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피크닉
온다 리쿠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0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침 여덟 시부터 다음날 여덟 시까지 걷는 이 행사는, 밤중의 몇 시간짜리 선잠을 포함하여 전반은 단체보행, 후반은 자유보행으로 정해져 있었다. 전반은 문자 그대로 반별 이열종대로 걷지만, 자유보행은 전교생이 일제히 출발하여 모교의 골인지점으로 향한다. 그리고 전교생 중 몇 번째로 골인지점에 도착했는지 순위가 매겨진다. 물론 순위에 목숨 거는 것은 상위를 노리는 운동부 학생들뿐으로, 대부분의 학생들은 친한 친구끼리 이야기하면서 고등학교 시절의 추억만들기에 신경쓰는 것이 통례다.

나는 고다 다카코. 북고(北高)의 3학년. 올해의 보행제는 이제 고등학생으로서 마지막 행사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알게 되겠지만 내게는 아직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 같은 학교, 같은 반에 니시와키 도오루라는 이복형제가 있어. 우리의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아?

작년 보행제에서 함께 걸었던 '안나'라는 친구는 이렇게 말했어.

모두 함께 밤에 걷는다. 단지 그것뿐인데 말이야. 어째서 그것뿐인 것이, 이렇게 특별한 걸까.

늘 평범하게, 아무렇지도 않게 보행제에 참가하면서 1학년과 2학년을 보냈던 내게 안나의 저 말처럼 올해의 보행제는 특별하게 다가왔지.

깜깜한 밤과 동트는 아침을 거쳐서 지쳐서 쓰러질 때까지, 몸에 아무런 감각이 없어질 때까지 걸으면서 친구들과 보내본 적 있어?

누구에게나 선망의 대상이 되는 재색을 겸비한 퍼펙트걸도, 수많은 여학생들의  흠모의 눈길을 받는 잘생기고 공부잘하는 남학생도, 그리고 도오루와 나처럼 남에게 절대 먼저 말하지 못하는 비밀을 지니고 있는 이복형제들도 밤낮을 함께 걸으면서, 대열에서 낙오되거나 처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걸어가면서 그 고민들을 풀어 나가지.

 고작 하루 24시간 동안의 보행제이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걷는 것 그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면서도 그토록 어렵고 특별할 수 있는거야.

만약에 이런 경험을 공유하지 못했더라면 우리 모두는 어딘가 마음의 빗장을 하나씩 닫아 걸고 나의 상처를, 남의 상처를 알면서도 모르는 척, 또는 모르기에 다른 사람들을 내게 보여지는 그대로만 오해하면서 어른이 되어 버렸겠지.

하지만 80KM를 왕복해 걸으면서 하나씩 얽힌 인연의 고리들을 풀어 나가는 과정, 친구들을 사귀고 닫힌 마음문을 열고 대화를 하는 과정을 거쳤기에 고통스러운 보행제는 우리만의 '밤의 피크닉'이 되었지.

'밤의 피크닉'은 이제 끝. 이제 우리에게 남은 건 태양 아래를 끝없이 달려가는거야. 

지켜봐줘. 태양 아래 찬란하게 빛날 우리의 청춘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