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에서 코페르니쿠스의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 완역본 북펀드 광고를 하고 있다. 예전에 한국과학문화재단 고전번역총서 중 하나로 서해문집에서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라는 번역서가 간행된 적이 있어서 나귀님도 한 권 갖고 있는데, 오래 전에 뒤적였던 그 책이 아마도 발췌본이었던 모양이다.


한창 북펀드 중인 미출간 도서이지만 미리보기가 올라와 있어 클릭해 보았는데, 역시나 알라딘답게 저화질이어서 영 살펴보기가 불편하다. 알라딘 독점 판매인 까닭인지 늘 고화질 미리보기를 제공하는 Yes24에도 자료가 올라와 있지 않아서, 아쉬운 대로 저화질 파일을 최대한 확대해서 살펴보았다.


고전인 만큼 이런저런 추천사와 해설이 서두에 잔뜩 달라붙어 있어서, 미리보기를 한참 뒤적였어도 본문은 구경조차 못하고 말았다. 십중팔구 영역본을 중역한 것으로 짐작되는 번역문이 어떤 상태인지는 직접 확인하지 못했으니 일단 넘어가고, 대신 저자명을 비롯한 몇 가지 문제나 지적해 보자.


우리에게는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로 익숙하지만, 이것은 폴란드 출신인 그 천문학자의 이름 "미코와이 코페르니크"(Mikołaj Kopernik)를 라틴어식으로 표기한 것이다. 물론 마젤란이나 콜럼버스처럼 워낙 유명한 이름이니, 이제 와서 굳이 본명으로 바꿀 필요는 없겠다.


다만 문제는 현재 북펀드 진행 중인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의 표지와 속표지(?)에 나온 이름이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즉 미리보기 1페이지에는 "니콜라스 코페르니쿠스"로 나오고, 3페이지에는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로 나오며, 그 영향인지 저자명도 "니콜라스 코페르니쿠스"로 등록되어 있다.


서두의 지면을 잔뜩 차지한 추천사와 해설에서도 두 가지 인명이 혼용되어서 전직 국립도서관장은 "니콜라스"로 썼고, 현직 한국항공우주원장은 "니콜라우스"로 썼다. 주한 폴란드 대사는 "니콜라스"와 "니콜라우스"를 모두 썼던데, 언행에 가급적 신중을 기하게 마련인 외교관다운 행동인지도 모르겠다.


나귀님이 알기로는 라틴어식 인명인 "니콜라우스"가 정확한데, 설령 무슨 이유에선가 영어식 인명인 "니콜라스"로 썼다 하더라도 지금처럼 두 가지를 혼용하면 곤란하다. 고유명사 표기와 용어 통일은 편집의 기본 중 기본이니, 이런 오류가 다수 드러난다는 것은 출판사의 역량 부족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미리보기에 한정해서 진정한 빌런은 이두갑 서울대 교수다. 그의 해설에는 "코페리니쿠스"라는 희한한 이름을 비롯한 각종 오타는 물론이고 선뜻 의미를 파악하기 힘든 비문도 종종 나오는데, 편집자가 함부로 손을 대서 이렇게 나빠진 게 아니라면 애초부터 문장 자체가 좋지 않았던 듯하다.


예를 들어 "여기에는 (...) 플루타크의 저작에서 피타고라스 학파의 필로라우스는 지구가 태양이나 달과 같이 불의 주위를 비스듬하게 운형운동으로 돈다는 이론들이 포함된다"라는 구절을 보자. 문장 자체도 주어와 서술어가 따로 놀고, 인명과 용어 표기만 가지고도 세 가지 오류를 지적할 만하다. 


첫째로 "플루타크"가 아니라 "플루타르코스"가 맞고, 둘째로 "필로라우스"가 아니라 "필롤라오스"가 맞으며, 셋째로 "운형운동"이 아니라 "원형운동"이 맞다. 아울러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라는 책 제목을 언급할 때마다 번번이 조사가 잘못 붙은 것은 제목이 중간에 수정되며 나타난 오류로 짐작된다.


