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신형철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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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유심히 바라볼 때가 있다. 얼굴을 보지 않아도 나이와 표정이 짐작될 때가 많다. 뒷모습의 무엇이 그를 그런 모습이게 하는 걸까. 읽기도 전에 며칠 동안은 책표지만 바라보았다. 오도카니 앉아있는 뒷모습이 많은 말들을 담고 있었다. 제목과 잘 어우러지는 그림이구나 싶었다.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 나가면 온 세상 어린이들 다 만나고 오겠죠? 그걸 증명하려고 마구 걸어갔던 인간이 마젤란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시선 끝을 쭉 연장하면 지구를 한 바퀴 돌아 자신의 뒤통수도 볼 수 있겠네요? 지구가 둥근 이유를 설명하며 수업 시간에 했던 말이다. 아이들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웃었다.

 

언제 슬프더라. ‘슬픔이란 글자를 바라보며 나의 슬픔을 더듬는다. 슬픔과 가깝다고 여기던 장면들이 떠오른다. 그럭저럭 순간적인 즐거움으로 찢어진 마음을 기워내며 걸어왔다. 슬픔인지 외로움인지 콕 집어서 표현하기는 어려웠지만 내 안 깊숙이 존재감을 나타내는 감정이 따끔거렸다. 그것은 종종 표면으로 떠올라 온몸을 감싸는 피부처럼 영혼을 감쌌다. 삶의 바닥에 머무르며 중력이라도 되는 양 즐거운 순간들을 끌어당겼다. 단편적인 서운함이나 쓸쓸함 같은 거 말고, 가슴 깊은 곳에서 느리게 흐르는 묵직한 감정. 차마 떨치지 못하고 지그시 내리누르는 느낌을 그러안은 채 그렁그렁 서성이는 발자국 같은 것. 이 감정의 정체를, 슬픔이려니 했다.

왜 슬펐던 걸까. 책의 말미에서 질문에 대한 답을 길어 올린다. ‘한때 내가 가장 사랑한다고 믿은 대상이 이제는 내 삶의 무의미를 극명하게 증명하는 것처럼 보일 때의 그 비감(p407)’ 글자들이 나의 시선을 타고 올라와 심장에 담기는 순간, 몇 주 동안 어떤 글도 써내려갈 수 없었다. 내 슬픔이 어디에서 시작되어 흐르고 있는지 알 것 같아서. 흐릿하던 슬픔의 실체가 선명해졌다. 많은 장면들 속에 한 사람이 있었다. 그래, 무의미였구나, 무의미였어. 꽤 오랜 시간, 삶의 목표로 생각해왔던 사랑이 무너져 내렸다는 생각에 나는, 이미 깨어져버린 파편들을 꼭 쥐고 그 허무함에 아팠던 것일까. ‘인간이 배울 만한 가장 소중한 것과 인간이 배우기 가장 어려운 것은 정확히 같다. 그것은 바로 타인의 슬픔이다.(p27)’ 이 문장을 보며 생각한다. 인간이 가장 먼저 배워야 할 것은 자신의 슬픔이라고.

 

저자가 여러 매체에 연재했던 85편의 글들을 슬픔, 소설, 사회, , 문화등의 내용으로 분류하여 실은 산문집이다. 문체나 내용을 표현하는 방식은 내가 선호하는 방식이 아니다. 진지한 글들을 읽다보니 건조해진 피부처럼 마음이 푸석하게 당겨졌다. 문장의 대구를 이루기 위해 작위적으로 삽입한 듯 느껴지는 문장 앞에서는 거부감이 일기도 했다. 나에게 재미있는 글은 아니었다. 마음을 훅 당기는 매력적인 유머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문장들은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다. 단지 내 마음에 맞지 않는 옷이었을 뿐, 충분히 높은 수준과 깊은 사유와 내공이 느껴지는 글들이었다.

‘<5> 넙치의 온전함에 대하여에 나온 세 가지 내용에 특히 공감했다.

첫째, 욕망과 사랑의 구조적 차이에 대해 서술한 내용이다. ‘우리가 무엇을 갖고 있는지가 중요한 것은 욕망의 세계다. (중략) 반면, 우리가 무엇을 갖고 있지 않은지가 중요한 것이 사랑의 세계다.(p331)’ 이토록 정확한 정의가 있을까. 내게로 다가오는 마음에 기대고 싶은 생각이 들 경우, 상대가 누구냐는 결정적으로 중요한 요인이 아니다. 나를 향하는 상대의 마음으로 나의 외로움을 채울 수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니 이런 종류의 갈망은 욕망에 가깝다. 한참을 거슬러 나의 결여와 그의 결여가 만나던 순간도 떠오른다. 과거형이지만 무의미 이전의 한 순간이나마 사랑이었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뜨거워진다.

둘째, 휴대폰에 대해 언급한 내용이다. ‘원래 당신은 하나의 얼굴이었다. (중략) 전화가 발명된 이후에 당신은 하나의 음성이 되었다. (중략) 휴대폰 덕분에 당신은 마침내 글자가 되었다.(p351~352)’ 언젠가부터 가까운 지인들과 주로 카카오 톡으로 대화하고 안부를 주고받게 되었다. 목소리를 들어본 기억이 대부분 꽤 오래전의 것이다. 휴대폰을 열어 대화창의 글자들을 휘리릭 되짚어본다. 글자가 되었다는 말이 손끝으로 와 닿는다. 차가운 액정 아래 존재하는 친구들이라니! 갑자기 소름이 돋는다.

셋째, 글을 쓰는 의미에 대한 내용이다. ‘내게 글을 쓴다는 것은 극도로 천천히 말한다는 것이다.(p385)’ 슬픔이 담긴 책을 읽으며 나의 슬픔에 한 걸음 다가갔다. 먹먹한 마음에 이번 달은 거의 글을 쓸 수 없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새벽에 일어나 떠오른 생각을 휴대폰 메모장에 저장했다. 퇴근 후 커피숍에 와서 천천히 문장을 다듬었다. 아주 오랜만에 시 한 편을 썼다. 생각이 정리되지 않아 며칠 째 붙들고 있던 이 리뷰도 오늘은 마무리하려 한다. 천천히 글을 적어 내려 가다보니 천천히 내딛는 산책처럼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노트북 옆에 놓인 책표지에 다시 눈길이 머문다. 뒷모습이 전해주는 느낌에 마음이 차분해진다. 김 서린 유리창 너머로 투영되는 조명을 바라보는 순간처럼 그림 속 인물의 삶이 번져 보인다. 인간의 삶은 그의 몸집보다 묵직하고 커다란가. ‘인간의 뒷모습이 인생의 앞모습이라는 것을.(p55)’ 말도 안 되는, 그 말도 안 될 상상이 이 문장을 본 순간 떠오른다. 내 시선의 끝이 투명하고 가느다란 화살표로 뻗어나가다 지구를 한 바퀴 돌아 뒷모습에 닿게 되는 상상이. 궁금해졌다. 나의 뒷모습은 어떤 삶을 담고 있을까. 세상을 향해 무슨 말을 건네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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