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휙, 바람이 쏴 비룡소 세계의 옛이야기 5
케티 벤트 그림, 에벌린 하슬러 글, 유혜자 옮김 / 비룡소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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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에드워드 고리에 푹 빠져서 그로테스크한 펜 그림만 보면 정신을 못 차리고 있던 차에, 몰래 방문하곤 하는 한 분의 서재에서 이 책의 리뷰를 보곤 덥석 질러버렸는데- 아아 이를 어쩌랴. 그림은 그래, 내 취향이다 응 맞아. 하지만 어쩔거냐고 이 내용은!

 

  스위스 테신 지방에 전해 내려오는 이 이야기는 어찌되었든 '환경보호'를 주제로 내걸고 있지만, 나는 굳이 말하자면 '혹부리 영감'의 스위스 버전이라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혹부리 영감'쪽이 훨씬 긴장감 있는 이야기라고 해야할까. 갈등구조가 미약해서 손에 땀을 쥐고 보게하는(오두막에서 도깨비 몰래 숨어 있던 그네들을 떠올려보라.) 그런 맛은 부족하다. 뭐 어찌되었든, 남을 배려하고 환경을 보호해야 복을 받는다는 메시지는 확실하게 전달하고 있으니 아이들이 보기엔 무난하다고 해야할까.

  이렇게 써놓으니 굉장히 이상한 그림동화인 것 같지만, 그래도 결말에서 동생 메오가 자신의 과오를 깨닫고 고치려고 가는 부분은 억지스럽지 않아서(우리 나라 전래동화는 두들겨 맞고 최악의 상황에 가야만 깨닫게 되지 않는가-) 오히려 설득력을 가진다.

 

  그림이 알록달록하지 않아서 아주 어린 아이들은 재미 없어할지도 모르겠다. 나로선, 이 그림 덕에 이 책을 읽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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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장면 불어요! 창비아동문고 224
이현 지음, 윤정주 그림 / 창비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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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비 어린이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작년, 어지간한 부문을 죄다 휩쓸었던 책. 자연 궁금해져서 샀는데 결과는- 반반이었다.

 

  일단, 작가의 첫 작품집이라는 면에서 본다면 이 책을 누가 신인작가의 작품집이라고 하겠는가- 구성도, 내용도, 소재도, 문장도, 입담도- 그래, 칭찬해줄만 하다. 그런데 읽고 난 다음 드는 이 마음은 무얼까. 괴롭다.

 

  몇몇 작품에서 보이는 그 나이의 아이들이 생각하는 깜찍발랄한 이야기들을 조금 틀어서 말하고 있는 작가- '적나라하다'라는 말로밖에 설명할 수가 없겠다. '3일간'에서 보여주는 세 여자아이의 모래성처럼 무너져버린 관계와, '짜장면 불어요'에서 기삼이가 늘어놓는 황당무계하지만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 '봄날에도 흰곰은 춥다'에서 가난 때문에 흩어진 가족의 모습이, '지구는 잘 있지?'의 끔찍한 전쟁과 끔찍한 멸망과 끔찍한 음모들.

  그래도 동화니까- 그 안에 담긴 따뜻하고 희망적인 메시지가 들어있음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래도 여쩐지 괴로운 건 괴로운거다.

  재미있고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엔 이 이야기들이 담고 있는 메시지가 너무나 크다. 그래서 더 괴로운 걸지도 모르겠다.

 

덧, '짜장면 불어요'를 읽으며 성석제를 생각한 건 무리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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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머니 속의 고래 - 중학교 국어교과서 수록도서 푸른도서관 17
이금이 지음 / 푸른책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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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시작을 어찌해야 할까 참 고민되는 책이다. 이제 정말 부인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나는, 이 작가가 정말 좋다.

 

  20대 중반이라고, 이제는 빼도박도 못할 나이가 되었는데 난 여전히 성장소설을 좋아한다. 열심히 자라던 그 당시의 나를 떠올리는 것도 즐겁고, 그 때의 감성을 살릴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고 또 무엇보다 내가 가르치는 몇 안 되는 아이들에게 '걱정하지 마'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일지 모르겠다.

  그래, 나는 그런 마음으로 이 책을 밤을 꼬박 새워가며 읽었을지도.