물론 비교적 단순한 오타/오류에 불과한 것들이니, 설령 이름 표기가 잘못되었어도 저자가 이 책에서 지동설 아닌 천동설을 주장하는 것으로 내용이 바뀔 리는 없을 것이며, 알라딘에서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해서 뒤늦게나마 북펀드를 취소하고 구매자에게 10배의 배상금을 내놓을 리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북펀드의 휘황찬란한 광고 문구처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자 "현대 천문학의 기초를 마련한 교과서"이자 "인류 역사에 큰 획은 그은 불후의 명작"의 "완역본 출간"을 한다면서 이런 초보적인 교정 실수가 수두룩하다면 (심지어 방금 인용한 광고 문구에도 오타가 있다!) 누가 믿고 구입하겠나?


원고를 교정하지 않아서 오류를 까맣게 몰랐더라도 문제이지만, 기껏 원고를 교정하고 났더니 애초에 없었던 오류가 생겨났다면 더욱 문제일 수밖에 없다. 심지어 이렇게 오류투성이인 내용을 북펀드 진행 중인 책의 샘플이라며 당당히 내놓았으니, 출판사의 역량뿐만 아니라 판단력마저 의심스럽다.


지난번 박병철의 <프린키피아> 번역본의 경우에도 비슷한 문제를 지적한 바 있지만, 번역도 쉽지 않고 가격도 만만치 않은 과학사의 고전을 굳이 펴낸다고 하면 편집 과정에서도 평소보다 좀 더 신중을 기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어쩐지 살펴볼수록 영 미덥지 못하다는 느낌만 남아서 해 보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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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니 쇼헤이가 홈런과 도루 모두 50-50을 달성했다기에 네이버 뉴스를 찾아보니 <스포츠조선>의 기사('달 착륙급' 업적이라면서 100만달러 이하라고? "오타니 50-50 홈런볼, 저지 62호보다 싸다" 美 매체") 중에 희한한 문장이 하나 등장한다.



>>> 이어 그는 "다리미가 뜨거울 때 스트라이크라고 말하고 싶다. 수많은 수집가들과 팬들이 그 공을 갖고 싶어할 것이다. 자신의 소장품으로 소유하고 싶은 것이다. 가능한 한 빨리 시장에 내놓아야 하는데 지금이 그 시점"이라고 했다. 즉 해당 공을 원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은 지금 경매에 내놓아야 50만달러 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



즉 신기록 달성 야구공의 가치에 대한 경매 업체 관계자의 의견을 소개한 대목인데, "다리미가 뜨거울 때 스트라이크"라는 말은 아무래도 오역의 산물인 듯 보이는 거다. 원문을 구글링해 보니 예상대로 strike while the iron's hot이었다.


결국 "쇠뿔도 단김에 빼라"와 상통하는 서양 속담 "쇠도 뜨거울 때 두들기라"를 옮기는 과정에서, 야구 관련 기사라는 편견에 "두들기라"(strike)를 "스트라이크"(strike)로 오독하다 보니, "쇠"(iron)를 "다리미"(iron)로 덩달아 오독하고 만 셈이다.


혹시 번역기를 돌려서 만든 기사인가 궁금해서 원문을 구글 번역기에 돌려보니 오히려 "나는 쇠가 뜨거울 때 쳐라고 말하고 싶습니다"라고 멀쩡한 문장이 나온다. 결국 해당 기사의 오류는 직접 번역/작성한 담당 기자의 찐 실력이었던 셈이다.


매번 뭔가 논란의 여지가 있어 보이는 법원의 판결과 관련된 뉴스가 뜰 때마다 인터넷 댓글에 "인공지능 판사 도입이 절실하다"며 비아냥거리는 의견이 빗발치는데, 이쯤 되면 기사 작성에서부터 인공지능 도입이 절실한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물론 야구에서도 선수와 팬들 모두가 바라마지않던 컴퓨터 판정이 도입되었지만 이의 제기는 계속되고 있는 실정이니, 다른 분야에서도 인공지능 도입이 논란을 완전 종식시킬 수는 없을 것 같아 보인다. 결국 뭐든지 사람이 개입하는 일이니까.


