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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칸쇼 ㅣ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동양편 513
지엔 지음, 박은희 외 옮김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12년 12월
평점 :
영어가 대세인 21세기의 한국에서 고루한 이야기인 줄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한자문화권의 고전은 물론이거니와 전통문화에 관련한 연구를 할려면 한문 공부를 반드시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다시금 든다. 물론 최근에 쏟아져 나오는 유튜브의 동영상이나 실록 다큐은 말할 것도 없다. 자막을 보면 번역인지 글씨로 치면 괴발새발인 경우가 상당히 눈에 띈다. 한문은 커녕 한자에 대한 생소함과 역사 및 제도, 문화에 관한 무지함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각설하고 이 책의 번역도 노력한 흔적이 보이나 무언가 조금 어색하며 우리말처럼 매끄럽게 읽히지 않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외국의 고전을 초역했다는 자체만으로도 대단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우관초>의 저자는 일본의 천년 수도였던 교토 북쪽에 자리한 천태종 본산인 히에이쟌 엔랴쿠지(연력사)에 주석하며 세번이나 좌주(종정)을 력임한 자원(지엔)이란 고승이다. 현재도 횡단도로가 있긴 하되 주로 삭도(케이블카)를 이용해서 올라가는 험한 산에 살면서 왜 속세의 역사를 정리하고 거기에다 사족을 달았을가 라는 의문이 우선 들었다.
교토에 가면 꼭 들르는 히에이쟌, 담해라고 불릴 만큼 광활한 비파호(비와코)를 오른쪽에 두고 하마오츠역에서 갈아타 사문파의 본산인 미이데라(삼정사; 온조지) 방향인 북쪽으로 종점인 아케치 미츠히데의 거성이 있던 사카모토역까지 철마는 호수와 나란히 달린다. 아케치의 주군인 오다 노부나가는 천년불멸의 등불이 있던 엔랴쿠지를 공격하여 거대 사찰을 전소시켰다. 왜정시대 우리 조선인 노동자들의 피와 땀으로 만들었다는 삭도로 우람한 나무 사이 마치 원시림 같은 숲을 뚫고 올라가면서 당시 오다군도 꽤나 고생스러웠겠다는 망상이 스쳐간다.... 사설이 길었다.
이 책의 연대기는 벼슬아치가 쓴 <신황정통기>에 견주어 눈높이가 낮은 듯 하다. 천황순으로 가족관계와 대신 기사 빼고는 거의 없다. 대신 위주로 되어 있다 보니 정치사의 흐름이 각주의 도움을 받아 잘 인식된다.
실존했는지 의심받는 천황들은 넘어가고 아스카시대엔 백제계 호족인 소가씨가 많이 나온다. 그러다 정사를 천단한 소가 이루카를 살해한 후지와라 가마타리 이후론 가마쿠라 막부 이전까지의 헤이안 시대는 후지와라씨 일족의 족보를 옆에 두고 역사공부를 해야 할 정도로 외척인 후지와라의 세상이다. 1권과 2권이 이러한 내용이다.
3권부터는 사평이라고 하기엔 좀 긴 사론이 적혀 있다. 나름대로 복잡한 천황 계보를 정리해 나가면서 그의 생각을 담아 나간다. 말미에도 번역자들이 싹싹하게 계보도를 붙여주셨고 책 사이사이에도 곳곳에 계보가 나와 있어 읽는 데에 크게 도움이 된다. 아주 마음에 든다. 이러한 내용이 이야기식으로 6권까지 주욱 이어지고 7권은 무슨 얘기를 할려고 했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책 내용을 아직 숙지하지 못한 탓인지 고승의 집필 의도를 완전히 알지는 못했다. 나중에 시간을 내서 숙독해야겠다. 끝으로 하나만 사족을 달자면 204쪽 37번 각주의 천태종 고승은 지기가 아니라 '지의'로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