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일까? 어떤 사람은 돈, 다른 사람은 성공이라고 답할 것이다. 또 다른 사람은 건강이라고 할 수도 있다. 사람마다 중요한 게 상황에 따라서 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자신의 생명일 것이다. 생명을 잃는다면 금은보배가 무슨 소용이며 명예나 권력이 무에 그리 중요하겠는가.
가장 소중한 것이 생명이라면 우리는 자신의 생명은 스스로 지킬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명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고 살아간다. 목숨이 경각에 달해야 그제서야 소중함을 깨달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생명의 중요성에 대해서 제대로 인식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생명이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해도 제 스스로 지킬 생각은 하지 못한다. 건강을 잃게 되면 무조건 병원을 찾거나 의사들에게 도움을 청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만 하는지 생각해 본 바도 없고 아는 바도 없기 때문에 당연히 남에게 의존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왜 그토록 소중한 생명에 관한 것을 자신이 정확하게 알아볼 생각을 하지 않고 타인에게 맡기려고 할까? 과연 세상의 지식은 인간 존재와 병의 근본 원리를 명확하게 밝혀 놓았는가? 서양의학이나 한의학 그리고 유관 학문들과 같은 널리 알려진 지식은 100% 정확한가? 의술에 종사하는 (한)의사들은 진정 병을 고칠 지식과 능력을 갖고 있는가? 그들에게 “당신이 정확하지 알지 못하면 생명을 끊어놓을 것이다”라고 목에 칼을 들여대고 위협하면서 물어보아도 100% 확신을 가지고 답할 수 있겠는가? 세상의 지식은 결코 완전하지 않다. 그리고 병원이나 의사들은 100%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목에 칼이 들어와도 장담할 수 있는 의사가 있다면 한번 나서 보라고 말하고 싶다. 이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전문가라고 해도 정확한 지식을 갖고 있지 않은 것이 분명한데 왜 사람들은 무조건 그들에게 자신의 생명을 맡기는가. 깊이 깊이 반성해 보아야 할 일이다.
어떤 사람들은 과학을 맹신하면서 서양 의술만이 과학적이라며 한의학을 무조건 배척한다. 과학만능주의에 빠진 사람들은 세상을 바라보는 극히 제한된 시각을 갖고 있다. 모든 것을 과학이라는 잣대를 들여대 판단하려고 한다. 과학적 사고관도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시각에 지나지 않는다. 편협한 세계관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 세상이 눈에 보이는 대로의 세계만이 아니라는 것을 모른다.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다른 감각기관으로는 분명이 느낄 수 있는 세계가 있다. 이러한 세계는 직관적, 육감(六感)적 접근방법에 의해서만 알 수 있이 있음을 모를 뿐이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과학적 사고관에만 매여 있는 것은 자신이 극히 어리석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임을 전혀 알지 못한다. 천번, 만번을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그들의 굳어진 머리를 어찌할 도리가 없다. 컴퓨터에 비유하면 깔려 있지 않는 프로그램을 돌릴 수 없는 이치이다. 예를 들어, MS Word만 깔려 있으면 한글이라든가 다른 프로그램은 전혀 작동할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세계를 잘못 파악하고 있다. 서양 과학적인 접근으로는 우주나 인간을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다. 지금 서양의 학문은 그들의 나아갈 방향을 동양에서 찾고 있다. ‘오래된 미래’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의 제목이 풍기는 것처럼, 우리 인류가 학문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나아갈 미래는 오래 전부터 이미 우리 동양 세계에 존재해 있었던 것이다. 인간의 유전자 지도가 완성되었다고 해도 인간 존재의 비밀을 완전하게 규명하지 못한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단순한 물질적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은 어디까지나 정신이 주가 되는 유기체인 것이다. 정신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물리적인 분석을 아무리 정확하게 해도 소용이 없는 것이다. 정신적인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은 스스로 유전자를 변형시킬 수가 있다. 그런데 과학적 탐구 결과가 무에 그리 중요하겠는가.
서양과 동양의 세계관은 기본적인 생각부터 다르다. 서양이 세계에 대한 호기심으로 물체를 쪼개고 또 쪼개어 분석적으로 고찰하려고 한다. 그런 분석적인 방법은 한정된 지식은 얻을 수 있지만 대상 자체를 완전하게 파악하지 못한다. 반면 동양적 사고는 전체적인 관점에서 대상을 파악하려고 한다. 자연과 주위 환경과 인간관계 속에서 파악하려고 하는 것이다. 분석적인 방법으로 우리 인간이 완전히 독립된 개체처럼 여겨지지만 우리는 결코 이 세상에서 분리된 존재가 아니다. 그들이 인간을 개별적인 존재로 생각하는 것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본적인 오류 때문에 인간을 기계적인 물리적 존재로 생각하는 것이다. 모든 것이 연결된 유기체임을 간과하는 것이다.
