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지 코진스키의 중편 "정원사 챈스의 외출"의 주인공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어려서부터 중년이 될 때까지 사실상의 감금 상태에서 살아온 것으로 묘사된다. 성인이 되어서도 어느 부잣집에서 식객으로 살면서, 낮에는 정원사 노릇을 하고 밤에는 TV 시청을 낙으로 삼다가, 어느 날 집주인이 사망하며 실직자가 되어서야 난생 처음으로 바깥 세상에 발을 내딛게 된다.


어떤 면에서는 19세기 초 독일에서 발견되어 화제가 된 소년 카스파르 하우저와도 유사한 상황이다. 정확한 나이까지는 몰라도 10대임에는 분명했는데, 말도 몇 마디 못하고 세상살이에 대해서도 아는 게 없다는 점에서 혹시나 어려서부터 어딘가에 감금되었다가 풀려난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고, 워낙 이례적인 상태이기 때문에 학계에서도 관심이 집중되었다.


코진스키의 소설 속 주인공도 여차 하면 현대의 카스파르 하우저가 될 뻔했지만, 운 좋게도 그는 거리를 배회하다가 우연히 미국 정계의 유력자를 만나게 되고, 이후 대화 중에 자기가 유일하게 아는 내용인 식물과 원예 이야기를 줄줄 늘어놓음으로써 상대방에게 의외의 영감을 불러 일으켰으며, 이때부터 그의 '멘토'로 간주되어 미국 정계에서 주목을 받게 된다.


주인공이 주위 사람으로부터 감탄과 존경을 얻어내는 과정은 전형적인 '착각물'의 전개 방식과 다르지 않다. 최근의 어떤 정치경제적 사안에 대해 질문을 받으면, 제때 맞춰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가지를 치고 어쩌고 하면서 식물의 재배에 대해 줄줄 이야기하는데, 그러면 상대방은 이 답변이 해당 사안을 원예에 빗댄 비유라고 착각하고 감탄해 마지않는 것이다.


급기야 대통령까지도 주인공을 만나서 들은 '원예론'을 연설에서 인용하는 상황이 되자, 미국 정부에서는 물론이고 냉전 시대 경쟁국인 소련 정부에서도 저 수수께끼의 '멘토'에 대한 뒷조사에 착수하지만, 아무리 알아보아도 그 출신이나 이력에 대해서는 나오는 것이 없어 당황한다. 이런 와중에도 주인공은 여전히 타인의 착각 덕에 출세가도를 질주하게 된다.


오래 전에 읽은 작품 이야기를 새삼스레 꺼낸 까닭은, 최근 대통령 보좌관 가운데 하나인 여성 직원의 정체를 두고 논란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최측근임에도 불구하고 딱히 이렇다 할 경력은 물론이고 일반적인 신상까지도 공개된 적 없다 보니, 새로운 문고리 권력이 아니냐는 추측에서부터 심지어 북한이나 중국 출신 간첩이 아니냐는 추측까지 나오는 모양이다.


신인 연예인이 잘 나간다 싶으면 곧바로 학폭이나 비행 증언이 나오곤 했던 과거 사례를 감안하면 확실히 이례적이어서, 잘만 하면 외계인이나 인조 인간이나 파란 해골 13호가 아니냐는 추측마저 나올 법한데, 국회 소환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제 발이 저린 듯 청문회 출석 의무가 없는 보직으로 재빨리 옮겨간 것을 보면, 뭐가 있기는 있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


'문고리 권력'이란 표현이 처음 등장한 것은 박근혜 정부 당시 최순실 논란이 벌어졌을 때라고 기억하는데, 기억을 더듬어 보면 여전히 특검이 진행 중인 윤석열 정부에서는 물론이고 더 이전의 역대 정권마다 거기에 해당하는 비선실세는 항상 있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하나같이 그 말로가 좋지는 않았으니, 이번에 논란이 된 인물은 또 어떻게 될지 궁금해진다.


그나저나 나귀님이 보기에는 이번 논란 제기 직후에 나온 제보 가운데 하나가 유독 눈길을 끌었다. 한 야당 의원의 주장에 따르면, 해당 인물이 신구대 '환경조경학과'를 졸업했고, 그 인연으로 자기 은사를 '산림청장'에 임명하는 데에 관여했다기 때문이다. 곧바로 오보로 밝혀져 도로 묻히기는 했지만, 그게 사실이었다면 코진스키 소설의 현실판이 나올 뻔했다!


