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를 마시며,
서재 글 하나 하나를 눈여겨 보는데 프레이야님의 페이퍼의 실린
김경주라는 이름에 문득, 한참이나 잊고 지냈던 기형도 전집이 생각나
책장을 훑어보다 없다, 라는 말과 동시에 의자에서 일어났다.
한 권 한 권 제껴보고 들쳐보며 찾는데도 없어, 거실로 달려나가
이브자리를 훑고 다시 서재로 와 컴퓨터 주변을 살피는데 없어, 찬 바닥에
탑을 이룬 책더미를 모두 쓰러트리고 나서야 기어코 오랜만의 외출을 한
그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보지 못했다는 말과, 술을 마셨느냐 묻는 그이에 말에
정말 보지 못했느냐 물었고 아직 마시는 중이지만 그만 마시겠다고 대답했다.
잘 찾아보라 말해주었지만 어디에도 없다고, 혹 내가 술에 취해
버리거나 태우거나 베란다 밖으로 던지지는 않았냐고 물었다.
순간, 알 수 없는 그이의 침묵에 덜컥 마음이 급해져 눈물이 나려는데,
넌 그런 아이가 아니야, 지금 갈게. 가서 찾아줄게.
얌전하게 티비보고 있어. 응, 은주야? 하며, 그이가 대답했다.
에쿠니 가오리와 함께 집필했던
냉정과 열정사이를 마지막으로 더이상의
그의 작품은 읽지 않았다. 간간히 새 책 소식을
듣기는 했지만 구태여 찾아 읽거나 필요 혹은
의무적으로 읽을 기회조차도 없었다.
그에 반해, 냉정과 열정사이를 계기로 알게 된
에쿠니 가오리의 (두 작가 모두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책은 모조리 사들였다.
참 대조적이었지만 츠지 히토나리라는
작가를 좋아 할 만한 건덕지(?)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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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와의 본질은 어디로 간 것일까 생각해보았다. 오타와를 이루고 있던, 존재를 구성하고 있던 근본은 어디로 간 것일까. 오토와의 본질이 사라졌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정말로 모든 것이 사라져버렸다면 미노루를 이토록 혼란스럽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흐르는 눈물은 삶에서 죽음으로의 육체적인 이별을 아쉬워하는 것이다. 오토와의 존재의 본질은 어딘가로 비상해 그대로 보존되어 있을 터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자신이 이런 생각을 할 수가 없을 것이다. 정말로 사라진 것이라면 내 기억에서도 그 존재가 사라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 p.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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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이유를 묻고 있다. 우리는 왜 태어났으며 왜 죽어야하는지, 죽음이란것이 숙명이라면우리는 왜 태어났는지. 책은, 주인공인 철포장이 미노루의 죽음으로 시작해, 사는 동안의 생의 과정 그리고 다시금 죽음으로 마무리된다. 그리고 책은, 작가 본인의 조부인 이마무라 유타카의 생을 모델로 한 실제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사실,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작위적인 느낌을 떨칠수가 없었는데 이야기를 끝내고 작가의 말을 읽는데 작위적으로 느꼈던 부분이 사실이라는 말에 순간적으로 부닥친 아찔함에 몸을 떨었다. 유골을 갈아, 골불을 만든다니 상상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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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사람이란 다 죽게 돼 있다. 죽는 게 다지. 그걸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극락이란 걸 만들어낸 거야. 극락이란 분명히 있을 거다. 하지만 그건 살아 있는 사람들의 마음속에서야. 죽은 사람들은 그런 것과 아무런 상관이 없지. 죽으면 이 세상의 것들과는 모두 무관해지니까. p.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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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부를 모델로 삼은 책이라지만 허구성 또한 짙은 것이 사실이다. 사후 세계를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전생과 성불 그리고 죽은 혼의 부활에 대해서는 죽음 그 후의 이야기로 가볍게 풀어낸다. 어린 나이로 시작되는 미노루의 삶의 과정은 시대적인 영향(제1,2차 세계대전)을 받고 눈을 깜박이는 횟수만큼이나 절대적 혹은 상대적인 죽음의 본질에 대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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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어둠 속을 다니다 보면 알 수 있지. 현실같은 건 애초에 없었다는 것을. 난 벌써 30년이나 이렇게 나룻배를 젓고 있다. 지금까지 몇만 명이나 되는 사람을 반대편 기슭에다 날랐지. 그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의미 같은 건 없겠지. 그저 셀 수 없을 만큼 이쪽과 저쪽을 왔다 갔다 했을 뿐이야. 그러다가 나도 언젠가는 죽겠지. 하야토가 갑자기 사라진 것처럼 나도 얼마 안 가 사라질 거다. 내가 노를 젓지 못하게 되거나 치쿠고 강에 나룻배가 없어진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아무것도 바뀌지 않거나 몽땅 사라지거나 어느 한쪽일 게야. p.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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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수많은 존재의 이유에 대한 질문을 던지지만 이러한 의문을 던지고 해답을 찾는것이야말로 존재의 이유일지도 모른다는 작가의 결론은 결국 삶과 죽음 그 어떤것에도 해답이 없다고 말한다. 자아의 정체성이 불분명하게 내 정수리 끄트머리에 내리 꽂혔을때부터 난 죽음을 생각하고 그리 많지 않은 나이에 '기필코' 수많은 요절한 작가들처럼 죽어버리고 말겠다고 다짐했다. 별 거 아니라고 생각했고, 나는 정말 죽음이라는 것이 별 거 아닌것처럼 행동해왔다. 그리고 잊고 그리고 살았다. 가볍게, 아주 가볍웁게, 별 일 아닌 것 처럼. 참, 괜찮은 책이다.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뭉개뭉개 흩어지는 무게없는 솜털로 성불시켰다. 츠지 히토나리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하게 한 몫 했던 우유부단한 문체가 없어졌다. 놀랍다.
덧글1. 아, 그런데 숲에 대한 질문에는 대답을 해주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