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 마음산책 짧은 소설
이기호 지음, 박선경 그림 / 마음산책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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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프를 그릴 때마다 원점에 주목한다. 가로축의 값이 0일 때 세로축도 0이 되는가. 원점에서 출발하는 그래프도 있지만 애매하게 시작하는 것도 다수이기 때문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어느 지점에선가 제로 상태에서 시작은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운동하고 있는 물체의 운동을 분석하려면 그래프는 중간부터 그려질 수밖에 없다.

등속직선운동의 그래프를 그릴 때면 웃음이 나온다. 시간-속력 그래프 때문이다. 일정한 속력으로 운동하는 상황이니 그래프는 가로축과 나란한 모양이다. 이 때 원점에서는 순간 이동하듯 뜬금없이 특정 속력을 나타내는 점을 찍어야 한다. 정지 상태에서 운동 상태로 변화하는 과정은 깔끔하게 편집된다. 그 구간은 등속이 아니니까. 그래프를 설명할 때마다 단서를 붙인다. 어쨌든 출발해서 이미 등속 운동하는 물체의 어느 한 장면을 분석한 것이라고.

소설 쓰는 행위가 다양한 그래프를 그리는 과정이라면 원점을 시작하는 포인트는 작가의 관점에 따라 달라진다. 어디부터를 출발 지점으로 정해 삶의 모습을 드러낼 것인지는 그리는 사람의 몫이니까. 입체적인 삶의 장면을 그래프로 단순화한다는 것 자체가 억지스럽지만 바라보는 시각에서의 장면은 어차피 평면이니. 우리는 평면으로 이루어진 장면 장면을 모자이크로 짜깁기한 모습을 입체로 상상할 뿐이다. 인공위성에서 촬영한 수많은 사진들을 모아서 세계 지도를 완성하는 과정처럼.

 

40편의 짧은 소설을 접하면서 2차원 그래프를 떠올린다. 입체적으로 완성된 깔끔한 모습 이전의, 짜깁기하기 전의 초판본을 본 느낌이랄까. 아이돌을 향한 오십대 아저씨의 팬심, 취업을 못한 청년들이 짊어진 일상의 무게, 기혼 여성의 삶과 공간, 자살을 결심한 사내, SNS 안에 투영된 모습과 현실과의 괴리, 반려 동물의 의미, 가족의 상실로 인한 아픔, 부모와 자식의 관계,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삶에서의 착각, 가장의 역할이 주는 묵직함, 아파트 주민의 이기심, 귀농에의 무모한 도전, 폐교되는 시골 학교, 사회적 강자에 대한 상대적인 비애감, 한국 사회의 자화상 등을 통해 주변의 평범한 삶을 짤막하게 그려냈다. 소설 속 이야기들은 다양하지만 굵직한 테마는 두 가지 정도로 가닥이 잡힌다. 가족과 직업이다.

가족 구성원과의 관계가 그려진 소설들 중 부모님에 관한 것은 특히 자식들이 놓치고 있는 것을 날카롭게 풍자한다. 당신들도 부모님이기 전에 한 명의 인간이었음을 돌아보게 된다. 나는 부모님께 어떻게 하고 있나, 늦기 전에 더욱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중간 중간에 밀려오는 찡함 위에 얹는다.

직업과 관련된 소설들은 직업을 얻기 위한 청년들의 간절함과 직업을 가졌다 해도 그 고달픔이 자아내는 갈등과 사회적인 장벽을 현실감 있게 그린다. 뉴스에서 종종 접하던 사연들이기에 소설인지 다큐인지 혼동이 될 만큼 씁쓸하다. ‘어찌된 게 이놈의 나라는 한번 눈높이를 낮추면 영원히 그 눈높이에 맞춰 살아야만 했다. (중략) 내 땀과 대기업 다니는 친구들의 땀의 무게가 다른 나라.(p26)’는 먼 나라 이웃 나라가 아니라 바로 내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이니까.

