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모노
성해나 지음 / 창비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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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이 남지 않는 작가다.

성해나의 《혼모노》를 정신없이 읽어가는 가운데서도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생각이었다. 보통 작가들은 여기가 '본진'이구나 싶은 영역이 있다. 그게 작가의 경험이든, 문제의식이나 취미든 한 번 '담그지' 않는 이상 절대 이렇게 쓰기 어려운, 작가 스스로도 쓰면서 엄청 신나보이는 대목이 거의 대부분 나온다.

내가 요 몇 년 사이 읽었던 작가들만 떠올려봐도, 박상영은 첫 직장이었던 잡지사 경험, 김초엽은 연구실 생활과 독서, 장류진은 '연대 감성'과 판교 테크노밸리, 서이제는 시네필 생활과 90년대 초반생 감성, 김사과는 먹물인데다 돈도 많은 엘리트에 대한 (내부자만 가질 수 있는) 환멸, 김금희는 노동과 동식물에 대한 애정, 그리고 천주교, 황정은은 "여씨 아저씨"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아버지와 전파상, 가난, 좋든 싫든 대를 이어가는 (비)혈연 가족, 고영범은 실향민 정서와 교회 등, 그리 섬세하지 않은 독자라도 작가가 어디에 꽂혔는지, 혹은 뿌리를 박고 있는지 대강은 알 수 있다. 작가들 역시 이를 드러내는 데 크게 거리낌이 없는 편이고.

하지만 《혼모노》는, 정말 이상하리만치 작가가 '담갔던' 영역이 느껴지지 않는 소설집이었다. 굉장히 치밀하고 꼼꼼한 조사를 거쳐 소설을 썼다는 것까지는 알겠는데, 그 어디서도 작가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성해나는,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삶을 살았는지와 상관없이, 모든 주제에 '공정하게' 같은 관심과 정성을 주고 있는 듯 보였다. 심지어 인터뷰에서 관심이 많다고 밝힌 건축을 소재로 한 단편 <구의 집> 역시 다른 작품들과 거의 비슷한 애정이 느껴졌다.

이런 '공정함'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혼모노》에 실린 단편들은 그 다음이 궁금하지 않았다. 재미없거나 밋밋한 소설이란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한 단편에서 어디까지 보여줄 수 있는지를 미리 계산한 뒤, 이를 정교하고 날렵하게 연출하기 때문에 소설을 읽고 남는 '앙금'이나 '여지'가 없다는 이야기다. 이 주제를 가지고 이 이상의 이야기를 할 수 없다는, 이게 끝이라는 걸 너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달까? 작가가 "이게 전부입니다."라고 친절하게, 하지만 건조하게 알려주는 기분이었다.

《혼모노》의 뜨거운 인기 역시 이런 건조함 때문일지도 모른다. "넷플릭스 왜 보냐. 성해나 보면 되는데."란 박정민의 추천사가 너무 충격적이라 그랬는지 몰라도, 나는 성해나 소설이 쇼츠 보는 '요즘 세대' 구미에 맞게 굉장히 강렬하고 감각적일 줄 알았다. 94년생인 작가 역시 이런 새로운 감각에 익숙하리라 지레짐작했고. 하지만 《혼모노》는 오히려 굉장히 고전적이랄지, 기성 소설의 문법을 충실히 따른다. 인터뷰에서도 드라마를 거의 보지 않았다고 이야기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모노》가 '책 안 읽는' 젊은 세대를 끌어들인 이유는, 역시 그 바삭거림 때문일 것이다. 어떠한 '흔적'도 남기지 않고, 작가의 정교한 설계에 따라 주어진 목표를 향해 단숨에 내달리는 쾌감이 있달까. 이건 김사과 소설의 무자비함과 그로테스크함과는 조금 다른 것 같다. 《혼모노》가 딱히 유머가 돋보이는 책은 아님에도 굉장히 재밌게 읽히는 까닭 역시 그래서라 생각한다. (그럼 유머가 돋보이는 소설가는 누구냐고 물으신다면, 정세랑과 이기호, 그리고 남들이 잘 모르지만 김금희.. 김금희는 특유의 '아재 개그'가 있는데다 상황 자체를 굉장히 웃기게 그려내는 힘이 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혼모노》를 읽으며 등장인물의 얼굴이 잘 그려지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이 소설을 다른 장르로 옮긴다면 뭐가 좋을지도 떠오르지 않았다. 서이제의 《0%를 향하여》는 웹툰, 고영범의 《서교동에서 죽다》는 그래픽노블, 박상영의 《대도시의 사랑법》은 드라마, 김금희의 《첫 여름, 완주》는 애니메이션 등 작품마다 이렇게 바꾸면 좋겠다는 장르가 있었는데, 《혼모노》는 그게 없었다.