신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생각을 한다. 몸의 한 부분이 잘 못 되면 그 곳만을 해결하면 된다는 유치한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과학적 방법이라고 좋다고 여기는 것이다. 참으로 어리석다 할 수 있다. 과학적 사고관만을 부르짖는 사람들은 큰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동양과 서양이 어떻게 다르게 생각하는지를 배워야만 한다. 다음 책은 두 세계가 어떻게 다르게 세상을 바라보는지를 배울 수 있는 아주 좋은 책이다. (생각의 지도 : 동양과 서양, 세상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선 (양장) / 리처드 니스벳 저/최인철 역 | 김영사 | 2004년 04월) 서양 학자가 쓴 책인 만큼 사회과학적인 방법론에 입각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꼭 참고해 보길 바란다.
서양 과학 중에서 가장 어리석은 것이 의학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인간 존재에 대해 그릇된 가정을 하고 있다. 인간과 인체는 다름을 모르고 있다. 우리 인간의 존재는 정신과 육체의 결합체이다. 인간이란 존재가 정신과 육체의 통합체인 반면, 인체는 그 일부분이 육체만을 의미하는 것이다. 육체인 사람의 몸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규명했다고 해서 인간 존재에 대해 그대로 적용할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의 주인인 정신에 의해서 노예인 인체는 엄청나게 영향을 받는다. 그 영향이 나쁘게는 질병으로도 드러나는 것이다. 이러한 기본적인 원리를 무시하고 서양의학은 인체에 대해서만 치료를 하려고 한다. 그 치료 절차나 방법이 과학적이라고 해서 서양 의술이 마치 전능한 것처럼 여기는 것이다. 이런 근본적인 오류를 간과하고 말이다.
자신의 머리를 가지고 한번 깊이 생각해보아라. 자신의 신체가 자신의 의지, 생각, 감정 따위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고 제 스스로 움직이는가를 말이다. 물론 자율신경계는 스스로 움직이며 인체의 생명시스템을 돌리고는 있다. 하지만 그 자율신경계를 지배하는 것이 잠재의식임을 모른다. 잠재의식은 의식에 의해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다. 물론 잠재의식이 의식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자신의 정신을 완전하게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은 잠재의식의 세계도 조절할 수 있다. 정신으로 육체를 조절하는 능력은 연습에 의해서 얼마든지 향상되는 것이다. 우리 인간 존재의 이러한 원리를 의학에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그럴 경우에는 자신들이 입지가 줄어들고 할 일이 없기 때문인 것이다. 아니면 무지해서 받아들일 수가 없으리라. 또 자기가 고집하는 가치관이나 신념을 잃게 되면 죽은 것이나 다름이 없으니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이다.
서양 의학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스트레스’와 같은 표현은 결국은 마음 혹은 정신의 작용 혹은 그 과정과 관련된 것이다. 어떤 사건이나 사태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따라 스트레스의 정도가 다르다. 사람이 어떤 정신 세계를 갖고 있느냐,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느냐에 따라 반응하는 것이 많이 다르다. 결국 사람이 정신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인간을 과학적이라고 하는 방법으로 다루는 것은 육체가 동일한 스트레스에 대해 동일하게 반응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 전혀 그렇지 않다. 스트레스는 사람마다 다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인체를 과학적 사고관으로 보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인간은 통합적인 관점에서 다루어야만 하는 것이다. 병 또한 그리 다루어야 마땅한 것이다.
서양의학에서는 거의 모든 병이 스트레스에서 기인한다고 인정하고 있다. 스트레스라는 것은 인간의 정신과 마음의 대응방식과 관련이 있다. 동양에서는 그래서 만병의 근원은 마음에 있다고 한다. 서양의학이 이 방식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질병 치료는 획기적으로 발전할 것이다. 병이 스트레스에서 기인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으면서도 그 근본 원리가 정신에 있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여전히 분석적 과학적 논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자, 스트레스에 관한 책에서 서양 학자가 스트레스를 받아서 어떻게 몸이 변하는가를 기술해 놓은 내용을 살펴보자. 여기에서 우리는 마음의 작용이 신체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명확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파워 포인트에 적어놓은 것을 옮겨놓아 글이 기호로 구분되고 있다.)
Ø 사람들이 느끼는 스트레스의 양은 그들의 건강, 전에 질병에 대한 경험 그리고 그들을 가장 압박하는 요구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능력에 대한 인식과 관계가 깊다.
Ø 일단 사람들이 개인적 고통을 증가시키는 요인들을 확인할 수 있다면, 그들의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세력을 변화시키기 위한 작업을 시작할 수 있다.
