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을 걷다 - 중국 800년 수도의 신비를 찾아
주융 지음, 김양수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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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북경에 대한 내 사랑은 그것에 대한 미움속에 남아 있다. 내가 20년 전 북경에 들어온 그날부터 북경은 내가 벗어날 수 없는 그 무엇이 되었다. 나는 북경의 내부에 웅크리고서 이 도시의 따뜻함과 즐거움, 아픔을 모두 느끼고 있다. ("지은이 후기"에서) (195)
 
 한 젊은 작가의 북경에 대한 사랑이 듬뿍 담겨있는 산보기, 혹은 북경이라는 도시에 대한 시시콜콜한 모든 것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고 염려하고 있는 그 중국, 세상의 중심이라는 차이나의 수도 서울, 북경에 대한 절절하고 빈틈없는 노래…. 이것이 이 책을 통하여 내가 만난 북경과 관련한 지은이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솔직히 그가 부럽다. 아니 정확히 얘기하면 이런 작가를 지닌 북경이라는 도시가 부럽다.
 
 다행인 것은 우리에게도 최근에 이러한 총체적인 관점에서 접근한 국토와 도시 순례기가 나오고있다는 사실이다. 한 도시에 대하여 얼마만한 애정과 관심을 가져야 이런 꼼꼼하고 치밀스런 고증과 옛이야기들의 소개가 가능할지 자못 궁금하던차 우리에게도 이런 책들이 나오고 있으니 당연히 기뻐하면서 만나보아야 할 것이다.
 
Ⅱ.
 북경에 얽힌 에피소드 하나. 1997년, 딸아이가 태어나기 십여일 前, 7월초, 만삭의 아내를 처가집에 보내고 '자율연수'라는 명목으로 회사에서 경비지원을 받아 중국-북경 3박4일의 첫 해외여행을 떠났다. 혼자 떠나는 여행이라 체계적인 연수도 아니었고 어르신들의 효도관광에 들러붙어 다녀온 깜짝, 첫 해외여행이었다. 그렇지만 그때의 북경은 내게 신비와 전통이 살아숨쉬는 역사의 도시로서 첫 해외여행의 감흥을 만끽하게 해주었다.
 
 특히 우리나라보다 많이 싼 물가지수에 들떠 가지고 간 여행경비를 아낌없이 써대며 돌아다닌 철모르던 여름 밤거리는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다. 홍콩 반환 100주년을 기념하여 그 넓던 "장안대로"를 밝히던 등불들…당시 디카가 있었다면 오늘 이 글을 쓰며 멋진 장관을 소개할 수 있었으리라. 아무튼 나는 그 밤길을 택시를 타고 달리며 그들의 "홍콩반환-회복"을 진심으로 축하해주었다. 영원히 빼앗기지 않고 100년을 양도하였다가 끝내는 회복한 그들의 지혜에 박수쳐주고 축하해주었었다. 같은 식민지 시대를 살아온 동아시아인으로서...
 
Ⅲ.
 오늘 TV에서는 베이징 올림픽이 한창이다. 오늘도 수영과 여자 양궁 단체전에서 멋진 금메달 획득이 있었다. 우승은 우리가, 준우승은 공교롭게도 중국이었다. 나는 그 장면을 보고 통쾌해하고 있었다. 최근뿐만이 아니라 얼마전부터 당연히 세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해가는 중국을 보며 그들과 관련된 모든 일들이 달갑게 여겨지지 않는다. 까닭은 "동북공정"때문이다. 그네들이야 소수민족의 분화 및 자치권의 강화가 가져올 소비에트 사회주의의 붕괴같은 결과물이 두렵기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동북아 고대사를 완전히 왜곡하는 작업을 차근차근 밟아가는 중국이라는 나라에 대하여 사회주의 종주국이라는 기대감은 버린지 이이 오래다. 그들은 다만 사회주의의 탈을 쓴 변형된 국가자본주의 사회일 뿐이며 앞으로도 우리에게 더욱 더 많은 위협이 될 나라로만 여겨진다.
 
