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뭘 사러 나갔다가 시에서 운영하는 공공 건물 앞을 지나다 보니 "유아차 보관대"라는 것이 눈에 띄기에 새삼 유모차/유아차 명칭 논란을 다시 한 번 떠올리게 되었다. 미망인이나 애완동물 명칭 논란도 그렇지만, 멀쩡히 잘만 쓰던 단어에 굳이 시비를 거는 것이야말로 일부의 무지나 악의에서 비롯된 행동이니 아예 무시하는 게 상책이다.
이처럼 기존의 단어를 불신하고 폄하하는 사람들의 경우, 단어의 관용적이거나 비유적인 의미는 깡그리 무시하고, 의도적 오독을 거쳐 자기 목적에 걸맞게 악용한다. 한때 영어권에서 역사(HISTORY)라는 단어가 남성의(HIS) 전유물이므로 여사(HERSTORY)라고 바꾸어야 한다는 억지 주장이 나왔었는데, 이게 결국 우리나라까지 퍼진 건가 싶다.
예를 들어 애완동물(愛玩動物)을 "희롱하기 위한 동물"로, 미망인(未亡人)을 "아직 죽지 않은 사람"으로, 유모차(乳母車)를 "엄마만 끄는 수레"로 직독직해하는 일각의 주장이 그러한데, 사실 "애완"은 "완물상지"라는 격언에 나오듯 애지중지한다는 뜻이고, "미망인"은 유족의 크나큰 슬픔을 빗댄 것이며, "유모차"도 "유모"라는 직업에서 유래했다.
이처럼 애완동물이나 미망인이나 유모차를 직독직해하는 사람이라면 국어 과목에서 좋은 점수 받기는 글렀다고 볼 수 있다. "내 마음은 호수요"라는 유명한 비유나 중의법이나 동음이의어도 도무지 받아들이지 못할 테니까. 일상 생활에서도 붕어빵을 사면서 왜 붕어가 없느냐며 따지고, "힘들어 죽겠다"는 친구의 푸념에 구급차를 부르지 않을까.
그런 사람이라면 아마 '여자'(女子)라는 단어부터 쓰지 말자고 주장할 법하다. 왜냐하면 국어사전에 나오는 1차적 의미만 놓고 보면 '계집'(女)이란 멸칭과 '아들'(子)의 조합이어서 그 명칭부터 비존재 겸 부조화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계집'이 멸칭으로 인식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며, '자'(子)에는 "아들" 말고 "사람"이란 뜻도 있다.
볼테르는 "신성로마제국"을 "신성"하지도 않고, "로마"에 있지도 않으며, "제국"도 아니라고 조롱했지만, 정작 그 명칭으로 일컬어지던 나라는 무려 천 년 가까이 존속했다. 그런가 하면 "스텐 그릇"처럼 애초에 의도했던 뜻과는 정반대의 명칭을 갖게 된 경우도 있는데, 지금은 완전히 실생활에서 굳어져 별다른 불편 없이 사용되고 있다.
이런 사례만 보아도 한두 가지 단어를 바꾼다고 해서 세상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고, 설령 잘못된 단어라도 일상 생활에서는 별 문제 없이 사용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반면 어원을 따지는 주장 자체는 단어를 굳이 분해해서 늘어놓은 트집잡기일 뿐이며, 어떤 면에서는 저 유명한 제논의 역설처럼 눈속임을 이용해 만들어낸 궤변에 불과하다.
유명한 제논의 역설은 예를 들어 토끼와 거북이의 달리기에서 토끼가 몇 발자국 뒤에서 출발한다면 결코 거북이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주장이다. 왜냐하면 토끼가 거북이를 따라잡을 시간에, 거북이는 토끼를 피해서 조금이라도 전진할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현실에서는 토끼가 거북이를 금세 앞지르겠지만, 왜 이 궤변은 논파가 어려울까?
왜냐하면 베르그송의 주장처럼 이 역설은 운동 그 자체가 아니라 운동의 시각화일 뿐이기 때문이다. 운동을 도면에 나타낼 경우에는 제논의 주장처럼 토끼가 거북이를 평생 따라잡지 못할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의 운동은 베르그송의 지적처럼 도면에 나타난 궤적을 단숨에 휙 하고 지나가 버린다. 즉 제논의 역설은 눈속임에 불과한 것이다.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단어를 사용하는 방법도 그렇다. 제논의 역설처럼 글자 하나하나, 음절 하나하나를 따져서 "애+완+동+물"이나 "미+망+인"이나 "유+모+차"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애완동물"과 "미망인"과 "유모차"로 단숨에 휙 하고 인식해 버린다. 매번 어원이나 각 음절의 의미 하나하나를 따져보며 써먹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굳이 따져보자고 누군가가 판을 깔아주지 않는 한, 어느 누구도 애완동물에서 '희롱하다'를, 미망인에서 '죽지 못했다'를, 유모차에서 '엄마'를 똑 떼어서 떠올리지는 않는다. 그냥 귀여운 동물, 불쌍한 사람, 작고 소듕한 뭔가를 담은 도구로만 이해할 뿐이다. 그 명칭이야 어쨌건 간에 우리는 오로지 그 대상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이미 널리 사용되는 단어를 굳이 바꾸더라도 딱히 실익은 없으며, 그저 일부 불편러의 허영심만 채워줄 뿐이니, 애초에 언론이며 기관에서 이런 식의 억지 민원에 일일이 반응하는 것 자체가 문제다. 심지어 나름대로 생각 있다고 자처하는 사람들까지도 소수 의견은 무조건 존중되어야 한다는 식으로 동조하고 나서니 더욱 한심한 일이 아닌가.
혹시나 알라딘에 와서까지도 유모차와 미망인은 틀렸다고 주장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 어원상 '알라 앗딘,' 즉 "신앙의 고귀함"이라는 아랍어를 사명으로 채택한 것으로 미루어 친이슬람, 반유대주의, 남성우월, 여성폄하 성향이 명백한 사이트에 찾아와서까지 굳이 이런 이야기를 할 이유가 있는지를 곰곰이 한 번 생각해 보면 좋겠다.
[*] 원래는 길었던 글을 군데군데 줄이다 보니 연결이 매끄럽지 않은 듯해서 일부 수정하고 첨언한 부분을 파란색으로 표시해 놓았다. 사실 아무리 좋은 뜻으로 만들거나 바꿔놓은 단어도 정작 사람들이 그렇게 쓰지 않으면 소용이 없게 마련인데, 대표적인 예가 '어린이'이다. 소파 선생은 어린애를 존대하자며 '어린이'라는 단어를 제안했지만, 오늘날에 와서는 '요린이'나 '주린이'처럼 초짜를 가리키는 단어로 활용되자 급기야 차별적/혐오적 표현이라며 사용 자제 권고까지 나오는 판이다. 그러니 일각에서 유모차가 아니라 유아차가 맞다고 (또는 아린차나 미미차가 맞다고) 아무리 목소리를 높인들, 나중에 가서는 또 뭐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예를 들어 지금처럼 애를 낳기는 덜하고 개를 키우기는 더하다 보면, 나중에 가서는 부모보다 견주의 입김이 더 세지는 바람에 유모차도 유아차도 아닌 "개모차"라는 명칭이 대세가 될 수도 있는 일이 아닌가. 당연히 그에 못지않은 세력으로 성장한 고양이 애호가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터이니, 여차 하면 양대 세력간의 갈등과 알력으로 제3차 세계대전이며 우주 전쟁까지도 벌어지지 않겠나... 여하간 한 마디로 쓸데 없는 논쟁이요, 부질없는 주장이라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