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시끄러운 고독
보후밀 흐라발 지음, 이창실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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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 만의 일타삼피로 포털 메인 화면까지 바뀌었다. 지구와 가까워져 14% 더 크게 30% 더 밝게 보이는 슈퍼문, 한 달에 뜨는 두 번째 보름달 블루문, 붉은 색으로 보이는 개기월식 블러드문. 2018131일 오늘밤 일어난다는 천문 현상이다. 수도꼭지의 냉수와 온수 표식처럼 블루와 블러드는 정반대의 색깔을 상징한다. 실질적으로 달은 붉은 빛으로 보이겠지만, 보이는 것과 상징하는 것이 합치되는 데다 커다랗고 밝기까지 하니 사뭇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긴다. 지금 내 머릿속과 비슷하다는 생각에 잠시 웃는다. 정반대의 개념이 마구 들어가 커다랗게 부풀어 오른 상황이랄까.

 

묘한 느낌을 주는 책이다. 커다란 양팔 저울이 머릿속에 들어앉은 기분이다. 정반대 개념들이 양쪽 접시에 가득 들어앉아 균형을 이룰만한 무게감으로 영점을 오락가락한다. 혼란이라고 표현하기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평정심을 갖게 된 것도 아니다. 깊은 바다 속을 밑바닥까지 내려갔다 올 수 있다면 이런 느낌이 들까? 해수는 깊이에 따른 수온 분포를 기준으로 혼합층, 수온약층, 심해층으로 나뉜다. 혼합층은 태양 복사 에너지의 영향으로 가장 온도가 높으면서 바람으로 인하여 물이 섞이기 때문에 수온이 일정하다. 중간에 있는 수온약층은 수온이 갑자기 도약하듯 낮아지는 층이며, 빛도 도달하지 않고 일정한 온도의 고요를 간직한 층이 심해층이다. 내 사유의 깊이는 지극히 얕은 혼합층이었는데, 수온약층을 지나 가장 묵직한 심해층을 마주하고 온 기분이다.

 

정반대의 출발은 책의 두께로부터 시작한다. 본문만 124, 옮긴이의 말까지 확장해도 고작 142쪽이다. 하루 정도면 가뿐히 읽을 줄 알았다. 그런데 첫 장부터 만만치 않다. 마지막 장을 덮는 데 일주일 걸렸다. 주인공을 따라 신화작인 인물들, 고대 그리스의 건축 양식, 작가와 철학자, 이와 관련된 일화를 지나오면서 나의 삶이 좀 더 풍족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몰랐던 인물을 새롭게 알게 되었고, 이름을 알았다 해도 왜 이 시점에서 이 인물이 언급되었을까 궁금하여 검색을 하다 보니 더욱 걸음이 느려졌다. 글자를 읽은 시간보다 의미를 곱씹은 시간이 훨씬 길었다. ‘태양만이 흑점을 지닐 권리가 있다.(p7)’ 라 말했다는 괴테의 단 한 줄부터 몇 십 분이 걸렸다. 마음에 방점이 찍힌 부분은 흑점권리이다. 흑점을 지니는 것이 권리라니! 흑점에 의미를 부여하니 이토록 묵직할 수가 없는 거다. 강한 자기장이 형성되어 있는 곳, 태양 중심으로부터 올라오는 뜨거운 열을 차단하여 상대적으로 주변보다 검게 보이는, 실제로는 4,500도의 온도를 지닌 뜨거운 방패이다. 삶의 뜨거운 어둠을 간직하려면 자신을 태워서 주변을 밝히는 태양 정도나 되어야 한다는 말로 해석했다.

 

제목 앞에서도 한참을 서성였다. ‘내가 혼자인 건 오로지 생각들로 조밀하게 채워진 고독 속에 살기 위해서다.(p18)’ 여러 가지 생각들이 가득한 상황을 묘사하는 이 문장을 보니 시끄럽다고 표현한 제목이 이해된다.

1인칭 시점에서 삼십오 년째 폐지를 압축하는 일을 해온 한탸의 삶을 담담하게 그렸다. 처음부터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정반대의 개념이 겹쳐진 순간들을 수없이 만났다. 그 문턱마다 쉼표를 찍어가며 의미를 곱씹었다. 폐지를 압축하는 일을 하면서 파괴 행위에 깃든 아름다움을 이해하기 시작했다.(p23)’ 했을 때, ‘글을 쓸 줄 안다면, 사람들의 지극한 불행과 지극한 행복에 대한 책을 쓰겠다.(p12)’ 했을 때, ‘시궁창을 철벅이며 걷다가 눈물이 가득 고인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면 이제껏 한 번도 보거나 깨닫지 못했던 것이 불쑥 시야에 들어온다.(p38)’ 했을 때, 4장에서 예수를 미래로의 전진으로 노자를 근원으로의 후퇴로 비교했을 때, ‘프로그레수스 아드 오리기넴(근원으로의 전진)과 레그레수스 아드 푸투룸(미래로의 후퇴)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걸 이제야 깨닫기 시작한다.(p70)’ 했을 때, 폐지 압축기를 작동시키는 녹색 버튼과 붉은색 버튼으로 전진과 후진을 반복하면서 이것이 세상의 기본적인 움직임(p44)’ 이라 했을 때, 6장에서 괴물 같은 거대 압축기를 작동시키면서 책을 함부로 대하는 젊은이들을 보며 무엇보다 그들이 낀 장갑에 나는 모욕을 느꼈다. 종이의 감촉을 더 잘 느끼고 두 손 가득 음미하기 위해 나는 절대로 장갑을 끼지 않았으니까.(p89)’ 라 했을 때.

