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전 - 법정이 묻고 성철이 답하다
성철.법정 지음 / 책읽는섬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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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향제를 샀다. 은은한 라벤더 향에 마음이 편안해진다. 통을 들고 살짝 흔들어본다. 손에도 냄새가 짙게 밴다. 물끄러미 바라보다 중요한 사실을 깨닫는다. 이거였구나! 향수병 주변에 있으면 나에게도 향기가 배는 거였어! 다시 한 번 책을 펼친다. 책 속의 문장들이 처음과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종교에 대한 나의 시각은 회의적이었다. ‘수행이란 결국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닌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불교의 수행 방식이 철저한 고행을 통한 깨우침이라면 도대체 어느 지점에서 남을 위할 수 있다는 걸까. 스스로 먹을 것을 구하지 않고 중생들에게서 제공받는다는 것은 얼마나 이기적인가. 먹고 살기 위해 몸을 움직이며 아등바등해야 하는 사람들을 수행자보다 못하다 할 수 있을까. 기도해주는 것이 진정 그들을 위하는 길일까. 기도를 해서 결국 편안해지는 것은 기도하는 이 아닌가.’ 이런 의문들로 가득한 나는 그리 탐탁지 않은 시선으로 종교인들을 삐딱하게 바라보곤 했다.

 

법정 스님이 묻고 성철 스님이 답한 책. 두 번째로 책을 읽으며 종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았다. 처음 읽었을 때에는 글자들이 마음의 표피만을 두드렸다면, 두 번째에는 그 아래 진피까지 스며들어온 느낌이다. 처음과는 다른 의미들이 눈 녹듯이 마음으로 흘러들었다.

스님의 존재 의미를 나만의 방식으로 해석해본다. 향수병처럼 그 곁에 있으면 뿜어져 나오는 향기로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주고, 나아가 나도 향기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는, 향기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는 존재라고. 스님의 가르침은 향기로운 사람이 되기 위한 길을 알려주는 내비게이션과 같은 의미라고. ‘나도 했어. 너도 될 거야. 해 봐.’ 라며 용기를 주는.

책속에서 종교적인 내용 못지않게 자주 등장하는 이란 말은 끊임없이 다른 이들을 바라보며 돕는 사람이 되라는 가르침이었다. 그러기위해서는 자신을 먼저 비우고, 욕심을 버리는 행동이 행해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제목의 의미를 다시 해석해본다. 처음에는 <설전>이라고 해서 논쟁의 의미를 지녔다고 여겼다. 두 스님이 종교적인 견해를 열띠게 주고받으면서 진리를 파헤치는, 대략 이런 내용이리라 짐작했다. 자세히 바라보니 '눈 설'자를 쓰는 전쟁이다. 새삼 한자 사전을 찾아본다. ‘雪’이란 한자가 더러움을 씻다라는 의미도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세상의 번뇌가 일으키는 더러운 욕심을 씻기 위한 대화의 치열함을 의미하는 걸까. 눈이 내리는 것처럼 고요하고 냉철하게 이루어지는 전쟁을 상상하니 참으로 적절한 제목이다 싶다.

 

눈을 배경으로 수록된 사진들도 참 좋았다. 그림이 아니라 사진이라는 점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사진에 담겨있다는 것은 어딘가에 존재하는 현실이라는 뜻이니. 현실에서도 수행을 한다면 충분히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불교의 메시지와 맞닿아 있는 것만 같아서 좋았다. 책장을 넘기는 순간 158페이지와 159페이지에 펼쳐진 사진은 보는 순간 헉! 감탄사가 나왔다. 마음이 저절로 깨끗하게 씻기는 기분이었다. 새하얀 눈과 맑은 물에 비친 푸르른 하늘, 그 경계에 고요한 생명체인 나무가 존재하는 장면이다. 책 속에 등장하는 명경이란 말이 이런 느낌 비슷하지 않을까.

 

적게 드시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다른 이에게 빚지는 기분, 한 때는 모두 생명이었던 음식을 섭취할 수밖에 없는 미안함 때문이었다. 음식을 남기지 않는 불문율은 이런 맥락으로 보면 남기지 않는것이 아니라 남길 수 없는것이었다.

마음을 맑게 하기 위해 노력하려 한다. 향기로운 사람이 되어 주변을 향기롭게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적게 자고, 적게 말하고, 적게 먹고, 지식에 안주하지 말고, 제자리를 지키라는 가르침(p190)’을 내비게이션인 듯 따라가는, 그런 일상을 살아가고자 한다. 그러다보면 희미한 들꽃 향기라도 나지 않을까 해서. 존재 자체가 향기가 된다는 것, 정말 의미 있는 삶인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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