈레 주택의 운명은 나중에 또 어떻게 될지 문득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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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바깥양반이 저녁에 들어오자마자 오늘 라디오에서 들었다며 '오데옹 셰링'이라는 작곡가가 타계했더라고 한다. 생소한 이름이라서 그게 누군가 싶어 구글링해 보니 최근 타계한 러시아의 작곡가 '로디옹 셰드린'(Rodion Shchedrin)에 관한 기사가 뜨기에, 십중팔구 이 사람의 이름을 얼핏 들어 착각한 것이 아니겠느냐고 물어보니까 그런가보다고 대답한다.


그런데 비교적 생소한 현대 작곡가임에도 불구하고 그 이름에 어딘가 낯익은 느낌이 있어서 기억을 더듬어 보니... 예전에 한 번 그 사람의 정체에 대해서 알아보았던 기억이 났다. 한때 알라딘에서도 장당 500원이 안 되는 초염가에 판매해서 화제가 된 '베스트 러시아 클래식 골드 100선'이라는 음반 박스 세트에 이 작곡가의 곡 정보가 잘못 나와 있었기 때문이다.


예당음반인가 하는 회사에서 제작한 이 박스 세트는 구 소련 시절의 클래식 음원을 모아서 만든 선집으로, 원래는 '러시아의 위대한 연주가들의 연주: 러시아 클래식 100선'이라는 이름으로 제법 거창해 보이는 원목 상자에 담아서 판매했다고 알고 있는데, 10년쯤 지나자 볼품없는 종이 상자 두 개에 나눠 담아서 헐값에 판매하는 물건으로 재발매되고 말았다.


나귀님도 궁금한 마음에 알라딘에서 하나 구입해 보았는데, 알고 보니 이미 갖고 있던 브릴리언트 클래식의 시디 100장짜리 '러시안 아르히브 시리즈 전집'과 중복된 음원도 여럿이고, 다른 무엇보다도 음질 자체가 엉망이라서 그리 좋은 인상을 받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생소한 작곡가나 연주자에 대해서 공부한다는 생각으로 하루 한 장씩 꾸역꾸역 듣고 넘겼다.


그런데 그중 한 장인 관현악곡 선집에서 뭔가 많이 들어 본 곡조가 흘러나오기에, 이게 뭔가 궁금해서 뒤표지를 확인해 보니 '로디옹 셰드린'이라는 생소한 작곡가의 작품이었다. 이렇게 유명한 음악을 만든 사람을 내가 왜 모르고 있었나 싶어 자책했는데, 알고 보니 내가 들은 곡은 차이코프스키의 "슬라브 무곡"이고, 뒤표지의 곡 순서가 잘못 나왔을 뿐이었다.


그래도 혹시나 귀에 익은 작품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 유튜브에서 찾아낸 그의 대표곡을 이것저것 들어 보았지만, 나귀님이 아는 곡은 하나도 없었고, 미안하지만 마음에 드는 곡도 딱히 없었다. 다만 한 가지 사실만큼은 놀랍고도 반가웠으니, 그건 바로 이 낯선 작곡가가 19세기 러시아의 소설가 니콜라이 레스코프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더라는 점이었다.


레스코프라면 "왼손잡이"와 "괴물 셀리반", 그리고 수년 전에 영화화된 "러시아의 맥베스 부인" 같은 인상적인 단편으로 유명한 작가인데, 월터 벤저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야기꾼"이라는 비평문의 주제가 바로 이 작가였음을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셰드린은 레스코프의 "왼손잡이"와 "매료된 여행자"와 "봉인된 천사"를 오페라와 성악곡으로 각색했다.


그 외에도 고골의 <죽은 혼>,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체홉의 <갈매기>와 "개를 데리고 있는 여자"도 오페라와 발레 음악으로 만들었다는 것을 보면 원래 문학을 좋아하는 작곡가이겠거니 싶기도 하고, 심지어 나보코프의 <롤리타>조차도 오페라로 만들었다는 대목에서는 뭔가 살짝 수상쩍게 여길 사람들도 있겠지만, 여하간 창작이 왕성했던 것만은 분명하다.


바깥양반은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청와대... 말고 셰드린의 주요 작품을 들어보자고 하더니만, 유튜브로 대표작 몇 개를 듣더니 딱히 귀에 들어오는 것이 없어 실망한 눈치였다. 그러다 유튜브가 추천한 관련 동영상 중에 1964년에 나온 애니메이션 "왼손잡이"를 보게 되었는데, 종이를 오려 만든 방식이다 보니 지금의 연출과는 달라서 오히려 신기했던 모양이다.


