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휘청거려도 눈부시다 - 이프 여성경험총서 5
자야 지음 / 이프(if)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땅을 버리지 않는 한 하늘을 얻을 수 없다. 누구든, 무엇이든, 일정한 방향과 목표를 지니는 한 온몸을 떨며 휘청거리지 않을 수 없다. 노력하는 한 방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괘도를 상실하지 않은 휘청거림, 그 서투른 몸부림의 궤적은 차라리 아름답다. 휘청거려도 눈부시다. ( 이거룡, 이끄는 글 "건너되, 그 위에 집을 짓지는 말라"에서) (6)
 
 어떤 부분, 이를테면 책의 이름이거나 표지 디자인, 혹은 지은이, 아니면 책의 분류에 따라 무조건, 일단 구입하여 손에 들고야 마는 책들이 있다. 그리고는 두고두고 책의 몸매만 감상하다 어느날 문득, 그 책이 나를 끌어당기는 순간 주저없이 책과 하나가 되어 책이 토해내는 숨결을 만끽한다. 이 책도 그런 책들중의 하나가 되었다.
 
 '휘청거려도 눈부시다'는 선언같은 제목만으로도 눈길을 잡아끄는데 그 앞에 붙은 낱말이 '인도'라니…. [인도, 휘청거려도 눈부시다]라는 그 이름만으로도 나는 책을 손에 들 수 밖에 없었다.
 
 내게 있어 '인도'라는 나라는 [인구가 세계를 바꾼다]의 미래 초강대국이될 '인도'도 아니고 [세계는 평평하다]에 등장하는 훌륭한 경제사례로서의 일취월장하는 '인도'도 아니다. 다만 이 글의 지은이처럼 삶에 허청거리는 청춘들이 심신의 방황끝에 다다르는 곳, 바로 그 '인도'이다. 6개월간의 비자가 끝나면 잠시 '네팔'에 넘어갔다 다시 비자기간을 연장하여 머무른다는 그 '인도' …. 한 번 가면 몇 개월, 두 번 가면 몇 년, 그러다 그들이 보여주는 크낙한 삶에의 진정성과 편안함에 끌려 종내는 돌아오지 못한다는 그 '인도', 나는 그 '인도'라는 이름에 무엇에 끌린듯 책을 열었다.
 
 어디서 사느냐가 뭐 그리 중요하겠어. ~ 몸이 어디에 거하든 존재는 한 곳에 뿌리박고 있다고. 그러니 몸이 어디 있는지와 상관없이 존재가 뿌리박고 있는 곳을 놓치지 않으면 된다고. 몸과 몸이 거하는 곳은 제한적인 물질세계일 수밖에 없지만 존재는 시작도 끝도 없는 영원의 세계를 살지 않느냐고….("바닷가 영원의 집"에서) (51)
 
 당연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그 사실을 인정하기가 왜 그리 힘든 것일까? 2003년경 가장 가까웠던 벗 하나, 인도-네팔-인도를 1년 가까이, 이 책의 지은이 '자야'처럼 방황하고 돌아왔던 벗, 멀리 있어 늘 그리웠던 녀석은 인도에서 네팔로 넘어가며 내게 메일을 보내었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온 1여년뒤 2005년 1월 말, 녀석은 훌쩍 세상을 떠나버렸다. 무에 그리 안타까운 것이 많았던지, 우울증이라는 병력을 뒤로하고 무심한 친구들을 뿌리치며 떠나버렸던 것이다.
 
 그리고 오늘, '요가'라는 중심(!)을 들고 자신을 찾아 떠난 '자야'라는 지은이의 이야기를 따라 걷는다. 녀석도 지은이처럼 중심에 기댈 언덕 하나라도 있었다면 좀 더 버팅기며, 허청거리면서도 이 세상을 '눈부시게' 살아갈 수 있었을 터인데 이미 지나버린 일이다. 우연히 지은이에게도  친구를 병으로 잃어버린 아픔이 있다. 지은이는 그 아픔을 삭여 자신의 몸과 맘속으로 고이 간직한다. 이제는 나도 그리움으로만 간직하련다. 
 
 ~ 투정하듯, 칭얼거리듯. 그러면 얼마나 위로가 되었던가. 그처럼 마음을 향해 있다는 것만으로도 따뜻한 온기를 느낄 수 있게 해준 J를 이제 더 이상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문득 슬퍼졌다. 하지만 울고 싶진 않았다. 이미 인도에서 그녀를 보내는 의식을 치뤘으므로. 많이 숨죽여 울고 오래 상심했으므로. 이제는 그냥 덤덤한 그리움으로만 간직하고 싶었으므로. ("끝내 갈 수 없던, 언젠가 가야 할"에서) (65)
 
 책은 스물일곱장으로 나뉘어져 인도에서의 생활, 요가 수련, 여행, 자신 의 생활, 한국에서의 갈무리, 새로운 깨달음, 또 다른 만남과 정착 등으로 전개되는데 이야기들이 조금은 단편적으로 전개되어 초점이 흐릿한 듯 보인다. 하지만 일찌감치 글을 썼던 지은이라 흐트러진듯 하면서도 글들은 한 방향을 향해 있다. '참자아를 회복하고 그를 통해 완전한 자유, 즉 까이월려담을 실현'("내 안에 흐르는 강"에서) (344)하는 방법을  '씻기우고 흘러가 사라지는'(336) 것을 담담히 바라보는 과정에서 깨닫고 있음을 자신의 이야기 속에서 아름답고 정갈한 사진들과 함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특히, 79쪽의 모래밭과 자전거가 어우러진 바닷가 사진은, 작은 깨달음과 함께 놓여져 읽는 이를 잠시동안이나마 '작품의 세계'로 이끌어내고 있다.
 
 뜨거운 바닷가를 달리며 나는 배웠다. 바닷물이 완전히 빠진 모래 위에서만 자전거 바퀴가 굴러가듯, 슬픔으로 질척이지 않는 마음밭이어야 힘차게 존재의 페달을 밟아 그 너머로 갈 수 있음을. ("슬픔이여, 이젠 안녕"에서) (79)
 
 여행기로만 바라보기에는 아쉬움이 남을 수도 있는 이야기들이지만 인도철학 또는 인도문화, 티베트 불교, 요가라는 몸철학?에 대하여 많이 아는 바가 없어도 발걸음을 따라가기에는 힘들지 않다. 다만 추억에 기대어 쓴 글들이라 읽다보니 시간이 어디쯤 흐르고 있는지, 지금 어디쯤 머무르는지 헷갈리고는 하였다. 하지만 약간의 불편도 이 책의 이야기처럼 '그냥 놓아두고 바라보면 그만인 것을',인도사람들이 즐겨쓴다는 말처럼, 'No, Problem!'인 것이다.
 
 왜 뜨거운가를 아는 것은 중요하지 않아요. 분석하지 말고 그저 느끼고 바라보십시오. ("불완전한 것을 위한 사랑"에서) (275)
 
 
2008. 8. 4.  '인생은 찰나이니, 소녀야 사랑에 빠지거라….'(262)
 
들풀처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