왜냐하면 신구대는 한때 명성을 떨친 신구출판사의 창업주 이종익이 자신의 농장 부지에 설립한 학교이다 보니, 조경학과와 인쇄학과 등 본인의 관심사를 반영한 분야를 중점적으로 육성했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여차 하면 한국의 '정원사 챈스'가 나올 뻔한 기회를 놓치고 말았으니, 코진스키와 신구문화사 모두 좋아하는 나귀님으로서는 아까울 수밖에...



[*] 나귀님이 알기로, 위에 언급한 코진스키 중편의 최초 번역본은 책세상에 나온 미국 현대 작가 4인 (로버트 쿠버, 하비 스와도스, 카슨 매컬러스, 저지 코진스키) 작품집인 <하녀 볼기치기>에 수록된 "챈스 박사"였고, 이후 웅진출판 "포스트모더니즘 걸작 선집" 중 하나인 코진스키의 <편력>에도 "정원사 챈스의 외출"로 함께 수록된 바 있으며, 저작권 계약이 불필요하던 시대이다 보니, 그 외에 다른 번역본도 있었다고 기억한다. 한동안 이 모두가 싹 절판되면서 한때나마 희귀본 대접을 받기도 했는데, 2010년쯤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에서 근간 예고만 하고 소식이 없더니, 엉뚱하게도 2018년에 미래인이라는 출판사에서 툭 하니 나왔는데, 이미 숱한 절판본이 따라갔던 경로와 유사하게 '절판일 때에는 수요가 높다가, 재간행되니 수요가 사라지는' 신기한 현상이 반복되는 듯하다. 흥미로운 점은 민음사의 근간 예고에 올라온 제목이 원제를 직역한 듯한 <거기 있으므로>이고, 나머지 번역서는 하나같이 "챈스"라는 주인공의 이름을 살려 제목을 붙였다는 점이다. <하녀 볼기치기>에 붙은 편역자 안정효의 의견에 따르면 원제인 Being There는 "박통"(博通), 즉 척척박사를 가리키는 관용적 표현이라던데, 사실 여부는 나귀님도 모르겠다. 코진스키의 중편은 1979년에 영화화되기도 했는데, 주연을 맡은 피터 셀러스의 '어른의 모습을 한 어린이' 연기와 몇 가지 세부 묘사는 격찬을 받았지만, 마지막에 가서 주인공이 마치 초월적 존재라도 된 것처럼 나온 묘사는 사족에 불과했다며 비판을 받기도 했다고 전한다. 그러고 보니 나귀님도 영화에 나온 셀러스의 사진을 표지에 사용한 페이퍼백을 하나 갖고 있는데, 어디 뒀는지는 영 모르겠다. 다만 이 작품에 대해서는 뒤늦게 표절 의혹도 제기된 바 있는데, 폴란드 출신 미국인인 저자가 국외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폴란드 작가의 소설을 표절했다는 주장이었다. <페인트칠 당한 새>를 비롯한 다른 저서에 대해서도 표절이나 대작 혐의가 없지 않은 것을 보면 (무명 시절의 폴 오스터도 그의 작품 '윤문'에 참여했던 경험을 훗날 밝힌 바 있다) 이래저래 논란이 되는 인물이기는 한 것 같다. 물론 지금은 싹 절판이어서 더 이상 논란은커녕 화제조차도 되지 않는 듯하지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널드 바셀미의 단편 "나와 미스 맨디블"은 35세 남성인 주인공이 초등학교에 재입학한 과정을 일기 형식으로 서술한다. 본인 말로는 키 180센티미터에, 군필에, 중요 부위에 털도 났으며, 심지어 결혼과 이혼도 경험한 성인이지만, 보험 회사 재직 중에 피해자에게 보험금을 과다 (사실은 '정상') 지급해서 회사에 손실을 입혔다는 이유로 재교육을 받게 되었다.


