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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영화포스터 커버 특별판)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끝까지 읽은 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는 평은 옳았다. 작가조차도 원문 150여페이지의 작품이 짧다는 지적에, '수많은 독자들이 나에게 책을 다 읽자마자 다시 처음부터 읽었다고 말했다. 고로 나는 이 작품이 삼백 페이지짜리라고 생각한다'(p 261)고 대답했다고.
토니 웹스터, 이제는 은퇴하여 육십대가 된 그가 사십여년전을 회고한다. 콜린, 앨릭스와 셋이서 단짝으로 붙어다녔던 고교시절, 에이드리언 핀이라는 키크고 과묵하고 지적인 전학생이 등장하고 셋은 곧 넷이 된다. 졸업을 하고, 대학에 진학하고, 여자를 사귀고 어떤 문제로 인해 토니와 에이드리언은 평생 외면하게 된다. 그리고 알게 된 에이드리언의 자살.
제목은 고교역사시간에 역사란 무엇인가. 라는 선생님의 질문에 에이드리언이 한 대답이다. 토니는 역사는 승자들의 거짓말. 이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사십여년전을 돌이켜보며 생각을 바꾸게 된다. 역사는 승자들의 거짓말이 아니다. 이제 나는 알고 있다. 역사는 살아남은 자, 대부분 승자도 패자도 아닌 이들의 회고에 더 가깝다는 것을. (p 101)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이 '사실'인가. 하는 의문은 누구나 가져본 적 있으리라 생각한다. 나만 해도 얼마나 많은 기억들이 왜곡되고 미화되고 이기적이게도 합리화되었는가 느끼고 당황했던 경험이 많다. 이 책은, 아주 오래전 일기장을 다시 펼쳤을 때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 느낌.을 일으킨다. 마지막 책장을 덮었을 때 나는, 아주 부끄러웠다. 그리고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첫 페이지로 돌아갔다. '특별한 순서 없이, 기억이 떠오른다.' 로 시작되는 첫 페이지는, 새삼 마음이 아프다. 이제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고, 사과도 보상도 부질없는 짓이라는 회한, 내가,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무난한 인간조차도 아니었다는 잔인한 깨달음만 안게 된 이의 충격이 무척 슬프다.
나는 인생의 목적이 흔히 말하듯 인생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님을 얼마의 시간이 걸리건 상관없이 기어코 납득시킨 끝에, 고달파진 우리가 최후의 상실까지 체념하고 받아들이게 하는 데 있는 건 아닌가 생각할 때가 가끔 있다. (p183)
나 역시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