 엇그제는 제주도 밑-근처의 전설 속의 섬, 이어도를 그들의 땅이라 주장한다는 기사가 신문에 나오기 시작하였다. 독도만으로도 일본의 억지에 갑갑한 요즘인데 당연히 우리 땅인 이어도를 자기네 땅의 범주에 넣으려는 시도를 또 하고 있으니….갈수록 태산이다.
 
Ⅳ.
 지은이의 북경사랑을 탓할 생각은 없다. 다만 요즘의 정국과 맞물려 북경,중국이라는 화두 자체가 내게 선뜻 다가오지 않는 탓이리라. 그러면서도 우리에게도 어서 이런 좋은 이야기들이 쏟아져 넘쳐나기를..눈만 돌리면, 귀만 열면 우리 옛역사와 현실이 살아 숨쉬는 이 곳의 얘기들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래본다. 오늘밤도 나는 의식적으로 "고조선"시대와 관련된 책을 손에 들고 다시 우리 역사속으로 들어가련다. 옛 역사 속을 걷고 또 걸으며 우리가 나아갈 길을 찾아보련다. 지은이가 베이징을 걸으며 만난 이야기들처럼 우리에게도 넘쳐나는 옛이야기들 속에서 다른 꿈을 꿀 수 있으리라......
 
 *가장 아쉬웠던 부분 : 책 속의 지명과 관련한 '찾아보기'(색인표)가 있다면 북경여행시 근처를 둘러보며 그 이야기를 찾아 읽는 재미가 쏠쏠할 터인데…많이 아쉬운 마무리였다.
 
 고대 문영 유산은 수수께끼로 가득하고, 전문가는 이 난제들이 수많은 해법을 가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그리고 모든 공식은 궁극엔 일치된 결말로 통하는데, 바로 예 시스템, 질서와 미美다. ("궁성-하-,숫자 속의 암호"에서) (43)
 
 
2008. 8. 10.  5주만에 하루 쉬는 여름날, 좋다….
 
들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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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휘청거려도 눈부시다 - 이프 여성경험총서 5
자야 지음 / 이프(if)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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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땅을 버리지 않는 한 하늘을 얻을 수 없다. 누구든, 무엇이든, 일정한 방향과 목표를 지니는 한 온몸을 떨며 휘청거리지 않을 수 없다. 노력하는 한 방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괘도를 상실하지 않은 휘청거림, 그 서투른 몸부림의 궤적은 차라리 아름답다. 휘청거려도 눈부시다. ( 이거룡, 이끄는 글 "건너되, 그 위에 집을 짓지는 말라"에서) (6)
 
 어떤 부분, 이를테면 책의 이름이거나 표지 디자인, 혹은 지은이, 아니면 책의 분류에 따라 무조건, 일단 구입하여 손에 들고야 마는 책들이 있다. 그리고는 두고두고 책의 몸매만 감상하다 어느날 문득, 그 책이 나를 끌어당기는 순간 주저없이 책과 하나가 되어 책이 토해내는 숨결을 만끽한다. 이 책도 그런 책들중의 하나가 되었다.
 
 '휘청거려도 눈부시다'는 선언같은 제목만으로도 눈길을 잡아끄는데 그 앞에 붙은 낱말이 '인도'라니…. [인도, 휘청거려도 눈부시다]라는 그 이름만으로도 나는 책을 손에 들 수 밖에 없었다.
 
 내게 있어 '인도'라는 나라는 [인구가 세계를 바꾼다]의 미래 초강대국이될 '인도'도 아니고 [세계는 평평하다]에 등장하는 훌륭한 경제사례로서의 일취월장하는 '인도'도 아니다. 다만 이 글의 지은이처럼 삶에 허청거리는 청춘들이 심신의 방황끝에 다다르는 곳, 바로 그 '인도'이다. 6개월간의 비자가 끝나면 잠시 '네팔'에 넘어갔다 다시 비자기간을 연장하여 머무른다는 그 '인도' …. 한 번 가면 몇 개월, 두 번 가면 몇 년, 그러다 그들이 보여주는 크낙한 삶에의 진정성과 편안함에 끌려 종내는 돌아오지 못한다는 그 '인도', 나는 그 '인도'라는 이름에 무엇에 끌린듯 책을 열었다.
 
