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호란, 홍타이지의 전쟁
구범진 지음 / 까치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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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축년(丁丑年) 정월 30(양력 1637224), 조선 국왕 인조는 남한산성을 나서 삼전도(三田渡)로 향했다. 병자년(丙子年) 128(163713) 압록강을 건넌지 채 일주일도 되지 않아 수도 한성을 접수하고, 끝내 최후의 보루인 강화도마저 점령한 청에게 항복하기 위해서였다. 몸소 군대를 이끌고 조선을 찾은 청 태종 홍타이지에게, 인조는 세 번 무릎을 꿇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삼궤구고두(三跪九叩頭)의 예를 올렸다. 오늘날까지 널리 회자되는 삼전도의 굴욕이다.

 

문명국 국왕오랑캐 추장에게 신하의 예를 표한 이 초유의 사건은, 연하겠지만 조선 지배층의 정신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계승범의 말마따나 조선후기 정치·지성사의 흐름은 이 충격을 벗어나고 상쇄하기 위한 자기몸부림에 다름 아니었다.”(계승범, 삼전도항복과 조선의 국가정체성 문제허태구, 병자호란과 예, 그리고 중화(소명출판,2019)에 대한 종합비평, 조선시대사학보91. 2019) 지위와 당색을 막론하고 일단 위정자의 지위에 있는 자라면 병자호란에 대한 해석과 평가로부터 자신의 입론을 전개할 수밖에 없었다.

    

병자호란의 엄청난 무게에 짓눌린 건 이들만이 아니다. 사건으로부터 400년 가까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병자호란은 여전히 한국사회에서 가장 뜨거운 논쟁거리 중 하나다. 아무리 조선시대에 대한 평가가 현대 한국인의 이념적 좌표를 파악하는 중요한 리트머스 시험지라고 해도, 이러한 과열은 의아하게 느껴질 정도다. 심지어 명과 청 사이에 놓인 병자호란 당시의 조선을 미국과 중국 사이에 놓인 21세기의 대한민국과 섣부르게 유비하며 어떠한 교훈이나 지혜를 구하려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국제 관계에 전문성을 갖춘 인재 양성을 목표로 하는 모 국제중학교의 초대 면접고사가 병자호란 당시의 척화파와 주화파 중 한 쪽을 고르라는 것이었다는 사실은 그 점에서 퍽 시사적이다.

 

역사학자 구범진이 문제 삼는 것은 바로 이러한 병자호란 해석과 평가의 과잉이다. 사건의 엄청난 임팩트야 부정할 수 없지만, 이로 인해 정작 그 진상을 파악하려는 노력엔 소홀했다는 것이다. 그의 책 병자호란, 홍타이지의 전쟁 아주 오래 전 역사학에서 폐기된 줄 알았던 진실 탐구가 여전히 유효한 가치임을 보여주는 흔치않은 역작이다. (물론 이건 내가 이야기로서의 역사를 중시하는 학교에 다녀서, 혹은 그런 선생님들께 배운 탓이겠지만) 한문에 만주어 사료는 물론, 첨단 과학기술까지 동원하여 끝끝내 진실을 포획하는 저자의 치밀함을 보노라면 서울대 동양사학과란 이런 것인가!”하는 감탄이 나올 수밖에 없다. 문장도 구성도 엉망진창이라 도저히 재밌게 읽어주기 어려웠던 저자의 초기작 청나라, 키메라의 제국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라 할 만한 단정한 문장과 정연한 논리, 탄탄한 구성 역시 인상적이다.

 

(여담이지만, 지금은 중국 근세사 연구자로 유명한 구범진의 박사논문 주제가 근대전환기에 해당하는 청말 북양신정(北洋新政)이었다는 사실은 퍽 흥미롭다. 반대로 대만사 연구의 권위자인 문명기는 역시 근대전환기 대만의 건성(建省)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지만, 이후 일제의 대만 식민통치기 쪽에서 주목할 만한 성과를 남겼다. ‘근대전환기로 박사를 받고 근세근대로 넘어간 두 연구자의 궤적이 서울대 동양사학과의 학풍과 어떠한 관련이 있을지, 자못 궁금해진다.)

 

우선 구범진은 병자호란의 책임을 오직 조선에서만 찾는 경향을 비판하며, 전쟁이란 어디까지나 쌍방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임을 강조한다. 다시 말해 조선의 교전국인 청의 의도와 이를 관철하기 위한 전략을 파악해야 비로소 전쟁의 진상을 밝힐 수 있다는 것이다. 아니, 저자에 따르면 청, 구체적으로 홍타이지는 병자호란의 절반정도가 아니라 모든 것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링컨의 저 유명한 어록을 빌리자면 병자호란은 홍타이지의, 홍타이지에 의한, 홍타이지를 위한 전쟁이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이해와는 달리, 병자호란은 마음 놓고 명을 치기 위해 배후의 조선을 정리한 부수적인 사건 따위가 아니었다. 일단 정묘호란 때 만천하에 드러난 조선의 보잘것없는 군사력은 결코 청의 중국정복을 위협할 수준이 아니었다. 게다가 홍타이지는 조선을 치는데 뒤탈이 없게끔 먼저 명의 수도권 일대를 들쑤셔놓을 정도로 이 전쟁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이유는 단 하나, 조선이야말로 홍타이지의 칭제(稱帝)를 완성시켜줄 인피니티 스톤이었기 때문이다.

 

병자년 411, 홍타이지는 심양(瀋陽)에서 성대한 황제 즉위식을 거행했다. 중원을 차지하지도 못했으면서 감히 천자를 자부할 수 있었던 근거는 세 가지였으니, 첫째가 몽고 통일이요, 둘째가 칭기즈칸의 옥새 획득이며, 셋째가 조선 정복이었다. 문제는 첫째, 둘째 이유와 달리 세 번째 이유는 순전히 홍타이지의 몽상에 불과했다는 사실이다. 조선에게 정묘년의 형제맹약은 당연히 칭신(稱臣)과는 별개였고, 얼떨결에 황제 즉위식에 불려나온 조선 사신 나덕헌과 이확은 목숨을 걸고 홍타이지에 대한 배례(拜禮)를 거부한다. 기껏 공들여 준비한 이벤트의 흥이 다 깨져버린데 분노한 홍타이지는 그 책임을 조선에 돌린다. 병자호란은 청이 조선의 오만방자함을 참다 참다 끝내 참교육에 나선 결과라는 일각의 이해는, 따라서 완전히 틀린 것이라 하겠다.

 

이처럼 조선을 굴복시켜 신하로 두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던 만큼, 홍타이지는 온 병력을 끌어모아 친히 원정에 나섰다. 가히 근대의 총력전에 비교될법한 위세였으나, 그 규모는 근래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여지는 ‘128000에는 크게 미치지 못했다. 당시 청의 인구와 가용 병력을 고려했을 때, 조선정벌에 동원된 군대는 많아야 34000명 정도였으리라는 게 저자의 추측이다. 수백만 단위를 우습게 넘나드는 삼국지 스케일에 익숙한 독자라면 애걔?”하고 실망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송도 고려도 아닌, 같은 유목민인 거란인 입에서 그 수가 1만이 넘으면 당해낼 자가 없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막강했던 전투종족이 바로 이들이었다. 3만이란 숫자는 능히 한 나라를 멸망시킬 수 있는, 실로 무시무시한 규모였으리라.

 

물론 조선이라고 가만있지는 않았다. 평지에서 청의 강력한 기병을 맞닥뜨릴 경우 승산이 없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던 조선 조정은, 유사시 관민이 산성에 들어가 농성하며 적의 진을 빼놓는다는 산성 입보(入保)전략을 세워놓은 상태였다. 뿐만 아니라 평안도의 안주와 영변에 일차 방어선을, 황해도의 황주와 평산에 이차 방어선을 구축함으로써 한 쪽이 청군의 공격에 노출될 경우 다른 한 쪽이 원군을 보낼 수 있는 역삼각형() 방어지대를 형성했다.

 

이 모든 건 청군과 맞서 승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진격속도를 최대한 늦춤으로써 조정이 강화도로 파천할 시간을 벌기 위한 전략이었다. 수전(水戰)에 약한 유목민족에겐 난공불락의 요새인 강화도로 들어만 간다면 전쟁은 지구전으로 흐를 수밖에 없고, 결국 제풀에 지친 청군이 알아서 철수하리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강화도 농성의 효용은 멀게는 고려의 대몽항쟁, 가까이는 정묘호란에서도 입증된 바 있으니 조선 조정의 대응은 꽤나 합리적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청은 결코 조선이 바라는 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최대한 빨리 왕을 사로잡아 무릎을 꿇리는 게 목적이었던 만큼 청군은 조선의 주요 방어거점을 내버려둔 채 한성으로 쾌속 진군했다. 여기에 평안도와 황해도의 조선군이 작전대로 관민을 이끌고 산성에 틀어박혔기 때문에 청군 입장에선 그야말로 톨게이트가 열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를 두고 광해군은 청군이 곧장 수도로 쳐들어오는 상황 역시 염두하고 있었는데 인조는 왜 그러지 못했느냐며 책망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두 왕 사이에 정묘호란이 놓여 있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다시 말해 아직 청군의 직접적인 침략을 마주한 적이 없었던 광해군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둘 수 있었던 반면, 서북 각지를 들쑤신 정묘호란을 겪은 인조는 다음 침략 역시 꼭 그렇게 이루어지리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과거의 교훈을 너무나 충실히 되새긴 나머지 상상력이 구속된 결과다.

