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변 자서 소명출판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동양편 72
고힐강 지음, 김병준 옮김 / 소명출판 / 2006년 6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인문학 서적치곤 그리 두껍지 않아 하루 정도면 충분히 읽을 수 있는 분량인데 몇 장을 남기고 일이 생겨 오랫만에 이어 읽으니 처음 읽었을 때에 받았던 많은 느낌들이 선명하지 않아 글을 적음에 매우 아쉽다. 애초에 나는 이 책을 산 것이 아니라 얻은 탓에 크게 흥미를 갖지 않았고 더군다나 제목이 선뜻 책에 다가설 정도로 구미가 당기지 않아 제법 오래 묵혀 두었다.

한국인으로서 내가 가진 책들은 대다수가 우리나라에 관한 것이다. 그 나머지는 중국에 관한 것이 가장 많은데 이것도 거개가 시대가 편중되어 있다. 신해혁명 이후의 중국에 관한 책은 고작 중국공산당을 이해하기 위한 책들로 그것도 대장정에 관한 책들이 주류를 이룬다. 그런 가운데 읽게 된 이 책은 20세기의 중국학문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주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선인들의 자서전을 읽기를 좋아했다. 딱딱한 일반 책에서 볼 수 없는, 그 사람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그 됨됨이가 형성되기까지의 중요한 요소인 가정환경과 시대상황을 알 수 있고 더구나 흥미로운 옛날 이야기가 있으며 평소 어른들에게 들었으나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의 의문을 풀게 하는 단초를 제공해 준다. 예전에 출판사 '뿌리깊은나무'에서 나온 구술자서전을 재미있게 읽었으며 현재 비슷한 책 몇 권을 가지고 있다. 얼마 전에도 딸깍발이 일석 이희승선생의 자서전도 다시 보았었다.

이 책도 앞부분은 원래 <고사변> 1책의 자서인데 워낙 길고 좋은 글이라 따로이 모아서 번역, 출간하였나보다. 이 책의 해제는 말미에 있는데 내 생각으론 먼저 해제를 읽고 보는 것이 좋을 듯 하다.

 

고힐강은 청나라 말엽인 광서 19년 1893년에 소주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조부에게 한학을 배워 학문의 기초를 쌓았는데 늘 의심을 가지고 비평하는 습관을 스스로 길렀다. 1913년, 북경대학의 예과에 입학한 그 해 겨울에 장태염의 강의를 들으면서 금문학과 고문학의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고 고대사를 전적으로 믿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철학과 시절, 북경대학 채원배총장이 학술의 자유를 주창하고 중국공산당의 창시자인 진독수가 <신청년>을 출판하여 신사상을 고취시키고 있어서 고힐강에게 구사상을 깨뜨려야 한다는 생각을 북돋아 주었다. 한편으로, 멀게는 최술, 요제항, 정초의 의고학풍을 사숙하였고 가깝게는 청말의 거유였던 변법자강운동의 강유위와 갑골문을 발견한 왕국유의 학문에 자극받았다. 직접적으로는 전현동과 나중에는 학문적 차이로 소원해졌으나 한때 친했던 호적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 60~62쪽에 있는 대학시절에 그가 작성한 일종의 연구계획은 그 방대함과 치밀함이 참으로 경이롭다.

고힐강이 고대사에 관해 주장한 '누층적으로 조성되는 고대사'라는 학설은 책 뒷표지에 잘 나와 있다. 이는 후대로 갈수록 전설 속 고대사의 기간이 점점 멀리 불어난다는 점과 후대로 갈수록 전설 속 중심인물이 더욱 위대해진다는 점 등을 말한 것이다. 고힐강은 이 원칙에 따라 4가지 미신적인 관념을 타파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모든 민족이 하나에서 비롯되었다는 일원적 생각과 모든 지역이 원래부터 통일되어 있었다는 것과 신화를 모두 인격화시키려는 것과 고대가 태평성세였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하였다. 물론 발전된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한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틀린 점도 있겠으나 그가 행한 역사학적 방법론은 뛰어나다고 하겠다.

책의 뒷부분에는 고힐강이 죽기 직전인 1979년과 1980년에 작성한 <나는 어떻게 고사변을 편찬했는가>가 실려 있다. 그 중에 350편의 글과 325만자에 이른다는 <고사변> 제1~7책의 출간에 대해 간략히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책은 고힐강이 호적, 전현동, 유섬려 등과 고대사에 대해 토론한 편지와 글로서 쓰는 데에 두달이 걸렸다는 6만 자의 자서가 있다.

-2책은 상편에서는 고대사 문제를 토론하였고 중편에서는 공자의 유가의 문제를 토론하였으며 하편에는 1책에 대한 사람들의 평론이 실렸다.

-3책은 <역경>과 <시경>을 연구한 것이다.

-4책은 북경사범대학의 교수였던 라근택이 편찬한 것으로 선진제자에 대해 상편에서 유가와 묵가를 하편에서 도가와 법가를 다루었다. 이 책에는 고힐강이 1932년 4월에 쓴 <여씨춘추로부터 노자의 성서년대를 추측함>이란 글이 실려 있다고 하는데 근래의 마왕퇴나 곽가점본 연구결과와 비교해 보면 재미있을 듯 하다.

-5책은 상편에서 한대 경학상의 금고문 문제를 다루었고 하편에선 음양오행설의 기원 문제 및 음양오행설과 고제왕 계통과의 관계 문제를 다루었다.

-6책은 라근택이 상편에서 선진제자를 두루 고찰하였고 하편은 노자만을 전적으로 고찰하였다.

-7책은 상편은 고사전설의 통론이며 중편은 삼황오제에 관한 고찰이고 하편은 도당, 유우, 하의 역사에 대한 고찰이라고 한다.

이상의 7책에 대해 아직 번역서가 나왔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고대지리의 고증에 대한 글을 수록한 8책도 출판하기로 하였다는데 계속해서 그 뒤로도 <고사변>이 출간되었는지 궁금하다. 번역서가 나온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래도 기회가 닿는다면 원문이라도 대총 읽어보고 싶다. 나아가 고힐강 이후로 의고학파에 얼마나 많은 발전이 있었는지 심히 궁금하기 짝이 없다.

 

끝으로, 고힐강의 의고는 나도 놀랐지만, 단순하고 막연한 의심이 아닌 당대에 발굴된 최신의 고고학 발굴 유물자료까지 이용한 비판적 검토의 방법이라는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을 빌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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