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 속의 검은 잎  _ 기형도


 

 




택시 운전사는 어두운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이따금 고함을 친다, 그때마다 새들이 날아간다
이곳은 처음 지나는 벌판과 황혼,
나는 한번도 만난 적 없는 그를 생각한다

그 일이 터졌을 때 나는 먼 지방에 있었다
먼지의 방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문을 열면 벌판에는 안개가 자욱했다
그해 여름 땅박닥은 책과 검은 잎들을 질질 끌고 다녔다
접힌 옷가지를 펼칠 때마다 흰 연기가 튀어나왔다
침묵은 하인에게 어울린다고 그는 썼다
나는 그의 얼굴을 한번 본 적이 있다
신문에서였는데 고개를 조금 숙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일이 터졌다, 얼마 후 그가 죽었다

그의 장례식은 거센 비바람으로 온통 번들거렸다
죽은 그를 실은 차는 참을 수 없이 느릿느릿 나아갔다
사람들은 장례식 행렬에 악착같이 매달렸고
백색의 차량 가득 검은 잎들은 나부꼈다
나의 혀는 천천히 굳어갔다, 그의 어린 아들은
잎들의 포위를 견디다 못해 울음을 터뜨렸다

그해 여름 많은 사람들이 무더기로 없어졌고
놀란 자의 침묵 앞에 불쑥불쑥 나타났다
망자의 혀가 거리에 흘러넘쳤다
택시 운전사는 이따금 뒤를 돌아다본다
나는 저 운전사를 믿지 못한다, 공포에 질려
나는 더듬거린다, 그는 죽은 사람이다
그 때문에 얼마나 많은 장례식들이 숨죽여야 했던가
그렇다면 그는 누구인가, 내가 가는 곳은 어디인가
나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디서
그 일이 터질지 아무도 모른다, 어디든지
가까운 지방을 나는 가야 하는 것이다
이곳은 처음 지나는 벌판과 황혼,
내 입 속에 악착같이 매달린 검은 잎이 나는 두렵다

 

 

- 술에 취해, 기분에 취해, 밤에 취해, 수 백 수 천번도 더 읽은 듯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살갗에 달라붙는 여름의 무더위가 불편한 나날들입니다.
    부는 바람마저도 미지근해 우리 만났던 겨울이 마냥 그리웠더랬지요.
    칼날같이 시리웠던 그 겨울, 쌓인 눈만큼이나 행복했었는데
    당신도 그러했는지요.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안에서 어찌나 스치는 풍경들이 아쉬운지
    매일 보는 익숙한 장명들인데도 돌린 고개가 뻣뻣할정도로 돌아보고
    돌아보고 또 다시 돌아보았더랬습니다. 한숨섞인 웃음이 났습니다.
    어깨를 짓누르는 피곤함에 읽던 책을 대신해 귀에 꽂은 이어폰에선
    진부한 사랑의 멜로디들이 마음 한 구석을 간지럽히며 흘렀습니다.

 
    부질없지요, 참.
    견딜 수 없을거라 생각했던 시간들이 눈물 한 방울 없이도 무심히
    지나가고 더 이상은 웃을 수 없을거라 믿었던 일상들이 깔깔거리며
    아무렇지않게 지나가더랍니다. 너무나 우습게도 그러더랍니다.
    사랑이 이별이 그리움이 미련이 아쉬움이 참으로 부질없더랍니다.
    그래요 나, 당신만큼이나 잘 지냅니다. 좋아보이는지요.
    진정 당신이 원하던 것이 이것이었던가요. 만족하시는지요. 

 
    마음만큼이나 발끝까지 내려앉은 어둠이 새삼스레 무서웠더랬지요.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걸음걸음이 위태로웠고 금새 주저앉을 듯
    비틀거려 발끝에 채이는 모든것이 당신 같았습니다. 아니,
    꼭 한껏 움츠린 미련스러운 못난 내 사랑같았습니다.
    이 미련이 이 그리움이 이 불투명하기만 한 못난 사랑의 전부가
    당신인지 나인지 아니면 또 다른 누군가를 향한것인지 도대체가 알
    길이 없더랬지요. 난 그것이 무섭지요. 내 불분명함이.

 

 

 

    -

 

    슬픔에게 안부를 묻기도 하지요.
    언제쯤이면 그 슬픔을 모두 밀어낼 수 있는지.
    밀어낼 수 있는 슬픔이기는한지. 정녕 괜찮을 수 있는지를요. 