 

게다가 청군은 그저 빠르게 내달리기만 한 게 아니었다. 정묘호란은 조선만큼이나 청에게도 중요한 교훈을 안겨줬다. 일단 조선 조정이 강화도에 들어가는 순간 전쟁은 자신들에게 매우 불리해질 뿐 아니라 여차하면 배후의 조선군에 역습을 당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홍타이지는 시차 진군 작전양로 병진 작전을 구사했다. 쉽게 말해 청군을 둘로 나눠 각각 동쪽과 서쪽으로 진군케 했을 뿐 아니라, 그마저도 시차를 두고 전(), (), ()로 움직이게 한 것이다.

 

홍타이지의 전략은 실로 효과적이었다. 압록강을 건넌지 6일 만에 한성에 당도한 로오사(Loosa)의 선봉대는 300명에 불과했고, 후속 부대는 아직 뒤따라오는 중이었음에도 조선은 이들을 3만여 명에 달하는 청군 본대로 착각하고 말았다. 그토록 엄청난 규모의 군대가 역시 엄청난 속도로 진군하고 있다는 패닉에 휩싸인 결과, 조정은 한성을 뜰 타이밍을 잡지 못하고 고작해야 남한산성에 틀어박히고 말았다. 비록 국왕을 한성에 가둔다는 본래의 목적은 달성하지 못했지만, 홍타이지는 아주 적은 수의 병력으로도 조선 조정을 지레 겁먹게 만들어 강화도로 파천하지 못하게 만든 것이다. 게다가 청군이 병력을 쪼개어 시차를 두고 이동했던 만큼 평안도와 황해도의 조선군은 청군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언제쯤 다 진군할지 파악할 수 없었고, 그 결과 근왕(勤王)을 위해 섣부르게 남하하지 못했다.

 

양로 병진 작전 역시 조선군의 허를 찔렀다. 앞서 설명했듯 조선군은 역삼각형으로 전력을 배치하고 한 쪽이 공격받을 경우 다른 쪽이 구원에 나선다는 전략이었는데, 청군이 양쪽으로 진군함으로써 발이 묶여버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오늘날 지지리도 욕을 먹는) 황해도원수 김자점은 뒤늦게나마 청군이 통과한 서쪽 대신 동쪽 루트를 통해 남한산성으로 향했는데, 하필이면 토산에서 청의 동로군을 만나 궤멸적인 피해를 입었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겠으나, 결과적으로 홍타이지는 조선의 모든 대응을 철저히 무력화시킨 셈이다. 이윽고 남부 4도에서 올라온 근왕군마저 모조리 청군에 격파되었고, 남한산성에 갇힌 인조는 그야말로 고립무원의 상황에 놓였다.

 

하지만 비록 독 안에 든 쥐와 같은 신세일지언정 인조에겐 마지막 믿는 구석이 있었으니, 바로 강화도로 피신한 봉림대군(훗날의 효종)이었다. 강력한 수군이 지키고 있는 천혜의 요새인 강화도가 뚫리지 않는 한 끝까지 항전을 이어갈 심산이었던 것이다. 인조의 이러한 희망은, 그러나 청군이 강화도마저 손쉽게 접수해버림으로써 끝내 사그라지고 만다. 원정군답지 않게 강화도의 지형과 자연조건을 십분 활용한 결과였다.

 

정축년 정월 22(1637216) 오전 1030, 강화도와 김포 사이를 흐르는 염하수로의 조류가 밀물에서 썰물로 바뀌었고, 방향 역시 북에서 남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마치 이를 이미 알고 있던 것처럼 김포 북쪽 갑곶에서 대기하던 청군은 흥룡강에서 쓰이던 작고 날렵한 배에 올라 조류를 타고 손쉽게 강화도에 상륙했다. 만일 청군이 상륙할 경우 유빙이 어는 갑곶을 택할 리는 없다고 여겨 강화도 남쪽의 광성보를 지키고 있던 강도유수(江都留守) 장신의 함대는 뒤늦게 사태를 파악했으나, 조류의 방향도 방향이고 무엇보다 수심이 너무 얕아 북상하지 못했다. 조선의 무적함대가 할 수 있었던 건 그저 청군의 도해를 무력하게 바라보는 일뿐이었다. 저자는 청군이 이토록 기상천외한 작전을 성공시킬 수 있었던 것은 조선에 귀화해 어업에 종사하던 여진인인 향화호인(向化胡人)들이 정보를 제공한 덕분이라고 추측한다.

 

마지막 보루인 강화도마저 함락되고 봉림대군이 인질로 잡힌 상황에서 이제 인조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단 하나, 무조건적인 항복과 자비를 베풀어달란 간청뿐이었다. 반면 남한산성을 손아귀에 넣은 홍타이지는 실제 역사처럼 조선국왕의 칭신은 물론이요 조선의 괴뢰국화와 직할화(直轄化)까지, 그야말로 원하는 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그저 가만히 기다리기만 해도 조선국왕은 알아서 기어나올 터였고, 실제로 홍타이지의 태도는 더할 나위 없이 느긋했다.

 

그러나 정축년 정월 16일을 기점으로 청의 태도가 일변하기 시작한다. 조선에게 빨리 강화협상에 임하라고 다그치는 것은 물론 일단 출성만 하면 인조의 신변을 보장하겠다는 언질도 주는 등, 홍타이지는 승자답지 않게 몸이 달아 있었다. 이러한 급작스러운 태도 변화의 이유를, 저자는 당시 조선에서 유행하던 천연두(마마)에서 찾는다. 천연두에 대한 면역이 없는 생신(生身)이었던 홍타이지는 부대 내에 마마가 창궐했다는 소식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본래 220일로 계획되어 있었던 강화도 점령이 정월 22일로 급히 당겨진 점이나, 훗날 홍타이지가 자신이 마마를 피해 조기 귀국했다고(避痘先歸) 지나가듯 언급한 것이 그 증거다. 조선을 멸망의 위기에서 구해낸 건 김상헌의 절개도 최명길의 기지도 아닌, 마마라는 전염병이었던 셈이다.

 

이처럼 마마로 인해 급히 조선을 뜰 수밖에 없었지만 홍타이지는 자신이 원하던 바는 확실히 이루었으니, 바로 황제 즉위식의 완성이었다. 실제로 삼전도에서 거행된 의례는 일반적인 승전식과 달리 매우 엄숙하고 진지하게 치러졌으며, 대열을 벗어나거나 갑옷·투구를 풀고 있을 경우 지위여하를 막론하고 가차 없이 처벌받았다. 인조에 대한 예우 역시 패자답지 않게 극진했는데, 이는 그를 일국의 군주로 자리매김해야만 홍타이지 본인이 명실상부 황제의 자리에 오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요컨대, 삼전도 의례는 조선의 거부로 미완에 그친 황제 즉위식의 완성이었다. 그야말로 수미가 상응하는, 모든 것이 홍타이지의 의도대로 돌아간 완벽한 작품이라 아니할 수 없다.

 

