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병과 마법사
배명훈 지음 / 북하우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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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단 20년을 맞이한 배명훈이 그동안 써온 작품들의 집대성이란 생각이 들었다. 전체적인 얼개는《신의 궤도》를 잇고 있지만, 미증유의 재난을 막는 것이 이야기의 핵심이라는 점에서는 《고고심령학자》를 떠올리게 한다. 아버지-스승과 딸-제자라는 구도, 몸짓과 움직임의 역동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춤추는 사신》의 연장선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신의 궤도》에서 날렵하고 경쾌하게 그려진 정주와 유목의 관계는, 《기병과 미법사》에서는 좀 더 복잡하고 무거워졌다. 가장 큰 차이는 정주와 유목이 비로소 동등한 위치에 놓이게 되었다는 데 있다. 《신의 궤도》의 초점은 거대하고 무거운 정주의 세계를 교란하고 무너뜨리는 작고 날렵한 유목의 세계에 맞춰져 있다. 반면 《기병과 마법사》는 두 세계를 나름의 장단이 있는, 그렇기에 서로에게 끝없이 침투하며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로 그려낸다.

그렇기에 《기병과 마법사》 속 정주의 세계는 《신의 궤도》처럼 압도적이지 않다. 유목의 세계도 마찬가지다. 《신의 궤도》의 정주 세계와 유목 세계는 한나라와 흉노를 연상케 했다. 반면 《기병과 마법사》에서 그것은 조선왕조와 누르하치의 등장 이전 여진 부락들 수준으로 작아졌다. 둘 다 고만고만해진 셈이다. 작가 역시 한반도 왕조를 염두에 두고 정주 세계를 그려냈다고 한다. 흥미로운 변화다.

정작 내게 인상적이었던 것은 정주-유목보다는 몸짓의 역동성이었다. 나는 배명훈을 국제정치학의 시각에서 SF를 쓰는 작가, 세계를 만들어내고자 하는 SF 작가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새삼 생각해보니 그는 몸짓이 만들어내는 리듬과 역동성에도 굉장히 관심이 많았고, 이를 활자에 담아내려는 (범인에게는 거의 불가능해보이는) 목표에 끝없이 도전해온 작가이기도 했다. 판소리 SF라는 기이한(!) 장르를 시도했던 것 역시 그래서였을 테고. 그동안 그를 너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만 읽어왔구나 싶었다.

다만 정주와 유목, 몸짓과 리듬 모두 배명훈 소설에서 그렇게까지 새로운 것은 아니다. 둘 다 이전까지 배명훈이 관심을 가져온 주제들의 연장선 위에 있다. 그 점에서 《기병과 마법사》는 다소 심심한 소설일지도 모른다. 그가 《미래과거시제》와《화성과 나》에서는 완전히 새로운 경지를 보여주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더욱.

하지만 《기병과 마법사》에는 배명훈의 이전 소설들에선 찾아볼 수 없는, 아주 중요한 차이가 있다. 바로 '마법'이다. 그러니까 그는 판타지에 도전한 것이다. 정주와 유목, 몸짓과 리듬이라는, 이전까지 배명훈 소설들을 읽어온 사람에게는 익숙한 주제들을 가져온 것도 이를 위해서일 수 있다. 허허벌판에서 완전히 새로운 장르를 시도하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일 수 있으므로.

그렇다면 마법을 다루려는 배명훈의 시도는 성공적이었느냐, 그건 잘 모르겠다. 그는 《SF 작가입니다》에서 판타지와 SF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한다. 판타지는 별다른 이유 없이 드래곤이 등장해도 뭐라 하지 않는다. 반면 SF에서 드래곤은 어떤 식으로든 설명되어야 한다. 어떤 점에서 《투명드래곤》은 판타지의 문법을 충실히 따른 작품이다. 드래곤 중 최강이라 누구와 붙어도 이겨버리는 투명드래곤이 '어쨌든' 울부짖는 것이야말로 판타지의 논리이므로.

배명훈은 얼핏 이러한 판타지의 규칙을 잘 따르는 듯 보인다.《기병과 마법사》에서 마법에 별다른 이유와 설명을 붙이진 않으니까. 다만 독자에겐 이유가 없어도 소설에는 이유가 있어야 할 텐데,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러니까 독자만큼이나 소설 속 인물들에게도 마법이 낯설고 이질적으로 느껴졌달까. 판타지의 드래곤에게 별다른 설명이 필요없다는 건 이쪽 세계 사람들에게 드래곤이란 우리의 비둘기만큼이다 당연하고 자연스런 존재라는 의미다. 판타지는 이를 깔고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러나 《기병과 마법사》 속 인물들은 독자만큼이나 마법을 처음 본 것처럼 허둥대고, 어색해한다. 마법이 이야기의 전제가 아닌 설명의 대상이 되는 것. 배명훈에 따르면 이는 판타지가 아닌 SF의 문법이다. 물론 SF에서도 마법을 다룰 수 있다. 하지만 《기병과 마법사》에서 마법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정확히는 전제를 생략하고 설명한다. 말해 소설에서 마법은 누구나 당연히 여길 만큼 자연스럽지 않은데, 갑자기 마법에 대한 설명으로 넘어가 버린다.

그렇기에 《기병과 마법사》는 배명훈의 이전 소설이 그러했듯 세계 자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지도 않고, 다른 판타지 소설들처럼 마법을 전제로 깐 상태에서 다른 이야기를 하지도 않는다. 요컨대, 판타지를 SF처럼 썼다. 그럼에도 나는 이 이야기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후반에 너무 확 몰아치는 감이 있지만 배명훈의 소설답게 정교했고, 무엇보다 무척 공들여 쓴 흔적이 느껴졌다. 그렇기에 나 역시 페이지를 휙휙 넘기지 않고 찬찬히 읽게 되고.

배명훈의 가장 멋진 점은 도전을 멈추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이 소설이란 장르로 할 수 있는 것들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끝없이 실험해왔고, 언제나 이전보다 더 멋진 글들을 보여줬다. 《기병과 마법사》도 그런 실험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이 글을 딛고 그가 새롭게 나아갈 지점이 어딜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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