 어디서 사느냐가 뭐 그리 중요하겠어. ~ 몸이 어디에 거하든 존재는 한 곳에 뿌리박고 있다고. 그러니 몸이 어디 있는지와 상관없이 존재가 뿌리박고 있는 곳을 놓치지 않으면 된다고. 몸과 몸이 거하는 곳은 제한적인 물질세계일 수밖에 없지만 존재는 시작도 끝도 없는 영원의 세계를 살지 않느냐고….("바닷가 영원의 집"에서) (51)
 
 당연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그 사실을 인정하기가 왜 그리 힘든 것일까? 2003년경 가장 가까웠던 벗 하나, 인도-네팔-인도를 1년 가까이, 이 책의 지은이 '자야'처럼 방황하고 돌아왔던 벗, 멀리 있어 늘 그리웠던 녀석은 인도에서 네팔로 넘어가며 내게 메일을 보내었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온 1여년뒤 2005년 1월 말, 녀석은 훌쩍 세상을 떠나버렸다. 무에 그리 안타까운 것이 많았던지, 우울증이라는 병력을 뒤로하고 무심한 친구들을 뿌리치며 떠나버렸던 것이다.
 
 그리고 오늘, '요가'라는 중심(!)을 들고 자신을 찾아 떠난 '자야'라는 지은이의 이야기를 따라 걷는다. 녀석도 지은이처럼 중심에 기댈 언덕 하나라도 있었다면 좀 더 버팅기며, 허청거리면서도 이 세상을 '눈부시게' 살아갈 수 있었을 터인데 이미 지나버린 일이다. 우연히 지은이에게도  친구를 병으로 잃어버린 아픔이 있다. 지은이는 그 아픔을 삭여 자신의 몸과 맘속으로 고이 간직한다. 이제는 나도 그리움으로만 간직하련다. 
 
 ~ 투정하듯, 칭얼거리듯. 그러면 얼마나 위로가 되었던가. 그처럼 마음을 향해 있다는 것만으로도 따뜻한 온기를 느낄 수 있게 해준 J를 이제 더 이상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문득 슬퍼졌다. 하지만 울고 싶진 않았다. 이미 인도에서 그녀를 보내는 의식을 치뤘으므로. 많이 숨죽여 울고 오래 상심했으므로. 이제는 그냥 덤덤한 그리움으로만 간직하고 싶었으므로. ("끝내 갈 수 없던, 언젠가 가야 할"에서) (65)
 
 책은 스물일곱장으로 나뉘어져 인도에서의 생활, 요가 수련, 여행, 자신 의 생활, 한국에서의 갈무리, 새로운 깨달음, 또 다른 만남과 정착 등으로 전개되는데 이야기들이 조금은 단편적으로 전개되어 초점이 흐릿한 듯 보인다. 하지만 일찌감치 글을 썼던 지은이라 흐트러진듯 하면서도 글들은 한 방향을 향해 있다. '참자아를 회복하고 그를 통해 완전한 자유, 즉 까이월려담을 실현'("내 안에 흐르는 강"에서) (344)하는 방법을  '씻기우고 흘러가 사라지는'(336) 것을 담담히 바라보는 과정에서 깨닫고 있음을 자신의 이야기 속에서 아름답고 정갈한 사진들과 함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특히, 79쪽의 모래밭과 자전거가 어우러진 바닷가 사진은, 작은 깨달음과 함께 놓여져 읽는 이를 잠시동안이나마 '작품의 세계'로 이끌어내고 있다.
 