텍스트 요약이나 발제문이 아닌, 어디까지나 서평인만큼 과감한 압축과 생략을 거듭했지만, (그럼에도 분량이 이렇게나 많은 건 전적으로 서평가의 능력부족 탓이다) 사실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사소한 날짜 하나도 온갖 사료를 교차검증한 뒤에야 조심스레 확정짓는 저자의 치밀함과 꼼꼼함이다. 혹자는 이를 두고 요즘 같은 시대 진실을 밝혀내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며, 그래봐야 결국 병자호란은 조선이 청에게 압도적으로 패배한 전쟁이 아니냐며 비아냥댈 수도 있겠다. (일단 나부터가 그런 생각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팩트는 생각보다 힘이 세다. 의미 없는 논쟁에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을 막아줄 뿐 아니라, 보다 나은 논의로 나아가게 해주는 디딤돌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가령 구범진은 작은 팩트 하나하나를 촘촘히 쌓아간 끝에, 병자호란이 청의 중국정복에 딸려온 부수적인 이벤트따위가 아니라 그 자체로 매우 중요한 사건임을 밝혀냈다. 병자호란의 의의를 과소평가해온 영어권 학계는 물론이고, 그것이 조선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에만 몰두해온 한국 학계에서도 지금껏 나오지 못한 새로운 해석이다. 이러한 해석은 자연히 청이 구축한 새로운 국제질서 속에서 조선이 어떠한 위치에 있었는가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제공한다. 실제로 저자는 일찍이 청나라, 키메라의 제국에서 청에게 조선은 류큐나 베트남처럼 명의 멸망으로 자연스레 접수한 유산이 아니라(동남 초승달 지대) 몽골과 티베트처럼 전쟁을 통해 획득한 전리품이었고(서북 초승달 지대), 이로 인해 여타 조공국에 비해 높은 지위를 점할 수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나아가 병자호란이 청의 중국정복과는 별개의 자기완결적인 사건이었다면, 우리는 중원과는 상관없이 유목세계만으로 이루어진 천하와 그 속의 조선을 상상해볼 수도 있다. 당시 그 누구도 명이 그토록 허망하게 무너지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만큼, 어쩌면 홍타이지는 중원정복은 먼 미래의 일로 제쳐두고 조선의 칭신으로 완성되는 독자적인 천하를 구상했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중원 없는 천하혹은 유목세계의 천하는 어떻게 굴러갔을 것이며 남쪽에 위치한 중원의 천하와는 어떠한 관계를 맺었을 것인가? 그리고 유목과는 거리가 먼 삶을 영위해온 조선인들은 새로운 천하에서 스스로를 어떻게 자리매김하고 낯선 이웃들과 함께 살아갔을 것인가? 학문적으로는 무의미한 망상이겠지만, 소설이나 웹툰의 소재로는 더할 나위 없이 흥미로운 주제가 아닌가! 저자가 주춧돌을 놓은 병자호란에 대한 단단한 팩트를 딛고 피어날 보다 나은 논의,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만들어질 수많은 창작물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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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그랑쥬 2020-07-11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관련한 웹툰으로 칼부림이 이미 있습니다. 추천하고 갑니다.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 - 삶을 위한 말귀, 문해력, 리터러시
김성우.엄기호 지음 / 따비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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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몰라도, 나는 무엇보다 읽는 존재. 주변에 꼭 한 명씩 있다는 천재들처럼 돌도 지나기 전에 한글을 뗐다는 전설적인 일화는 없지만, 글을 깨친 순간부터 읽기는 내 삶 자체나 다름없었다. 책과 신문은 말할 것도 없고 제품 설명서나 과자 포장지에 이르기까지, 일단 글자가 있다면 너무나 좋았기에 닥치는 대로 읽고 봤다. 그 결과, 나는 영화나 드라마 같은 영상매체마저 보지 않고 읽는 수준에 이르렀다! 실제로 내가 영화관을 찾는 횟수는 일 년에 많아야 두세 번이고 넷플릭스는 아예 가입조차 되어있지 않지만, 웬만한 영화나 드라마는 기사와 위키, 리뷰를 통해 해결한다. 그 유명한 데카르트의 경구를 빌리자면 나는 읽는다, 고로 존재한다. 보르헤스의 말마따나 천국은 도서관의 모습을 하고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고 말이다.

 

  이런 내가 요 근래 가장 걱정하는 건 단연 유튜브의 막강한 위세다. 단순히 사람들이 유튜브만 들여다보느라 책을 읽지 않아서가 아니다. 정보를 습득하는 주된 방식이 읽기에서 보기로 바뀌며 사람들의 사고나 심성마저 크게 달라지고 있다는 위기감이 도처에서 엄습해오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선생님들께선 너희들은 문단을 못 썼지만 지금 가르치는 애들은 문장도 못 쓴다며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신다. ‘구세대티를 팍팍 내는 것 같아 말하기 부끄럽지만, ‘요즘 애들은 카톡이 아닌 틱톡이라는 동영상 앱으로 소통한다는 이야기에 기함했던 기억도 생생하다.

 

  나 역시 유치원에서 아이들에게 종종 그림책을 읽어주곤 하는데, 그때마다 2010년대 중반생인 이 친구들이 서사(narrative)’가 있는 이야기책에 심각할 정도로 집중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퍽 놀라곤 한다. 아이들은 더 이상 존 버닝햄이나 앤서니 브라운, 이억배의 그림책에 빠져들지 않는다. 최근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을 받아 화제를 모은 백희나 역시 어른들 사이에서나 인기 있을 뿐 유치원에선 찬밥신세다. 아이들이 앞다투어 빌려가는 최고의 인기작은 다름 아닌 내셔널지오그래픽 키즈. 이유는 간단하다, 다큐멘터리 캡쳐나 다름없는 만큼 리얼그 자체인데다 무엇보다 서사가 없기 때문이다. 이 얘기를 방과후 선생님들께 하니 그것도 몰랐냐는 듯 핀잔 한마디를 건네신다.

 

아유 찬근쌤, 그것도 몰랐어? 애들한테 WHY?시리즈 사주면 그걸로 책읽기는 끝이야!

 

  이처럼 유튜브가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이상의 변화를 몰고 올 것이 거의 확실시되는 가운데, 나 같은 활자중독자는 앞으로 먹고살 길을 고민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다. 일단 난 새 시대의 맏이가 되느니 구시대의 막내가 되는 길을 선택()했다. 속되게 말해 한국에서 그나마 글을 가장 많이 읽고 쓴다는 386X세대의 순장조가 되기로 한 것이다. 여러 모로 부족하지만 어쨌든 매주 서평을 올리는 것 역시 지금이 386X세대가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어쩌면) 마지막 시기라는 예감이 들어서다. 이들이 물러나고 유튜브 세대가 주류로 올라서기 전에 막차라도 타야겠다는 게 내 솔직한 심경이다. 그럼에도 마음 한켠에 남은 불안감은 사라질 줄 모른다. 과연 글 쓰는 일로 10, 20년 뒤에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 아니, 그때 내가 읽을 글 자체가 남아있기는 할까?

 

  김성우와 엄기호의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읽는 존재들의 이러한 두려움에 응답하는 훌륭한 책이다. 오랜 시간 말과 글의 문제에 천착해온 두 사람의 대담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비단 유튜브 시대의 문해력을 고민하는데서 끝나지 않고, 이를 보다 다양한 층위의 미디어를 오고갈 수 있는 리터러시의 문제로 확장한다. 교양서, 그것도 대담집이지만 내용 역시 가볍기는커녕 무척이나 충실하고 밀도가 높다. 요새 한국어 화자가 한국어로 쓴 교양서의 수준에 새삼 놀라곤 하는데, 그중에서도 이 책은 유달리 돋보인다. 단언컨대 올해 한국출판문화상 교양부문 수상, 못해도 최종심에는 들어갈 것이라 확신한다.

 

  우선 저자들은 제목처럼 유튜브가 책을 집어삼킬 것인지, 다시 말해 정보를 보는시대의 도래로 전통적인 읽기쓰기가 소멸 혹은 쇠퇴할지를 묻는다. 다행히도(?) 저자들의 대답은 그렇지 않다이다. 읽고 쓰는 행위만이 갖는, 대체 불가능한 장점이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저자들이 생각하는 텍스트 최대의 장점은 유연성경제성’, 그리고 추상성이다. 텍스트는 언제 어디서든 펜과 종이, 혹은 스마트폰만 있으면 무한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연하고, 또 경제적이다. 과거 웹툰 작가 주호민은 여기는 우주다하고 말만 하면 그냥 우주가 되는 라디오 드라마처럼 만화 역시 손쉽게 그런 상황을 표현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지만, 사실 손가락 한 번 퉁겨서 우주를 만들기엔 글만큼 싸고 편한 게 없다.

 

  무엇보다 텍스트는 오늘날 인류가 가지고 있는 모든 미디어 중 가장 압도적인 추상성을 자랑한다. 글은 인간 앞에 놓인 세계의 다양한 층위를 이해하고 이를 적합한 개념에 담아내어 길고 촘촘한 서사나 고도로 정교한 논리를 구축하는데 가장 적합한 도구다. 적어도 추상화에서만큼은 말과 영상이 아직까진 글을 따라갈 수 없다는 게 저자들의 생각이다. 따라서 유튜브 시대가 도래했다며 섣불리 텍스트 중심 교육을 놓아버리기보단, 보다 읽을 수 있게끔 학생들을 독려하는 교육과정을 계발하는 게 중요하다.

 

  이처럼 저자들은 유튜브 시대 전통적인 문해력의 위기를 점검하는 한편, 이와는 전혀 다른 방식의 리터러시에 대한 감각을 요구한다. 문해력이 높은 탑을 쌓는 능력이라면, 리터러시는 다리를 놓는 능력에 가깝다. 구체적으로 사람과 사람, 매체와 매체를 오가며 함께살아갈 수 있는 역량, 그것이 바로 넓은 의미의 리터러시다. 이 때 중요한 건, 다리를 놓는다는 것이 결코 공감의 동의어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오는 폭로나 고백글에서 숱하게 찾아볼 수 있는 공감합니다란 댓글은, 사실 굉장히 위험할 수 있다. 상대방의 구체적인 맥락을 읽지 못한 채 무턱대고 내가 그와 같다고 전제해버림으로써 엄연히 존재하는 차이를 소거해버리기 때문이다. 결국 청자 혹은 독자에게 남은 건 대체 불가능한 존재로서의 타자가 아니라, ‘슬픔혹은 분노라는 원초적이고 납작한 감정뿐이다. 화자 혹은 글쓴이 역시 자신의 감정을 섬세하게 읽고 이해해줄 사람을 찾기 못하고 페이스북의 따봉이나 다름없는 공감을 추수하며 위안이나 얻게 되고 말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감정은 차분하게 성찰되기보다는 격하게 증폭되기 일쑤다. 이것이 바로 저자들이 이야기하는 리터러시의 위기다.