예를 들어 나귀님 같으면 알라딘 중고 매입 시 품질 판정에 인공지능이며 미소녀 로봇을 도입하자고 주장하고 싶지만, 지금처럼 애초부터 회사가 품질이고 등급이고 상관없이 중고가를 비싸게 받아먹으려고 작정하면 아무 소용없지 않겠는가.


그나저나 오타니 쇼헤이의 행보는 그야말로 "만화 같다"는 한 마디로만 요약이 가능할 것 같다. 이런 식이라면 마츠모토 타이요의 <하나오>의 내용처럼 프로 구단의 제안을 줄곧 거절해 온 아마추어 타자의 영웅 등극도 언젠가는 가능할 법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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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고인물이라면 대부분 아는 사실이지만, 주말이 되면 알라딘 사이트에 종종 괴이 현상이 일어난다. 사이트 접속이 지연되거나 끊기는 것은 물론이고, 평소에 있었던 메뉴가 사라지고 처음 보는 것이거나 이미 오래 전에 사라진 것으로 간주되는 메뉴가 나타나기도 한다.


평소 비싸게 팔던 책을 저렴하게 살 수 있는 기회가 나타나기도 하고, 나귀님이 알라딘 대구동성로점에서 겪은 것처럼 품질조차 엉망인 책을 최상급으로 속아서 웃돈 주고 살 기회가 나타나기도 하며, 각종 쿠폰과 적립금과 사은품과 벌금과 위약금이 난무해 결제를 지연시킨다.


그러니 이번 주말에도 알라딘을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다가 평소와는 달라 보이는 현상을 접하고도 딱히 놀랄 이유까지는 없었다. 알라딘 중고샵에서 SF 작가 그레그 베어의 원서를 몇 권 발견했는데, 이상하게도 판매 가격이 무려 0원으로 나와 있는 것을 본 것이 그 시작이었다.


이상하다 싶어 알라딘 판매 중고 외서 메뉴에 들어가서 최저가로 정렬해 보니 판매 가격이 0원으로 책정된 책이 우후죽순으로 나온다. 그렇다면 배송료만 내면 공짜로 주는 책이라는 뜻인가 싶어 장바구니에 담아 보니, 막상 담았다는 메시지만 나올 뿐 실제로는 담기지 않았다.


알라딘의 관리 소홀로 인한 오류로 충분히 짐작되는 현상이지만, 한편으로는 공짜(?) 책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 같아 아쉽기도 하다. 대부분 0원에 줘도 갖고 싶지 않은 책들이었지만 몇 권은 관심이 갔기 때문인데, 예를 들어 마사 겔혼의 언론 기고문 선집이 그러했다.


마사 겔혼은 종군 기자로 유명한 미국의 여성 언론인이며, 특히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세 번째(!) 아내로 유명하다. 헤밍웨이는 모두 결혼을 네 번 했는데, 매번 바람을 피워서 이혼하는 것으로 마무리하고 말았다. 겔혼과는 5년 동안 결혼 생활을 하다가 역시나 이혼하고 말았다.


다른 아내들처럼 고분고분하지 않고 자기 경력을 유지하려고 했던 것이 부부 간의 갈등 요인이었으며, 이혼 후에도 자녀 문제로 종종 대면했던 다른 부인들과 달리 겔혼은 전남편과의 교류가 전무하다시피 했다니, 어쩌면 이런 독립적인 면모가 지금은 더 관심을 끌지 모르겠다.


