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서
유향 지음, 임동석 옮김 / 예문서원 / 1999년 12월
평점 :
품절


어느새 품절이 되어버린 책을 이제서야 정독하고자 꺼내었다. 며칠전에 서한의 가의가 지은 <신서>를 읽었고 이번에 역시 서한 사람인 유향의 <신서>를 손에 잡았는데 유향의 이 책은 가의의 글과 달리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라 역사 고사집이다. 인물 위주인 열전과 달리 짤막한 고사를 모아 놓아서 그 시대에 관한 충분한 지식이 없으면 다소 어려울 수도 있으나 역사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일독하기를 권한다. 요즈음에 많이 나오는 고전 관련 책들이 대개 이러한 체제를 취하고 있어 낯설지 않을 것이다.

고전이 어려운 까닭은 무수한 인물과 지명과 사건 때문인데 이 책은 중요한 고사들만 간추려 놓아 다 찾아 읽어야 하는 어려움을 줄여 놓았으니 특히나 인문학을 전공하는 이라면 읽을 만하다고 여겨진다. 책은 원래 10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잡사, 자사, 절사, 의용, 선모로 분류되어 있다. 이 번역서의 특징으로는 말미에 각 고사의 전거가 되는 문헌 자료를 원문이나마 수록해 놓은 점이다. 덧붙여, 유향은 한나라 종실로서 세째아들인 유흠과 더불어 문헌목록학의 창시자로도 이름이 있다.

 

이 책에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유명한 고사가 많이 실려 있는데 그 가운데서 특별히 기억된 것은 '삼인성호'와 '증자살인'이다. 세 사람이 각기 와서 계속 말하므로 있지도 않은 범을 만들고 증자를 굳게 믿는 증자의 어머니를 증자가 살인을 저질렀다고 생각하게끔 한 것이다. 두 고사가 다 입에서 나온 말의 심각성을 논한 것이다.

 우리가 흔히 '대중'이라고 할 때, 보통 세 명이나 네 명이 모여야 대중이 된다고 나는 알고 있다. 예전에 우연히 TV에서 대중의 힘을 실험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는데 세 명 이상이 모여야만 엉뚱한 행동을 하더라도 사람들의 시선이 모이는 것이었다. <논어> 안연편에도 공자께서 침윤지참과 부수지소에 대해 하신 말씀이 나온다. '여러 사람이 한 사람 바보 만들기는 쉽다'고 하지 않았던가. 오늘날처럼 발없는말이 스마트폰 등의 통신수단을 이용해서 빠른 시간내에 일파만파로 뻗어나간 적은 없었다. 그만큼 많이 편리해지고 좋아졌지만 이에 반해 부작용도 심각하다. 성숙된 성인으로서 다들 자신이 내뱉는 말에 더욱 책임을 느끼고 말하기 앞서 조심하는 버릇을 키워야 할 것이다. '말 한마디에 천냥빚을 갚는다'라는 말을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요즈음 세태를 보면 공감하리라 생각한다.

 

얼마전에 내가 아는 분이 대학동창인 영화조감독에게 <삼국유사>를 읽어보라고 권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유인즉슨 그 책에 영화의 소재가 될 만한 좋은 이야기꺼리가 많다는 것이었다. 나도 십분 공감하며 근래에 가끔  중국영화를 볼 때마다 우리나라 영화에 대해 아쉬움을 갖곤 한다. 중국영화는 자기네들의 역사와 고전을 잘 활용하면서 대사도 제법 깊이가 있는데 내가 잘은 모르지만 나아지고는 있다고 하나 아직까지 한국영화가 그렇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어쨌거나 이 고사집 내용에서 가장 영화다운 이야기를 고른다면 나는 조씨가문의 부활을 들겠다. 19년을 주유하며 간난신고 끝에 임금 자리에 오른 진 문공을 도운 조최의 아들이 조돈이다. -조최와 조돈은 번역자들이 많이 틀리는 이름이다- 이 조돈은 진나라 령공을 직접 죽이지는 않았지만 망명하다가 채 국경을 벗어나지 못한 죄로 춘추필법에 의해 임금을 시해했다는 오명을 뒤집어쓴 바로 그 사람이다. 그 조돈의 아들인 조삭이 진나라 경공 시절에 영공을 시해했다는 구실로 다른 신하에 의해 멸족을 당하게 된다. 구사일생으로 가신인 정영과 공손저구의 헌신적인 도움으로 조삭의 아들 조무가 다시 세상에 나오기까지의 과정이 참으로 흥미롭다. 뒷날 조무의 후손들이 진나라를 삼분한 삼진 중의 조나라를 세우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은 비록 품절되었으나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동일한 해석본이 있으니 고사를 통해 중국고대사를 알고자 한다면 이 이천 백여년이 된 옛 책이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의 역자 임동석 선생은 꽤 많은 번역을 하셨는데 개인적으로 모으고 있는 중이다. 이 책에도 인명에 오류가 조금 있는데 위나라 문후의 신하인 책황은 적황이 아니라 책황으로 읽어야 한다고 통감절요 세주에 나온다. 중국 고대사를 전공하시는 분들은 필수적으로 춘추좌전과 통감절요를 독파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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