 

  역설적이지만, 사람과 사람, 매체와 매체 사이에 다리를 놓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건 다름 아닌 차이를 인지하는 능력이다. 다르기 때문에 다리를 놓을 수 있고, 또 놓아야 한다. 언제나 미세하게 끝이 흔들리는 나침반처럼 나의 생각과 경험을 일반화하지 않고, 섣부르게 나와 남의 같음을 발견하기보다는 다름을 받아들이는 것. 나아가 말하는 이가 누구인지, 매체가 무엇인지에 따라 그에 맞는 언어를 능숙하게 구사함으로써 이해의 폭을 넓히는 것. 그것이야말로 저자들이 이야기하는 다리 놓기의 리터러시다.

 

  그리고 이러한 역량을 가장 잘 기를 수 있는 건, 당연하겠지만 읽기. 다른 매체와 비교할 수 없는 촘촘한 내러티브를 지닌 글을 읽어내는 훈련은 역시 두껍고 복잡한 맥락을 지닌 사람이란 텍스트도 읽어낼 수 있게끔 도와주기 때문이다. 이로써 얼핏 따로 노는 것처럼 보였던 문해력과 리터러시는 사람에 대한 이해아래 하나로 합쳐진다. 정말이지 탁월한 솜씨라고밖에 이야기할 수 없는 구성이지만, 동시에 몇 가지 의문도 남는다. ‘읽기란 단순히 두꺼운 내러티브를 이해하는 것으로 환원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책에서 김성우와 엄기호는 글을 크게 두 가지 종류로 구분한다. 하나는 복잡한 논리와 증명으로 이루어진 (광의의) ‘과학(김성우)’ 혹은 천문(天文, 엄기호)’이고, 다른 하나는 흔히 이야기라 불리는 내러티브(김성우)’ 혹은 인문(人文, 엄기호)’이다. 저자들은 내러티브/인문에 대한 문해력이 다리 놓기의 리터러시를 함양하는데 도움을 준다고 이야기함으로써 전통적인 읽기와 쓰기의 중요성을 되살려낸다. 하지만 이러한 엮기는 글을 이루는 나머지 절반인 과학/천문에 대한 문해력을 (의도했든 그렇지 않았든) 도외시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실제로 저자들은 책 전반에 걸쳐 과학/천문을 이해하는데 꼭 필요한 암기식 교육을 비판한다. 뿐만 아니라 학습을 통해 지식의 총량을 늘리는 일을 바벨탑 쌓기의 리터러시라 정의하고 이를 다리 놓기의 리터러시와 대비하며 은근히 전자보다 후자가 낫다는 인식을 내비치기도 한다. 물론 저자들의 말마따나 누가 더 많이 아느냐, 혹은 어려운 글을 잘 읽어내느냐를 잣대로 남을 평가하고 깔보는 태도는 잘못되었지만, 그렇다고 과학/천문에 대한 문해력과 이를 위한 지식의 습득 자체가 꼭 나쁜 건 아니지 않을까?

 

  오늘날 자유로운 비판정신의 대명사처럼 일컬어지는 르네상스 시대의 인문주의자들을 키운 건 8할이 지독한 암기식 교육, 2할이 가혹한 매질이었다고 한다. (반면 중세의 스콜라 철학자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에 의거해 진리에 대한 자유롭고 비판적인 토론을 벌였다고 알려져 있다) 아무리 검색 한 번으로 세상의 모든 지식을 알 수 있다 하더라도, 머리에 든 게 있어야 검색어라도 끼적여볼 수 있다. 그 점에서 암기식 교육,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과학/천문텍스트의 독해는 여전히 중요하다. 문제는 암기식 교육 자체가 아니라, 이에 대한 평가(구체적으론 오지선다형). 저자들 역시 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음에도 문해력다리 놓기의 리터러시라는, 상당히 이질적인 역량을 하나로 엮어내려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빠뜨렸다고 생각한다.

 

  유튜브가 몰고 올(?) 변화에 대한 저자들의 지나친 낙관 역시 퍽 의아하게 느껴진다. 사실 책을 읽는 내내 선생님들 유튜브 안 보시죠?”라는 말이 목 끝까지 올라왔는데, 그도 그럴 것이 저자들이 이런 건 결코 영상으로 대체할 수 없다고 단언하는 것들이 이미 초보적인 형태로나마 실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들이 텍스트만의 장점으로 꼽은 유연성(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음), 경제성(값이 쌈), 추상성(현상을 간단한 개념으로 압축)은 점점 영상에서도 구현가능해지는 추세다.

 

  가령 요즘 10대들은 더 이상 카톡이 아닌 틱톡이라는 동영상 앱으로 소통하며 너도나도 유튜브에 개인 채널을 개설하려 든다. 영상을 찍고, 가공하고, 공유하는 게 그만큼 쉬워졌기 때문이다. 편집 역시 전문 방송국 뺨치는 수준으로 기깔나게 뽑아내는 능력자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게 잘 실감이 안 된다면 요즘 유튜브 최고의 화제작인 종로스타를 추천한다) 심지어 텍스트 최고의 강점이라 일컬어졌던 추상성도 이젠 현란한 인포그래픽에 밀려 조금씩 위협받고 있는 형편이다.

 

  요컨대, 저자들은 당분간 글의 위세는 여전할 것이란 전제하에 논의를 시작했다. 하지만 이제 그 전제 자체를 의심해봐야 한다는 건 너무도 자명하다. 그 점에서 차라리 엄기호 대신 이쪽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전문가와 김성우의 대담으로 책을 구성했다면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도 든다. (물론 난 예나 지금이나 엄기호 키드고 그의 수업을 들은 제자이기도 하지만, 이번 책은 그간 엄기호가 해왔던 이야기들의 반복에 불과하다는 아쉬움을 지우기 어렵다)

 

  이처럼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는 그 장점만큼이나 한계도 뚜렷한 책이다. 문해력과 다리를 놓는 리터러시를 엮어낸 건 좋았지만 그 결과 과학/천문에 대한 문해력과 이를 위한 밑바탕으로서의 암기식 교육이 도외시되었다. 뿐만 아니라 유튜브가 몰고 올 변화, 구체적으로 유튜브라는 미디어가 만들어낼 새로운 인간상에 대한 고민 역시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다. 그러나 난 이 책이 바로 그 한계 때문에 오히려 가치를 갖고, 널리 읽혀야한다고 생각한다. 늘 생각하는 것이지만, 저자가 혼자 북치고 장구치는 책은 좋은 책이 아니다. 독자로 하여금 더 이상의 생각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그냥 저자가 하는 말을 순응적으로 받아들이게 만들기 때문이다.

 

  반면 저자가 의도적으로 몇 개의 허점을 만들어놓을 경우, 독자는 (자신이 저자의 의도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건 생각지 못하고) 신나게 저자를 비판하며 자신만의 생각을 만들어낼 여지를 갖게 된다. 따라서 완성도의 측면에선 전자가 후자에 비해 압도적이겠지만, 사회적 영향력의 측면에선 후자가 전자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게 내 생각이다. 특히 되도록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것을 목표로 삼는 교양서의 경우, 일부러라도 모든 걸 얘기해서는 안 된다고까지 생각한다.

 

  그 점에서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는 독자에게 비판의 여지를 열어 주는 훌륭한 책이다. 단언컨대 저자들은 이 책에 딸려 나올 비판, 가령 과학/천문에 대한 등한시나 유튜브에 대한 과소평가 등을 충분히 예상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비판으로 끝나지 않고 더 나은 논의로 이어지는 마중물이다. 암기식 교육이 여전히 중요하다면 이를 어떻게 평가할지, 유튜브의 도래로 새로운 인간형이 출현했다면 이들에게 맞는 리터러시 교육은 어때야 할지를 이야기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책의 외연은 오히려 풍성해진다.

 

  아마 이 책은 전국의 교사, 강사, 교수, 그리고 여러 독립서점과 독서모임 사이에서 널리 읽힐 것이고, 그만큼의 호응과 비판 역시 불러일으킬 것이다. 그리고 이는 아마도 한국사회로 하여금 처음으로 읽는 것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할 테고 말이다. 저자들은 이제 굉장히 바쁠 일만 남았다. 전국 각지의 학교와 서점, 독서모임에 불려 다니게 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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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1-02-11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꼬마들이 이야기 많은 그림책에 집중하지 못한다니 충격이네요.....
 