겔혼의 회고록 <나 자신과의 여행>도 이미 갖고 있으니, 언론 기고문 선집까지 구해 나란히 읽으면 그 인물에 대해서도 좀 더 입체적인 조명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번에도 결국에는 '누구나 계획이 있다. 알라딘에게 눈탱이맞기 전까지는'이 되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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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결국 사달이 난 대구동성로점 주문에서 1차 목표는 <욕망의 모호한 대상>이었다. 피에르 루이스의 작품으로는 짐작컨대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번역되는 셈일 것 같은데, 첫 번째로 번역된 작품과의 시차가 무려 한 세대 이상이나 난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 첫 번째 번역서가 바로 저자의 대표작인 <빌리티스의 노래>(삐에르 루이 지음, 김명자 옮김, 종로서적, 1980)인데, 1895년 간행 당시 저자의 창작 시집이 아니라 고대 그리스의 여성 시인 빌리티스의 작품을 발굴하여 번역한 것이라 주장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나중에 가서는 번역이 아니라 창작일 뿐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는데, 애초부터 사기를 치려는 의도였다기보다는 더 이전에 있었던 오시안의 사례라든지, 이후의 여러 작가들이 시도한 익명/허구 저자의 작품처럼 창작의 연장에 속하는 행위였다고 보는 게 맞겠다.


<빌리티스의 노래>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이 작품에서 영감을 얻은 1977년 영화 <빌리티스>는 알 수 있겠다. 또 이 영화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프란시스 레이가 담당한 테마곡만큼은 한 번쯤 들어보았을 수 있다. 각종 광고와 프로그램에 자주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빌리티스의 노래>는 고대 그리스 여성 시인 사포의 작품을 모범으로 삼은 것인 만큼, 동성애자로 짐작되는 여성 화자가 자신의 삶과 사랑에 대해 서술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1977년 영화 <빌리티스> 역시 현대를 배경으로 한 비슷한 소재의 작품으로 알고 있다.


이 시집과 영화의 직접적인 영향 때문인지, 1955년 미국에서 결성된 최초의 레즈비언 단체도 '빌리티스의 딸들'이라는 이름을 채택했다고 하니, 오늘날 빌리티스는 사포나 레스보스 못지않게 여성 동성애자(레즈비언)의 상징으로 확실히 자리를 잡은 것이 아닐까 싶다.


우리나라에서도 빌리티스라는 이름은 암암리에 퍼져 있는 듯도 하다. 2011년에는 <클럽 빌리티스의 딸들>이란 수상쩍은 제목의 KBS 단막극이 방영된 바 있고, 최근에는 엉뚱하게도 뉴진스의 "디토" 뮤직비디오가 영화 <빌리티스>를 연상시킨다는 지적도 나왔었다.


빌리티스의 원조(?)인 사포의 시집은 <에게해의 사랑>(사포 지음, 오자성 옮김, 한겨레, 1991)이라는 제목으로 간행된 바 있다. 같은 번역자가 훗날 <고대 그리스 서정시선>이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는데, 원문 번역인 <고대 그리스 서정시>와도 목차가 비슷하다.


그나저나 <욕망의 모호한 대상>은 피에르 루이스의 단편 네 편을 엮은 것인데, 생각만큼 특이하거나 흥미롭지는 않아서 살짝 실망했다. 특히 표제작은 화자의 말투가 오락가락하는 대목도 있고, 누군가를 "헤치지" 않겠다는 표현도 등장하는 등 편집 역시 별로였다.


해설에서도 살짝 언급되듯 피에르 루이스라면 오늘날에는 외설 작가로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이 사실이다. <빌리티스의 노래>나 <욕망의 모호한 대상>에도 에로에로한 부분이 등장하지만, 사후 간행된 <세 자매와 그 엄마>라는 소설이 빼박캔트 포르노이기 때문이다.


한 남성이 사는 집에 30대 중반의 매춘부와 세 딸이 번갈아 찾아와서 각자의 기상천외한 이력이며 황당무계한 경험을 서술하고 살을 섞는다는 내용인데, 그 딸들의 나이가 각각 20세, 14세, 10세에 불과하다는 점이야말로 오늘날의 시각에서 가장 문제가 될 법하다.


이쯤 되면 요즘 분위기에서는 출판사부터 시작해서 알라딘(문제의 소설의 불어판과 영어판 모두를 판매 중이니까!)이며 나귀님까지 철컹철컹 쇠고랑을 차고도 남을 법한 내용 같은데, 오히려 해외 문화계에서는 외설이 아니라 예술이라고 두둔하는 것이 현실이다.


