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친구들이 모였다.
사무실에 틀어박혀 사는 내가 자연을 느끼고 싶다고 호소한 덕에 가까운 공원으로 김밥사들고 놀러가서 한참동안이나 수다를 떨었다. 몇년전만 해도 우리는 다같이 똑같은 수업을 듣고, 똑같은 숙제를 했으며, 똑같은 시험을 보곤 했다. 하지만 그 몇년 사이에 우리는 각자의 길에 들어선듯하다. 각자의 길에 대해, 그리고 우리가 아닌 또다른 친구들의 삶의 길에 대해서도 떠든다. 나는 내 길을 잘 가고 있는 것인지 의심스러우면서도 차마 그 불안함을 털어놓을 순간을 찾지 못했다. 다만 자신의 만족감과, 타인의 평가와, 여유와 보상에 관한 균형있는 비중을 찾아낸다면 문제는 해결될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온김에 영화도 한편 보고, 친구의 남자친구가 사주는 저녁까지 푸짐하게 얻어먹었다. 게다가 곧 다가올 생일케익의 초까지 한숨에 불어 껐다. 분명 즐거운 하루였는데 돌아오는 길에 계속 한쪽 머리가 지끈거린다. 아마도 오랜만에 돌아다녀서겠지...피곤해진다.
집으로 돌아와 불을 켰다. 텅빈 집에 들어서면 나는 먼저 컴퓨터와 TV를 동시에 켠다. 뭔가 소리가 들려야 생활을 시작할 수 있다. 컴퓨터 전원을 켜다가 아. 뭔가가 있다. 눈이 나빠서 잘 보이진 않지만 전날 머리빗다가 떨어진 머리카락 뭉치인가... 조금더 가까이 들여다보니 바퀴벌레 한마리가 외로이 쓰러져 뒹굴고 있다.
나는 그런 벌레들이 너무 무섭다. 집에서 만나면 악악거리면서 누군가 찾아서 해결해달라고 징징거릴 것을.. 혼자 있으면 비명소리도 나오지 않는다. 살아있는 녀석을 만나면 숨을 죽이고 제발 나를 못보고 어디론가 사라져주기를 바라고, 이렇게 죽어있는 녀석을 만나면 나쁜 내 눈을 더 작게 뜨고 현실을 직시하지 않으려 애쓸 뿐이다. 다른 걸 몰라도 벌레가 나오지 않도록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 덕에 이렇게 마주친건 아직 두번밖에 없다. 한번은 화장실에 앉아있다가 살아있는 녀석을 한번, 그리고 오늘 한번... 지난번 만난 이후 약을 두배는 늘렸는데 이렇게 다시 만나다니...망연자실하다 청소기를 집어들었다. 그리고 버튼을 눌렀다... 아...나는 이제 한동안 이 청소기를 못 사용할듯하다. 누군가가 와서 안의 내용물을 처분해줄때까지...그래도 집에 청소기가 두개라서 천만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