외롭지 않을 권리 - 혼자도 결혼도 아닌 생활동반자
황두영 지음 / 시사IN북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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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결혼은 사랑이 아니라 의리로 하는거에요

 

  재수 시절 가장 좋아했던 논술선생님이 건넨 이야기였다. 평소엔 유쾌하기 그지없던 선생님의 웃음기 쫙 뺀 모습에 놀라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쇼킹했던 건 그 내용이었다. 물론 갓 스물이 된 그때도 한순간의 불타오름(!)만으로 평생을 함께 하는 게 과연 맞는 일인지 의문스럽기는 했지만, 이는 결혼이란 제도 자체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을 뿐이다. 사랑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보고 결혼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당시로는 정말이지 듣도 보도 못한 것이었다. 그렇게 유달리 진지했던 그날의 선생님은 내게 하나의 별난 에피소드 정도로 치부되고 마는 듯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선생님의 말씀은 흐릿해지기는커녕, 더더욱 뚜렷하게 각인되기만 했다. 사람은 결코 혼자 살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일단 외로움도 외로움이었지만, 세상은 혼자 살아가기엔 너무 험난한 곳이었다. 같은 곳을 바라보고 함께 미래를 설계해갈 사람이 필요했다. 굳이 비유하자면 고블린 무리에 맞서 등을 맞댄 채 칼을 휘두를 수 있는 용사들 같은 관계를 원했고, 이때 요구되는 건 사랑보다는 의리 쪽이었다.

 

  문제는 내 입장에서 함께 고블린을 격퇴해갈 용사님과 꼭 결혼을 할 필요는 없었다는 것이다. 남들이 보기엔 아직 혈기왕성할(?) 나이지만, 어느덧 반오십이 된 나로서는 함께 살아가고픈 사람의 조건으로 구태여 성적인 매력을 고려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안정감재미를 모두 갖춘 사람, 구체적으로는 주호민 같은 사람이면 같이 살기 딱 좋겠다 싶었다. 성별? 어차피 사랑보다 의리가 중요한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런 나와 달리, 국가는 사랑성별에 아주 관심이 많았다. 혈연관계가 없는 성인이 가족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결혼이 유일하고, 한국에서 결혼이란 사랑하는 두 이성(異性)의 결합에 다름 아니다. 물론 누군가는 그냥 동거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느냐고 반문할 테지만, 아무런 법적 구속도 없는 관계에서 의리가 꽃피기란 매우 어렵다. 무엇보다 비록 성애가 존재하지 않는 관계일지언정, 사회로부터 상대방이 내게 그저 남이 아니라 소중한 가족이라는 인정을 받고 싶다. 결국 관계란 둘만 잘 지낸다고 장땡이 아닌, 보다 넓은 관계망 속에 제대로 안착해야 하는 것이니 말이다.

 

  결혼을 할 수 없는, 혹은 하지 않는 관계라도 법적으로 의무와 권리를 부여받으며 당당하고 행복하게 살 수는 없을까? 황두영의 외롭지 않을 권리는 그 해답으로 생활동반자제도를 제시한다. 생활동반자, 이미 지난 해 김하나와 황선우의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를 통해 대중에게 알음알음 알려진 제도다. 하지만 두 사람이 그려낸 생활동반자제도가 그저 망원동에 거주하는 고급 지식노동자들의 힙한라이프스타일 정도로밖에 느껴지지 않았다면, 황두영은 국회의원 보좌관 출신다운 꼼꼼하고 치밀한 자료조사를 통해 그것이 보다 많은 사람들을 위한 대안이 될 수 있음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이보다 더 잘 쓸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탁월한 비유와 묘사, 스토리텔링 능력은 덤이다. 괜히 스승이자 책의 추천사를 써준 칼럼계의 아이돌김영민이 그를 작가라고 부른 게 아니다.

 

  우선 저자는 벼랑 끝에 내몰린 한국의 가족제도를 냉정히 되짚으며 책을 시작한다. 한국에서 가족은 그저 조건 없는 사랑을 주고받는 따뜻한 쉼터가 아니라, 냉혹한 세상을 함께 헤쳐나갈 경제공동체였다. 사회학자 장경섭이 가족자유주의라는 개념으로 탁월하게 포착했듯, 한국에서 가장 기본적인 사회구성원은 개인이 아닌 가족이었던 것이다. 그럼 개인은 무엇이었느냐, 나이와 성별에 따라 가족이라는 유기체의 특정 역할, 가령 생산, 소비, 유지·관리 등을 전담하는 장기혹은 세포에 불과했다.

 

  이러한 가족자유주의는 효율은 극대화하는 한편 사회복지에 드는 비용은 최소화했다는 점에서, 어쩌면 여타 비서구와 구분되는 한국의 놀라운 경제발전을 가능케 한 원동력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2020년 현재, 한국의 가족은 사실상 파산선고를 앞두고 있는 형편이다. 가장 중요한 원인은 그간 가족을 지탱해온 중요한 믿음, 구체적으로는 자식의 성공을 통한 부모의 노후보장이 불가능한 환상으로 판명되었기 때문이다.

 

  저자의 말마따나 한국에서 자식을 키우는 일은 흔히 농사에 비유되곤 한다. 즉 구체적인 계획에 따라 자본과 노동을 투입해 최대한의 이익을 뽑아내는 산업이라는 이야기다. 문제는 자녀라는 농작물에 들어가는 시간과 돈, 고생의 총량은 늘어난 반면, 신자유주의라는 이상기후가 지속되며 수확은 영 신통치 않아졌다는 사실이다. 지난해 전국적인 화제를 모은 JTBC스카이캐슬이 잘 보여주었듯 부모들이 영혼까지 팔아 자녀에게 물려주고 싶어하는 미래는 고작해야(?) 서울대 의대, 그러니까 안정적인 중상류층의 지위가 최선이다. 물론 대부분의 가정에선 스카이캐슬만큼의 자원을 투입해도 자녀를 서울대 의대에 보낼 수 없는 게 현실이고, ‘실패의 대가는 그만큼 비참하다.

 

  이처럼 한국의 가족자유주의가 더 이상 지속가능한 모델이 아니라는 점은 모두 동의할 것이다. 문제는 이를 어떻게 손볼 것이냐다. 물론 우선적으로는 혈연가족을 중심으로 설계된 지금까지의 사회복지체계를 개인이 개인으로 자립할 수 있게끔 재구성해야 한다. 하지만 아무리 촘촘하게 행정의 그물을 짠들, ‘국가개인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영역은 반드시 존재할 수밖에 없다. 가령 역대급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20188, 서울 강북구 삼양동 옥탑방에서 혼자 살던 41세의 독신 남성 A씨가 사망한 채 발견된 건 국가의 무관심 때문만은 아니었다. 실제로 공과금 연체 등 이상신호를 감지한 공무원이 옥탑방 문을 두드렸지만 A씨는 만남을 거부했다. 일상을 함께하며 건강을 챙기고 외로움을 달래줄 존재의 부재가 A씨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보통 그런 존재를 가족이라 부른다.

 

  요컨대 한국에서 가족은 어떻게든 손을 봐야 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외면할 수는 없는, 참으로 애매하고 어려운 존재다. 아니 애초에 가족을 어떻게 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대구의 대학생에게도(최종렬, 복학왕의 사회학) 수도권의 맞벌이 화이트칼라 여성에게도(조주은, 기획된 가족) 가족은 삶을 영위하는 가장 중요하고 기초적인 단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단 하나, 가족을 최대한 정의롭게 재구성하는 김수현 드라마식 해법뿐이다.

 

  장애, 동성애, 이혼 등의 다양한 이슈를 언제나 선량한 가부장이 봉합하고 해결해간다는 점에서, 김수현의 드라마는 분명 보수적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의 드라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적극적인 욕망을 갖고 있으며,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이를 실현할 수 없을 경우 미련 없이 가족을 떠난다. 이승한의 표현에 따르면, 김수현에게 가부장제는 상수이며 많은 이들이 그 자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김수현은 그것을 부정하거나 대안을 제시하는 대신, 기왕 존재할 거면 더 정의롭고 포용하는 체제가 될 것을 끊임없이 요구했다.” (이승한, [TV 데모크라시] ‘김수현 드라마는 개혁적 보수?, 시사IN, 2016. 09. 22.)

 

  저자가 주장하는 생활동반자법 역시 이러한 김수현 드라마식 해법의 일환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일각의 비판처럼 생활동반자법은 기존의 가족제도를 뒤흔드는 법이 결코 아니다. 실제로 생활동반자법은 성별이나 혈연관계, 성애의 유무를 따지지 않고 성인이라면 누구든 책임감을 갖는 특별한 한 사람을 가질 권리를 인정하며, 동성결혼과 달리 민법을 개정할 필요조차 없다. 그 점에서 생활동반자법은 가족제도의 외연을 넓힘으로써 이를 안정화하는 체제순응적인법안이지만, 그때의 가족은 결코 이전의 가부장적 가족과는 같지 않을 것이다.

