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목은 매우 짧으니 조심해서 자르게 - 박원순 세기의 재판이야기
박원순 지음 / 한겨레신문사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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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나는 나중에(...) 어떻게 죽게 될까? 누군가에게 타살될 가능성은 별로 없을 것 같은데. 그것도 알 수 없긴하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타살도 참 많은 어이없는 세상이니까. 어쨌든 그건 제외하고 자살할 가능성도 없다. 두 아이를 놔 두고 내가 내 스스로 목숨을 끊을 만한 일이 도대체 있을 수 있을까?

 

  그렇다면 병이나 교통사고? 그도 아니면 혹시 억울한 누명을 쓰고 전기의자에 앉게 될 수도 있을까? 에이,  어이없는 상상! 하지만 난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게 될까?

 

  여기 몇 사람의 재판과 죽음에 대한 기록이 있다. .소크라테스, 예수, 잔다르크, 토마스 모어, 중세의 마녀들, 갈릴레오, 드레퓌스, 필리페 페탱, 로젠버그 부부, 그리고 <채털리 부인의 사랑> . 너무나 유명해서 몰라도 모르는 것 같지 않은 인물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서 이 인물들이 역사책 속에서 걸어나와 내게 말을 건네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었다.

 

  책 속에서 화석처럼 굳어 있던 대표적인 인물은 잔 다르크였다. 신을 만났다고 주장하는 한 여자아이, 그 아이가 신의 부름을 받아 프랑스를 위기에서 구했다는 황당하고 말도 안되는 얘기. 그 얘기를 맨처음 언제 듣거나 알게 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난 '참 많이도 과장됐구나.'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서 다시 알게된 잔다르크는 참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그가 받은 계시의 진위여부를 판단하다는 건 그이의 삶을 모욕하는 것이다. 재판과정에서의 그 당당하고 논리정연함. 그리고 예정된 화형. 잔다르크는 주변의 인물들의 오만함과 어리석음에 비해 참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때로는 아무 소용없는 울화가 치솟아 잠시 심호흡을 해야만 하는 책 맞다. 둔하기만 한 시대의 흐름 속에서, 멍청한 권력자들과  어리석은 판사들이 짜고 만들어가는 재판에서 진실을 이야기하다가 화형당하고, 독약을 마시고, 단두대 위에 서야 했던 사람들 이야기는 나를 화나게 하고 부끄럽게 하고 가슴 아프게 했다. 하지만 그 슬픔은 역사 속에서  밝게 빛나는 인물을 새로이, 가깝게 만나는 희열로 위로 받을 수 있었다.

 

  이 더위에 읽기엔 너무 무거운 책이 아니냐고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덥다고 역사가 잠시 쉬었다 흐르는 것은 아니니까. 산다는 건 더우나 추우나 엄숙한 일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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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가장 행복한 날
존 버닝햄 엮음, 김현우 옮김 / 민음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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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1.우선 오타가 두 개 눈에 띄었다. 하나는 읽다가 지나쳤는데 다시 찾을 수 없었고 하나는 240쪽에 있다.(오랬동안)

 

2.올초 유난히 늙어감에 대해 많이 생각했었다. 아름다운 봄 햇살이 뉘엿뉘엿 넘어가는 시간 , 정말 이 책 속의 한 대목을 빌리자면 누구라도 사랑에 빠질 것 같은 아름다운 오후였다. 운전하다가 신호 대기 중이었는데 횡단보도 앞에 한 노인이, 허리가 구부러지고 입성은 초라한 노인이  지팡이에 위태롭게 의지해 서서 파란 신호로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곧 쓰러질듯 서있는 그 노인이 어찌나 슬퍼보이던지. 눈물이 핑 돌았다. 늙어가는 일을 본인은 혹시 느끼지 못할 지 모르나. 그걸 지켜보는 일은 역시 슬픈 일이 아닐까?