 

종이로 된 책의 의미를 생각한다. 전자책보다는 종이 냄새가 나는 책을 좋아한다. 주인공처럼 종이의 감촉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종이의 근원을 생각하면 망설여지는 느낌이 있다. 종이는 나무를 재료로 만들어졌으니 종이책을 만들려면 그만큼 나무의 생명을 파괴해야 한다는 점이 생각나서이다. 자주 가는 커피숍 화장실에는 이런 문구가 있다. 화장지 하루 한 장을 아끼면 일 년에 나무 한 그루를 살릴 수 있다는. 나무의 죽음으로 책이 생명력을 가지게 되니, 먹이사슬처럼 여겨야 하는 걸까. 세상은 이렇게 정반대의 작용들로 채워져 있는 지도 모르겠다.

 

작가에게 삶의 의미는 어떠했을까. 마지막 8장에서 앞서 나온 정반대의 개념들이 중첩되는 결론을 발견한다. ‘전진이 곧 후퇴인 셈이지.(p119)’ 라 생각한 주인공이 스스로 선택한 죽음의 순간에 들고 있던 책은 의미가 깊다. 삶과 죽음의 일체를 말하며 과거 지향적인 예언자로 불리던, 낭만파를 가장 순수하게 표현했다는 독일의 시인 노발리스의 책. 인터넷 자료로 그를 찾아보며 자연스레 주인공의 삶과 죽음을 떠올린다. 전진을 의미하는 녹색 버튼을 누르며 삼십오 년 동안 애착을 갖고 일하던 폐지 압축기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은 먹먹한 장엄함으로 물컹하다. 책 속에 등장하는 개념인 프로그레수스 아드 오리기넴’, 근원으로의 전진이다.

인간의 몸은 모래시계라는 생각이 든다. 위에 있던 것이 밑으로 가고 밑에 있던 것이 위로 가며, 두 개의 삼각형이 서로 통한다.(p124)’ 라는 말을 다시 음미한다. 모래시계를 계속 작동시키려면 손으로 직접 들어 방향을 바꾸어주어야 한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여 전진하거나 후퇴하듯이. 나는 이 모래시계라는 말이 이 책을 관통하는 핵심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주인공은 그 무엇도 나를 내 지하실에서 몰아낼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자리를 바꾸게 할 수 없을 것이다.(p131)’ 라 독백하며 인간의 탄생 직전, 자궁에서 웅크린 생명의 자세로 죽음을 맞이한다. 그 순간은 죽음과 삶이 중첩되는, 지극한 불행인 동시에 지극한 행복이었을, 모래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바로 그 순간이었을 것이다.

 

프라하의 봄이후 이십여 년 간 출판이 금지되었어도 끝내 조국을 떠나지 않고 체코어로 작품을 썼다는 작가. 책의 저작권에 대한 설명을 보니 1980년이다. 40여 년 전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뭉클한 깊이감을 주다니! 고전의 가치가 이런 것이구나 싶다.

저자의 마지막 순간을 생각한다.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려다 5층 창문에서 떨어져 사망했다는. 주인공 한탸의 죽음이 다시 떠오른다. 작가의 죽음, 그것은 지극한 불행이었을까 지극한 행복이었을까. 문득 그의 죽음 역시 삶과 겹쳐지는 상황이라는 스친다. 자유를 상징하는 비둘기의 삶을 위해 죽음을 맞이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감히 지극한 행복이라 표현해도 되지 않을까.

 

슈퍼 블루 블러드문. 내 일생에 다시 오지 않을 지도 모를 천문현상이 일어나는 날이다. 1월의 마지막 날, 삶과 죽음의 의미가 깊게 담긴 책에 대한 느낌을 정리한다는 사실이 뭉클하면서 묘하다. 다시 모래시계를 돌리며 출발하는 절묘한 순간이 시작되는 느낌이랄까. 이 얇은 책이 담고 있는 심해를 갓 빠져나와 새로 호흡하는 기분으로 달을 볼 수 있을 것만 같다.

 

 

p51 1째 줄, 같은 해 같은 날 태어난 셸링과 헤겔 셸링은 17751월에, 헤겔은 17708월에 태어났다던데...

p51 마지막 줄, 중성자와 양자 양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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