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와 함께 살아 온 나무와 꽃
이선 지음, 이선.박우진 사진 / 수류산방.중심 / 2006년 10월
평점 :
품절


아마 고등학생일 때부터 시작된 나만의 정리책은 점점 방대해져 갔다. 그러다 나만의 갈래한자사전을 만들고자 파고 들기 시작했는데 제법 많은 책을 읽고 정리하자니 시간도 많이 소요되고 해서 한없이 미루어지며 진도가 나아가지 않았다. 최근에서야 다시 공부를 하게 되고 더 나이 먹기 전에 끝마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조금씩 해 나가고 있는데 어제부터는 나무에 관한 한자들을 들여다 보고 있다. <이아주소>며 <시명다식>이며 등의 책을 보다가 글자만으로 해결이 되지 않아 평소 모아 두었던 식물도감 등을 꺼냈다.

도시에서 자란 탓에 인문학 공부를 하다가 가장 부족함을 느끼는 것 가운데 하나가 비(조류)잠(어류)동식-<시명다식>에 나온 표현-을 너무나 모른다는 점이다. 그래서 앞으로 남은 삶은 자연과 친근하게 자연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기로 다짐했다.^^

 

이 책은 그 크기와 두께에 비해 여느 우리나라 책보다는 아주 가볍다. 알다시피 장서가들은 이사다니는 것이 곤역인데 그 가장 큰 까닭이 지나치게 책이 무거운 탓이리라. 아뭏든 색다른 갱지에 조금은 보기 불편한 편집을 해 놓았으나 신선한 내용에 흥미를 가지고 첫장을 넘겼다.

 

근래에 꽤 오랫동안 몇 년을 궁금해 하던 것이 몇 가지 풀려서 아주 기분이 좋았는데 이 책에서도 하나를 풀 수 있었다. 다름아니라 직지사의 아주 큰 산문을 들어서면 뒤쪽에 임천고치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다. 물론 북송에 곽희의 화론을 그 아들 곽사가 편찬한 <임천고치>라는 책도 있지만 그 책을 아직 읽지 못하였고 계속 궁금함을 풀지 못했었다.  한국전통 조경식재라는 부제를 가진 이 책의 내용 첫장인 26쪽에서 바로 궁금증을 해소했다. 조금 적어보자면, 우리가 요즘 흔히 쓰는 정원이라는 낱말은 일본인이 만든 것으로 1889년에 요코이 도키후유가 저술한 <원예고>에 처음 나온다고 한다. 옛날 우리나라에서는 정원 대신에 원림, <임원십륙지>의 임원, 원, 임천, 화원 등을 사용하였다는 것이다. 그 중 원림이란 용어를 가장 많이 사용하였는데 정동오씨는 <한국의 정원>에서 '울타리안의 옥외 공간은 정원이라고 하고 자연속에 꾸며진 자연성이 강한 곳은 원림으로 구분하는 것도 무방하다'는 의견을 제시하였다고 한다. 이 대목에서 林泉이 다름 아닌 원림이였음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그리고 사족을 달자면 울타리의 유무를 떠나서 우리나라 전통 용어를 사용하여 정원보다는 원림이라 부르고 옛사람들이 꽃이 위주이면 화원, 숲과 샘이나 못이 있으면 림천, 숲과 동산 위주면 림원이라고 부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은이가 머릿글인 서문에서 말했듯이 중국과 일본을 려행다니다보면 그 나라의 전통건축과 전통조경을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데 쑤조우의 졸정원과 같이 중국의 원림에서는 호화로운 장식과 방대한 규모가 특징이고 교토의 많은 정원처럼 일본은 철저하게 계산된 인공미가 그 중요한 특징이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원림의 경계가 불분명하여 자연과의 구분이 드러나지 않는 자연스러움이 그 매력일 것이다. 나는 해마다 답사려행을 가면 꼭 한두군데의 정자를 들른다. 담양의 소쇄원이나 명옥헌과 면앙정, 보길도의 세연정을 아주 좋아한다. 이러한 곳에 가보면 누구나 느끼는 바이지만 자연과 인공의 경계가 없다. 더할 나위 없이 편안하게 자연을 집안에다 끌어들이니 구태여 담장을 세울 필요도 없어서 자연스레 집이 자연의 일부분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전통건축이 주변 산세를 저절로 닮아가는 것이다. 오늘날 무분별하게 건축하고 토목사업을 벌이는 후손들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지만 눈멀고 귀닫은 우리들은 서양식 사고에 익숙해져버린 나머지 오래된 손안의 보물들을 돌아보지 않는다. 안타깝기 그지 없는 일이다.

 

예전에 어르신들로부터 능소화는 양반집에만 심는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 바로 화목구등품제를 이르는 것인데 이 내용을 담은 <화암수록>이 조선 후기의 류박이란 분의 저서임을 알고서 놀랍고 흥분되었다고 지은이는 적었다. 1차사료를 직접 확인하는 것이 공부의 기본인데 책도 물론이거니와 인터넷에 떠도는 지식이란 것들이  좋은 것도 있지만 잘못된 내용을 계속 복사해서 퍼나르는 웃지못할 경우를 많이 본다. 내 자신도 이것에 일조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평소에 하며 늘 조심하고 있지만 여전히 불안하다. 제대로 된 학자라면 마땅히 1차 사료를 몸소 보고 그 어세의 미묘한 차이와 항간의 숨은 뜻까지도 잘 찾아내어 고민끝에 한송이 국화꽃을 피워야 할 것이다. 서산대사의 말씀처럼 눈덮힌 들에 내 첫 발걸음은 뒷사람의 리정표가 될 지니 조심하고 조심할 수 밖에 없다....................

 

아직 책을 다 읽지는 못했지만 좋은 책을 보는 즐거움에 행복을 느끼며 서평을 이만 줄인다. 참, 참고로 나는 책에 대한 평점이 좀 짜다. 당연히 마음에 들지 않으면 사지도 않을 뿐더러 더군다나 서평을 쓰지는 않을 터이니 그런 범주 내에서 내 평점을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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