내 부모님이 늙어가는 것, 내 오빠가 늙어 가는 것, 내 남편이 늙어 가는 것, 내 친구들이 늙어가는 것, 심지어 내 아이가 늙어가는 것(그걸 지켜볼 정도로 운이 좋다면) 을 지켜 본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안쓰럽고 슬픈 일이다.

늙어감이 슬픈 나는 아직 젊기 때문일까?

 

 3. 이 책에서 가장 슬픈 대목

일본에서는 해마다 1만 명 이상이 욕조에서 익사합니다. 익사자의 대부분은 노인들인데, 이들 중 90퍼센트 이상이 함께 사는 가족들이 집안에 있는 동안 익사를 했다고 합니다. 많은 가정에서 욕실은 거실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욕실을 수시로 확인하기가 힘듭니다. 뿐만 아니라 목욕을 하는 당사자도 5분마다 가족들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들여다보는 것을 원하지는 않을 겁니다.

우리는 욕실 익사사고를 방지할 수 있는 독창적인 장치를 개발하였습니다. 물을 감지하는 센서가 달린 이 장치를 팬던트처럼 목에 걸고 목욕을 하면 됩니다. 장치가 20초 이상 물에 잠겨 있으면 본체와 분리된 리모컨에 경고음이 울리면서, 가족들에게 목욕하고 있는 사람이 익사할 위험이 있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이 시스템은 비싸지 않으며, 사용자의 사생활을 방해하지도 않을 뿐더러, 거의 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목욕하는 사람의 사생활을 지켜 줍면서 안전한 목욕을 보장해 주는 최상의 방법입니다. 본사는 이 안전 서비스를 상용화할 예정입니다.-오아카 가스 연구 개발부, 미래의 욕실

진짜 슬프지 않은가?

 

4. 기획이 돋보인 책이었다. 존 버닝햄이 기획한 걸까? 아니면 전문적인 기획자가 한 걸까? 만약, 존버닝햄이 아니었다면 별로 팔리지 않았을 책, 또 존 버닝햄이 늙지 않았다면 만들어지지 않았을 책이다. 생각해 보라. 만약. 서른 여섯살의 사회적 지위와 명성과는 거리가 먼 한 여자가(내가) 여러 가지 분야에서 나름대로의 길을 아주 열심히 그리고 성공적으로 개척해온 60, 70, 80대 노인들에게 늙음에 대해서 얘기해 달라는 편지를 보낸다면 ... 아마도 글쎄. 회신율이 얼마나 됐을까? 얼마나 팔릴 수 있을까?

 

5. 존 버닝행처럼 인세를 받아 노후를 대비할 수는 없을 것 같으니, 지금부터라도 돈 좀 아껴야 겠다. 닥치는 대로 책 사는 거 좀 자제하고  그 돈 모아서 연금이라도 하나 더 들어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우아하고 아름다운 노년을 위해 가장 중요한 건 아무래도 돈이 아닐까?

 

*나름대로 아름다운 책이었는데,  뭔가 좀 이상하게 결말이 나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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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리 2006-11-23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봄물님.. 책느낌 잘 읽고 가요. 괜시리 웃음이 나서 한 자 남기고 갑니다. 글쎄요, 책 사서 읽는 기쁨과 적립식 연금... 어떻게 비교가 될런지... 책.. 얼른 읽어야지, 생각하고 갑니다.
 
전쟁중독 - 미국이 군사주의를 차버리지 못하는 진정한 이유
조엘 안드레아스 지음, 평화네트워크 엮음 / 창해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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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일상은 얼마나 사소한가? 내가 목숨걸고 있는 모든 것들이 얼마나 사소한가?   내가 내 인생을 걸고 지켜나가는 사소한 것들이 자꾸 생각났다. 내 일, 내 가족, 특히나 내 사랑스러운 두 아이, 내 친구, 내 이웃들 너무나 사소하고 아름다운 것들이 정말 순식간에 , 부서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오스스 소름이 돋았다. 정말로 무섭다.