 뜨거운 바닷가를 달리며 나는 배웠다. 바닷물이 완전히 빠진 모래 위에서만 자전거 바퀴가 굴러가듯, 슬픔으로 질척이지 않는 마음밭이어야 힘차게 존재의 페달을 밟아 그 너머로 갈 수 있음을. ("슬픔이여, 이젠 안녕"에서) (79)
 
 여행기로만 바라보기에는 아쉬움이 남을 수도 있는 이야기들이지만 인도철학 또는 인도문화, 티베트 불교, 요가라는 몸철학?에 대하여 많이 아는 바가 없어도 발걸음을 따라가기에는 힘들지 않다. 다만 추억에 기대어 쓴 글들이라 읽다보니 시간이 어디쯤 흐르고 있는지, 지금 어디쯤 머무르는지 헷갈리고는 하였다. 하지만 약간의 불편도 이 책의 이야기처럼 '그냥 놓아두고 바라보면 그만인 것을',인도사람들이 즐겨쓴다는 말처럼, 'No, Problem!'인 것이다.
 
 왜 뜨거운가를 아는 것은 중요하지 않아요. 분석하지 말고 그저 느끼고 바라보십시오. ("불완전한 것을 위한 사랑"에서) (275)
 
 
2008. 8. 4.  '인생은 찰나이니, 소녀야 사랑에 빠지거라….'(262)
 
들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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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시
신경림 외 지음 / 작가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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숟가락 사이로 먼 바다 소리 왔다 가고 / 늦은 점심 두레밥상 / 빈 둥지 올려다보며 / 껍질 모래 삼키던 그 모습에 / 목이 메던 풍경이 있었네  (고두현의 "물메기국"에서) (13)
 
  모음시집의 첫 작품부터 먹는 이야기다. 시대가 성마르고 작가도 목말라서일까. 이 맛난 작품들의 향연을 즐기다보니 먹는 것과 관련한 말들이 꽤나 등장한다. "사골국 끊이는 저녁"(김선우) (39) 을 거쳐 드디어 "홍어"(김영재) (47),(문희진) (71)까지…. 그리고 홍어가 삭듯이 詩도 삭아서 빛을 발한다.
 
 술 취한 친구의 한잔을 위하여 / 잘 삭은 홍어 되어 몸속으로 빨려든다면 / 어두운 살의 바다에 독한 냄새로 남으리 / ~ / 다시는 환생치 못할 ……썩어, 푹……썩어 있을  (김영재의 "홍어"에서) (47)
 
 홍어의 삭은 살점에서 피어나는 오묘한 냄새 / ~ / 두엄 속에서 곰삭은 홍어의 살점을 씹는 순간 (문혜진의 "홍어"에서) (71)
 
 물고기 떼를 불러오는 / 저 가락은 허공에 던져보는 누군가의 간절한 두근거림 / 잘 삭힌 두근거림일수록  (박라연의 "플라이 낚시"에서) (75)
 
 삭아야 제 맛을 내는 홍어처럼 우리 정신도, 육체도 얼마나 더 썩고 삭아야 빛을 발할까. '햄버거는 입 속에서 혈관을 터뜨리고 커피는 저녁처럼 어두워'(박주택의 "강남역"에서)(79)지는데…. '초저녁 맑은 허기'(박형준의 "개밥바라기"에서) (83)만으로는 우리 삶은 익지 않는것일까?  '그래서 그늘 있는 맛, 그늘 있는 소리, 그늘 /있는 삶, 그늘 있는 사람./ 그게 진짜 곰삭은 삶'(송수권의 "퉁"에서) (95) 이 되는 것인가? 익히고 삭혀야만 제대로 인정받는, 사람이, 혹은 詩가 된다는 이야기?인지....겨우겨우 따라가며 같이 삭아보는데 오히려 온갖 잡생각이 많은 나는 제대로 삭지도 않는다. 홍어같은 맛도 한 번 피우지도 못한채 그냥 썩어가나? 좀 더 고우고 삭히면 내게도 피어나는 날이오리니 기다리고 기다리며 詩들을 질겅질겅 씹어본다.
 
 넘쳐나는 詩들 속에 예전에 좋아하던 시인들의 근작시를 만날 수 있어 좋고 모르는 시인들의 맘에 드는 작품도 좋다. 여러 작품들 속의 공통점을 가려내기란 사실 불가능하지만 이번에는 詩를 읽으며 '홍어'같은 글들을 부러 찾아다녔다. 그리고 몇몇 그런 작품들을 만나기도 하였고..김경주의 "무릎의 문양"(22), 김민정의 "고비라는 이름의 고비"(29), 김영남의 "가을 파로호"(45), 나태주의 "희망"(57), 박후기의 "석류와 석유"(84),신경림의 "그 집이 아름답다"(99) 등이 앞서 언급한 작품들과 함께 나의 입맛을 당기던 '배고픈詩들'이었다.
 