옆자리에 앉은 여학생이 은근 관심을 보인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뒷자리에 앉은 남학생에게 등을 찔리며 괴롭힘을 당하고, 또 다른 남학생에게 한 번 붙어 보자는 도전도 받고 (주인공은 바로 거절한다), 체격에 맞지 않는 책상과 걸상을 바꿔 달라고 신청했다가 거부당하는 와중에도, 주인공은 담임 교사인 미스 맨디블이 자신을 사랑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한때 책깨나 읽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도널드 바셀미의 이름이 회자되던 시절이 있었는데, 아마도 번역서나 원서를 쉽게 구할 수 없다는 희귀성이 큰 몫을 담당하지 않았을까 싶다. 처음에는 <외국문학> 같은 계간지에 단편이 한두 개씩 수록되는 정도였고, 이후에는 장편 <백설공주>와 <죽은 아버지>가 번역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하나같이 절판 상태이다.


흔히 포스트모더니즘 계열로 분류되며, 기발한 발상과 의외의 전개로 유명한 작가이니, 모든 독자의 입맛에 맞기는 어려운 점도 없지 않았을 법하다. 위에서 언급한 "나와 미스 맨더빌"은 "우리 아버지의 우시는 모습"과 함께 김성곤 서울대 교수가 번역한 웅진출판의 "포스트모더니즘 걸작 선집" 제1권 <사랑은 오류>에 수록되었는데, 지금은 역시 절판 상태이다.


그나저나 오래 전에 읽은 바셀미의 단편을 다시 떠올린 까닭은 얼마 전에 경남 창원의 한 고등학교에 60대 남성이 재입학해서 교사와 학생에게 민폐를 끼쳐 논란이라는 황당한 뉴스를 접했기 때문이다. 대학까지 졸업한 노인이 재입학했다는 것도 황당하지만, 애초에 재입학을 금지하는 법령이 없어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는 학교와 교육청의 해명은 더 황당하다.


진짜 만학도라면 교칙에 얽매이는 학교로 되돌아가는 대신 차라리 학원에 가지 않을까. 굳이 학교에 재입학해서는 나이를 무기 삼아 교사와 학생에게 호통치고 추근대는가 하면, 심지어 동급생(?)에게 학교 폭력을 당했다고 여러 차례 허위 신고까지 했다는 것을 보면, 애초부터 공부에 뜻이 없고 분탕질을 치기 위해 입학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사실 '재교육'이라면 과거 소련이나 중국 등 권위주의 국가에서 실시되어 사회 전반에 큰 후유증을 남겼던 사건이 먼저 떠오른다. 대표적인 사례가 마오쩌둥 정권 말기의 이른바 '문화혁명'에서 도시의 지식인을 무작정 시골로 내려보내 제대로 된 도구도 없이 강제 노동을 강요하며 정신 개조를 독려한 '하방'이었으니, 참으로 무의미한 반지성주의적 행태였다 하겠다. 


그런데 한때 민주주의 국가의 대표 사례로 손꼽히던 미국의 현재 상황도 가만 보면 이와 다르지 않다. 대통령의 조변석개 예측불허 발언에 맞춰 관세가 올라가고 군대가 출동하고 하더니만, 이번에는 갑자기 세계 각지에 주둔 중인 미군 장성들을 한 자리에 불러 모아 놓고 인종 차별 금지와 성 평등 같은 '좌파 이념'을 척결하자며 일종의 재교육을 시켰다고 한다.


찰리 커크의 암살 이후 최근 쏟아지는 각종 극우 법안을 보면, 트럼프 치하의 현실은 요즘 유행하는 말처럼 '보법이 다른' 듯하다. 그러니 이민자 단속이며 치안 유지용 병력 투입에 이어서, 여차 하면 국민 재교육 같은 바셀미 소설의 현실화도 불가능하진 않을 법하다. 아니, 경남 창원의 사례를 놓고 보면, 적어도 그 방면에서는 우리가 더 먼저라고 해야 할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매년 이맘때면 편의점에서 2리터짜리 생수 여섯 개짜리 한 묶음을 사다가 계단에 놓아둔다. 수돗물 끓여 마시는 나귀님이지만, 혹시나 공사나 동파 등으로 수도가 끊길 때를 대비해서인데, 노파심인가 싶다가도 딱히 비싸진 않으니 사다 놓는 것이 버릇처럼 되었다. 작년에 산 생수 여섯 개는 다행히도 쓸 일이 없었으니, 이미 지난 유통기한이 더 지나기 전에 마셔야겠다.