Ø 앞으로 확인될 이러한 인자들은 불쾌감과 연관된 사건들을 설명한다. 즉 누가, 언제, 어떻게 그리고 왜 불쾌감을 야기하는가이다. 인식력이 증가함에 따라 개인들은 스트레스를 많이 주는 상황과 대처하기 위한 여러 방법들을 생각할 수 있다.
Ø 스트레스의 근원이 표면에 나타나는 것은 이미 두뇌에 의해서 평가받은 것이다. 심리적, 감정적 자극에 대한 몸의 반응은 우선 두뇌와 중추신경계에 영향을 준다. 그런 후에 자율신경계를 통해서 심리적 변화를 가져온다. 이 평가는 자동적이며, 스트레스와 싸우는 수단을 가동시킨다.
Ø 스트레스를 주는 체험에서 생긴 서로 다른 감정들은 몸의 각 부위에 서로 다른 메시지를 보낸다. 몇몇 메세지들은 어떤 분비선으로 전달된다. 이러한 분비선은 싸우는 과정에서 필요하게 될 더 많은 호르몬을 생산한다. 어떤 메세지들은 신경계통으로 전달된다.
Ø 예들 들어, 분노나 적개심 또는 불안은 몸의 구석구석까지 뻗쳐있는 혈관에 관계되어 때로는 심장의 속도를 증가시키며, 심장의 리듬을 바꾸거나 혈압을 높이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
Ø 이것은 심장이 더욱 빨리 뛰고, 더욱 더 많은 피를 퍼내도록 만든다. 간에 저장된 에너지는 방출된다. 그리고 심호흡을 하게 되며 더욱 자주 호흡하게 된다. 또한 두뇌에 공급되는 피는 증가한다.
Ø 그러나 공포나 의기소침 또는 절망은 심장의 속도와 혈압을 떨어뜨림으로써 정반대의 반응을 나타낼 뿐 아니라, 최악의 경우 졸도할 수도 있다.
Ø 게다가 위장계통은 다른 감정자극에 대해서 정반대의 방법으로 응답한다. 이때 분노와 적개심은 피의 흐름과 분비작용의 증진과 연관되며, 결국은 궤양이 일어나게 할 것이다. 피의 흐름과 분비작용의 감소는 식욕부진, 메스꺼움, 구토 등의 증세에서 관측할 수 있는 공포나 의기소침의 감정과 관련될 것이다.
Ø 더 나아가 방광 역시 자율신경 계통을 통해 스트레스를 주는 자극으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이런 현상은 소변을 긴급하게 또는 자주 보아야 하는 느낌이 증가함으로써 나타나거나 혹은 소변이 급하거나 소변을 보지 못하는 느낌이 감소함으로써 나타난다. 공포는 어린이나 어른에게 대소변을 참지 못하게 할 수 있다. 호흡기 계통은 호흡의 속도를 증가시키거나 감소시키는 작용을 하는 늑간 근육의 자동적 자극을 통해서 영향을 받는다.
Ø 눈동자는 공포나 흥분의 상태에서는 팽창하며, 의기소침이나 권태의 상태에서는 수축된다. 몸 전체에 미치는 근육의 긴장은 스트레스 자극에 대한 몸의 반응의 좋은 신호가 되기도 한다. 또한 스트레스를 주는 자극이나 사건에 계속해서 노출되면 긴장항진, 심장혈관질병, 당뇨병 및 엘러지를 악화시킬 수도 있다. (31~33p/스트레스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존 로메로 지음 /민지사)
위의 글을 잘 읽어보고 깊이 생각해보아라. 이것은 완전히 우리 마음이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스트레스의 근원이 표면에 나타나는 것은 이미 두뇌에 의해서 평가받은 것이다.’라는 구절이 두뇌의 작용 즉 정신의 작용을 설명해주는 것이다. 추위에 대해서도 스트레스의 정도는 다 다르다. 또한 육체도 동일하게 반응을 하지 않는다. 군에서 강한 훈련으로 정신무장을 한 젊은 군인은 어지간한 추위에는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 하지만 나이가 먹고, 추위를 잘 타는 사람들은 추위에 약해지고 감기에도 쉽게 걸리는 법이다. 이를 어떻게 동일하게 설명을 할 수 있겠는가. 숭례문 방화 사건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다 달리 반응한다. 심하게 충격을 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것은 바로 정신의 작용에 의해서 그런 것이다.
아직도 이해를 하기 어려운 사람을 위하여 좋은 기사를 하나 퍼와 본다. 스트레스가 무엇이며 어떻게 작용하는가를 잘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스트레스 못풀고 쌓이면 사회毒 된다
과도하면 방화ㆍ폭력 불러…성인병 원인 70%차지
과도한 스트레스가 폭발하면 방화 폭력 등 사회문제로 연결될 수 있다. 외형적으로는 정상인과 다를 바 없지만 속이 병들어서 생기는 현상이다.