원제인 "툴라 출신의 사팔뜨기 왼손잡이와 강철 벼룩"에서 대강 짐작할 수 있듯이, 러시아 황제가 영국의 탁월한 기술력을 보여주는 증거라며 수입한 미니어처 벼룩의 작은 발에 러시아 기술자들이 더 작은 편자를 박아 넣어서 자국의 더 뛰어난 기술력을 입증했다는 내용인데, 여기까지만 보면 해피엔딩이지만 이후의 내용을 보면 오히려 씁쓸한 면이 없지 않다.


자국 황제로부터 치하를 받고 영국 산업 시찰에 나선 기술자 '왼손잡이'는 이 과정에서 중요한 정보를 파악하게 되어 상부에 알리려 하지만, 술에 취한 상태에서 행려병자 취급을 받다가 몸이 망가져서 결국 쓸쓸히 사망한다. 그가 취득한 중요한 정보도 유실되어 러시아는 훗날 전쟁에서 대패하는 비극을 맞이하게 되었다는 것이 전형적인 '민중 영웅' 전설이다.


뛰어난 인재를 알아본 영국에서 영입 제안을 받고도 조국에 봉사하겠다며 거절한 '왼손잡이'였지만, 정작 귀국해서는 자국에 만연한 부조리로 인해 치하 대신 피해만 당하고 쓸쓸히 눈을 감았다는 것이야말로, 제정 러시아의 현실을 꼬집은 풍자적인 결말이라고 할 만하다. 물론 가장 큰 아이러니는 유사한 상황이 현대에 와서도 여전히 비일비재하더라는 것이겠지만.


어쩐지 지난 정부의 최대 실책 중 하나로 거론되는 과학기술 분야 예산 난도질 사건이 떠오르기도 한다. 즉흥적인 결정으로 멀쩡한 청와대를 놔두고 굳이 용산으로 집무실을 이전해서 막대한 예산을 허비하는 한편, 오랜 시간과 많은 자금이 필요한 장기 정책은 헌신짝처럼 내버리고 말았으니, 이것 역시 처벌까지는 몰라도 지탄만큼은 충분히 받을 만한 악행이었다.


다만 '공대에 미친 중국, 의대에 미친 한국'을 비교해서 화제가 된 어느 다큐멘터리에서처럼 일시적인 열풍을 마치 올바른 길인 양 호도해서는 곤란하지 않나 싶기도 하다. 수년 전 코딩 열풍이 불면서 초등학교 때부터 프로그래밍 교과 과정을 넣는다 어쩐다 하더니, 막상 인공지능 시대가 개막되자 의외로 프로그래머 일자리는 더 줄어든다고 보도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정부나 기업에서 대대적으로 육성하는 연구는 자칫 단기적이고 근시안적인 유행으로 그칠 가능성이 크니, 차라리 기초적이고 장기적인 차원의 연구 지원이 오히려 중요하지 않을까. 생물학자 리처드 포티의 말마따나, 어쩌면 아프리카 호수에 사는 하찮은 민물고기에 대한 시시콜콜해 보이는 연구에서 의외로 인류에게 유용한 것이 나올 수도 있을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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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업다이크의 "토끼" 4부작이 완간되었다. 1편인 <달려라 토끼>는 2011년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으로 재간행된 바 있었는데, 이번에 같은 시리즈로 2-4편이 한꺼번에 간행된 것이다. 원래부터 4부작 모두를 간행할 계획이었지만 사정이 있어 늦어진 것인지, 아니면 1편만 내려다가 뒤늦게 2-4편까지 내게 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거나 완간이라니 반갑다.


2편 <돌아온 토끼>는 과거 축약본만 있었으니 완역본은 이번이 처음이고, 3편 <토끼는 부자다>도 안정효 번역본이 절판된 이래 첫 재간행이며, 4편 <토끼 잠들다>는 이번에 처음 소개되는 셈이다. 물론 "토끼" 시리즈는 본편인 장편 4부작 외에도 외전으로 주인공 사후의 이야기인 중편 "토끼 기억되다"가 더 있다고 하니, 보기에 따라서는 '완간'이 아닐 수도 있지만.