작년 9월 초에 생산된 생수이니 1년짜리 유통기한은 이미 지난 상태이지만, 그늘진 곳에 보관했으니 불과 한 달 사이에 크게 변질되었을 것 같진 않다. 보관만 잘 하면 몇 년이 지나도 끄떡 없다는 이야기도 있던데, 그렇다면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리스의 어느 섬에서 샀다가 결국 반품했다던 이끼 떠다니는 생수는 도대체 어떻게 보관을 했던 건가 문득 궁금해진다.


기껏해야 며칠 분량에 불과한 생수를 준비했을 뿐이니, 이른바 '생존주의' 유형의 본격적인 재난 대비 태세에는 감히 비할 바가 못 되지만, 전쟁의 위협이 지금보다 더 실제적으로 느껴졌던 냉전 시대의 기억이며, 사회 기반 시설이 지금처럼 원활하지 않았던 개발 시대의 기억을 여전히 간직한 나귀님으로선 은근한 불안감을 최소한의 투자로나마 달래려는 셈이다.


최근 서울 곳곳에서 땅꺼짐 발생이 빈번해졌는데, 일각에서는 상하수도 시설이 대대적으로 설치된 지 반세기쯤 되어 노후화한 영향도 없지 않다는 진단이 나왔다. 나귀님도 집 근처 산책로를 걷다 보면 굵은 나무 뿌리가 콘크리트며 보도블럭을 부수고 솟아오른 모습을 종종 목격하게 되니, 꾸준히 관리하지 않으면 인공물이 자연에 압도당하는 것도 순식간이다.


과거에는 '수도꼭지만 틀면 더운 물이 펑펑 나온다'는 것이 도시 생활의 장점으로 선전되었는데, 사실은 항상 그런 것도 아니었다. 물만 데워주는 보일러는 한참 뒤에 나왔고, 공사로 인한 단수도 흔했으며, 기껏 나오는 수돗물도 소독약이나 쇠녹이 섞여 못 쓰게 된 경우가 있었고, 고지대에서는 수압이 약해서 수도꼭지를 끝까지 틀어도 졸졸대며 나오곤 했었다.


조세희의 "난쟁이" 연작에는 경쟁자들의 무시와 행패로 고생하던 난쟁이 수도공이 자기를 믿어준 어느 주부에게 고마워하며 '다른 집보다 더 빨리 수돗물을 받을 수 있도록' 마당 수도꼭지를 일반적인 높이보다 더 낮게 설치해주는 장면이 나오는데, 지금 와서는 선뜻 이해하기 힘든 이 장면도 제아무리 서울의 상수도라 한들 항상 믿기는 어려웠던 시대의 유물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 사대강 사업을 추진하며 내놓은 명분 가운데 하나는 우리나라도 이른바 '물 부족 국가'라는 주장이었다. 여름 강수량만 보면 사실이 아닌 듯하지만, 단기적인 집중호우는 늘어나도 식수와 용수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지자체가 적지 않다고 보니, 한편으로는 일리가 있는 주장인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문제는 그걸 운하로 만들자는 발상이었지만.


다만 사대강 사업 논란의 영향인지, 정작 수자원 관리라는 필수 과제에 대해서는 중앙 정부며 지자체에서도 그간 너무 소홀했던 것이 아닌가 싶었는데, 이번 강릉 가뭄 사태의 발생과 전개를 지켜보니 이런 우려도 그리 틀리지 않았던 듯하다. 대도시 한복판에 살아가는 나귀님도 혹시나 모를 사태에 대비하려 노력하는데, 공무원들이 너무 무책임하지 않았을까.


이번 강릉 사태와 비교되는 것이 비슷한 환경에 놓였지만 수년 전부터 미리 대비해서 지하수 등 수자원 확보에 성공했다던 이웃 도시 속초의 사례이다.(하지만 여기는 바가지가 문제라지). 반면 대통령과 도지사 앞에서도 딴소리만 늘어놓다 질책당하는 시장의 모습을 보면, 강릉에서는 정말 아무 생각도 행동도 없이 지내다 상황이 급박해지자 손을 내미는가 싶다.