대표적인 두둔자가 미국의 문학평론가 수잔 손탁이다. <급진적 의지의 스타일>에 수록된 "포르노그래피적 상상력"에서 <세 자매와 그 엄마>를 폴린 레아주의 <O의 이야기>와 조르주 바타유의 <눈 이야기>와 함께 예술의 경지에 이른 외설물 가운데 하나로 거론한다.


예술이냐 외설이냐를 놓고 논란이 되는 작품들의 공통점은 애매함이다. 세 작품 모두 실제로 읽어 보면 노골적인 묘사가 등장하지만, 그렇다고 완전 극단적이고 뻔뻔한 수준으로까지 치닫지는 않으니, 나귀님처럼 야한 것 좋아하는 독자가 보기에는 영 미진하다.


나귀님 같으면 <세 자매와 그 엄마>를 볼 시간에 차라리 <패니 힐>이나 <꼬마 돈 후안의 모험> 같은 진짜 외설물을 보겠다. 생각난 김에 검색해 보니 양쪽 모두 지금은 절판이어서 중고 가격이 어마어마하게 올랐으니, 새삼 진정한 외설의 위력을 실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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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책장을 뒤지다 보니 오래 전에 사다 놓은 랭보 전집이 보이기에 꺼내 봐야지 생각만 하고 깜박해 버리고 말았다. 그냥 넘겨버릴까 생각하다가 마침 여름도 끝나고 9월도 시작이니 지금이 아니면 또 언제 꺼내보랴 싶어서, 다시 책더미를 이리저리 옮기고 치우고 해서 결국 꺼내고 말았다.


나귀님이 말하는 랭보 전집은 똑같은 번역자가 훗날 재간행한 <랭보 시선>이나 <랭보 시 전집>과는 다른 책으로, 제목 그대로 시와 산문과 서한까지 망라한 "진짜 전집"이라 할 만하다. 바로 1990년에 범우사에서 나온 <아르뛰르 랭보 전집>이다.(유명 출판사 汎友社가 아니라 汎宇社라는 곳이다).


1990년대 중반에 종로서적 건너편 대로변에 작은 헌책방이 들어서서 수년간 운영한 적이 있었는데, 나름 시내 프리미엄 때문인지 책값을 높게 불러서 자주 가지는 않았지만, 어느 날인가 들러보았더니 나귀님으로서는 처음 보는 이 책이 십여 권이나 놓여 있기에 선뜻 한 권 구입했던 기억이 난다.


하얀색 케이스에 투명 비닐로 포장된 갈색 하드커버로 된 책이 들어 있는 형태인데, 650쪽에 달하는 본문 가운데 3분의 1쯤 되는 200쪽이 랭보의 서한이다. 그 본문 가운데 시 부분만 일부 추려서 재간행한 것이 1991년 책세상의 <랭보 시선>과 1996년 숭실대학교출판부의 <A. 랭보 시 전집>이다.


그렇잖아도 수년 전에 신촌 헌책방 글벗서점에 들렀다가 사다 놓은 모던라이브러리 영불대역 랭보 전집도 있었는데, 나귀님이 그간 시집을 모아 놓은 책장 앞에 책더미가 자리한 지 오래이다 보니, 이미 갖고 있던 몇 가지 전집이며 선집과 구체적으로 비교하지는 못한 채로 쌓아만 두고 있었다.


모던라이브러리는 고전 리프린트 전문 출판사이지만, 내가 구입한 책은 비교적 최근인 2002년에 간행된 번역본이어서 흥미가 동했다. 600쪽이나 되는 부피만 보아도 기존 우리말 번역본보다 훨씬 더 분량이 많은 듯하니, 이쯤 되면 십중팔구 시와 산문과 서한까지 망라한 진짜 전집이 아닐까 싶었다.


그런데 집에 와서 자세히 살펴보니 600쪽 가운데 영역문은 3분의 2뿐이고, 나머지 3분의 1은 불어 원문을 작은 활자로 인쇄한 것이었다. 목차를 살펴보니 서한도 몇 편만 수록하고 말았기 때문에, 영불대역본이라는 장점은 있을망정 그 제목만큼 진정한 의미의 "랭보 전집"까지는 아닌 듯 보였다.


