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북펀드에 <산 미켈레 이야기>라는 것이 있던데, 가만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예전에 한 번 나왔던 책인 것 같았다. 옥탑방 문 뒤에 올망졸망한 문고본을 꽂아둔 작은 책장을 뒤져 보니, 아닌 게 아니라 <산 미켈레의 이야기>(악셀 문테 지음, 김정진 옮김, 가톨릭출판사, 1975)가 나온다. 비록 낡고 찢어지긴 했지만 초록색 케이스가 딸린 사륙판 하드커버다.


예전에 어느 헌책방에서 무심코 집어들었던 책인데, 제목과 저자 모두 낯설었지만 스웨덴 출신 의사의 회고록이라기에 혹시 어디 참고가 될까 싶어서 구입했었다. 가톨릭출판사에서 나온 책이다 보니 (발행인이 김수환 추기경으로 되어 있다) 신앙 서적인지도 모르겠다 싶어서, 구입 후에도 굳이 다시 들춰보지는 않고 때때로 책등만 확인하고 넘어간 지 오래였다.


번역자 김정진은 1922년생으로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가톨릭의대 교수로 재직 중이라고 약력에 나온다. 50년대와 60년대 중반에 이탈리아 밀라노 대학에 유학했다는데, 이 책도 그때 우연히 접하게 되어서 번역까지 했던 모양이다. 아쉽게도 이후의 활동은 구글링해도 나오지 않았고, 1996년 동명의 가톨릭의대 명예교수의 부고만 찾았는데 동일인 여부는 알 수 없다.


나귀님이 가진 책에는 앞쪽 면지에 "譯者 金楨鎭"이라고 서명되어 있다. 흥미롭게도 번역서 앞에는 당시 주한 스웨덴 대사 군나르 헥셰르(Gunnar Heckscher, 1909-1987)의 영문 추천사가 들어 있는데, 위키피디아 영문판에 따르면 한국 대사는 1970-75년에 일본 대사로 근무하는 중에 겸임했던 모양이니, 그때까지만 해도 낮았던 우리나라의 위상을 짐작할 만하겠다.


알라딘 북펀드의 설명을 보니 저자는 스웨덴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공부하고 활동한 의사이며, 특히 이탈리아 카프리 섬에서 산 미켈레라는 다 허물어진 시골 교회를 구입하여 개축하는 등 다양한 이력을 지녔다. 말년에 저술한 자서전 <산 미켈레 이야기>가 인기를 끌면서 카프리 섬과 산 미켈레 주택 모두 오늘날과 같이 관광 명소로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고 한다.


내친 김에 구판을 뒤적뒤적해 보니, 출생부터 말년까지 일목요연하게 기록한 자서전이라기보다는 본인이 겪은 여러 인물과 일화를 두서없이 소개하는 자전적 에세이, 또는 일화집이라고 할 만하다. 인물 중에서는 저자의 스승인 (하지만 나중에는 좋지 않게 결별한) 최면 치료의 대가 샤르코를 비롯해 생물학자 파스퇴르, 소설가 모파상에 대한 회고가 들어 있다.


사람 치료하는 의사인데도 파리 시절 한 서커스에서 사자 발에 박힌 가시를 빼 주었더니, 치료비 대신 비비(!)를 한 마리 주기에 달디달...이 아니라 집에 데려와 길렀다는 이야기를 비롯해서, 지금 기준으로는 살짝 당혹스럽기도 한 '라떼' 썰이 잔뜩 들었으니, 무려 1928년에 첫 간행된 이 책의 내용을 거의 100년 뒤 요즘 독자들은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다.


그런 '라떼' 썰 가운데 나귀님이 개인적으로 특히 황당하게 느꼈던 대목은 무려 티베리우스 유적에 관한 일화였다. 카프리 섬이라면 저 로마 황제가 말년에 은퇴인지 은둔인지를 했던 곳으로 유명한데, 저자가 처음 방문했을 때에만 해도 책의 제목에 나오는 산 미켈레 교회가 있는 마을 곳곳에는 로마 시대 유물과 유적이 발에 채일 만큼 많이 있었던 모양이다.


과장이 아니라, 저자가 무심코 발에 걸려 넘어질 뻔한 대리석 조각을 보고 뭐냐고 묻자, 길잡이 소녀가 '티베리우스 유적이요' 하고 시큰둥하게 대답하고, 포도밭을 일구던 농부가 '에이, 또 뭐야' 하면서 로마 시대 동전을 캐서는 내던져 버리는 장면이 나온다. 로마 유적에서 나온 각종 석재를 건축 자재로 재활용하고, 나머지는 바다에 내버렸다는 증언도 있다!


심지어 집을 짓다 로마 시대 유적인 지하실이 나오기에, 벽에 그려진 나체화를 일일이 긁어서 없앤 다음에 시멘트를 발라 사용했다는 농부의 천연덕스러운 증언 앞에서는 솔직히 어안이 벙벙해진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경주에 방폐장을 건설하고 석기 시대 유적 위에 레고랜드를 건설한 사례가 있었으니, 이제 와서 100년 전 노인을 탓하기는 뭐하지만 말이다.


그리스에서는 툭하면 엘긴 대리석상 반환을 요구하며 영국을 비난하는데, 위에서 언급한 일화를 감안해 보면 '우리가 안 가져 왔다면 결국 건축 자재로나 쓰였을 것'이라는 약탈자 측의 볼멘 소리도 살짝 일리가 있어 보인다. 실제로도 엘긴 대리석상이 해외로 반출되던 즈음에도 그 출처인 파르테논 신전 대리석을 인근 주민들이 뜯어가 건축 자재로 썼다니 말이다.


'우리가 옛날이라고 하면 기본적으로 기원전을 말한다'는 어느 이집트 사람의 역사 부심도 있었는데, 거기서도 최근 파라오 시대의 황금 유물을 훔치고 녹여서 금덩어리로 만든 사건이 발각되어 떠들썩했다고 전한다. 세상 어디에서나 유물과 유적의 운명이 이러할진대, 이제 겨우 100년을 넘긴 산 미켈레 주택의 운명은 나중에 또 어떻게 될지 문득 궁금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