지난번 SK와 KT의 해킹 사태에서부터, 지난 주말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사고에 이르기까지, 국민에게 대규모 피해를 야기한 사건들의 배후에는 사실상 관련자의 무책임과 태만이 놓여 있지 않나 하는 의구심이 생기는 것도 그래서이다. 대형 사고의 원인은 대개 어이 없을 만큼 작고 기본적인 부분을 소홀히 해서인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 여지없이 들어맞는다.


그나마 강릉에서는 최근 비가 많이 내려 해갈이 되었다더니, 이제는 여기저기 손을 벌려 얻어 놓은 생수 수백만 병이 처치곤란으로 떠올랐다고 전한다. 뭐가 고민일까? 당장 내년에도 같은 일이 반복되지 말란 법이 없으니, 집집마다 나눠주고 잘 보관하라고 해야 맞지 않을까. 그래야 내년에도 생수를 변기물로 사용하는 호사 아닌 호사를 누릴 수 있을 테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카카오톡 최신 업데이트가 메신저로서의 기능보다 SNS로서의 기능을 강화했다던가 뭐 어쨌다던가 해서 불만들이 많은 모양이다. 카카오톡을 안 쓰는 나귀님이야 아무 상관 없는 이야기지만, 하도 욕들을 하기에 왜들 그러나 궁금해 알아보니, 문제의 앱을 사용하지 않는 나귀님도 최근 들어 종종 짜증을 느끼던 다른 여러 앱의 개악과 유사한 맥락에 있는 듯하다.


가장 욕을 먹는 부분은 사용자의 의향과는 무관하게 쏟아지는 광고 세례라고 하던데, 언젠가 바깥양반 스마트폰으로 구경한 페이스북 앱에서 친구들의 게시물 두 개당 광고 하나씩이 뜨는 것을 보고 기괴하다고 느꼈던 것이 생각난다. 구글과 유튜브도 그렇지만, 광고를 해도 정도껏 해야지, 너무 노골적으로 들이대다 보면 오히려 사용자의 반감만 부르지 않을까.


네이버나 구글 앱에서도 뭔가 검색하고 나면 곧바로 관련 콘텐츠며 상품 광고가 뜨곤 하는데, 대개는 이미 해결되거나 불필요해진 다음에야 한 발 늦게 제안이 이루어지는 까닭에 딱히 편리하거나 유용하지는 않다. 최근 인공지능 열풍이 불면서, 마치 그것만 있으면 생활이 편리해질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데, 실제로는 이처럼 별 도움이 안 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이런 상황은 알라딘 앱도 마찬가지여서, 지난번 업데이트 이후 맨 아래에 있던 중고 상품 가격 확인용 바코드 버튼이 '만권당' 바로가기 버튼으로 바뀌어 버렸다. 그런데 전자책을 보지 않는 나귀님에게는 가끔 잘못 누를 때를 제외하면 정말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는 버튼이다. 반면 서재 바로가기는 웹사이트에서나 앱에서나 언제부턴가 꼭꼭 숨겨둔 것도 이상하다.


이번의 카톡 업데이트에서 또 하나 욕을 먹는 것은 상대방의 프로필 사진이 거북할 정도로 너무 커졌다는 점인 모양인데, 사실 이건 알라딘 앱에서도 한 발 먼저 달성한 문제점이다. 알라딘 앱에서 북플 메뉴로 들어가 보면 이런저런 분야의 매니아라면서 알라딘 회원의 프로필 사진이 우르르 뜨는데, 가끔은 상당히 부담스러운 본인 얼굴(!)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대개는 각자 좋아하는 사진이나 그림을 프로필 사진으로 사용하는 모양이어서 별 문제가 없지만, 이상하게도 북플 앱에서 보면 그게 평소보다 훨씬 크게 확대되어 나타나고, 차마 지울 수도 없기 때문에 영 보기 거북할 때도 있다. 매니아인지 뭔지를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나귀님으로서는 저렇게 선정해서 알린다는 것이 과연 무슨 도움이 되는지 의문일 뿐이다.