 그 중 제대로 삭아있으면서도 감칠 맛나고 그러면서도 상큼한 詩 한편을 '이 책의 詩'로 나름 선정하여 소개하련다. 참 놀라지들 마시라. 이 작품은 우리 詩인 시조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더욱 반가웠던 詩를 읊조리며 책을 덮는다.
 
 
 
 얼마만한 축복이었을까
 얼마만한 슬픔이었을까
 
 그대 창문 앞
 
 그대 텅 빈 뜨락에
 
 세계를 뒤흔들어 놓고
 사라지는
 가랑잎
 하나
 
 *홍성란    (시조21 상반기호)    (183)
 
 
2008. 8. 3.  아직도 배고픈 나 ^^
 
들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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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남과 만남
구본형 지음, 윤광준 사진 / 을유문화사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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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마다 주어지는 밥이 사슬이지 않더냐. 굶주림을 두려워하면 들판의 이리가 되지 못한다.  
 
 조금만, 아주 조금만 먹으면 되는데 날마다 너무 많이 퍼먹기 위해 너무도 많은 시간을 쓰고 있구나. 그러다 인생이 끝나고 마는구나. 
 
 삶이란 흔들리는 것이고 균형을 잃었다가 이내 다시 그 균형을 회복하기 위해 되돌아 오는 불안정한 체계인 것이다. 오직 죽은 것만이 변하지 않는다. 변화는 삶의 원칙이다. 
 
 마흔 여섯 살에 매일 아침 짐을 꾸려 여관 문을 나와 커다란 배낭을 메고 날마다 두려움 속을 걸었던 그곳들이었다.
 - 이상 "개정판 서문"에서 
 
 오직 버리기 위해 떠난다. 소유한 것이 많으면 자유로울 수 없다. 매일 걸어야 하는 사람에게는 배낭 하나도 무거운 짐이다. 무엇을 더 담아 올 수 있겠는가? 
 - "초판 서문"에서
 
 책을 들고 "서문"을 읽어내려가자마자 가슴 한켠이 서늘해진다. 지난날 나를 괴롭히던 질문들을 나는 용케도 피해다녔는데 이 사람은 스스로에게 도전하여 그 답을 찾아내었구나, 아, 내가 그때 나에게 좀 더 진실되게 묻고 돌아보고 하였더라면 나는 지금의 나와는 또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그리고는 이 책을 읽는 순간순간이 여러가지 까닭으로 '떠님과 만남, 그리고 돌아봄'의 시간이 되는 것이었다.
 
 남도여행일지이면서 자신의 길을 찾아나섰던 중년의 사내 이야기가 진솔되고 맛깔지게 버무러져 읽는 이들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만드는 지은이의 글은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진국'같은 솜씨이다. 부럽고 또 부럽다.'
 
 섬진강, 강진, 다산초당, 하동 쌍계사 등은 최근에 다 다녀본 곳이건만 나는 그 곳에서 어떤 것을 버리고 어떤 돌이킴을 안고 돌아왔던지…. 물론 혼자 떠난 여행들이 아니었기에 깊은 사색의 시간은 힘들었을지라도 스스로를 돌아보고 만나보는 순간은 있어야 하지 않았던가…. 여기서 지은이와 내가 갈라지는구나. 떠날 줄만 알았지 돌아볼 줄은 몰랐었구나.

