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되지 않은 노동 - 숨겨진 여성의 일 이야기
여성노동자 글쓰기 모임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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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정직하다. 나이조차 속일 수 없이 전해지는 느낌. 날밤을 꼴딱 세워도 끄떡없던 몸은 30대를 지나 40대를 거쳐 50대를 향하면서 고스란히 세월을 담는다. 눈꺼풀이 뻑뻑하고 서서히 나른해진다. 밀렸던 드라마 몇 편 보고, 책 몇 장 읽고, 토론자료 조금 만들었을 뿐인데, 좋아하는 일을 할 때조차도 제대로 버텨내지 못하는 저질 체력 같으니라고.

.... 좋아하는 일만 하고 싶다. 한숨을 푹 내쉰다. 의미 없다고 생각되는 일이 점점 하기 싫어지던 요즘, 과속방지턱을 마주친 듯 이 책을 만났다.

 

한 사람의 얼굴은 결국 그가 사는 세상의 풍경을 송두리째 보여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p11)

어떤 표정이었더라? 잘 생각나지 않는다. 오늘 하루도 일하고 있는 여성들과 마주쳤고 심지어는 몇 마디 대화까지 해 보았건만, 기억에 없다. 그들이 어떤 얼굴이었는지. 이제껏 주변 사람들의 무엇을 보아왔던 걸까.

책 안에는 우리 사회를 배경처럼 채우고 있는 수많은 여성들이 등장하고, 그녀들의 일이야기는 비에 젖어 드러나는 아스팔트의 균열처럼 선명하게 도드라진다. 햇빛 짱짱한 날에는 보이지 않는 섬세한 날카로움이다. 행사도우미, 센터의 운동 강사, 야쿠르트 판매원, 톨게이트 노동자, 대리운전기사, 산모도우미, 초등 돌봄 교실 교사, 보육교사, 장애인 활동 보조인, 간병인, 하청공장 노동자, 요양보호사, 장애 여성, 싱글맘, 이주노동자, 시각장애 안마사, 룸메이드, 급식 조리원, 보조출연자 등.

그 옛날 어머니께서 뛰어드셨던 노동의 현장에서부터 내 일터에서 마주쳤던 수많은 여성들이 생각난다. 세상에는 마음 아리게 하는 사람이 왜 이리도 많은 걸까. 좁았던 시야를 다시 돌아보게 되었고 괜스레 미안해졌다.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건 우물 안에 있던 자만이었다. 무엇을 향한 건지 설명할 수 없는, 누구에게 미안한지도 명확하지 않았지만,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짠해지는 느낌이 전해져 왔다.

 

사람에게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지, 사람을 돌본다는 것이 어떻게 이어지며 마땅히 책임져야 하는 일인지 그이는 체득하고 있다. 그래서 두렵지 않다. 자신의 노동과 다른 사람의 노동의 힘을 믿기 때문이다. 그 노동들이 서로를 살리고 지켜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저 사람이 바로 내 삶이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p152)

숨겨진 여성들의 이야기를 그들의 목소리로 생생하게 들려줌으로써 적나라한 현실을 바라보게 한다는 점도 좋았지만, 그들이 노동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어떤 마음으로 일하고 있는가를 알려준 점이 특히 좋았다. 그것은 일하면서 어린 아이처럼 투덜댔던 나를 다시 한 번 반성하게 했다.

 

앞으로는 ** 해야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초등학교 때 썼던 그림일기의 마지막 부분처럼 2가지 결심을 하였다.

첫째, 열심히 일하기. , 의미 없는 일은 과감하게 자르고 내게도, 세상에도 의미 있는 일을 열심히 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둘째, 알리거나 알아주거나. 여성노동자글쓰기모임의 13명이 이 책에 썼던 것처럼, 여성들의 이야기를 자세히 모르는 주변 사람들에게 알릴 것이다. 기록되지 않은 그들의 아픔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기라도 한다면 자그마한 위로라도 되지 않을까.

 

책표지를 가만히 들여다본다. 커다랗게 그어진 두 개의 X가 흐릿하다. 여성의 성염색체 XX를 나타낸 것일까. 거부당하는 수많은 여성들을 대변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안된다며, 할 수 없다며 좌절 속에서 희미해져버린 창살 같기도 하다. 이 글자들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것은 우리 모두의 몫이겠지.

거울을 본다. 새삼 궁금해진다. 나는 어떤 표정으로 일하고 있는 걸까. 일하는 매순간 내 표정이 살아있기를 바란다. 더불어 주변의 표정도 생생해지기를. 그 얼굴이 그려내는 풍경이 행복으로 가득하기를. 그래서 두 개의 X가 당당하고 선명하게 기록되는 어느 하루로 이어져오기를.

 

 

*아주 사소하지만..

p2 : 발행연도, 2016년인데 2015년으로

p192 : 5번째 줄, 나타샤인데 나탸샤로 적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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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6-02-13 1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비종님 , 좋은 주말 되세요.^^

나비종 2016-02-13 19:56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덕분에 더 좋은 주말이 되었습니다^^

서니데이 2016-02-14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비종님 , 좋은 저녁시간 되세요.^^

나비종 2016-02-14 20:18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도 행복한 시간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