대학 졸업을 반 학기 남겨둔 딸의 일상은 요즘 숨 막히도록 바쁘다. 학원에서 토익과 오픽 준비를 하느라 근 9시간을 영어 공부에 매달린다. 오늘 오후에는 면접용 정장을 사러 함께 옷 가게에 다녀왔다. 구멍 날 때까지 옷을 입으리라 결심한 엄마의 옷장에는 정장 비스무리한 것도 없기에. 50%, 80% 할인된 가격이 그 가격이라니! 이거 할인된 가격인가요? 몇 번이나 묻는다. 36만 원짜리 세트는 핏도 좋고 가볍지만 가격이 마음에 안 들고, 22만 원짜리는 가격은 마음에 들지만 다소 무거운 모양이다. 결국 36만 원짜리로 낙찰을 본다. 딸아이가 매장을 나오면서 미안한 표정으로 말한다. “에휴! 돈을 벌기 위해 돈을 써야 한다니!” 옷이 문제가 아니라 치열한 취업의 문을 향해 걸어갈 딸내미를 생각하니 안쓰럽고 짠하다. 소설 속 인물의 갈등과 비애가 남의 일 같지가 않다. 한여름, 은행에서 볼 일을 본 후 문을 열고나올 때 확 끼얹어지는 열기처럼 현실이 피부에 직접 와 닿는 느낌이다.

 

웃음이 잔뜩 담긴 소설일 줄 알았다.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는 제목 역시 뚝 떼어놓고 볼 때에는 오리털 패딩의 모자 털처럼 가뿐하고 부드러웠다. 하지만 겉표지를 열고 들어가니 의미는 180도 달랐다. ‘눈높이를 낮추라는 말과 땀에서 배우라는 말, 그 말들을 들을 때마다 우리는 점점 무표정하게 변해갔고, 결국은 지금 준수가 짓고 있는 저 표정, 그것이 평상시 얼굴이 되고 말았다. 웬만하면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p26)’ 수많은 좌절과 삶에 대한 쓰라림으로 굳은살처럼 되어버린 표정이었다. 내 아이가 가까운 미래에 이런 표정을 짓게 될까봐 나는 이 문장이 무서웠다. 아무렇지 않은 듯 살다가 커다란 고통조차 감각할 수 없는 3도 화상을 입을까봐 두렵다.

책 표지의 그림이 <아파트먼트 세르파>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표지를 보는 것조차 편하지 않았다. 마음 아프지만 아주 적절한 표현이었다. 배달원들의 엘리베이터 이용을 금지시키는 아파트 주민들의 이기심은  아파트에 사니까 아파트만 생각해서 그런 거 아닐까요?(p143)’라는 답변으로 설명된다. 마음이 차갑고 높고 딱딱한 건물로 화석화되어버린 걸까.

 

소설들의 초반부를 읽을 때에는 뭐 이런 마무리가 있나 싶었다. 쭉 걸어가다 뜬금없이 낭떠러지에 도달한 기분, 도착 지점이 없는 듯해서 찜찜했다. 개운한 카타르시스도 없고 웃기다고 하기도 애매했고, 마냥 슬프지도 않았다. 최규석의 만화 울기엔 좀 애매한이 연상되었다. 그런데, 후반부의 한 문장을 읽는 순간 뭔가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어쩐지 자신이 원고지가 아닌 삶 속에서 소설을 쓰고 있는 기분이었다네.(p211)’ 삶 자체가 애매한 대상이므로 그 단편을 담은 소설 역시 애매할 수밖에 없다. 깔끔한 마무리가 오히려 이상한 것이다. 삶은 지금 이 순간도 나를, 주변 사람들을 통과한다. 그것은 단 한 번도 멈춘 적이 없다. 소설이란 삶의 이야기를 중간에 잘라내어 옮기는 작업이니 시작도, 마무리도 어쩐지 어정쩡한 모습인지도 모른다. 소설가란 그가 생각한 시점을 원점으로 하여 끝없이 이어지는 삶의 중간 즈음에 그래프 그리기를 멈출 수밖에 없다. 다만 앞으로 그려질 누군가의 소설 속 그래프의 선은 보다 부드럽고 촉촉했으면 좋겠다. 낮은 곳에 있는 삶이 그대로 투영되는 소설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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