 

    다른 누군가를 다시금 가슴에 품어 사랑 할 수 있을런지.
    그 고되고 외로운 길을 함께 걸어 줄 누군가를 만날 수 있을런지.
    내가 살던 세상의 하늘이 무너지기는 할는지.
    덜컥, 겁부터 집어먹는건 왜인지.
    눈물이 숨이 차오르는, 처량맞기 그지없는 오늘입니다 .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리만의 비밀스러운 삶
아틀레 네스 지음, 박진희 옮김 / 비채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존재감 미미한 소수처럼은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

다시 말해 나는 내 삶을 증명해보일 것이다!

 

 


 

 소설은, 독일 수학자 베른하르트 리만의 평전을 집필하던 노르웨이의 한 수학교수의 실종으로 발견 된 그의 일기장을 토대로 이루어진다. 수학의 미지수와 같았던 이 소설은 결국 옮긴이의 말마따라 '리만의 가설은 그래서 무엇입니까?' 라고,묻고 만들었다. 소설을 읽은 후에도 베른하르트 리만의 가설을 인터넷으로 뒤지며 어떻게든 이해라도 해보려는 것을 보면 이 책은, 수식으로만 남아있던 그의 삶을 풀이해내는 것에 성공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베른하르트 리만의 제타함수. 수학이라면 실용적으로 쓰여지는 것 외에는 별반 관심이 없는지라 소설을 읽기 전 가장 먼저 한 일은 리만의 가설인 제타함수를 인터넷으로 찾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단연 '오 마이 갓!'을 외치게 할 뿐 알 수 없는 수식들의 연속이었다. 몇몇 블로그까지 들쑤시며 읽어도 함수에 관한 빈약한 지식으로는 도통 이해할 수 없는 그림 혹은 그저 문자들의 배열일뿐이었다. 책이 이야기하려는 주제조차 파악치 못한 상태에서, 이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방향조차 잡지 못한 채로 책을 펼쳤을 때는 수학교수의 제자라도 되는 양 너무도 정직하게 읽고 있는 -소리내어 읽기도 하며-  나를 발견했다. '그래, 이것은 소설이다.' 알지 못했으며 구태여 알려고도하지 않았던 베른하르트 리만이라는 천재 수학자의 삶을 그린 평전과도 같은 하나의 소설에 불과하다.

 

 19세기의 천재 수학자의 삶을 쫓는 수학교수는, 리만의 삶의 집필을 위해 글쓰기 강좌를 다닌다. 두 아이와 아내가 있는 수학교수의 가정은 꽤나 평범한 듯 보이지만 수학교수의 미미한 균열은 그 일상적이면서도 안정된 소속감에서 일어난다. 리만의 평전을, 기존에 출간되어진 작품들과는 다르게 -좀 더 정확하고 구체적이며 누구나 쉽게 리만의 삶을 알 수 있도록- 집필하고 싶었던 수학교수는 자신의 글쓰기 능력의 향상을 위해 강좌를 다니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잉빌드라는 여자를 만나면서 수학교수의 일기에 여자에 대한 것들을 기록하게 된다. 여자와의 만남, 그것은 불륜이거나 허상이다. 수학교수의 기록되어진 일기에는 리만의 평전을 집필하면서부터 시작되는데 잉빌드와 함게한 모든것들이 담겨져있다. 여자는 수학교수가 리만의 평전을 집필하는데 있어 조언을 하거나 추가되어질 내용과 참고가 될 만한 문헌들을 함께 알아보고 조사하며 도움을 준다. 감칠맛나게 이어지던 수학교수와 여자의 애정행각은 불온한 듯 위험하다. 자신의 집에 들어서면 가족과 함께하기보다는 자신만의 카타르시스인 방안의 컴퓨터와 함께하는 시간이 많을때마다 수학교수는 현재 자신의 일상의 단조로움을 질색하다가도 강좌에서 만나는 여자를 떠올리며 아내와의 이혼을 결심하기도 한다. 그저 부는 바람으로 치부하기에는 숙학교수의 일기장의 여자와의 만남은 당장이라도 여자를 위해, 그리고 자신의 새로운 삶을 위해 살아왔던 몇 십년의 일상을 버릴 각오가 되어있었음이다.