 

  구체적으로 생활동반자법이 제정될 경우 주거지원, 소득세 인적공제 인정, 국민건강보험 직장가입자 피부양자 인정, 돌봄·출산·육아휴직, 의료결정권, 인신구제 등 그간 혈연가족이나 배우자에게만 부여되었던 권리들을 생활동반자 관계에서도 누릴 수 있게 된다. 요컨대, 생활동반자법은 이미 사실상의 가족이었으나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했던 비정규직가족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법인 셈이다. 이렇게 써놓으니 별 거 없어 보이지만, 그 의의는 결코 적지 않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최고의 개혁이란 ‘de facto’‘de jure’화하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대표적으로 조선의 대동법이 그러했다.

 

  물론 생활동반자 관계가 혈연가족이 누릴 수 있는 모든 권리를 똑같이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법적인 가족관계가 바뀌지 않는 만큼 상속권이 제한되며, 동거인의 자녀를 친양자로 입양할 수 없다. 형법이 규정한 친족 특례가 생활동반자 관계에서도 적용될 수 있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앞서 살펴보았듯 한국 가족제도의 파산이 혈연가족에게 지나치게 많은 권리와 의무를 부여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떠올린다면 이러한 제한은 나름대로 이해할 여지가 있다. 무엇보다 오랜 시간 진선미 국회의원의 보좌관으로 근무했던 저자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보다 현실적인고려를 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의문은 남는다. 과연 이토록 가벼운(?) 생활동반자 관계라면 혼인 등을 통해 가족을 이루는 일에 비해 어떠한 우위를 가질 수 있을까? ‘이론적으로는가족이 주는 무거움에서는 해방되면서도 함께 사는 즐거움은 온전히 누릴 수 있다는 점이 생활동반자 관계 최고의 장점이겠다. 하지만 과연 사람들은 그저 혼자 살면 외롭다는 이유만으로 생활동반자를 원하는 것일까? 그보다는 어느 정도의 짜증과 고통이 수반될지언정 서로를 단단히 옭아맴으로써 함께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든든한 동반자를 원하는 게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생활동반자는 어딘가 하자가 있어 안정적인 정상가족을 꾸릴 수 없는 이들이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B급 관계로 전락하는 건 아닐까?

 

  하지만 그것이 아무리 가볍다 할지언정, 난 생활동반자법을 강하게 지지한다. 이유는 아주 단순하고 유치하다. 생활동반자법이 없는 쪽보다는 있는 쪽이 훨씬 낫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처럼 사랑 아닌 의리로 살아갈 용사들뿐 아니라, 사랑하지만 결혼할 생각이 없는 동거커플, 배우자를 먼저 떠나보내고 친구와 함께 사는 중장년 여성들(실제로 이들에게서 생활동반자법에 대한 호응이 좋았다고 한다)까지, 보다 다양한 관계들이 떳떳하게 가족으로 인정받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대통령 샤를 드골이 독일의 분단을 두고 했다던 말을 정 반대의 맥락에서 비틀어보자면, 나는 가족이 너무 소중하다. 그래서 가족의 형태가 한 n개는 되면 좋겠다! 생활동반자법은 ‘n개의 가족을 위한 첫 번째 단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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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윤중과 그의 시대 - 근대 재정개혁의 설계자
김태웅 지음 / 아카넷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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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른바 근대란 무엇이냐는 질문은 사람을 참 곤란하게 만든다. 답변자의 지적 수준은 물론이고 이념적 좌표까지 단박에 드러내는, 그야말로 만능키같은 질문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세상 여느 질문이 그렇듯 근대에도 일종의 모범답안이 몇 있는데, ‘숫자역시 그 중 하나다. 그저 수 잘 세는 게 중요하단 소리가 아니다. 이질적인 사물들을 추상화해 양적으로 파악하는 능력, 그것이야말로 근대의 가공할 힘의 원천이라는 이야기다. 오죽하면 수량화 혁명이란 책까지 나왔겠는가.

 

  그 점에서 1910년 총독부가 실시한 토지조사가 조선의 농경지를 실제보다 과소평가했다는 사실을 근거로 식민지근대화론을 비판하는 몇몇 사회경제사가들은, 실상 근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생각해보자, 조선을 갓 접수한 총독부가 토지조사를 위해 가장 우선적으로 활용한 자료가 무엇이겠는가? 대한제국의 양안(量案)이다. 요컨대, 대한제국의 수중에 있던 농경지는 딱 고 정도밖에 없었던 것이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듯, 그 실체가 불분명한 조선의 역량이 어떠하건 이를 제대로 파악·활용하지 못하면 사실상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 점에서 대한제국은 조선의 포텐을 좋게 말해 방치했고, 냉정히 말해 억눌렀던 셈이다.

 

  물론 근대전환기 조선과 대한제국을 이끌었던 엘리트들도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변화를 온몸으로 거부하는 수구파가 아닌 이상 대부분 재정개혁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었고, 잘 되진 않았지만 보다 많은 재화를 효율적으로 파악·활용하고자 고심했다. 김태웅의 어윤중과 그의 시대는 그중에서도 정말이지 놀라운 능력과 열정으로 한평생 재정개혁에 헌신한 어윤중의 일생을 조명한다. 저자가 한국 역사학계의 숨은 신’, 반농으로 김자(金子)’라고도 불렸다던 김용섭 선생의 도통을 잇는 서울대 역사교육과 교수인 만큼 지나치게 올드한관점을 고수할뿐더러 문장과 구성 역시 빈말로라도 좋다고 말하기 어려운 책이지만, 그럼에도 읽어볼 가치는 충분하다. 어윤중이라는 문제적 인물19세기 조선에 대한 우리의 통념을 죄다 허물어버리기 때문이다.

 

  우선 어윤중을 둘러싼 인적 네트워크부터가 범상치 않다. 어윤중의 친가 함종어씨는 노론 중에서도 중화와 오랑캐, 사람과 금수의 본성이 같다고 여긴 낙론(洛論) 계열로, 그의 고조부인 어용빈은 그 유명한 박지원과 활발히 교유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또 완전히 노론 외길만을 걸었던 건 아니라서, 어윤중의 조부 어명능은 근기남인인 정약용의 문하를 드나들며 그의 아들 정학연과 막역한 친구로 지냈다. 노론 낙론계의 여유와 개방성, 그리고 근기남인의 개혁의지가 어윤중의 핏줄 속에 흐르고 있었던 셈이다.

 

  역시 피는 못 속이는 걸까, 어윤중 본인도 한평생 경계를 넘나들며 다양한 사람들과 인연을 맺었다. (후술하겠지만, 우리는 그것이 진정 경계였을지 질문해봐야 한다) 가령 그가 가장 믿고 의지하는 친구는 온건개화파이자 친청파인 김윤식이었으나, 동시에 그는 급진개화파이자 친일파인 박영효의 아버지인 박원양을 스승으로 두었다. 어윤중 본인의 노선은 분명 김윤식에 가까웠지만, 훗날 갑신정변의 실패로 박영효가 일본으로 망명한 상황에서 박원양이 세상을 떠나자 그는 김윤식과 함께(!) 위험을 무릅쓰고 스승의 시신을 매장해주었다.

 

  비단 인적 네트워크만 그랬던 게 아니다. 어윤중의 공직생활 역시 여러모로 파격적이었다. ‘온건개화파라는 타이틀에 어울리지 않게 그는 당대 기준에서 굉장히 급진적인 지세개혁을 평생에 걸쳐 일관되게 주장했다. 18778월부터 18785월까지 약 10개월간 암행어사로 전라우도를 시찰한 그는 환곡에 내는 일종의 이자인 모곡(耗穀)이 백성에 대한 수탈로 이어짐을 간파하곤 심플하게토지에만 세금을 매기자고 건의했다. 비록 조정은 그의 건의를 깔끔하게 씹어버렸으나, 훗날 평안도와 함경도를 순회하며 지방관을 감시하는 서북경략사(西北經略使)가 된 어윤중은 아예 이를 한층 업그레이드된 버전으로 강행해버린다.