기억을 더듬어 보니, 맨 처음 읽은 업다이크의 소설은 비교적 덜 유명한 <이브의 도시(Roger's Version)>였고, <달려라 토끼>는 그 다음에야 읽었지만 그닥 재미있지는 않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미국 중산층의 부부 생활에 초점을 맞춘 풍속 묘사가 그의 작품 세계에서 상당 부분을 차지했던 듯하니, 어린 시절의 나귀님으로선 선뜻 공감하기 어려웠으리라.


물론 비슷한 내용이지만 의외로 묘한 여운을 남긴 작품도 있기는 했으니, 바로 연작 단편집 <벌거숭이들(Too Far to Go)>이다. 매번 이런저런 갈등으로 위기를 겪다가 어찌어찌 봉합되는 중산층 부부 이야기인데, 맥락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밤중에 둘이 차에 앉아 있다 남의 눈을 피해 납작 엎드려 서로를 끌어안은 상태로 마무리되던 편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업다이크의 소설이라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노골적인 성행위 묘사인데, 그의 전성기인 1970년대 미국 사회의 성 개방 풍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스와핑(부부 교환)에 대한 묘사가 반복 등장하는 것도 흥미롭다. 그런 시대상을 보여주는 논픽션이 게이 탈리즈의 <네 이웃의 아내>라면, 픽션으로는 아마 업다이크의 소설들을 꼽아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오죽하면 1978년 <커플스>의 역자 후기에서 장왕록 교수도 (에세이스트로도 유명했던 장영희 교수의 부친이다) 표현이 과하다 싶은 부분은 생략했다고 밝혔을까.(시대적 한계를 보여주는 언급이기도 하지만, 결국 그 번역서는 완역본이 아니었다는 뜻이니 살짝 아쉽다). 문득 어린 시절 업다이크를 읽다가 '오, 이게 된다고?'라 생각했던 장면이 몇 가지 떠오른다!


업다이크는 장왕록 교수와 친분도 있었고, 펜(PEN) 대회 참석 차 서울을 방문한 적도 있었다.(이때 존 치버도 동행했다. 그의 일기에는 후배 업다이크와 친하면서도 츤츤댔던 것으로 나온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도 일찍부터 많이 번역되었고, 나중에는 미국을 대표하는 거장으로 자리잡으면서 노벨문학상에 대한 기대 때문에 신작도 거듭 간행된 것 아닌가 싶다.


다만 풍속 소설로서의 장점이 무려 반세기 뒤인 지금에 와서는 오히려 한계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데, 또 한편으로는 미국식 사고와 생활 방식이 전세계에 익히 알려진 지금이야말로 "토끼" 시리즈를 읽기에는 오히려 적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최근 사회 분위기상 필립 로스처럼 페미니즘 비평의 철퇴를 맞을 가능성도 없진 않겠지만...




[*] 업다이크의 장편 소설 26편 가운데 우리나라에 간행된 것은 절반인 13편쯤 되는 듯한데, 책장을 뒤져 보니 1970년대에 나온 번역서가 몇 권 있어서 소개해 볼까 싶다.


<돌아온 토끼(Rabbit Redux, 1971)>(이덕형 옮김, 덕문출판사, 1974). 역자서문에 과도한 표현이며 불경한 언어를 일부 삭제한 초역본이라는 설명이 나온다.


<반인반마: 센토(The Centaur, 1963)>(이덕형 옮김, 덕문출판사, 1974 초판; 1977 중판). 서지학 측면에서 하나 흥미로운 실수를 소개하자면 이렇다. 출판사가 이사하면서 판권면을 새로 인쇄해 덧붙였는데, 실수로 1977년 중판이 아니라 1974년 초판이라고 인쇄했다. 즉 판권지에 '초판'이라 나오더라도, 그 밑의 원래 판권지를 확인해야 사실인지를 확인할 수 있다는 뜻이다.


<커플스(Couples, 1968)>(장왕록 옮김, 경영문화원, 1978). 나중에 다른 출판사에서 재간행되기도 했다.


<결혼(Marry Me, 1976)>(이경수 옮김, 까치, 1978).


<벌거숭이들(Too Far to Go, 1979)>(김성열 옮김, 여원출판사, 1980). 업다이크는 첫 단편집 <같은 문>에 수록된 "그리니치 빌리지의 문"(1956)을 시작으로 '메이플 부부'가 등장하는 연작 단편을 17편이나 썼고, 1979년에 이를 한 권으로 엮어 간행했다. 다만 이 번역서에는 그중 14편만 골라 수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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