역설적인 건, 이처럼 성해나가 《혼모노》에서 자신의 '흔적'을 남기지 않기 때문에 작가에 대한 궁금증은 더 커진다는 점이다. 원래 뭐 하던 분인지, 왜 작가가 되기로 마음먹었는지, 한 번 '담근' 곳은 어디인지 등. 그래서 지난 1주일 동안 작가 인터뷰도 보고, 공저자로 참여한 소설집까진 아니더라도 책으로 나온 작가의 모든 소설들을 찾아 읽었다. 다소 의외였지만, 다른 작품들에선 작가의 '흔적'이 퍽 잘 느껴졌다. 가령 학습지 교사였던 어머니, 86세대를 향한 애증, 언젠가 깨질 수밖에 없다는 걸 알면서도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는 인간 본성 등. 작가가 인터뷰도 많이 하는 등 신비주의를 고수하지도 않고.

내가 이상한 탓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혼모노》보다는 작가의 '흔적'이 드러나는 소설이 더 좋았다. 건조하게 웃으면서 "이게 전부에요."라 말하는 소설보다는 다소 성길지언정 여운을 남기는 소설이 좋았고. 내가 가장 재밌게 읽은 성해나 소설은 《두고 온 여름》이었다. 《혼모노》에서도 뭔가 덜 완성된 것 같던 <길티 클럽>이 가장 좋았고. 그렇다면 성해나는 왜 '여지'를 주지 않는, 날렵하고 정교한 소설을 쓰게 되었을까? 그 이유가 계속 궁금했다. 주제넘은 호기심일 수 있겠지만.

나는 성해나가 자신이 한 번 '담갔던' 무언가를 갖고 장편을 써주면 좋겠다. 지금까지 써온 글만 봐도 그렇고, 그는 단편에 특화된, 혹은 단편에 맞는 몸을 의도적으로 만들어온 작가로 보인다. 애초에 등단도 중편으로 했고. 《두고 온 여름》역시 민음사의 "오늘의 젊은 작가" 분량에도 못 미치는 중편에 가까운 소설이다. 그런 성해나가 다소 성기고 들쑥날쑥할지언정,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주제로 끝까지 밀고나간 장편을 읽고 싶다.

단순히 단편은 많이 읽었으니 이젠 장편을 읽고싶단 마음은 아니다. 《혼모노》를 봐도 그렇고, 인터뷰를 읽어도 그렇고, 성해나는 굉장히 성실하고 안정적인 사람인 듯 보인다. 자료 조사도 꼼꼼하고 철저하다. 공부를 했어도 훌륭한 연구자가 되었으리라 생각할 정도로. 괜히 건축을 좋아하는 게 아니구나 싶달까. 늘 불안하고 잘 흔들리는 사람으로서 이런 안정감과 뚝심은 굉장히 부러운 재능인데, 이는 단편만큼이나 장편에도 어울린다 생각한다. 장기인 자료조사를 살릴 수 있는 역사소설도 좋고, 의외로 추리소설도 굉장히 잘 쓸 것 같다. 뭐가 되었든 성해나가 계속 소설을 써주면 좋겠다. 앞으로도 그의 글을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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