 



 
            - 2007봄, 섬진강 - 방생중인 어르신들
 

 

 이 고운 곳에도 술병들이 깨져 뒹굴고 있다. 세상의 망나니들도 섬진강 예쁜 줄은 안다. 빡빡한 세상살이 어려우면 여기 섬진강 둑에 앉아 소주 한 병 벌컥거리며 마셨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곳에 자신을 버리고 갔을 것이다. 나뒹구는 소주병을 보며 그날 그 어줍짢은 사람이 처진 어깨로 떠난 뒷모습을 본다. 어느 날 다시 돌아오너라. 그래서 섬진강둑에 버리고 간 자신을 되찾아 가거라. 소주병도 함께. ( '매화 향 가득하니, 봄이다!'에서) (28)
 
 섬진강가의 깨진 술병을 두고 지은이가 들려주는 이야기인데 내게는 '절창'으로 들린다.  '그런 치유의 은밀한 장소와 시간 없이 어떻게 이 세상을 살겠는가?'(163) 문득 내게는 그런 장소가 있던가, 돌이켜보니 바로 이 곳, 책과 글 속이다. 내 한 몸 누일 물리적 공간보다 나는 책 자체로 휴양을 즐겼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 내 나이도 불혹을 넘어 종반으로 달려가고 있고 지은이처럼 '몸'자체를 혼자 누이고 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한 대가 다가오나보다. 가끔씩 혼자있고 싶은 시간들이 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자기 일을 하며 마음의 공부를 해야 한다'(184)는 말처럼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며 얼마나 공부를, 특히 마음공부를 하는지 돌이켜보아야 할 때이다. 따라잡기 힘든 변화의 물결속에서도 자신의 마음하나만 제대로 중심을 잡고 있다면 그 변화 속을 헤쳐나갈 등불을 밝히는 셈이리라. 책을 읽는 내내 이 책이 그런 불빛중의 하나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름다운 글과 아름다운 풍경 사진, 그리고 생각할 거리. 한 번 보고 던져두기에는 아까운 책이다. '휴식은 자신에게 선사한 따뜻한 시간이다. 자신에게 시간을 주지 않고 어떻게 더 나아질 수 있겠는가?'(322) 이 책을 읽는 시간 자체가 내게는 휴식이었다. 아마도 그래서 더 천천히 음미하듯이 글을 읽었던 것이리라.  '바라는 대로 되는 세상은 아니지만 세상이 만들어주는 대로 살지는 않을 것이다.'(312) 그가 그랬듯이, 나 역시도….
 
 책 속에 등장하는 남도 여행과 관련된 이야기들은 혼자 두고 보련다. 그의 발길을 따라 다녀온 이야기들도 넘쳐나고 나만의 추억들도 갈무리해야겠기에…다만 그에게서 배운 여행을 바라보는 관점하나는 꼭 함께 익히고 가야할 것이다. 앞으로의 여행을 위하여서도….
 
 오늘 산을 타고 넘으려던 계획은 지켜지지 않았다. 까맣게 잊고 있었다. 계획대로 되지 않았지만 아쉬움은 없다. 나는 오늘 하루를 아주 잘 보냈다. 내가 오늘계획한 것은 산을 넘는 데 있다기보다는 행복한 하루를 보내는 것이었다. 나는 행복했고, 더 바랄 것이 없다. ('아무 계획 없이, 아무 목적 없이'에서) (209)
 
 
2008. 8. 3. '취해 자다 또 일어나 읽고 버리고 기록한다'(168).  나도 ^^
 
들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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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한국인 젊은 그대
KSB 1TV 지구촌 한국인 젊은 그대 제작팀 엮음 / 책세상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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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인가 TV에서 방영될 때 나중에 찾아서 보아야지 하며 메모해두었던 프로그램이 책으로 나왔다. 세계를 누비는 젊은 한국인들의 성공이야기라는 컨셉이지만 책을 보니 개인적인 성공에 더하여 그가 속한 사회에서의 자리잡음까지 포괄하는 의미라 더 읽는 맛이 난다.
 
 3부로 나뉘어진 이야기를 굳이 분류하자면 1부는 '꿈'을 가지고 개인적인, 프리랜서에 가까운? 직업에 해당하는, 개인실력으로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 - 두바이 버즈알아랍 호텔 수석 주방장 / 세계최고의 핸드볼 공격수 / 할리우드 최초의 한국인 미술 총감독 / 파리 오페라 발레단 솔리스트 / 플로리스트 파티플래너 / 전자 바이올리니스트 - 이다. 고생끝에 성공한 그들의 노력을 통하여 우리가 배울 점은 성공학 교과서에 나오는 이야기들이 진실이라는 것!
 
