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뉴스에서 '복기왕'이라는 단어가 등장하기에 그건 또 무슨 신조어인가 싶어서 검색해 보니 의외로 사람 이름이었다. 무려 현역 국회의원이고, 심지어 재선 의원이라는데도 불구하고 나귀님으로서는 전혀 몰랐던 셈이다. 미안한 말이지만 바둑이나 뭐 그런 데에서 쓰는 뜻처럼 이미 진행된 뭔가에 대해 '복기'를 잘 하는 사람 정도의 뜻은 아닐까 짐작했다.


그런데 또 어제인가는 뉴스에서 어느 공직자를 거론하며 '이억원' 운운하기에 누군가가 또 그 액수만큼의 뇌물을 받아 먹었나 싶어서 검색해 보니 이번에는 금융위원회 위원장 이름이었다. 한편으로는 우스우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저 양반도 지금껏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은 놀림과 웃음을 겪어야 했을지 생각해 보면 뭔가 측은하고 숙연한 마음마저 들어 미안했다.


이처럼 이름 중에는 유사한 의미나 야릇한 발음 때문에 자연스레 웃음을 유발하는 것들이 없지 않다. '궉'이나 '팽'처럼 희귀한 성씨도 비슷한 상황인데, 정작 본인들은 크게 스트레스를 받는 모양이니 한편으로 딱하기도 하다. 실제로 법원을 거치는 복잡한 절차에도 불구하고 개명 신청을 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하니, 생각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힘겨운 듯하다.


지난 주에 박명수 유튜브를 보니 최근 사람 이름을 넣어 출시해서 인기라는 칸초를 까보는 내용이 나왔다. 요즘 제일 흔한 이름 수십 종을 선별했다는데, 지난번에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목록을 확인하니 나귀님의 이름은 없고 바깥양반의 이름도 없었으며, 우리 부모나 형제자매나 지인의 이름도 하나도 없는 것을 보고, 비로소 이제는 유행이 바뀌었음을 실감했다.


예전에는 보통 이미 정해진 대로 돌림자를 따서 이름을 지었고, 그러다 보니 같은 성씨라면 이름만 들어도 대충 항렬이 짐작되게 마련이었는데, 지금은 돌림자에서 벗어난 한글 이름도 많이 늘어난 듯하다. 다만 한자를 모르는 사람이 많다 보니, 이제는 한글로 이름을 먼저 짓고 한자를 나중에 갖다 붙이는 식의 주객전도도 늘어나는 모양이라 우스울 수밖에 없다.


한때는 '이슬'이란 여자 이름이 가장 흔한 한글 이름 아니었나 싶다. 외관상 한자 같아도 실제로는 외국 이름(?)인 경우도 있는데, 기독교인 중에 흔한 '예'와 '하'가 그런 경우로, 각각 '예수님'과 '하느님'을 가리킨다. 일본어의 잔재라 해서 지금은 외면되는 여자 이름 '-자'도 사실 한때는 '제니'나 '제시'처럼 세련되다 여겨져서 유행하던 외국식 이름이었다.


외국 이름이라고 해서 아무거나 갖다 붙이는 것도 이상한데, 언젠가 미국 유학 중인 지인이 아들 이름을 '아이작'이라고 지었다기에 어색하지 않나 싶기도 했다. 영어 이름은 대개 성서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그중에서도 '아이작'(이삭)은 대표적인 유대계 이름이라고 알고 있었으니까. 물론 <미나리>의 감독도 '아이작'인 것을 보면 비슷한 사례도 많았던 모양이지만.


외국인이 한국식 이름을 짓는답시고 '박김리'나 '오최정'으로 자처하면 우리에게는 어색하게 느껴지듯이, 한국인도 어느 코미디 프로그램 캐릭터처럼 '주니어 3세'로 자처한다면 웃음을 자아낼 수밖에 없을 터이다. 기업의 경우에는 회사명이나 상품명이 뜻하지 않게 웃음이나 반감을 자아내는 바람에 현지 정서를 감안해 변경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고 알고 있다.


이름의 중요성은 '사람 운명은 이름 따라 간다'는 속설로 잘 요약되고, 그래서인지 한때 '이름 함부로 짓지 말라'는 이야기까지 나오기도 했는데, 지금은 운명론보다 그냥 우스갯소리로만 언급되는 듯하다. 물론 한국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성기나 욕설 같은 부적절한 단어를 자녀 이름으로 못 쓰게 하는 법령이 있는 것을 보면 최소한의 도리는 지켜야 하겠지만.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이름 중에도 그리 평판이 좋지 않은 경우도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모비 딕>의 주인공인 '에이해브' 선장이다.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악한 왕 '아합'의 이름을 뜻하기 때문인데, 정신이 온전하지 못했던 어머니가 붙여주는 바람에 평생 그 이름으로 살아 왔고, 문제의 흰 고래에게 한쪽 다리를 잃는 등의 불운이 평생 따라다닌 것으로 묘사된다.


구약성서에서는 아합의 아내인 '이세벨' 역시 부창부수로 갖가지 악행을 저지르는 것으로 묘사되는데, 아이작 아시모프의 <강철 도시>에는 주인공의 아내가 하필이면 그 영어식 이름인 '제저벨'을 부여받은 까닭에 큰 사고를 치게 된다. 원래 나쁜 사람은 아니었지만 이름 때문에 사람들의 오해를 받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나쁜 쪽으로 이끌리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우리 식으로 이해하자면 어쩌다 본명이 '장희빈'인 여학생이 본래는 착한 성격이었지만 친구들의 놀림을 견디지 못해 진짜 악녀로 변하게 되는 셈이라고나 할까.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숱한 동명이인 '김건희'들은 앞으로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물론 동명이인 '차은우'나 '장원영'만큼 이름이 불릴 때마다 남들의 '기대' 때문에 불편해지는 것까진 아니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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