  지구의 곳곳에서 끊임없이 테러가 일어나고, 사람들이 죽고, 아이들이 죽고, 물은 오염되고, 학교는 파괴되고 있다. 미국에 이익을 가져다 주는자 그의 이름은 정의고, 미국의 이익에 반하는 자, 그의 이름은 테러리스트이다. 땅도, 꿈도, 미래도 없는 지역이 어디 한 두 군데인가? 한반도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지 말라는 보장을 누가 할 수 있을까? 그저 한반도에 석유가 매장되어 있지 않음을 신께 감사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길지 않은 분량에 만화의 형식을 빌어,  조목조목 앞뒤 전후를 잘 가려 차근차근 풀어 놓아서, 유능한 선생님의 강의를 듣는 기분이었다.  '이 땅의 모든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읽히고, 시험에 출제하면 좋겠다.' 라는 무식한 생각이 떠오를 정도였다.  중학교 3학년 이상 고등학생들에게 강력히 추천한다.

   이 책을 읽기전 난 파병에 반대한다고 거리낌 없이 말했었다. 토론의 거리도 되지 못할 주제라고 생각했었다. 누군가는 이 책을 읽고 '그러니까 파병 반대'라고 말하는데, 난 솔직히 아주 솔직히, 괜히 미국에 밉보이면 안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지독히 이기적이고 또 소시민적인 생각이 드는 걸 어쩌면 좋을까? 아! 난 정말 미국이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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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아시아
아시아네트워크 엮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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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느낀 점이 있다면 참 내가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것이었다. 내 평생 한 번도 가보지 못할 서구의 여러 나라들은 세계 지도 위에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 수도가 어디인지, 어떤 언어를 쓰고 있는지 유명한 유적이 어디인지, 인종은 어떠한지, 시시 콜콜 주워 들은 것도 많은데 비해 불과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에 대해서는 왜 이리 아는 게 없을까? 

  기껏해야 신혼여행을 다녀왔던 태국의 푸켓, 지난 겨울 여행했던 캄보디아의 앙코르, 그리고 또 여행갈 계획을 세우고 있는 필리핀이 내가 알고 있는 아시아였다. 이런 나라들을 선택하는 이유는 물론 다른 곳보다 저렴하기 때문이었고.....

  우선은 내가 무식하기 때문일텐데, 그 무식을 좀 변명해보자면 중고등학교의 사회시간, 지리시간, 세계사 시간에 도대체 제대로 배운 기억이 없다. 아닌가? 배우긴 했는데 시험에 안 나와서 내가 공부를 안 했던가? 신문이나 tv뉴스에서도 아시아의 여러가지 일에 대해 그다지 비중있게 다루지 않는 것 같다. 그 어떤 지역보다도 뉴스거리가 넘쳐나는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단편적인 사실들만이 보도되고 나는 제목만 읽고서는 '또 어느 후진 아시아의 어느 곳에서 이런 전근대적인 일들이 일어나나보다.' 하면서 편견만을 쌓아왔던 것 같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자유와 인권 그리고 아직도 독립을 위해 몸부림치는 이들의 역사에서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강한 연대감을 느꼈다. 마지막에 실린 야신의 '테러리스트는 말한다.'를 읽으면서는 일제 시대 우리의 어느 독립운동가의 글이라고 바꾸어 읽어도 너무나 자연스러움에 놀랍기도 했다.

  음, 지도를 하나 마련해야 겠다. 아시아 부분이 크게 잘 나와 있는 놈으로.. 물론 그럼 놈을 구하기 쉽지 않겠지. 그럼 아시아 부분을 크게 확대해서 내 책상 밑에 하나 끼워 놔야 겠다.  이 글을 읽으면서 동티모르가 어디에 있는지 말레시아와 인도네시아가 정확하게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는 내 자신의 무식함을 반성하면서 다음에 필리핀에 여행을 가게 되면 그들의 역사에 대해서도 좀더 관심을 갖고 둘러보리라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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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몇 퍼센트 한국인일까 - 강정인 교수와 학생들이 함께 본 우리 안의 서구중심주의 책세상 루트 3
강정인 외 지음 / 책세상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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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해 우리반이었던 한 아이가 생각난다. 공부 잘하고 똑똑했던 여자 아이. 수업 시간엔 그림처럼 반듯하게 앉아서 수업을 듣던 아이. 하도 조용해서 존재감이 없던 아이,  나중에서야 걔가 그렇게 공부를 잘하는 아이였냐고 선생님들이 한 번씩 물어보던 아이.