그러다 보니 나귀님은 한동안 컴퓨터에서나 앱에서나 뭔가를 잘못 눌러 북플로 들어가면 화들짝 놀라서 도로 빠져나오곤 했다. 스마트폰에 최적화된 메뉴라고는 하는데, 아직도 그 메뉴며 구조에는 영 익숙해지지 않는다. 줄곧 논란이 되는 각종 매장의 키오스크와 유사하게 사용자의 단순하고 직관적인 이해를 도모한다는 목표는 없는 듯한 느낌마저 받게 된다.


나귀님은 컴퓨터 프로그램이고 스마트폰 앱이고 간에 웬만하면 업데이트를 안 하고 버티는 편인데, 도스나 윈도우 시절에도 백신 프로그램 등을 자동 업데이트로 설정했다가 충돌이 발생해서 데이터를 몽땅 날리고 포맷을 할 수밖에 없었던 사례가 드물지 않았기 때문이다. 몇 번 고생하고 나니, 다음부터는 자연스레 남들이 다 괜찮다고 할 때까지 기다리곤 했다.


카톡이고 키오스크고 북플이고 간에 가장 중요한 것은 사용자 중심의 편의성일 것이다. 원하지도 않는 광고를 수시로 들이밀고, 보고 싶지 않은 프로필 사진을 확대해 보여주고, 정작 원하는 기능은 축소하거나 감춰버리면, 사용자가 외면할 것은 당연한 노릇이다. 당장의 광고 수익에 눈이 멀어 사용자를 호구 취급하니,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마이너스가 아닐까.


정부의 정책도 마찬가지다. 특검이다 관세다 뭐다 정신 없는 와중에 검찰청 폐지 결정이 순식간에 내려졌다고 하니 말이다. 검찰의 문제는 이전부터 줄곧 지적되어 왔지만, 이렇게 순식간에 결정된 것을 보니, 역시나 카톡 업데이트마냥 '아니면 말고' 하는 오만하고 무책임한 태도가 깔려 있는 것은 아닌가 의심스럽고, 과연 어떤 부작용이 생겨날지도 걱정스럽다.


결국 이번 카톡 업데이트 논란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더 큰 문제의 축소판처럼도 보인다. 내친 김에 알라딘 업데이트를 살펴보니, 2025.7.0.이라는 최신 버전이 이미 나와 있다. 이건 또 언제 해야 되나 궁금해서 눌러 보니, 나귀님의 스마트폰은 구형이라서 더 이상 알라딘 앱과 호환되지 않는다는 경고가 나온다. 알라딘을 멀리해야 할 이유가 또 하나 생겼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알라딘 검색창에 시도때도 없이 뜨는 광고 문구 중에 "2025년 아이너스상 수상작"이라는 것이 있기에, 에이, 설마 그건 아니겠지 싶으면서도 혹시나 하고 클릭해 보니, 아닌 게 아니라 정말 "그거"였다. 즉 북펀드의 해당 도서 소개 페이지에 제대로 적혔듯이 "2025년 아이스너상 수상작"을 "2025년 아이너스상 수상작"이라고 잘못 적어 광고하는 중이었던 것이다.


아이스너상은 미국의 만화가 윌 아이스너(1917-2005)를 기려 1988년에 제정되었으며, 하비상과 함께 만화계의 아카데미상으로 간주될 만큼 막강한 권위를 지닌다. <왓치맨>, <배트맨: 킬링 조크>, <샌드맨>, <프롬 헬>, <신시티>, <아스테리오스 폴립>, <하비비>, <담요>, <페이블즈> 등 우리나라에도 번역된 유명 그래픽 노블 다수가 여러 부문에서 수상한 바 있다.


아이스너는 만화 이론가로도 유명한데, 사실 우리나라에 번역 소개된 그의 단행본은 하나같이 만화 작법서뿐이고, 그나마도 지금은 모두 절판이다. 어쩌면 그래서 이제는 그의 이름조차 제대로 아는 사람이 알라딘에서도 드물어진 걸까. 그렇다면 지난번 김혜순의 잘못된 수상 이력을 지적한 글에서 말했듯, 결국 자기네가 뭘 파는지도 모르고 파는 셈은 아닐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