 

  뿐만 아니라 어윤중은 재지양반들이 장악한 향청의 영향력을 배제하고 보수를 받는(이는 굉장히 중요하다! 아전들이 왜 백성을 쥐어짤 수밖에 없었는가를 생각해보자) 면임(面任)을 마을 단위로 천거하게끔 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그가 1893년 충북 보은에 모인 동학교도를 동비(東匪)’가 아닌 민당(民黨)’이라 일컬으며 그 됨됨이와 애국심을 인정했다가 호된 비판에 시달렸던 건, 어쩌면 즉흥적인 감정이입보다는 오랜 신념의 발로였을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점은 흔히 친청파로 알려진 그가 청에게 결코 고분고분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1882년 조선에서 임오군란이 발발하자 톈진에 있던 어윤중은 청에게 신속히 소요를 정리해줄 것을 요청했고 아예 청군과 함께 인천으로 귀국하는 등, 전형적인 친청파의 행보를 보였다. 하지만 이후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을 체결하는 과정에선 언제 그랬냐는 듯 태도가 돌변해, (비록 별다른 소득은 없었지만) 만국공법에 근거해 장정의 부당함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어윤중의 꼬장꼬장함은 후일 서북경략사로 재임하며 청과의 무역·국경문제를 논의할 때도 여실히 드러났다. 중강·회령장정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그는 본디 계절에 따라 제한적으로 이루어지던 국경무역을 상시화했으며, 조선과의 무역을 주관하는 봉천성의 반대를 꺾고 세관을 설치했다. 영토문제에 대해서는 더더욱 적극적이어서, 조선과 청이 양국의 국경으로 정한 토문강이 두만강이 아닌 송화강의 지류라며 간도 영유권을 주장하기까지 했다.

 

  이처럼 어윤중은 당시 조선의 대내외적 어려움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고, 이를 타개하고자 치밀한 협상과 과감한 결단을 번갈아가며 구사할 줄 알았던 탁월한 정치가였다. 그 점에서 어윤중은 전형적인 근대인이었으나, 그렇다 해서 그가 자신이 나고 자란 조선의 지적 전통을 외면한 건 결코 아니었다. 아니, ‘전통은 오히려 그로 하여금 근대를 상상하게끔 북돋는 일종의 매개 역할을 했다. 가령 그는 평안도에서 과거시험을 주관하는 경시관(京試官)으로 재임할 때 바람직한 토지제도의 방향을 물으며 그 전거로 고대의 정전제(井田制)를 들었다. 정전제는 곰팡내 나는 역사속의 유물이 아니라 19세기 조선이라는 시공간에 맞춰 혁신해야 할 이상이었던 것이다.

 

  1881년 조사시찰단의 일원으로 메이지 일본을 방문해 대장성을 시찰한 어윤중이 일본이 재정을 확보함은 봉건을 폐지함에 있다고 평가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당시 청과 일본의 지식인들과 마찬가지로, 어윤중 역시 봉건군현이라는 프레임을 통해 바람직한 사회의 모습을 상상했던 것이다. 물론 저자는 이 때의 봉건을 당대가 아닌 20세기 역사학, 구체적으로는 김용섭의 맥락에서 이해하고 있는듯하지만 말이다.

 

  급진적인 지세개혁을 주장했으나 갑신정변에 가담하지 않았고, ‘친청(親淸)’이었으되 종청(從淸)’은 아니었으며, ‘전통을 고수한 덕에 근대를 받아들일 수 있었던 어윤중의 삶은 ‘19세기의 조선에 대한 그간의 설명이 과연 유효한지 의문을 제기한다. ‘개화수구’, ‘급진개화온건개화’, ‘친청과’ ‘친일’, ‘전통근대라는 프레임으로는 어윤중이란 인물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비단 어윤중만 그런 게 아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온건개화-친청파로 커리어를 시작했으나 청일전쟁 이후 친일내각에 참여하고, 아관파천 이후 일국의 총리대신으로서 백성에게 죽는 건 천명이라며 백성에게 돌을 맞아 죽은 김홍집은 어떠한가? 반대로 급진개화-친일파였으나 철종의 부마라는 특권의식을 끝까지 버리지 못했을 뿐 아니라 후원자인 일본의 미움을 사 끝내 실각한 박영효는?

 

  안타깝게도, 이들을 보다 총체적으로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관점은 아직까지 마련되지 못한 듯하다. 물론, ‘19세기의 조선에 대한 탁월한 연구는 끊이지 않고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이때가 워낙 비상한시기였던 만큼 다들 특정한 목적의식에 경도되고, 외국의 사료까지 참고해가며 이루어진 훌륭한 실증연구도 그 인력(引力)에 의해 끝내 굴절되고 마는 경우도 적잖이 보았다.

 

  그 점에서 노관범의 논문 개화수구는 언제 일어났는가?(한국문화87, 2019)는 퍽 시사적이다. 이 시기를 다룬 연구로는 드물게도 당대의 맥락만을 집요하리만치 추적한 끝에, 노관범은 개항 이후 개화수구가 치열하게 대립한 끝에 갑오개혁을 끝으로 전자가 승리를 거머쥔다는 통설에 종언을 고한다. 실상은 오히려 그 반대다. 그러니까 갑오개혁을 계기로 개화가 구체적인 의미를 갖게 되었고, 이에 대한 안티테제로서 수구가 탄생하며 비로소 양자의 대립이 본격화되었다는 것이다.

 

  노관범의 말마따나 최소한 갑오개혁 이전까지 개화수구라는 도식을 통해 당대의 문제를 이해할 수 없다면, 자연히 급진온건’, ‘친일친청이란 도식 역시 폐기해야 하지 않을까? 평소에 세계사/동아시아사 속의 한국사를 강조해왔건만, 역사상 어느 때보다도 외세의 영향력이 강했던 19세기의 조선을 이해하기 위해선 역설적으로 (지지리도 싫어하던) ‘자주주체를 전면에 내세울 필요가 있겠다. 요컨대, 19세기 조선을 이끌어간 엘리트들이 꿈꾼 국가의 모습은 어떠했으며, 이를 위해 전통근대’, ‘외세를 어떻게 활용했는가? 좋아하는 책의 제목을 빌리자면, 우리에게 필요한 건 새로운 ‘19세기 조선 엘리트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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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의 일상사 - 맹신과 무관심 사이, 과학기술의 사회생활에 관한 기록 Editorial Science : 모두를 위한 과학 1
과학기술정책 읽어주는 남자들(박대인, 정한별) 지음 / 에디토리얼 / 201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하나의 유령이 한국, 아니 지구를 배회하고 있다, 코로나19라는 유령이. 세계의 모든 지도자들, 즉 트럼프와 로하니, 문재인과 아베, 영국의 보수당과 이탈리아의 오성운동이 이 유령을 사냥하려고 신성동맹을 맺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각자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 불길은 쉽사리 사그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코로나 19는 마치 점포 하나까지 알뜰히 털어먹는 일수꾼마냥 온 세상을 신나게 헤집어놓는 중이다. ‘코로나 시대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코로나19를 전후하여 지금껏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이 도래했다는 의견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과연 코로나 시대가 역사의 새로운 분기점이 될지 아니면 인터넷 밈으로 그칠지, 현재로선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코로나19는 사람들에게 적어도 한 가지 깨달음만큼은 확실히 안겨준 듯하다. 바로 과학은 그 자체로는 철저히 무력하다는 깨달음 말이다. 실제로 중국과 일본, 독일 등 내로라하는 과학강국의 엘리트 연구진이 백신을 개발하고자 밤낮없이 노력중이지만, 아직까진 별다른 소식이 없다. 중국 연구진이 원숭이로부터 코로나19 항체를 확인했다는, 희망을 갖기엔 너무나 미약한 발견만이 뉴스를 통해 전해질 뿐이다. 이번 사태에서 과학은 결코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되어주지 못했다.

 

  사람들이 코로나19를 통해 실감한 건, 과학보다는 오히려 (좋든 나쁘든) 사회의 위력이다. 가히 하이퍼 모더니즘이라 불릴만한 한국의 방역 총력전, 신천지가 드러낸 한국 기독교의 민낯, 구로 콜센터 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무환경, 과로 끝에 사망한 택배노동자까지, 마치 작정이라도 한 듯 코로나19는 한국 사회의 온갖 측면을 들쑤셔놓았다. 덕분에 지금 한국에선 국경폐쇄, 재난기본소득, 노동조건 개선, 마스크 배급제부터 심지어는 민주주의와 권위주의라는 거대담론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사회에 대한 백가쟁명이 벌어지는 중이다. 만일 이전과 구분되는 코로나 시대만의 특징이 있다면, 그건 전염병이라는 (자연)재해가 과학이 아닌 사회의 문제라는 자각일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과학의 무력함과 그에 비례해 사회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도 부각되는 지금, 박대인과 정한별의 과학기술의 일상사는 양자의 바람직한 관계에 대한 훌륭한 통찰을 안겨준다. 팟캐스트 과학기술정책 읽어주는 남자들(이하 과정남)을 엮어 낸 이 책은, 과학의 위대한 발견을 흥분조로 소개하는 여타 교양서와는 확실히 다르다. 저자들이 주목하는 건 위대한 발견의 이면, 그러니까 무언가 의미 있어 보이는 결과를 학술지에 등재하거나 제안서의 형태로 가공하기까지의 복잡다단한 과정이다. 뿐만 아니라 저자들은 그렇게 탄생한 발견이 어떠한 투쟁과 타협을 거치며 사회와 영향을 주고받는지도 차분하고 꼼꼼하게 탐구해간다.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시민에게 꼭 필요한 책으로, 필독서로 지정해 전국의 모든 고등학생들에게 읽히고 싶다. (뜬금없이 느껴지겠지만 내 입장에선 교양서에 대한 최고의 칭찬이다!)