 

  고등학교 1학년 때, 나는 길을 잃고 참 많이 아파했더랬다. 연호처럼 삶의 무게가 더께처럼 어깨에 얹혀 있던 것도 아니었는데, 마음만 먹자면, 아주 손쉽게 꿈을 꿀 수 있었을텐데- 나는 마치 꿈을 거세당한 아이처럼 그렇게 살았었다. 물론, 짧지 않은 기간 동안 반대하는 부모님께 나름 투쟁하면서 내 뜻대로 진로를 잡을 수 있었다. 그렇게 얻은 내 꿈과는 다른 길을 가고 있지만 그 길을 버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중요한 건, 내가 꾸었던 최초의 꿈을 이루기 위해 난 내 20대를 기꺼이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꿈을 꾸지 않는 아이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에 때때로 놀라곤 한다. 내가 처음 꿈을 꾸었던 때는 지금 생각해보면 초등학교 5학년 때였던 것 같다. 그 후로 꿈이 없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건 길도, 지도도 아무것도 없는 사막 한 가운데 서 있는 것과 같다는 것을 나는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어쨌든 나는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있으니까.

  준희처럼 자신의 아픔에만 몰두하여 꿈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여력도 없을 수 있고, 민기처럼 뿌리없는 열망으로 미적지근하게 꿈에 달려들 수도 있고, 현중이처럼 앞으로의 꿈을 위해 다른 재능을 포기할 수도 있다. 어찌되었든, '꿈찾기'는 그 나이에 올바르게 겪고 넘어가야 할 일이 아닌가 싶다. 청소년기에 길찾기를 시작하지 않는다면 앞으로의 나는 어딘지 모를 장소에서 평생 헤매며 살아가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친구의 말처럼 '나' 의 아픔에만 신경쓰느라 '우리'의 아픔에 무덤덤했던 내 청소년기를 생각한다. 때때로 '나'의 아픔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렇다면 아마도 덜 아플텐데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점점 아픔에 무뎌지는 건 굳이 청소년기에 시도하지 않아도 될 거란 생각이 든다. 나이가 들고, 어른이 되어가면서 자연 아픔에 익숙해지게 될테니까. '나'의 아픔에 무뎌지면 '우리'의 아픔에도 무뎌질테니까. 그리고 그러면서 아이들은 자랄테니까.

  그러니, 기꺼이 꿈을 꾸기 위해, 꿈을 이루기 위해 아파하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작가는 책 말미에 '꿈을 꾸는 모든 청소년에게 이 책을 바치노라'했다. 나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다. 아이들이 꿈을 꿀 수 있게 해줘야 하는 모든 이들이 이 책을 읽어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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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과 유진 푸른도서관 9
이금이 지음 / 푸른책들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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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금이'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초등학교 6학년 읽기에 수록되어 있는 '소희의 일기장'('너는 하늘말나리야'의 일부분), 민감한 시기의 아이들의 민감한 부분을 포착해내는 작가라는 것, 그래서 5, 6학년 여자아이들에게 많이 추천해주었다는 것. 하지만 부끄럽게도 내가 이금이 작가의 작품을 읽은 건 이 책이 처음이다. 확실히 이 책을 동화책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 '나'나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와 같은 청소년 소설에 포함시키는 게 맞는 것 같다. 게다가 소재도 민감하다. '동성애', '죽음' 만큼이나-(앗, 깜짝이야. 지금 작가 소개 다시 읽다가 내가 초등학교 때 읽었던(심지어 지금도 가지고 있는) 단편집 '영구랑 흑구랑'이 이 작가 꺼였구나;; 그럼 정정. 두 번째 작품이다!)

  확실히 오래 쓴 작가는 다른걸까. 문장이 매끄럽다. 화자 두 명을 내세워 이야기하고 있는데도 이질감이라든지 끊기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리고 그 둘이 확실히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게 드러난다.

  작가 스스로도 작위적인 설정이라고 이야기했으니 억지스러운 설정-같은 유치원에서 원장에게 성폭력을 당했던 동명이인의 두 아이가 고등학교에서 다시 만난다-은 걸고 넘어가지 말자. 성폭력을 당했다는 그 사실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후에 어떻게 치유했는지가 이 소설이 중점을 두고 있는 부분이니.

  어떤 상처이든지 그것을 꽁꽁 싸매 두면 곪기 마련이다. 흉이 질 걸 알면서도 때때로 다친 상처 부위를 내놓고 건조시키면 빨리 낳는다는 걸 한 두 번 생채기를 경험해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상처를 숨긴 것은 물론 '그런 딸'을 가졌다는 사실이 수치스러워 아이의 기억을 봉해버리는 엄마라니- '엄마'라는 존재에 대해 무한한 의존감을 갖고 있는 딸인 나로서는 실로 감당해내기 어려운 현실이다. 보통 사춘기에 엄마와 갖는 여러 문제점은 별게 아니다. 내편인줄 알았던 엄마가 내 비밀을 여기저기 소문낸다는 것, 앞에서는 다 이해하는 것처럼 굴면서도 사실은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 정도? 게다가 모범생인 자식에게 갖는 기대감에 때때로 짓눌려 버릴 것 같다는 것. 나로선 이 소설의 두 엄마의 모습을 섞은 엄마를 갖고 있으니 어쩐지 씁쓸해지기도 했다.