우종민 인제대 백병원 정신과 교수는 "멘탈(정신)이 건강해야 개인 삶이 건강하고 이는 결국 사회와 국가가 건강해진다는 의미"라고 말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정신ㆍ행동장애로 진료를 받은 환자 수는 2001년 134만3900명에서 2006년 180만7762명으로 5년 새 35% 늘어났다.
스트레스는 성인병 원인 가운데 약 70%를 차지한다는 의학보고서가 나와 있을 만큼 현대인에게 적이다.
스트레스 학설 선구자 중 한 사람인 한스 셀리 박사는 스트레스를 '정상 스트레스(Eustress)'와 '병적 스트레스(Distress)'로 구분한다.
정상 스트레스는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고교생이 매달 모의고사를 치르게 했을 때 이 시험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새로운 도전정신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적당한 스트레스는 강한 성취욕을 독려하고 삶에 활력소로 작용한다는 얘기다.
병적 스트레스는 입시준비 과정을 견디지 못하고 두통 현기증 구토 복통 불면증 등 신체 증상에 이어 스트레스성 만성 신체질환으로 악화되는 것을 말한다.
유범희 삼성서울병원 정신과 교수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떤 일을 당해도 여유있게 참아낼 줄 아는 것이 미덕이라고 배워 가벼운 스트레스조차 해소하지 못하고 속병으로 악화되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특히 직장인들은 관리해야 하는 스트레스 원인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치열한 경쟁과 알아야 할 엄청난 정보량, 급변하는 사회구조와 가치관, 수면부족, 상사와 부하 직원 간 갈등, 과다한 업무량, 노후불안 등 수많은 요인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잘못되거나 대응처리를 잘못하면 직장인들은 스트레스로 인한 각종 성인병으로 쓰러질 수 있다.
이홍식 영동세브란스병원 정신과 교수는 "직장인들에게 흔히 보이는 스트레스성 신체 증상으로는 불안증, 불면증, 긴장성 두통, 신경성 고혈압, 신경성 소화기장애, 성불능증 등이 있다"며 "이를 다스리지 못하면 고집불통이나 공격적 성격, 성격장애 등으로 발전한다"고 설명했다.
스트레스는 외부 자극을 받으면 우리 몸 각 감각기관으로 접수되고 신경을 타고 뇌로 전달돼 처리된다. 스트레스가 만병을 일으키는 근원이라고 일컫는 이유는 뇌의 가장 중요한 중추를 과도하게 자극하고 신체 면역기능과 내분비기능, 자율신경계 균형을 깨뜨리기 때문이다.
이홍식 교수는 "스트레스는 △경계 △저항 △탈진 등 3단계를 거치며 적절한 휴식시간을 통한 재충전을 갖지 못하면 각종 질병에 노출된다"고 지적했다.
전문의들이 제시하는 바람직한 스트레스 해소법은 스트레스 자체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개인 생각이나 마음, 신념을 변화시켜 좀 더 여유있게 스트레스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예를 들어 비합리적이고 이기적인 성격을 가진 직장 상사에 대한 스트레스 해소법은 뭘까. 상사 성격이나 인격을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만큼 재빨리 자신을 그 스트레스 원인에 적응하는 것이다.
"나를 야단치는 것도 나를 미워해서가 아니라 성격 탓인 거야. 그러니 신경쓰지 말자"라고 생각하는 것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비결이라는 얘기다.
또 평소 신체 긴장수준을 낮추고 가장 좋은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도록 주의하는 것이 좋다.
유범희 교수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뇌는 비상상태로 들어가 온몸이 굳어지고 심장박동이 빨라지며 호흡이 거칠어진다"며 "이 같은 상태가 지속되면 동맥경화, 고혈압, 심장기능 저하 등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걷기, 가벼운 달리기, 에어로빅, 등산 등 운동과 명상이 큰 도움이 된다고 조언한다.
[이병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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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인간에 관한 한 과학적 사고관이라는 어리석은 생각을 버려라. 의학이 과학적이기 때문에 인간의 질병을 잘 치료할 수 있다는 우를 범하지 마라. 서양 의학이 할 수 있는 부분은 분명히 있다. 꼭 필요한 수술 같은 것은 서양 의술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인정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결코 인간 질병 치료의 주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수술과 같은 것을 과학이라고 고집을 피우지 마라. 그것은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숙련도에 늘어남에 따라 더 잘 할 수 있는 기술이란 말이다. 인간 존재의 원리를 밝히는 중요한 이론이나 원리가 아닌 것이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 큰 관점, 보다 깊은 통찰력을 갖고 있을 때 지식은 깊어지고 넓어질 수 있다. 그리고 지혜로워질 수 있는 것이다. 인간 존재의 원리를 깊이 생각해보면 진정한 의학의 길을 밝힐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