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시
신경림 외 지음 / 작가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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숟가락 사이로 먼 바다 소리 왔다 가고 / 늦은 점심 두레밥상 / 빈 둥지 올려다보며 / 껍질 모래 삼키던 그 모습에 / 목이 메던 풍경이 있었네  (고두현의 "물메기국"에서) (13)
 
  모음시집의 첫 작품부터 먹는 이야기다. 시대가 성마르고 작가도 목말라서일까. 이 맛난 작품들의 향연을 즐기다보니 먹는 것과 관련한 말들이 꽤나 등장한다. "사골국 끊이는 저녁"(김선우) (39) 을 거쳐 드디어 "홍어"(김영재) (47),(문희진) (71)까지…. 그리고 홍어가 삭듯이 詩도 삭아서 빛을 발한다.
 
 술 취한 친구의 한잔을 위하여 / 잘 삭은 홍어 되어 몸속으로 빨려든다면 / 어두운 살의 바다에 독한 냄새로 남으리 / ~ / 다시는 환생치 못할 ……썩어, 푹……썩어 있을  (김영재의 "홍어"에서) (47)
 
 홍어의 삭은 살점에서 피어나는 오묘한 냄새 / ~ / 두엄 속에서 곰삭은 홍어의 살점을 씹는 순간 (문혜진의 "홍어"에서) (71)
 
 물고기 떼를 불러오는 / 저 가락은 허공에 던져보는 누군가의 간절한 두근거림 / 잘 삭힌 두근거림일수록  (박라연의 "플라이 낚시"에서) (75)
 
 삭아야 제 맛을 내는 홍어처럼 우리 정신도, 육체도 얼마나 더 썩고 삭아야 빛을 발할까. '햄버거는 입 속에서 혈관을 터뜨리고 커피는 저녁처럼 어두워'(박주택의 "강남역"에서)(79)지는데…. '초저녁 맑은 허기'(박형준의 "개밥바라기"에서) (83)만으로는 우리 삶은 익지 않는것일까?  '그래서 그늘 있는 맛, 그늘 있는 소리, 그늘 /있는 삶, 그늘 있는 사람./ 그게 진짜 곰삭은 삶'(송수권의 "퉁"에서) (95) 이 되는 것인가? 익히고 삭혀야만 제대로 인정받는, 사람이, 혹은 詩가 된다는 이야기?인지....겨우겨우 따라가며 같이 삭아보는데 오히려 온갖 잡생각이 많은 나는 제대로 삭지도 않는다. 홍어같은 맛도 한 번 피우지도 못한채 그냥 썩어가나? 좀 더 고우고 삭히면 내게도 피어나는 날이오리니 기다리고 기다리며 詩들을 질겅질겅 씹어본다.
 
 넘쳐나는 詩들 속에 예전에 좋아하던 시인들의 근작시를 만날 수 있어 좋고 모르는 시인들의 맘에 드는 작품도 좋다. 여러 작품들 속의 공통점을 가려내기란 사실 불가능하지만 이번에는 詩를 읽으며 '홍어'같은 글들을 부러 찾아다녔다. 그리고 몇몇 그런 작품들을 만나기도 하였고..김경주의 "무릎의 문양"(22), 김민정의 "고비라는 이름의 고비"(29), 김영남의 "가을 파로호"(45), 나태주의 "희망"(57), 박후기의 "석류와 석유"(84),신경림의 "그 집이 아름답다"(99) 등이 앞서 언급한 작품들과 함께 나의 입맛을 당기던 '배고픈詩들'이었다.
 
 그 중 제대로 삭아있으면서도 감칠 맛나고 그러면서도 상큼한 詩 한편을 '이 책의 詩'로 나름 선정하여 소개하련다. 참 놀라지들 마시라. 이 작품은 우리 詩인 시조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더욱 반가웠던 詩를 읊조리며 책을 덮는다.
 
 
 
 얼마만한 축복이었을까
 얼마만한 슬픔이었을까
 
 그대 창문 앞
 
 그대 텅 빈 뜨락에
 
 세계를 뒤흔들어 놓고
 사라지는
 가랑잎
 하나
 
 *홍성란    (시조21 상반기호)    (183)
 
 
2008. 8. 3.  아직도 배고픈 나 ^^
 
들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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