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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의 풍경 - 잃어버린 헌법을 위한 변론
김두식 지음 / 교양인 / 2004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사둔지 한 두어 달 지났다. 표지를 들추어 보지도 않고 '헌법'이라는 제목 앞에 기죽어 이리저리 미루어 왔다. 여기저기에서 좋은 책이라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그래도 헌법인데 하는 생각에 집어 들기가 쉽지 않았다.
음, 결론을 한마디로 얘기하면 이 책은 헌법의 '풍경'이었다. 늘 보아오던, 익숙한 풍경 같은 책이었다. 그 무시무시하고 어렵게 느껴지던 법으로 이토록 쉽게 조목조목 이야기를 풀어가다니 놀라웠다.
가장 기억에 남는 구절은 “국가를 사랑하는 것을 강조한 나라보다는 국가를 통제하는 것에 관심을 가진 나라가 그나마 덜 나쁜 나라가 될 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라는 말이다. 그리고 그에 이어서 통제되지 않은 국가가 어떻게 괴물이 되어 가는지에 대한 설명, 그리고 이 괴물에 봉사하는 사람은 몇 몇 정신 나간 사람들이 아니라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이 독재 권력의 전횡에 참여하거나 방관할 때에만 비로소 국가라고 하는 괴물이 힘을 발휘하기 시작한다는 말은 참으로 가슴 뜨끔한 지적이었다.
또 6장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헌법 정신, 7장 말하지 않을 권리, 그 위대한 방패, 8장 잃어버린 헌법, 차별받지 않을 권리을 통해 우리가 우리의 인권을 위해 꼭 알아야만 하는 헌법에 대해 참 자상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머리로는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 나와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다른 사람들의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정말 그렇게 살아 왔던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으로 난 '그럼에도 불구하고'보다는 '인정한다. 그러나'라는 말을 훨씬 더 많이 하지 않았나 반성했다.
학생들도 인권이 있다. 그러나, 머리모양을 완전히 자율에 맡겨 둘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나, 공부해야 할 때가 아닌가? 그러나, 그러나......
헌법의 기본 정신이라고 할 수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를 잊지 말고 살아야겠다.
아이들도 학교에서 수학보다 영어보다 먼저 공부해야 하는 게 이런 거 아닐까? 학생들이 자라서 건강한 시민이 되기 위해, 스스로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국가가 괴물이 되지 않도록 감시하기 위해서 꼭 알아야할 것들이다. 중3이상 고등학생들이라면 꼭 읽고 사회인이 되었으면 싶다.
하나 덧붙이자면, 대학교 다닐 때 곧잘 부르던 노래의 한 대목이 생각난다. “우리 총칼에도 굴하지 않고, 어떤 안락에도 굴하지 않고......”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보통의 삶을 사는 나같은 인간을 무디게 만드는 것은 총칼이 아니라 안락임을 알고 있기에 검찰이라는 신분을 떨치고 나와 이런 책을 쓰신 김두식 씨가 나는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아, 하나 더, 법학과에 다니면서 많이 고민하던, 결국엔 고시공부를 시작했던 내 옛 친구는 지금 뭘하고 있을까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