  잠시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흘렀는데- 이런 소설을 읽고 나면 참으로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나는 왜 알 수 없는 상실감을 안고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뭐랄까- 어쩐지 들게 되는 죄책감에 때때로 더 읽기 힘들어지는 경우도 있으니까.

  비단 성폭력뿐 아니라 '어떤 상처'로부터 스스로 당당해질 수 있는지, 그래도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소설이랄까. 작은유진이 자기 자신을 안아주는 방법이라며 무릎을 당겨 안을 때 왈칵 감정이 복받쳐 올랐다. 살면서 '외로움'과 '상처'들에게서 우리들은 얼만큼 맞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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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1-06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당선 축하드립니다. 우연히 좋은 글을 읽게 되었네요. ^^

망상 2007-01-07 0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사실은 지금 무진장 부끄러운 마음이랍니다;;)

dosagong 2007-01-08 2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합니다!! 저는 남자지만.. 감히..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을 하고 싶네요.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망상 2007-01-09 0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자든, 여자든 모두 어느 정도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을테니까요. 감사합니다^^
 
나온의 숨어 있는 방 창비아동문고 228
황선미 지음, 김윤주 그림 / 창비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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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선미. 학원에서 초등학생인 아이들을 가르칠 때 부던히도 많이 거론되었던 이름. 마당을 나온 암탉은 연극으로도 올랐으니- 아이들에게 동화 작가를 추천해줄 때 항상 앞에 나왔던 이름 중 한 명. 그런데도 난, 일을 그만둔지 8개월이 지나서야 그녀의 작품을 읽어보았다. 원체 베스트셀러 따위 좋아하지 않는데다 끊임없이 그림 동화나 판타지 동화만 찾았으니 이 작가의 작품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딱히 들지 않았던 것이다. 나중에 또 쓸테지만 이금이 작가 역시도.

  헌데 이번에 창비를 통해 판타지 동화를 내었단다. 안 읽어볼 수야 없지.

  사실 이 작품을 '판타지 동화'라고 단정짓기엔 무리가 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판타지 동화의 대표작 '끝없는 이야기'나 '피터팬'처럼 완전히 다른 세계, 새로이 창조된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이야기는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인공 '나온'과 나온과 등을 맞대고 있는 아이 '라온'의 서로 다른 세계가 혹은 시간이 맞닿아지는 부분만큼은 우리의 전통적인 판타지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다. 전설의 고향이나 서프라이즈에 나올법한 이야기라고 해야할까.

  어려서 죽은 쌍둥이 동생이 자신의 존재를 모르고 있던 다른 쌍둥이 누나를 자신의 시간으로, 즉 자신의 방으로 초대해서 누나의 병을 치료해주려는 것인지, 자신의 시간으로 데려오고 싶어하는 것인지 확실히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함께 있고 싶어한다는 것, 그래서 나온의 병이 점점 심해져간다는 것, 무언가 낌새를 챈 엄마가 라온의 남은 인형과 태 항아리를 태워 라온을 보내준다는 것. 어떤 아픔을 겪으며 분리되었던 가족이 다시금 함께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으며 나온이 스스로 설 수 있는 힘을 주었다는 것. 이 동화에서 얻을 수 있는 판타지 이면의 가슴 저린 이야기들이다.

  어찌보면 통속적이고 별 이야기 아닐 것 같은 이야기가(이건 순전히 온갖 매체에 찌든 어른의 화법이지만) 이 작가의 노련한 구성만큼은 당해낼 수가 없을 것 같다. 이 동화를 읽기 몇 주 전 서점에서 서서 읽은 '처음 가진 열쇠'에서 느꼈던 '향수'라던지 '애틋함'이 또 다른 방법으로 발현된다고 해야할까.(아 지금 생각하니 주인공 둘 다 아프구나. 이 작품에선 천식, 그 작품에선 폐결핵)

  사춘기 여자 아이의 가족 바라보기- 정도가 될까. 확실히 잘 읽히고 재미는 있었는데 게다가 끝부분에선 나름의 감동도 느꼈는데 뭔가 미적지근한 기분이 드는 건 왜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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