그래도 1990년대에 나온 우리말 번역본에는 생략되었던 작품의 해설까지도 접할 수 있다는 것은 장점이다. 예를 들어 "배설물"이라는 표제 하에 수록된 외설시 세 편의 경우, 번역본은 별다른 해설 없이 넘어갔지만 영역본은 랭보의 사후 지인의 회고를 통해 재구성된 작품이라는 점을 밝혀두었다.


역자의 설명을 종합해 보면 1990년의 랭보 전집은 1972년의 불어판 전집을 대본으로 사용했지만, 1996년의 랭보 시 전집은 1991년의 불어판 전집 신판을 대본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작품 분류와 순서가 바뀌었다. 그 영향인지 전자에 수록되었던 <지옥의 계절> 초고본(삭제 부분 표시)도 빠져 버렸다.


이처럼 랭보 번역서를 꾸준히 내놓은 숭실대 교수 이준오는 전기와 연구서도 여러 종 내놓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지금에 와서는 대부분 절판되어서 구할 수 없게 되고 말았다. 랭보 번역서가 꾸준히 간행되는 와중에도 최초의 전집에 수록되었던 서한 등의 자료가 재간행되지 않는 것은 아쉽다.


랭보를 언제 무엇으로 처음 접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여하간 나귀님의 기억에 랭보는 일찌감치 명성을 떨치고 사망했다는 점에서 젊음을 연상시키는 시인인 동시에, <착색판화집>에 수록된 "새벽"이란 시에서 인상적으로 묘사된 내용마냥 여름날 이른 아침을 연상시키는 시인으로 남은 듯하다.


그래서인지 수년 전 영불대역본을 구입하면서도 새삼 이제 와서 무슨 랭보냐 싶어 우스운 생각이 들었는데, 그나마도 오래 방치했던 책들을 주섬주섬 모아 놓고 보니 열대야도 가시고 새벽에는 쌀쌀한 바람까지 불어오는 초가을이다 보니, 이래저래 지금 와서 읽기에는 너무 늦은 건가 싶기도 하다.




[*] 글을 쓰고 나서 확인해 보니 읻다 출판사에서 간행하는 서한집 시리즈 가운데 한 권으로 다른 번역자의 랭보 서한 완역본이 나와 있었다. 랭보 외에도 횔덜린과 야콥슨/레비스트로스 서한집 등이 번역되어 있으니 참으로 놀라운 기획물이다. 서한은 작가 연구에서 필수적인 재료 가운데 하나이지만, 연락의 도구라는 특성상 정작 일반 독자가 읽어서 재미있는 내용은 없다시피하게 마련이다. 굳이 넣자면 전집에나 넣을 수 있을 법한 자료인데, 출판사마다 경제적 이유로 문자 그대로의 "전집"보다는 "선집"을 선호하는 상황이다 보니, 랭보나 횔덜린의 경우처럼 기껏 나와도 이빨 빠진 전집에 불과한 것이 대부분이다. 그나저나 읻다라는 곳은 책 고르는 눈썰미만 보면 제법 괜찮은 출판사인 것은 같은데, 아무래도 지난번 셀린과 비트겐슈타인 책이 포함된 시리즈 디자인을 이상하게 한 것 때문에 살짝 경계심이 들기도 한다. 뭐라고 하는지 정확한 이름은 모르겠지만, 손으로 만지면 마치 고무 같은 싶은 느낌이 드는 재질의 종이로 표지를 만들었기 때문인데, 이거, 정말 고약한 물건이 아닐 수 없다. 만질 때마다 끈적끈적 힘들어요 싶은 느낌이 드는 것은 물론이고, 지문이 찍힌다는 것 때문에도 역시나 짜증스러운 물건인데, 지금은 그나마 절판된 모양이니 다행이라 할지 뭐라 할지... 여하간 새로운 시도도 좋지만 돈 받고 파는 물건 가지고 장난을 치면 곤란하지 않나 싶은 것이 구태의연한 나귀님의 솔직한 마음인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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