 '성실함과 뛰어난 실력'(16) , '자신의 일을 즐기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자세'(27), '어떤 상황에서 무슨 일을 당하든 배우자'(55), '완벽한 애프터서비스를 하자'(97), '늘 처음처럼, 늘 새롭게, 언제나 다르게'(101)
 
  2부는 '열정'으로 남들이 꺼려하는 일들에 도전하여 세상을 바꿔나가며 한국인임을 세계에 각인시키고 있는 '자랑스런 젊은 그대'들의 이야기이다. 개인의 성공을 사회에 이바지하는데서 찾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가 제일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스리랑카 농축산 장관 직속 수의 보좌관 / 우엔 세계 식량계획 국제 공무원 / 코라오 그룹 에너지 개발 담당 이사 / 데포르티보 코레아노 구단주 의 이야기들은 개인적인 성공을 넘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뒤의 두 이야기는 1부에 넣어도 무방할 성공사례인데 - 드레스 디자이너 / GSM UK 대표 - 결국 모두 꿈과 열정으로 자신의 길, 자신만의 세상, 성공의 길을 가면서 지구촌에서 한국인임을 자랑스럽게 해주고 있는셈이다.
 
 '자신이 속한 공간이 어디든 자신이 어떤 처지든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는 것'(133), '사랑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136), '가르치고 배우는 일은 더불어 사는 삶에서 돈보다 더욱 시급하고 중요한 일'(169), '언제나 한결같이 열심히 잘 하자'(179), '세상에서 가장 가치있는 일은 아이를 기르는 일'(209)
 
 세상을 가치있게, 똑바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이라 특별히 강조하지 않아도 그들의 이야기 속에서 지난 몇 개월간 만나온 자기계발서+성공학 서적들의 금언같은 이야기들이 툭툭 튀어나온다. 제대로, 바른 길을 간다면 결국 통한다는 이야기리라.
 
 3부는 나름대로 자리잡은 기업의 대표이거나 기업내에서 혁혁한 성과를 거둔 해외지사장들의 이야기인데 '도전'이라는 말에 딱맞는, 흔히 이야기되는 "성공시대"의 모범사례이다. - 브라질 체인업계의 신화 진진+모라나 대표 / 로스앤젤레스 수산물 시장의 성공신화 오션 프레시 피시 대표 / 뉴질랜드에 타조 왕국을 세운 갈라티아 캐대시 타조 농장주 대표 / 굴착기 박사 두산 인프라 코어 유럽 법인장 / LG전자 에콰도르 지사장 / 삼성중공업 오슬로 지점장 - 이들의 이야기중 배를 수주도 받기 전에 펀드로 제작비를 모집하여 제작에 들어간 삼성중공업 오슬로 지점장의 이야기는 발상의 전환, 통찰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는지 제대로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다른이들이 생각하는 단계를 뛰어넘어 새로운 사고의 지평으로 나아간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지구는 아직도 둥글고 넓고 할 수 있는 일이 많음을 보여준다. 읽으면서 기분이 좋아지는 얘기였다.
 
 TV드라마를 보듯 훌쩍 넘긴 책장들이지만 그들의 삶에 이처럼 성공이 쉽게 오지는 않았으리라. 다 기록되지 못한 고통과 인고의 시간들이 그네들 삶에 밑바탕으로 깔려 있음을 이 나이쯤이면 안다. 우리는 이런 이야기들을 통하여 지나온 자신을 다시 한 번 돌이켜 보고 주어진 오늘 하루를 다시 한 번 성실히,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착한 어린이 같은 생각을 자연스레 하게되는 것이다. 그럴수밖에 없는 것이 나 역시 '지구촌 한국인 젊은 그대'이니까….

 

 
 
2008. 8. 3.  여름은 여름, 무더위는 계속되고~
 
들풀처럼
 *책 내용의 구체적인 이름을 적시하지 않은 까닭은? - 궁금하신 분들은 직접 만나보시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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