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선전 - 원전총서 원전총서
유향 지음 / 예문서원 / 1996년 8월
평점 :
품절


요 근래에 다시금 신화에 푹 빠져서 여러 관련 서적을 읽었는데 중국 학자 위안커의 <중국신화사> 번역본을 읽다가 <열선전> 내용이 인용되어 궁금함에 책꽂이에 방치해 두었던 <열선전>을 꺼내 읽게 되었다.

 

정재서 선생의 추천사에도 보이지만 이 책은 최초의 완역본이며 동시에 한 편의 논문처럼 자상하게 해설과 참고 자료를 붙여 놓았다. 나는 한문고전을 살 때에 원문이 없는 번역본은 결코 사지 않는데 이 책은 고맙게도 말미에 도교의 팔만대장경인 도장본 <열선전> 원문과 청나라 가경 년간의 <열선전교정>본 원문이 실려 있어 참으로 마음에 든다. 이 분야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아직까지 파는 곳이 있다고 하니 절판되기 전에 일단 사두시라고 소장을 권하고 싶을 만큼 꼼꼼함이 돋보이는 책이다.

 

옮긴이는 그 서문에서 신선설화 곧 仙話는 신화와 엄밀히 구분된다고 하였다. 중국신화를 집대성한 <중국신화사>에 의하면 신화는 근대에 만들어진 낱말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신선'이란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신과 선은 차이가 크지 않다. <설문해자>나 <장자>, <사기>를 종합해보면 신인이 곧 선인이었고 그 선인은 장생불사하며 산에 사는 사람인 것이다. 이러한 신선사상은 도가사상과 도교사상의 바탕이 된다고 한다. 漢晉시대에 가장 중요한 선화 모음집이 두 개 있는데 바로 논란이 있으나 서한의 유향이 지었다고 하는 이 책 <열선전>과 유명한 <포박자>의 저자 갈홍이 지은 <신선전>이다.

 

제목에서 보이듯이 <사기>의 기전체 서술 방식 중 열전의 형식을 따서 적은 글이다.  진한시대에는 진시황과 한무제로 대표되는 제왕들이 신선방사를 대우해 주어 그 활동이 흥성하던 시기였는데 이 책은 이러한 사회사상적 배경에서 창작되었다.  

공자의 뛰어난 제자들을 흔히 72현이라고 하는데 어느 책에 보면 70인이라고 한 곳도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70인의 신선들은 역자의 설명을 읽지 않아도 이 수자에 준하여 맞추었다는 생각이 금방 든다. 아뭏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노자, 개자추, 범려, 동방삭을 비롯한 6인의 실존 인물과 나머지 64인의 전설상의 인물에 관한 내용이 실려 있다. 이들은 삼황의 하나인 신농 때부터 서한 성제 때까지의 인물들로서 다양한 방법으로 성선하는데 그 가운데 39인이 복약법을 통해 성선함이 흥미롭다. 복약법은 글자 그대로 불사약으로 알려진 식물이나 광물의 선약을 복용하는 것이다. 뒷날 명나라 황제 중에는 인공적인 단약으로 인해 목숨을 잃은 경우도 있지만 이때는 천연물질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한편으로 재미있는 점은 <포박자>에 인용된 <선경>에 의하면 신선들을 상중하 3품으로 나누는데 하늘로 승천한 고주몽 같은 이는 하늘천자 쓰는 천선이고 구월산으로 숨어들어 불로장생했다던 마지막 단군은 지선이며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전우치와 같은 경우는 시해선이라고 한다고 한다.

 

책의 내용은 각 선인별로 너무나 짧아서 읽고 난 뒤에도 별 감흥이 없다. 하지만 <열선전>을 모방한 신선전기집은 한대 이후로 꾸준히 창작, 집록, 편집되어 전통적인 지괴소설 가운데 '잡사잡전체' 또는 '신선류'로 분류되어 일정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또한 많은 문학 작품들의 전고로 활용되어 제대로 알려면 꼭 읽어야만 할 책이다. 무협지에 나오는 영물을 타고 다니는 '승영물'도 여기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이처럼 후대에 미친 영향은 매우 크지만 이만 생략하기로 하고 내 기억에 남는 몇 가지를 적어본다면

1. 나는 고전을 읽으면서 '옛사람들의 호가 여기에서 생겼구나' 하며 알게 됨을 기뻐하는 적이 많은데 이 책을 보면서도 강태공이 낚시하며 때를 기다리던 반계에서 실학자 류형원이 아마도 호를 취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다시 하였다.

2. 32 하구중 선인조에 우리의 부여가 나오고

3. 지금도 솔잎을 먹으며 수행한다고 들었는데 이 책에도 그런 내용이 나와 흥미로왔다.

4. 63 부국선생은 글자 그대로 거울을 가는 판 모양의 국을 지고 다닌 선인인데 동경을 간다는 생각은 평소에 해 본 적이 없어서 새로웠다.

5. 내가 알기로는 인명 끝에 애비 부자가 붙으면 보로 읽는다고 하는데 여러 선인의 이름을 역자는 부로 읽었는데 정확한 것인지 궁금하다.

어쨌거나 겨울철 따뜻한 아랫목에 배깔고 누워 신선세계를 엿보는 것도 아주 즐거운 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