 

 수학교수가 리만의 평전을 집필하면서 바랬던것은 수학계의 주목을 받는 일이었다. 그리고 리만의 가설을 바탕으로 별 볼일 없던 수학교수인 자신의 자리를 확고하게 잡기 위함이었다. 몇 백명의 수학자들도 리만의 가설을 풀지 못한것을 수학교수는 자신의 평전으로 리만의 가설을 증명하려했고 그것에 그 어느 누구보다다 더 가깝게 다가가려 했다. 소설은, 리만이라는 천재 수학자의 삶인 동시에 수학교수의 삶까지 투영하고 있다. 리만이 세운 가설은 언제, 그리고 누구한테서 증명되어질지는 미지수다. 수학교수가 생사를 알 수 없는 실종 상태로 머무른 것처럼, 리만의 제타함수는 현재의 수학계에서도 풀이해 내지 못하는 하나의 과제다. 또한, 소설이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리만의 제타함수 가설이 증명이 된다면 온라인의 전자상거래가 붕괴되어질 것이라는 위험성을 수학계에서는 추측해내고 있다. 리만이 살아있을때에는 주목받지 못했던 가설이 결국은 그가 죽고 세월이 지나서야 풀리지않는 가설로 존재한다. 수학교수의 일기로 풀어낸 리만의 삶은 가난하고 고단했지만 숫자가 지니고 있는 영원성에 비한다면 그는 이 가설이 증명되어지는 날까지 영원히 각인되어 질 것이다.

 

 수학교수를 이 책의 저자로 본다면, 그는 우리가 모르는 리만이라는 수학전채에 대한 이야기를 의도한대로 쉽게 풀어내주었다. 부끄럽게도 이 책을 접하지않았더라면 알지 못했을 위인임에 분명하다. 또한 리만이라는 인물과 함께 소설의 구성 또한 탁월했음이 분명하다. 읽은 것은 수학교수의 일기장에 불과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은 수학교수의 비밀스런 일기를 아내인 카린이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의연했던 한 마디 말에 아연해졌음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리만의 평전이라 생각했고, 일상에 질린 한 남자의 삶의 단면이라 생각하며 정독에 가까운 독서를 했는데도 저자는 독자가 생각치 못한 반전을 꽁꽁 숨겨둔 채 완벽한 소설로 마무리를 지었다. 수학에 관심이 없다면, 이러한 주제를 품고 있는 소설에 손이 가지 않는 책으로 치부되었을수도 있는 것을 흥미로운 소재를 곁들여 알지 못했던 것들을 일러주는 소설이다. 뜻 밖의 반전과 19세기의 수학 천재의 삶은 함께 어우러진 이 소설은, 어드레사의 추천사처럼 픽션에 익숙해져있는 독서에 힘을 불어넣어 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완연한 봄, 상처투성이 바람이 분다.
   오후 3시는 매일 은행 업무를 보러 가는 시간이다.
   짧은 치마를 자주 입기 때문에 무릎 위로 사뿐 내려앉는 코트를
   걸치고는 통장이 든 가방을 들고 길을 나선다.

   그리고는 습관처럼 고개를 떨군채 걷는다.
   봄의 오후엔 시리거나 미지근한 바람이 종종 불어
   땅바닥에 드러누워 봄향을 취하는 작은 모래를 날아 오르게 한다.
   하여 나는, 눈에 렌즈를 낀 탓에 작은 먼지라도 들어가는 날엔 두 눈을
   꼭 감은 마냥 걸어야 하기 때문에 불편하기 그지없다.
 
   흙바람, 이 부는 봄날이 달갑지 않다.
   낙화한 목련 꽃잎들도 아스팔트 도로위로 눕게 되는 날이면
   지저분해 질 뿐이다. 진탕한 흔적을 남긴다.
   그것은 짓이겨진 봄 ,일 뿐이다.

   책 선물을 받았다.
   보내지말라, 엄포를 놓아도 모두 싫다한다.
 


 
   ** 

    

   이석원의 「보통의 존재」 


   읽고 싶었고 가지고 싶었던 책이다.
   아직 어떠한 이야기를 품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누군가가 옮겨놓은 글귀 하나가 숨을 쉴 수 없게 했다.
    

   너무 어릴적부터 상처투성이가 되어버린 사람들은
   커서 어떤 순간들을 믿으며 살아가야 할까.
p.335
    

 

 

   
 

   에릭 파이의 「나가사키」 


   남의 집 벽장에 1년 동안 숨어 산 여자의 이야기다.
   라고- 만은 할 수 없는 이야기다. 선물이 도착하자마자
   읽어내렸고 서평도 마쳤다. 솔직히 말해,
   과대 광고와 혼자서 품은 기대치에 실망했던 작품이다.
   좀 더 밀도있게 다루었더라면 하는 아쉬움.    