 

  과학과 사회의 관계를 새롭게 정의하고자, 저자들은 과학기술이란 낡은 개념을 다시금 꺼내든다. 과학기술사 연구자인 김태호에 따르면, 그간 한국에서 과학기술은 그것이 처음으로 구체적 의미를 갖게 된 박정희 시대 이래 생산성 향상을 통한 소득증대로 받아들여졌다.(김태호, 과학영농의 깃발 아래서-박정희 시대 농촌에서 과학의 의미」, 『역사비평2017년 여름호 or 과학대통령 박정희신화를 넘어)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정보통신기술(ICT) 정책과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 그리고 문재인 정부의 4차 산업혁명까지 민주화 이후 역대 정부의 과학기술정책 역시 이름만 바꿔왔을 뿐 본질은 박정희 정부와 다르지 않았다. 그저 시대에 따라 있어 보이는키워드들을 죄다 우겨넣는 식으로 업데이트해왔다는 차이만 있을 뿐.

 

  하지만 과학기술은 단지 생산성을 높여 국가에 이바지하는 도구도, 그렇다고 과학기술의’ (한국과 일본에서만 사용하는) 기계적 결합도 아니다. 저자들은 STS(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 학자 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r)의 도움을 받아 과학기술에서 테크노사이언스(Technoscience)’로의 도약을 시도한다. 테크노사이언스란 간단히 말해 과학지식을 정치, 경제, 사회가 얽히고설킨 복잡한 맥락 속에서 이해하려는 관점으로, 과학지식 자체보다는 그것이 만들어지고, 유통되고, 제도화되는 메커니즘에 주목한다. 김태호, 양승훈, 최형섭 등, 한국에도 테크노사이언스로서의 과학기술사/정책을 연구하고 이를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언어로 풀어내는 이들이 조금씩 등장하고 있다.

 

  그렇게 저자들이 테크노사이언스를 통해 재구성한 과학기술의 중요한 특징은, 그것이 어디까지나 사람의 일이라는 점이다. 과학기술은 매드 사이언티스트의 음습한 연구실이나 프린스턴의 고풍스런 교정을 거닐던 아인슈타인의 머릿속에서 뿅! 하고 나오지 않는다. 구체적으로 과학기술은 중소기업 사장이나 다름없는 교수가 이끄는 연구실에서, 수많은 석박사와 기술자의 협업을 거쳐 탄생한다. 연구만 한다고 다가 아니다. ‘물주인 국가기관이나 기업을 설득하기 위해 미팅을 잡고 제안서를 수정해야 하며, 세간의 주목을 받는 연구일 경우 언론과의 인터뷰도 빼놓을 수 없다.

 

  이처럼 과학기술 연구란 천재 과학영웅의 단독작업이 아닌 만큼, 철저히 사회적이고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막말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함께 작업하는데 인간관계 트러블이 안 일어날 리가 있겠는가? 사소한 감정싸움부터 보다 큰 스케일의 파벌싸움에 이르기까지, 온갖 종류의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갈등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안타깝게도 이 과정에서 학생 신분이란 이유로 노동자로서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대학원생과 학생연구생, 그리고 너무나도 쉽게 경력이 단절되곤 하는 여성 과학인의 목소리는 배제되기 일쑤다.

 

  정부의 지원을 받기 위해 써내야만 하는 각종 지원서 역시 고도로 정치적인 작업이다. 정부가 원하는 바를 구체적으로 명시하는 경우야 좀 낫겠지만, 연구과제 제안 요청서(Request for Proposal, RFP)의 경우엔 정부의 니즈를 찰떡같이 알아먹고 가격 역시 적정수준에 맞춰야한다. 당연히 중공업계나 건설업계를 방불케 하는 수주 경쟁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심지어 비공식적으로 ‘REP 요청서(연구과제 제안 요청서 요청서)’라 불리는, 이러이러한 연구가 국가에 도움이 될 법하니 관련 공모를 열어달라고 요청하는 문서도 존재한다! 흔히 과학의 차가움을 비판하며 인간의 얼굴을 한 과학을 이야기하는데, 이미 과학은 지극히 인간적인 셈이다. 다만 그 인간다움이 우리가 원하는 모습이 아닐 뿐.

 

  그렇다면 과학기술정책을 더한 과학기술정책은 어떨까? 과학기술 자체도 이토록 정치적일진대, 그것이 정책과 제도로 구체화되는 과정이야 말할 것도 없겠다. 대표적으로 최근 몇 년 간 한국사회를 뜨겁게 달군 공유경제 논란을 살펴보자. 우버와 에어비앤비, 타다 등 정보통신기술의 획기적인 발전에 힘입은 이들 서비스는 이내 기존 이해관계자의 강렬한 반대에 부딪쳤다. 결국 우버가 한국에서 철수하고 타다 금지법이 국회에서 통과됨으로써 공유경제 논란은 일단락되었지만, 타다의 이재웅 전 대표를 비롯한 기업인들은 여전히 이를 도도한 혁신의 물결을 거스르는 반동으로 규정하며 이성적 판단을 호소하고 있다.

 

  확실히 이들의 말마따나 공유경제 서비스는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에 따라 자연스럽게등장한 역사의 필연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필연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공유경제 서비스가 일으킨 파장은 그간 정보통신기술이 우리 삶에 얼마나 깊게 뿌리내렸는지, 그럼에도 우리가 이를 얼마나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다시 말해 공유경제란 기술발전의 결과라기보다는, 이를 확인하는 지표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공유경제라는 리트머스 시험지를 통해 드러난 건 이뿐만이 아니다. 우버와 타다 덕분에 우리는 이미 한국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진 정보통신기술만큼이나, 택시기사나 숙박업자와 같은 기존 사업자들의 강력한 영향력과 존재감 또한 실감했다. 보수언론이나 기업계의 주장처럼 이들이 혁신을 막는 적폐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거나 엄연한 사회의 일원으로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만일 이를 무시하고 슘페터가 이야기한 창조적 파괴를 밀어붙일 경우, 과연 창조로 인한 이익이 파괴로 인한 손해보다 크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아니, 애초에 파괴를 제대로 밀어붙일 수나 있을까? 우버가 퇴출된 이후 비슷한 사업을 시도한 카카오가 결국 택시라는 틀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말이다.

 

  그렇기에 저자들은 과학기술이란 보검을 내세워 이 복잡한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단칼에 잘라버리려는 시도를 경계한다. 한 때 서점가를 휩쓸었으나 이제는 만인의 지탄을 받는 책 제목을 빌리자면, 결국 해답은 닥치고 정치라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저자들은 어차피 한국이 과학기술로 세계를 선도하는 탑티어 국가가 (당분간은) 되지 못하는 이상, 아예 크게 방향을 틀어 무엇을보다는 어떻게에 집중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한다. 가령 미국이나 독일이 인공지능 같은 선제적이고 융합적인 분야를 선점한다면, 우리는 이를 어떻게 한국이란 사회에 연착륙시킬지 고민하자는 것이다. 인공지능 연구자들에 대한 지원과 인권보장, 인공지능기술의 발전을 북돋되 그 폐해를 교정할 수 있는 적절한 규제 마련 등이 이에 해당하겠다.

 

  과학기술이 정치의 문제로 인식되는 순간, 시민의 역할도 이전과 같을 수 없다. 냉정히 말해, 그간 교양으로서의 과학은 만유인력의 법칙이나 상대성이론처럼 어렵지만 있어 보이는과학지식을 습득하고 이에 감탄하는 일에 불과했다. 아마 저자들은 과학기술을 둘러싼 복잡한 문제를 이해하려면 차라리 SF를 읽는 게 훨씬 낫다고 이야기할 것이다. 흔히 공상과학소설로 잘못 번역되곤 하는 SF야말로 과학기술이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또 사회는 과학기술의 개발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가장 정교하고 우아한 언어로 풀어낸 사고실험이기 때문이다. (사고실험으로서의 SF에 관심이 있다면 배명훈의 따끈따끈한 신작 SF 작가입니다를 추천한다!)

 

  물론 SF보다 좋은 건 따로 있다. 바로 소양으로서의 과학기술정책이다. 과학기술이 제도와 정책으로 구체화되는 과정에 관심을 기울이고, 정책의 대상과 목적, 파급효과를 면밀히 따져가며 비판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능력이야말로 시민의 덕목이자 의무라는 게 저자들의 주장이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는 이미 시민의 의무를 충실히 수행하며 지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서론에서 이야기했던, 코로나19로 촉발된 백가쟁명이 그 증거다. 물론 그것이 단순한 개싸움으로 끝나지 않고 보다 건설적인 결과로 이어지려면 더 많이 읽고, 쓰고, 공부해야겠지만 말이다. 그렇기에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마치 모든 일을 예견한 듯 재난에 대한 장까지 따로 마련해 둔 과학기술의 일상사야 말로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시민이라면 꼭 읽어야 할 교양서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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