  한 학년이 다 끝나고, 겨울 방학이 다가올 즈음, 그 아이는 심한 마음의 열병을 앓았다.  유학을 보내달라고 심하게 조른다는 그 아이 엄마의 조심스런 전화를 받았다.  그 애를 앉혀 놓고 오랜 시간 얘기를 했었다.

  ' 해리포터 시리즈를 너무 좋아한다, 여름 방학에 영국으로 어학 연수를 다녀왔다. 그곳에서 엄청난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너무나 여유롭게, 인간적으로 또 때론 치열하게 살아가는 또래의 영국아이들이 부러웠다. 나도 그들처럼 살고 싶다. 난 왜 이런 곳에서 태어났는지 부모님조차 원망스럽다. 영어공부 죽어라 하고 있는 내가 너무 한심하다. 내 존재가 너무나 초라하게 느껴진다. 그 곳으로 유학가고 싶다. 그 곳에서 살고 싶다. '며 울먹였다.

  '유학은 더 자라서 가도 늦지 않다. 너 하나의 유학을 위해 너희 부모님에게 모든 것을 포기하라고 하는 것은 이기적인 요구다. 현실을 인정하고 지금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걸 생각해라. 그렇게 말하는 네가 우리 에 대해서 우리의 역사에 대해서, 우리의 문화에 대해서 뭘 얼마나 알고 있느냐? 더 안 다음에 더 열심히 공부해서 네 힘으로 가라.'고 말했다.

  하지만 내 머릿 속도 상당히 어지러웠던 걸로 기억한다.   이런 생각들이 비단 어떤 특별한 아이의 고민은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공부를 잘 하는 아이는 잘 하는 대로, 또 못하면 못하는 대로, 아이들의 머리 속에 하나의 이상향으로 서구의 어떤 나라. 어떤 교육제도가 저마다 하나씩 자리잡고 있고, 그런 이상에 한참 못미치는 아이들의 현실이 우리 아이들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지치게 하고, 열등감에 빠져들게 한다.

   그런데 이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내 생각, 내 의식의 저 밑바닥에도 또한 이런 서구 중심주의가 굳건히 자리잡고 있다는 깨달음이었다. 맙소사!

  책 중에 토끼와 거북이의 이야기가 나온다. 현실에서 거북이가 이길 가능성은 없다. 이 이야기에서 중요한 것은 거북이는 어째서 경주를 하자는 토끼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는가 혹은 거절하지 못했는가의 문제라는 것. 거북이는 그 제안을 거절하거나. 아니면 경주 종목에 수영을 넣어야 게임이 공정해진다는 것. 그동안 서구는 우리에게 늘 자신들에게 유리한 게임만을 강요해 왔다는 것이다. 물론 당장 힘의 우위를 점하고 있는 서구에게 자발적으로 게임의 규칙을 공정히 할 것을 기대할 수는 없다. 하지만 게임 자체의 부당함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자기파괴적인 열등감을 없앨 수 있을 것이다.

  고민하던 그 녀석의 탈출구는 풍물반이라는 동아리 활동이었다. 자신의 정체감을 찾으려는 그 아이의 눈물과 실천이 참 고마웠다. 아직 희망은 있다. 서구 중심주의라는 심각한 정신병은 우리 사회의 난치병이지만 불치병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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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kang 2005-04-25 0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자입니다. 책의 취지를 잘 이해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토끼와 거북이의 일화에 대해 정확히 이해해 주신 것 감사드립니다. 그 아이는 저의 옛날 시절 모습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