       

 

   
 
   



    편혜영의 「저녁의 구애」 


   처음 마주하는 작가라 잘 모른다.
   알라딘 서재에서 이 분 저 분 읽고 싶으시다는 분들이
   많은터라 궁금해하고 있던지라 반가웠다.
   그리고 이건 어제 저녁 잠들기 전에 문득 든 생각인데 
   처음 마주하는 작가는 단편이 좋겠다고 단언했다.
   피자집도 페페로니 피자를 맛있게 만드는 피자집이라면
   믿을만 하다고 들은적이 있기 때문이다.
       ( 음 ,이건 좀 아닌가 ? ) 

 

 

 

 

   김 숨의 「간과 쓸개」 


   작가의 이름도 제목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김도언 작가의 와이프라는것이 제일로 좋았다. 
   그렇다고 내가 김도언의 작품 전체를 읽은 것은 아니다.
   그저 난 그의 소설집에 실린 단편 하나를 읽었을뿐이고
   마구잡이로 무조건 ,좋았다. 그래서 김 숨도 좋다.
   더불어 김도언의 작품 역시 장편 소설로 이번에 출간된 
   다 하니 더할나위없이 기쁘고 좋다, 좋아! 

 

 

 

 

 

안녕,하고 . 잘 가라고 - 어서 가라고 봄에게 인사해주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그 녀석 덕분에 반올림 27
이경혜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1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 보다 더 '나'답게 살 수 있는 게 저 녀석이라면

'나'는 진정한 '나'를 위해 스스로 비켜 줘야 하는게 아닐까 ?

 

 

 청소년 문학이다. 가볍게 혹은 식후에 먹는 디저트처럼 문득 읽기는 하지만 이번은 다른 청소년 소설과는 다르게 중고등학생의 눈높이에 정직하게 맞춘 소설이라 할 수 있다.  「그녀석 덕분에」라는 이 작품집은 총 4개의 단편이 묶인 이경혜의 작품집이다. 이 작품을 정직하다고 이야기하는 이유는, 이 작품집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이상적인 꿈과 사랑의 형태가 무척이나 올곧은 감정선을 따라가기 때문이다. 또한 너무나 있을 법하고, 그럴듯하여 믿게 만들고 실제로도 존재하는 이야기들을 다루었기에 청소년의 눈높이에 맞춘 가장 적절한 작품집이기 때문이다. 가장 민감하고 예민한 시절을, 우스꽝스러우며 매력있고 가뿐하게 끌어낸 소설집이다.

 

 첫 단편인 「베스트 프렌드」는 사랑과 우정사이에  겪는 복잡미묘한 감정 갈등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어린 시절부터 단짝이었던 남자'친구' 민재에게 이성친구가 생김으로써 오랜친구를 빼았겼다는 피해 의식에 사로잡힌 수현의 이야기다. 그 감정의 피해 의식이라는 것은 오랜 시간 그리고 언제까지고 영원한 친구로 자신의 옆에 머물러있을 것 같았던 민재가 떠남으로써 수현이 느끼는 감정은 흔히 연애를 하다 갑작스런 이별을 맞닥뜨린 상처받은 여자의 감정과도 같다. 학창시절, 이성의 감정 혹은 연애 감정을 알아가는 시절에서의 이런 감정은 몇 차례의 시행착오를 일으키기도 하고 혼란스러움으로 인해 뜻하지 않은 상처로 자리매김하기도 한다. 민재에게 이성친구가 생기기 전, 수현에게 고백을 한 뒤로 껄그러워진 사이가 결국은 민재가 다른 이성을 만남으로써 이 둘에게는 허물지 못 할 벽이 하나 둘 쌓여간다. 굳이 이 소설의 주인공인 민재와 수현이 아니더라도 이성이 친구가 될 수 있느냐, 없느냐는 여전히 확실한 답을 내릴 수 없을 큼 많은 인연들이 친구에서 연인으로 발전의 절차를 밟는다. 어제는 친구였지만 오늘은 연인이라는 연애 불변의 법칙은 어제의 친구가 오늘은 연인이었지만 내일은 친구가 될 수 없는 기이한 법칙이기도 하다.

 

 두 번째 단편인 「Reading Is Sexy」는 버스안에서 Reading Is Sexy라는 문장이 박힌 티셔츠를 입고 책을 읽는 여자를 뚫어지게 쳐다보다, 여자의 당돌한 외침으로 함께 버스에서 내리게 된면서 시작된다. 이 단편에서는 이성 친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과는 전혀 다른 가치관과 여유를 가진 여자에 대한 강한 호기심을 동반한 사랑 감정을 표현해낸다. 공부 잘 하는 이성 친구를 둔 까닭으로 그에 맞추어 나가다 보니 좋아하는 취미 생활이라던가, 꿈을 놓치며 지내던 때에 만난 허름한 집의 여자는 남자에게 있어 구원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세 번째 단편은 얕은 수위로 동성애을 그린 「학도호국단장 전지현」이라는 작품이다. 심심찮게 매체를 통해 하나의 소재로 자리를 잡은 이 '동성애'라는 코드는 청소년 문학에서도 등장한다. 자아의 정체성이 가장 위태로울시기라면 열일곱에서 열여덟쯤이라 말 할 수 있는데, 그것은 같은 인간으로서의 동경이라고도 할 수 있다. 흔히 이반아 혹은 레즈, 게이라고도 부르는데 내가 다니던 학교는 남녀 공학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반계열의 아이들이 몇 있었다. 그때에는 너도 나도 이반이라며, 남자처럼 머리를 짧게 자르거나 힙합바지에 연예인들을 따라하던 코스튬까지 그야말로 동성이라는 특별한 연애 감정이라는 것도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었다. 고백하자면 어린 시절의 치기로 코스튬을 따라다니기까지 했다. 사실 이 작품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단편을 꼽으라면 이 작품을 꼽을만큼, 동성애라는 것에 흠뻑 취해있었음이다. 물론, 지금도 동성애를 다룬 작품이나 드라마 혹은 영화에 관심이 많다. 소수자의 사랑이라고도 하는 이런 사랑이야말로 애틋함을 넘어서는 절박한 감정을 단숨에 뒤흔들어버리는 무시치못할 강한 매혹적인 사랑이 아닐까. 그 뿐 아니다. 생각과는 다르게 마음이 움직이는 것에 관점을 둔 이 작품은 아주 절묘하게 위험 수위를 넘어서지 않으며 이야기를 끝낸다. 그것이 어떠한 여운, 그리고 아직은 색안경을 쓰고 보는 이 현실에 대한 조심성에 다가서는듯한 감칠맛나는 가장 적절한 마무리가 아니었나 싶다.

 

 이 작품집의 마지막 단편인 「그녀석 덕분에」는 끔찍히도 싫어하는 바퀴벌레가 등장한다. 그것도 바퀴가 인간으로 둔갑을 한다! 갑갑하기만 한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에 들어와보니 진짜 '나'는 여기에 있는데 또 다른 가짜 '나'가 집에 벌써 와 있다. 그리고 진짜 '나'는 집에서 쫓겨난다. 그리고 시작되는 일탈 아닌 일탈. 이 작품이야말로 청소년들의 공감표를 잔뜩 받을만한 작품임을 단언한다. 자유로움, 소설은 그것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꿈, 이상, 진정한 바람. 자신이 원하고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사회가 그리고 부모의 기대치와 안전한 삶을 보장받기 위해 잊혀지고 잃어버린 꿈을 다시금 찾아가는 이야기다. 결국 진짜 '나'는 자신의 삶을 떠나오면서 진정한 '나'를 찾게 된다. 청소년들 대부분이 꿈이 없거나, 우선은 대학입시를 바라보며 몇 년간의 의무교육을 받는다. 어떠한 계기나 동기부여가 없을시에는 모든 학생들은 모두 같은 절차를 지나오거나 뒤로 밀려나게 된다. 소설은 자신이 품을 꿈이 무엇인지 묻게 하며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지금의 당신은 어떠한 노력을 하고 있는지 혹 그것이 잘못된 것은 아닌지를 되짚어보게 한다. 그리고 꿈을 향해 달려나가는 것, 그것은 두렵지않음을 알려준다.

 

 내게 있어 돌아가고 싶은 시절이란, 없다. 그렇다하여 결코 후회없는 생의 길목을 걸어왔다고는 말할 수 없다. 다만, 기억하고 있는 모든것들을 제치고 솔선수범하여 아픈것들만이 그득한 추억길을 걸으며 지금의 나를 채찍질 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인간은 그저 추억하고 싶은 것만 가슴이 묻고 살아도 꽤 괜찮은 생명체다. 아쉬운 건 그저, 내가 책을 읽기 시작했을무렵 내게 맞는 성장소설을 단 한권도 읽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럼으로 나는 뒤늦게 문득이 생각날때마다 청소년 문학을 들춰본다. 그것이 내게는 지나 온 시절을 가볍게 툭툭 털어내며 현재의, 지금의 나를 가다듬을 수 있는  비루한 방법이기도 하다. 재밌는 책, 말 그대로 순박하게 읽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